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이란 인류가 神의 영역에 최초로 도달한 분야(무기)라고 생각된다. 핵으로 인해서 인류는 자기 종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지구라는 세계 자체를 멸할 능력이 생겼으니 말이다. 창조와 파괴야말로 신의 고유 영역으로 생각되어온 분야가 아닌가?- 핵무기의 기본 정보 - 핵폭탄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원자 폭탄과 수소 폭탄이다. 원자 폭탄은 질량이 무거운 원자의 핵이 분열하는 폭발력을 발생하고, 수소 폭탄은 질량이 가벼운 원자의 핵이 융합할 때 발생하는 폭발력을 이용한다. 최초의 수소폭탄 실험은 1952 년에 있었다. 일반적으로 수소폭탄은 원자폭탄보다 파괴력이 훨씬 강력하다. 지금까지 폭발된 것중 가장 강력한 수소폭탄은 TNT 5700 만 톤에 해당하는 57 메가톤의 파괴력을 가진 것이었다. 짜르 봄바(tzar bomba)라고 불리는 이 폭탄은, 1961 년 소련이 폭발시킨 것으로 그 충격파가 지구를 세 바퀴나 돌 정도였다. 이 폭탄은 1961년 10월 30일 오전 11시 33분, 노바야제믈랴섬에서 폭발했다. Tu-95 폭격기에 의해 10,500 m 높이에서 투하된 짜르 봄바는 기압 센서로 조절되어 지면 해발 4200m 높이에서 폭발했다. 폭발의 빛은 1,000 km 밖에서도 관찰되었으며, 핵폭발 특유의 버섯 구름은 높이가 60 km까지 치솟았다.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인 흐루시쵸프는 짜르 봄바의 파괴력이 100 메가톤급이었다고까지 허풍을 쳤다.tzar bomba 현존하는 핵폭탄들은 대개 1 메가톤 이하급이 주종이지만, 당장 이용할 수 있는 이런 소형 핵폭탄의 숫자가 엄청나게 많다는 데 문제가 있다. 10 메가톤 급 핵폭탄 한개의 파괴력보다 1 메가톤 급 핵폭탄 열개의 파괴력이 훨씬더 크다. 다른 종류의 핵폭탄도 가능한데, 예를 들어 핵분열과 핵융합을 결합시켜 효율성을 높인 종류도 있다. 최소한의 방사능을 방출하도록 설계된 저방사능 폭탄(Clean Bomb)가 있는가 하면, 중성자탄 같이 가장 최소한의 폭발로 엄청난 방사능을 방출하는 고방사능 폭탄(Dirty Bomb)도 있다. 고방사능 폭탄의 경우 빌딩이나 시설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생명체만 선별해 살상한다. 전략 핵무기와 전술 핵무기로 종류가 나누어지기도 하는데 이는 핵폭탄의 유형보다 핵폭탄을 사용하는 방법을 지칭하는 것이다. 도시나 군사요충지에 이용되는 핵무기는 전략적인 것이고, 국지적인 전투 현장에서 이용되는 핵무기는 전술적인 것이다. 다만 일반적으로 전술 핵무기의 파괴력이 전략 핵무기보다 떨어진다. - 핵무기의 사용례 - 1945년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서 핵폭탄은 33만명의 인간에게 죽음을 선물했다. 그후로도 지구상에서는 약 1,800번 이상의 핵폭발이 있었다. 물론 대부분 실험 용도의 폭발이었지만 상대편 적에게 직접 사용하려는 시도도 여러 번 있었다. 1. 1950 년 트루먼 대통령은 한국전 종식을 위해 핵폭탄 사용을 고려하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2. 1954년 존 포스터 덜레스 국무장관은 베트남의 디엔비엔푸를 공격하도록 프랑스에 원자폭탄 세 개를 제공하겠다고 제의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이를 거절했다. 3. 1958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만약 중국이 중국 해안 근처의 진먼섬과 마쭈섬을 무단 점령하면 핵무기 사용을 고려하라고 함동참모본부에게 지시했다. 4. 1961년 합동참모본부는 미국의 라오스 점령안을 중국이 거부할 경우 핵무기를 사용해야 한다고 케네디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그러나 케네디는 라오스를 점령하지 않기로 했다. 5.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 때 미국은 핵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다. 6.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은 회고록에서 1968 년 베트남의 크사 지역이 포위당했을 때 전술 핵무기를 사용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7. H. R. 홀드먼는 자신이 공직을 맡은 지 몇 달 안 돼서 닉슨 대통령과 키신저 국무장관이 북베트남(월맹)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하자는 제안을 은밀하게 했다고 회고록에서 말했다. 이 제안은 1972 년 12월 하노이 폭격이 있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특히 철도나 호치민 루트에 핵무기를 사용하자는 제안이 집요하게 제기되었다. 8. 냉전시대 동안 NATO에서 서독 지역에 핵지뢰를 묻어놓았다는 기록이 있다. 소련이 동독에서 서독으로 침공해 오면 이 핵무기들을 원격조종하여 폭발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9. 