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우선은 제가 대낙각탄에 대해서 의심을 품게된 동기를 말씀드리자면..
백과사전을 봐도 유틀란트 해전의 전훈으로 갑판덱이 어쩌구하는 내용은 분명히 나옵니다. 하지만 그것이 향후 실질적으로 효율적인 결과를 낳았는지에 대한 평가는 거의 없습니다.
2차대전 기간 동안 전함간의 교전이 적긴 했지만, 그렇다고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1차대전보다는 더 많이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 옳겠지요. 그런데 어째서 유틀란트 해전에서는 큰 효과를 봤던 대낙각탄이 2차대전에서는 종적을 감췄을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으실 분들이 계시겠지만.. 실제 대낙각탄에 맞아 침몰한 전함이 있습니까? 적어도 제가 아는한은 없습니다.
여기서 1차대전의 해전에 대해 다시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틀란트 해전에 대해 매우 잘 설명되어 있는.. 자주 눈팅하곤 하는 고마운 분의 홈페이지에서 불펌한 그림입니다. ㅡㅡ;;
출처는 http://www.battleship.wi.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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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00야드면 15,000m일 겁니다. 대략 그 거리 안쪽에서 양국 배틀크루저 간의 교전이 이루어졌습니다. 모두들 알고 계시듯이 이 전투에서 대낙각탄이 종종 발생했고 영국 배틀크루저 석대가 격침당했습니다.
그렇다면 의문점 하나! 그때는 2차대전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대낙각탄이 발생했군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정답은 함포의 발전입니다.
직관적으로 한번 생각해봅시다. 활이 있습니다. 목표는 100미터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힘센 사람이 목표를 맞출때는 시위를 세게 당기고 낮은 각도로 쏠겁니다. 왜냐? 그게 명중시킬 확률이 높으니까. 힘이 약한 사람은 자신의 힘만큼 시위를 당기고 보다 높은 각도로 쏠겁니다. 명중 확률은 떨어져도 힘이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죠.
함포도 마찬가지입니다.
포탄의 힘은 장약의 힘과 포신의 구경장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장약이 세면 당연히 포탄을 강하게 날릴 것이고.. 구경장이 길면 압축된 가스를 보다 오래 포탄에 전달하니 결국 포탄이 강하게 날아갑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주포의 위력이 세질수록 동일한 거리에서 발사각은 점점 낮아진다는 것입니다.
주포의 위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세지는건 당연하겠지요? 결국 유틀란트에서 대낙각탄이 발생하던 거리에서도, 2차대전의 전함은 보다 낮은 각도로 쏘기 때문에 게 되고 대낙각탄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2차대전의 실전에서 대낙각탄으로 명중되거나 침몰된 전함이 나오지 않은(적어도 제가 알기로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가지 더 추가하자면 저는 대낙각탄의 본질적 의미가 갑판 장갑을 때린다는 점이 아니라 보다 높은 각도로 입사한다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격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매우 낮은 각도로 주포를 쐈습니다. 그런데 그 포탄이 적함의 갑판에 명중했습니다. 과연 공격자는 좋아할까요? 반대라고 봅니다. 낮은 각도의 탄도는 측현에 명중해야 위력과 효과가 크기 때문입니다.
바닷속에 잠들어 있는 초구식 전함 비스마르크의 예를 한번 들어보지요.
비스의 씨타델에 뚫린 구멍(적함의 주포가 낸 구멍이겠지요)이 8개인데 그중 7개가 측현이고 단 한개만이 갑판에 있습니다. 측현이고 갑판이고를 떠나서 비스의 장갑에는 몇백개의 탄흔이 남아있습니다. 그중 갑판을 뚫은것은 단 하나라는 점입니다.
이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실제 2차대전 시기의 전함간 교전에서는 갑판보다 측현이 뚫릴 가능성이 더 컸다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요?
결국 이런 모든 가정이 사실이라면 포스트 유틀란트 전함의 트렌드는 결과적으로 뭔가 비효율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해석해볼 여지는 없을까요?

무고한 사람 열명을 숙청하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명의 스파이를 놓쳐서는 안된다.
- 니콜라이 예조프 -
정말 몹쓸 넘들이라는... 그러라고 영상편집 기술이 나온 것은 아닌데 ...
