스탈린은 매우 모순된 인물이었다.


한편으로는 냉철한 지성과 강인한 신념을 소유한 혁명가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목적의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혹한 독재자이기도 했다.

스탈린은 매우 괴팍하고 격정적인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그는 품행이 단정한 인간이었다. 겉으로 희노애락을 드러내는 경우가 드물었으며, 제아무리 화가 났더라도 욕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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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은 사색적 인간이었다. 그는 공적인 장소에서 주제와 무관한 이야기를 하는법이 없었다. 불필요한 서론이나 장광설, 농담도 좋아하지 않았다. 반면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조리있게 이야기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대단히 참을성 있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논쟁할 때 상대방의 눈을 무자비하리만큼 뚫어져라 쳐다보는 버릇이 있었다. 스탈린의 냉혹한 시선을 정면으로 받은 사람은 속으로 불안을 느끼게 마련이었다.

앉아서 이야기할 때 스탈린은 체중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버릇이 있었다. 몸짓이나 손짓은 그다지 하지 않았지만, 특별히 강조할 만한 사안이 있을 경우에는 손을 사용했다. 스탈린의 목소리는 억양이 거의 없었고, 큰소리를 내는 일도 좀체로 없었다.

그러나 일단 그의 입이 열리면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는 곳이라도 순식간에 쥐죽은듯이 조용해졌다. 스탈린의 말솜씨는 독특한 스타일이 있었고, 비범한 아이디어로 넘치고 있었다.


스탈린은 결코 빠르게 서두르는 법이 없었으며 그와 같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꼈다.

그는 누군가로부터 보고를 받을 때는 방안을 꼿꼿한 걸음걸이로 왔다갔다하며 귀를 기울였다. 몇걸음 걷다가 멈춰서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하고.. 다시 걸어다니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서 몇분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지금 들은 보고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판단하는지 탐색하려는 것이었다. 때로는 간결하게 묻는 경우도 있었다.

"어떻게 생각해?" 물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스탈린의 취향에 맞게 최대한 간결하게, 쓸데없는 말을 빼고 대답하려 노력해야만 했다.



스탈린은 식사도 느긋하게 하는 편이었다. 아무리 맛있는 요리가 있어도 결코 나이프와 포크를 바쁘게 움직이는 법은 없었다. 천천히 약간만 먹는 것이 스탈린의 식습관이었다.

술 중에서는 와인을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언제나 본인 스스로 마개를 따고는 라벨을 주의깊게 바라보곤 했다.


1941년 11월 7일, 혁명 기념일 연설 - 히틀러가 모스크바 코앞까지 쳐들어온 상황임에도 스탈린의 목소리는 차분하다.


스탈린은 절대로 서류를 들고 다니지 않았다. 연필이나 펜을 가지고 다니는 적도 없었다. 그는 어떠한 경우에도 메모하는 법이 없었다. 스탈린은 올빼미 체질이라 일은 주로 밤에 했다. 선입견과 달리, 독소전 중 전선으로부터 안좋은 보고를 받고도 판단력이 흐려지지 않는 몇안되는 사람중에 한명이 바로 스탈린이었다.


스탈린은 상당한 독서가였다. 그는 러시아의 고전에는 능통했으며, 셰익스피어, 하이네, 발자크, 모파상도 좋아했다. 이외에도 많은 문학을 섭렵했으며, 역사에 대해서도 많은 독서를 했다.


스탈린은 정치국에서 발언시 항상 자신의 생각을 간결하게 말했다. 극히 난해한 정치적 문제에 대해서도 항상 요점만을 간단히 말했다. 그러나 일부 정치국원들은 스탈린과는 달랐다. 보로실로프는 매우 정열적으로 이야기하는 스타일이었고, 카가노비치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 그것을 억제하기가 어려웠다.


스탈린은 정치국원들이 사무실 밖에서 어울리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스탈린 시대의 정치국원들은 함께 휴가를 간다거나, 심지어 두세명이 함께 차를 타고다니는 일도 없었다. 그들은 자신의 부주의한 행동이나 대화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이 큰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스탈린이 죽고나서 장례식이 치뤄지기 전날, 흐루시초프의 방안에서 폭소가 터져나왔다. 거기에는 정치국원들이 모두 모여있었는데, 그들은 다음날 슬픈 얼굴로 스탈린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정치국원들이 독재자의 죽음을 얼마나 기다렸는지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 반면 스탈린의 후계자인 떠들썩한 시골뜨기 흐루시초프는 전임자와는 대조적으로 솔직하고 급한 성격이었다. 그도 스탈린못지않게 교활했지만, 그만큼 잔인하지도 냉혹하지도 못했다.


흐루시초프의 성격을 볼 수 있는 한 일화를 보자.  출처는 그로미코의 회고록이다.


1960년 가을 제 15회 유엔 총회가 한창일 때의 일이었다. 소련 대표단을 흐루시초프가 인솔했다. 소련과 나토간의 토론은 격렬했다. 이들은 사사건건 대립했다. 9월 28일 영국 수상인 맥밀란이 동서관계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신랄한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맥밀란이 소련과 그 위성국들에 대해 심한 비난을 퍼부었을 때 갑자기 흐루시초프가 몸을 구부려 한쪽 구두를 벗어 자기 앞에 있는 책상을 힘차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구두로 책상을 두들기는 소리는 온 회의장에 울려퍼졌고, 흐루시초프는 큰소리로 고함쳤다.

"소련은 완전 사찰에 의한 완전 군축을 지지한다. 이것을 비방하고 있는 것은 서방 대국들이다."

UN 역사상 두번 다시 일어나기 힘든 희귀한 순간이었다. 맥밀란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연설을 시작했다. 소련 대표단 맞은편에 앉아있던 스페인 대표단은 구두의 주인이 다시 한번 그런 행동을 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자리를 피했다.

스페인인들이 구두가 날아올 만한 범위를 벗어나자, 그들중 한명이 뒤를 돌아보면서 흐루시초프에게 강한 스페인식 영어로 고함쳤다.

"비(We) 돈 라이크 유! 비 돈트 라이크 유!"


솔직하다 못해 야만적인 매너를 지녔던 흐루시초프는 한편으로 따뜻한 가슴도 가지고 있었다.

미국 사업가인 해머를 만난 흐루시초프가 남긴 말이다.

미국에 갔을 때, 커다란 스테이크가 정말 맛있게 보였습니다.

나는 한조각도 남기지 않고 먹어치웠어요.

소련 국민이 그같은 스테이크를 마음껏 먹을 수 있을 때까지, 나는 행복하지 못할 겁니다.


흐루시초프는 또한 먹을것에 게걸스러웠다. 다시 한번 해머의 발언을 인용해보자.

그것은 서서 먹는 파티였다. 흐루시초프는 음식이 잔뜩 차려진 테이블마다 이리저리 옮겨다니면서, 정말 만족스러운 듯이 먹고 있었다. 그는 딸기를 하나 먹다가 떨어뜨렸는데, 태연하게 테이블 아래로 그것을 차넣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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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한 사람 열명을 숙청하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명의 스파이를 놓쳐서는 안된다.


- 니콜라이 예조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