최근에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레이건 대통령은 재임기간 내내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 직전의 상황에 놓여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성서에 예언돼 있는 것처럼 '악의 제국'이 이스라엘을 침공하고, 결국 미국과 소련 두 나라의 핵무기 사용으로 아마겟돈(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세계 종말의 날)이 찾아오며, 예수가 천국으로부터 재림하리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련의 고르바초프 수상이 핵무기 감축을 통해 대량 인명살상을 피하자고 역설했을 때에도, 레이건은 성서의 예언 실현과 예수의 재림을 위해서는 핵전쟁도 괜찬은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10. 노먼 슈왈츠코프 장군은 걸프 전 당시, 만약 이라크가 화학무기를 사용하면 미국도 즉시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며 이라크를 위협했다고 상원위원회에서 증언했다. 핵무기와 관련된 사고도 실제 일반에 알려진 것보다는 훨씬 많다. 미 해군의 경우 핵무기 사고가 발생하면 일반 국민들을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 비밀로 한다고 한다. 1984 년 5월 8일 당시 태평양 함대 사령관이었던 월리엄 크라우 장군은 각 지휘관들에게 "핵무기 사고나 기타 사고가 발생하면 가능한 한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모든 증거를 없애라"는 명령을 시달했다. 또한 "핵무기 사고가 발생하면 무조건 핵무기와 관련없는 일이라고 발뺌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우발적인 핵무기 사고들은 극비로 취급되어 언론에 거의 공표되지 않는다. 1. 1957 년 뉴 멕시코 주 앨뷰커크 근처에 미 공군 폭격기에서 수소폭탄 한 개가 떨어졌다. 대기 난류 현상으로 인해 폭탄발사 제어장치에 이상이 생겨 투하된 것이다. 다행히 폭탄의 핵 성분은 폭발하지 않았고 재래식 성분만 폭발했다. 폭발 지점 근처에는 깊이 12 피트, 넓이 25 피트의 구멍이 생겨났다. 소 한 마리가 유일한 피해자였다. 미공군 당국은 이 사건을 확인하지 않고 있다가 1981 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 지역에서 소량의 방사능이 검출되었다고 발표했다. 군 당국에서는 확인을 거부하고 있지만 당시의 폭탄은 10 메가톤 급 파괴력을 지닌 것이었다. 이는 히로시마에 떨어졌던 폭탄보다 무려 625배나 높은 파괴력을 지닌 것이다. 2. 1966 년 스페인의 팔로마레스에서 공군폭격기와 연료보급기가 충돌하여 세 개의 수소폭탄이 지상으로 떨어졌다. 네 번째 폭탄은 지중해로 떨어졌다. 다행히 폭탄에 내장되어 있던 안전장치 때문에 스페인 남부 대부분 지역이 불바다가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폭탄이 떨어진 마을에는 플루토늄과 우라늄 입자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당시 여섯 살이던 안토니안 플로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집 뒷마당에 떨어진 폭탄 때문에 큰 구멍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뭔지도 모르고 파편들을 가지고 놀다가 나중에 위험한 물건들이란 소릴 들었지요." 미공군 당국은 마을을 정화시키기 위해 마을의 곡식을 모두 불태우고, 가축들을 죽이고, 지표면 흙을 2,000 톤이나 제거했다. 3. 1979 년 북아메리카 NORAD(방공사령부) 본부의 명백한 컴퓨터 오작동으로 인해 소련 잠수함으로부터 미사일이 발사되었다는 경보가 발령되었다. 6분이 경과하고 나서야 이 경고가 실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직 대통령에게까지는 통지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미 미국과 캐나다의 F106 전투기 열 대가 존재하지도 않는 소련 폭격기를 제압하기 위해 발진했으며 핵미사일 기지들도 비상태세에 돌입했다. 이 사건이 있기 전 18개월 동안 NORAD의 경고장치는 컴퓨터 오작동으로 인한 착오 경보를 열다섯 차례나 발령했고 그중 네 차례는 실제로 폭격기와 미사일 담당자들이 비상태세에 들어갔다. 몇 년 뒤 스탠퍼드 대학의 한 컴퓨터 전문가는 소련의 공격상황 경보에 따른 자동 핵미사일 발사 시스템을 작동하지 못하게 하자는 소송을 미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하기도 했다. 4. 1983 년 태양에 일어난 열폭풍으로 인해 소련의 조기경보위성에 미국의 전면 공격이 시작되었다는 정보가 잘못 입력된 적도 있다. 5. 1995 년 1월 25일 러시아 대통령 보리스 옐친은 잠수함에서 발사된 탄도미사일 한 발이 노르웨이 해 상공을 날아오고 있다는 통지를 받았다. 이에 대한 보복 공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시간은 4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옐친은 보복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나중에 이 미사일은 노르웨이의 기상로켓으로 밝혀졌다. 기상 로켓을 발사한다는 사실이 모스크바 당국에 통지되었지만 미처 군 고위 당국자에게 전달이 되지않아 생긴 해프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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