이제는 더이상 인터넷 공간에서 밀리터리에 대해 심도깊고 냉철한 토론을 하기가 힘든것 같습니다. 그게 가능했던 곳은 예전 디펜스코리아 정도? 본좌라는 분들이 주장하는 설에 반대의견을 내놓으면 무조건 무슨무슨Q로 몰리는 형편이니..
가령 예전 디코에서는 비스마르크를 까내리는 사람이 있으면 옹호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치열한 논쟁중에도 항상 균형잡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죠. 이젠 비스마르크는 천하의 구형 전함이고 롬멜은 닥돌만 일삼는 사단장 수준의 지휘관이고.. 이런 누군가의 주장 수준의 이야기가 정설이 되어버렸으니.
그런 종류의 주장은 말그대로 누군가의 생각일 뿐이고, 합리적인 반론은 어떻게든 가능한데 말이죠.
또한 독일이라는 나라는 전함을 전혀 안만들어본 국가도 아니며, 오히려 1차대전에서 독일전함들은 해군 초강대국인 영국의 전함 설계 기준을 완전히 뒤집어버릴만큼의 충격을 주었습니다. 1차대전이 끝난 후에도 실험적인 판저슈페와 샤른호르스트를 제작한 경험이 있는 독일에서 야심차게 만든 것이 비스마르크라는 물건인데.. 기술력 부족으로 제대로 써먹지도 못할 물건을 만들었다고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전혀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2차대전에서 티거와 판터를 만들었던 독일이 오랜 공백기 덕분에 새로운 전차를 구형 개념으로 만들지는 않았지요. 오히려 레오파드1과 레오파드2는 당대의 전차 설계 개념을 앞질러 선도하는 전차였습니다.
집중방어라는 개념도 완전무결하고 가장 발전된 형태의 방어구조인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배수량의 효율적인 사용이라는 목적을 위해 일정한 부분의 방어력을 포기한 것인데... 덮어놓고 무조건 그게 최고라는 논리들을 어떻게 납득해야할지 참으로 이해할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편견으로 가득찬 대한민국만의 정설이라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어떤 종류의 가설도 실전에서 발생했던 결과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은 기본중의 기본일 것인데.. 비스마르크가 터프한 방어력을 보인 결과(당사자인 영국 해군조차 경악했던)는 무조건 깡그리 무시하는 사고방식들은 더더욱 납득할 수가 없지요. 그런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 또다시 되먹지 않는 논리들이 동원되는건 말할것도 없구요.
어느정도 서로 맞고 틀린 부분이 있을텐데 요즘 댓글은 좀 심하긴 심하죠.
특히 어릴 수록 장난아니게 심하더군요.
소총사격 한번 한적없는 애들이 총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는 것을 보면 정말 질려버릴때도 있고 비행기 한번 타보지도 않고 평생 타볼일도 없을 것 같은데도 배틀 오브 브리튼에 대해서 거의 광적인 의견제시를 하죠.헐~~~.
댓글은 짧고 간결하게 다는게 좋지 않을까요?
자유게시판도 있는데 그런데도 다시죠.이 블로그가 한두명 보는 곳도 아닌데 여기까지 와서 이런 댓글 남기는 건 좀 그렇네요.자유게시판에 올려도 충분히 감상하고 댓글달거나 리플 달지 않습니까?(저같으면 회칙내걸고 그냥 삭제로 일관하지만)
비스마르크와 POW간의 자세한 교전 상황은 모르고 있었는데,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하지만 대공방어없는 전함은 그냥 프리츠X의 표적에 불과했습니다.H???도 만만치 않구요.
언젠가는 다시 게임을 재개해서 쿠바를 점령하고 뉴욕에 E-50을 풀어놓으리라 다짐.
그나저나 비스는 그래도 약간의 활약이라도 했지만 북해의 여왕 텔피츠는 그냥 수장되어버려서 아쉽네요.
전함의 위력은 노르망디에서 경험했습니다.
연합군 함선들이 일제 포격하니 무적의 독일기갑사단들이 순식간에 증발하더군요.
계속 찍어내서 간신히 막아냈습니다.(무서운 넘들)
한국전쟁에서도 거의 비슷했죠. 백선엽 장군 자서전을 보니.. 당시 백장군이 동해안에 주둔한 1군단장이었는데 자체 포병 전력이 신통치 않았답니다. 그래서 알레이버크 제독의 제5순양분대 전함의 지원화력에 많이 의존하더군요. 백장군이 알레이버크를 자신의 포병사령관으로 소개할 정도로. ㅎㅎ
어쨌든 비스마르크나 티르피츠도 항공기에 의해 결정타를 맞은걸 보면, 2차대전 이후는 더이상 전함이 해전의 주역이 아니라는 점을 느끼게 됩니다.
