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에서의 연속적인 패배로 궁지에 몰린 일본은 가미카제 병기의 개발에 발악적으로 매진하게 되었다.

복룡(伏竜, 伏龍)은 본토 결전에서 일본 해군 비장의 카드로 구상된 무기 체계이다. 해군 군령부 제 2 부장(海軍軍令部第二部長) 쿠로시마(黒島亀人) 소장에 의해 발안된 이 물건은 바다 속에 잠수한 병사가 미군의 상륙용 주정이 접근하면 수뢰를 붙인 대나무 작대기를 배 밑바닥에 밀어 올려 폭파시킨다는 개념이었다.

미군의 기동부대가 접근할 경우 우선 1차적으로 특공기가 적함에 격돌하고, 2차적으로 수송함이 접근하면 회천(回天)이나 진양(震洋)같은 수상 특공 부대가 요격하며 최종적으로 적의 상륙용 주정은 물가에서 복룡으로 요격한다는 구상이었다.

복룡의 장비는 자재 부족 때문에 최저질품을 사용하여 제작되었다. 허술하게 만들어진 잠수복을 입고 등에는 산소통 2개를 짊어진다. 다리에는 납을 달았다. 헬멧에는 유리창이 붙어 있었지만 발 아래밖에는 보이지 않았고 시야 또한 나빴다. 통신 수단은 전혀 없었다.





복룡 대원은 무거운 장비 탓에 헤엄을 칠 수 없고, 바다 밑바닥을 걸어서 이동하게 되어 있었다. 연락 수단이 없기 때문에 미리 작전로를 따라 새끼줄을 쳐두고 그것을 따라 바다로 이동했다. 해안으로부터의 거리는 새끼줄의 매듭의 수로 측정했다. 육상뿐만 아니라 바로 옆의 대원들과도 연락은 불가능했고, 일단 바다 속에 투입되면 진지 변환도 불가능했다.

장시간의 잠수를 위해서 반순환식의 산소 공급기가 고안 되었다. 호흡에 포함된 이산화탄소를 가성 소다를 이용한 흡수캔으로 제거해 다시 흡입하도록 하는 방법이었다. 실험에서는 5시간 동안의 잠수가 가능했으며 호흡으로부터 기포를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흡수캔이 깨지거나 호스가 빗나가거나 해서 회로에 바닷물이 들어가면 흡수캔의 수산화 나트륨과 격렬하게 반응하여 강한 알칼리가 헬멧 내로 분출했다. 이 때문에 훈련중에도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한다.

대원의 상당수는 십대 후반의 해군 예과 훈련생 출신이었으며, 해군 육전대의 고참병들도 투입되었다. 복룡 부대는 진수부(鎮守府)에 소속되어 요코스카(横須賀)에 5개 대대, 오(呉) 2개 대대, 사세보(佐世保) 2개 대대, 마이즈루(舞鶴) 1개 대대가 정비될 예정이었다.

1945년 6월부터 요코스카 대잠 학교에서 선발부대 480명의 훈련이 시작되었다. 이후 잠수 훈련은 각각의 진수부에서 행해져서 총 3,000명 가까이 훈련을 받았다. 미군의 본토 상륙은 9~10월 중에 이루어질 것으로 상정되어, 미군이 상륙해올 것으로 예상된 쿠쥬쿠리(九十九里) 해안 등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각 부대의 전개 시기는10월 말을 목표로 하고 있었지만 다행히도 8월 15일 전쟁이 끝나 실전에 투입되지는 않았다.



바다 속에서는 시야가 나쁘고 움직임도 둔하기 때문에 복룡 대원들이 상륙용 주정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또한 작대기 수뢰를 물의 저항 속에서 자유자재로 휘두른다는 것도 불가능했으며, 이 수뢰의 폭약량으로는 작은 배를 직격하지 않고는 피해를 줄 수 없었다.

따라서 복룡은 불과 몇미터 떨어진 곳에 주정이 지나간다고 해도 공격은 불가능했으며, 대원들의 바로 위쪽을 우연히 지나가는 경우에만 공격의 찬스가 있었다.

고속으로 접근하는 상륙용 주정을 확실히 저지하기 위해서는, 해저에 수미터 간격으로 복용 대원들을 배치해야만 했으나 하나의 수뢰가 폭발하면 충격파로 주변의 수뢰가 차례차례 유폭하게 될 터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바닷속에 개별 복룡 대원들이 들어갈 수 있는 콘크리트 방호벽을 만들 계획도 있었으나, 실제로 구축된 사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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