레더제독도 비스가 격침된 이후에 항공모함의 필요성을 많이 느낀 듯 합니다.
돌프사마한테 열씸히 제펠린 취역과 일반상선의 경함모 개조를 건의하지죠.
시큰둥한 반응의 돌사마... 좌절 레더... 지못미 ~~~.
차라리 돼지녀석한테 제펠린 소유권을 넘기고 운용하는게 낫지 않았나 싶네요.
독일 입장에서는 영국 본토함대 정도와는 충분히 싸울만한 수상함 전력을 갖추거나, 아니라면 완전히 U-BOOT류의 비대칭 전력으로 올인했어야 하는 것인데.. 전쟁이 시작된 타이밍 자체가 해군의 예측에 비해서 너무 빨랐지요. 만약 1945년에 전쟁이 시작되었다면 Z계획이 어느정도 진척되어 막강한 수상함 전력을 갖추었을 것입니다만, 현실적으로는 U-Boot 약간과 수상함 전력 몇대로 전쟁을 맞았으니 래더제독은 땅을칠 일이었을겁니다.
거함거포주의 라는것 자체가.. 더 큰포로 더 멀리있는 적을 선제타격한다라는데 목적이 있는것임을 생각하면
2차대전역시 함포전 위주의 해전이었다면 대낙각탄이 난무하는 전장이 되었을거라고 봅니다.
항모글로리어스의 격침 혹은 푼다스틸로 해전의 경우 24~26km거리에서도 명중탄이 나왔으며..
당시 샤른호스트나 위스파이트급의 전함이라면 대낙각탄이 나올거리 입니다.
비스마르크와 첫번째로 상대한 전함이 후드가 아니라 넬슨/로드니 였다면..
훨씬 멀리서 포격전이 이루어졌으리라고 생각이 되고요. 후드가 저리 불리함을 무릅쓰고..
급속하게 거리를 좁히려 한것 역시 대낙각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고..
즉 대낙각탄 방어에 자신이 없는쪽이 이를 적극회피하려 불리함을 무릅썼기에 대낙각탄에 격침당한 전함이
없었을뿐..
실제 수백발의 포탄을 비스마르크의 현측에 꼿아넣고도 침몰시키지 못한 영국함대를 보면..
현측장갑을 두들기는 것은 전함을 상대하는데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고..
영국함대가 구지 이리한것은.. 이미 비스마르크가 모든 화력을 상실한 시점에서..
구지 멀리서 힘들게 쏠 필요가 없이 침몰하건 하지않건 그냥 두들기는게 편한(그리고 속도 시원한)방법이었을
뿐이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야마토의 42킬로에서 탄착오차가 1킬로에 달했다는것 역시..
모든 전함이 야마토와 같았는지..도 모를일이며.. 길이가 300미터 폭이 30미터가 넘는 거대목표를
공격하는데.. 1킬로의 탄착오차라면 한번 도전해 볼만한 거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포가 9개나 달린 전함이라면 말이지요.
결과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대낙각탄에 대한 대비가 제대로된 전함이.. 당시기준에서 선진적인 전함이었겠고.
만약 함포 대 함포결전이 난무하는 전장이었다면 당연 이러한 전함들이 자신들의 이점을 살려..
아웃레인지에서의 대낙각탄 사격으로 구식전함들을 상대했겠죠.
결국 신예전함이 비스마르크 vs 구식 후드의 대결은 아이오와 vs 비스 혹은 넬슨/로드니 vs 비스에서
반대로 제현되었을 거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우선 영국의 토비 제독은 비스마르크가 침몰하지 않는데 대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 시점에 처칠은 하원에 출석해서 "비스마르크는 포격으로 격침되지 않는것 같다!"라는 보고를 했습니다. KGV와 로드니는 연료가 떨어져가고 있었고 언제 유보트가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비스마르크를 끝장내야했습니다. 영국함대는 명백히 비스마르크를 침몰시키려는 의도로 공격하고 있었습니다. 손쉽게 침몰시킬 방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포탄과 시간을 낭비해가며 잘못된 방법으로 적함을 공격할 지휘관은 없겠지요. 로얄 네이비의 본토함대 사령관이 설마 올바른 공격법을 몰랐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토비 제독은 비스마르크의 반격을 우려해서 해가 밝은 이후에야 접근해서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초탄은 2만2천m에서 발사되었습니다. 그 거리에서 KGV의 35.6cm 주포 낙각은 26도 정도입니다. 비스마르크가 초탄을 맞은 거리는 1만8천m 거리입니다. 낙각은 18.2도입니다. 비스마르크의 터렛이 터져나가기 시작한 시점에서 로드니는 9천m 안쪽에 있었고, KGV는 1만4천m 안쪽에 있었습니다. 1만3천m 정도면 낙각은 11도에 불과합니다. 9천m면 6도에 불과하구요. 비스마르크의 터렛이 모두 박살난 후에 로드니는 3천5백m까지 더 거리를 좁혔습니다.
저는 여기서 아래 내용을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토비는 비스마르크의 포탑이 살아있는 상태임에도, 1만m 안팎까지 파고드는 선택을 했습니다. 가까운 거리에서의 교전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겁니다. 또한 비스마르크의 전투력이 완전히 상실되었음에도, 오히려 더욱 거리를 좁히는 선택을 했습니다. 원거리에서 대낙각탄을 날리는 것이 적함을 공격하는데 효과적이라면 토비제독은 도대체 왜 거리를 더욱 좁혔을까요? 그 시점에서 교전거리는 완전히 토비의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분명한데요.
이것은 원거리에서의 공격이 결코 효과적이지 않다는 반증입니다.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더욱 용이하게 강한 공격을 가할수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물론 토비제독이 잘못 생각했을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혀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일부 매니아분들이 상상력을 동원해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공식을 창조했으리라는 가능성도 무시하고 싶지는 않군요.
그리고 한가지더.. 비스마르크는 현측뿐만 아니라 갑판에도 공격을 받았습니다. 가까운 거리에서 낮은 낙각으로 떨어지는 포탄이라해서 갑판에 명중되지 않는것은 아닙니다. 다만 명중된다고 해도 그리 효과적이지는 않겠지요.
떠있는 강철관을 두들기는데 멀리서 포를 쏴데는것은 변태가 아니면..시도할 필요가 없는 일이겠지요.
하지만 전투라는 것은 상대도 아군에게 포를 쏘아데는 것이고..
당연히 상대보다 멀리서 아웃레인지 공격을 펴는 것이 상식이겠지요. 리치가 짧은쪽은 파고 들어야 하겠고..
전함의 거포는 상대보다 멀리 포탄을 쏘기 위함이 아닙니까.
비스와 후드의 결전에서 후드는 대낙각탄을 피하기 위해 불리함을 무릅스고 비스와의 거리를 좁히려
했지요. 후드가 신형의 넬슨이나 로드니 KGV였다면 구지 이럴필요가 없이 원거리에서 전포탑을 이용해
포격을 했을 것이고.. 이러면 이것이 대낙각탄이 난무하는 포격전이 아닙니까.
그럼 왜 비스 마지막 전투에서 비스의 포탑이 살아있는 중에도 거리를 좁히려 했는가 역시..당시 정황을
보면 명확하지 않습니까.. 비스는 달아나고 영국함대는 추격중이었습니다.
달아나는 적을 추격하는 입장에서 원거리에서 배를 비스와 수평으로 돌릴 수도 없는 일이고..
비스의 포탑이 모두 침묵한 이후에는 더 말할 나위도 없겠죠.
확인사살하는데 머리통에 총을 대고 쏘아야 하겠지요. 당시 영측이 단순히 비스를 침몰시키는데만 주력했다면
비스의 전투력이 상실된 시점에서 어뢰로 끝장을 내면 되는일이지..
왜 한참 아까운 포탄을 낭비하겠습니까? 어차피 전함이란 놈은 포로는 수선하부를 때리거나 탄약고라도 유폭이
되지 않는한 포격으로 침몰시킬 수 없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처칠이야.. 역시 게르만의 혼!! 이러면서
놀라겠지만.. 당시 영전함의 포수들이 포격으로 침몰을 시키겠다고 달려들었으면..
수선하부를 때렸겠고..그럼 비스가 아니라 비스 할아버지라도 침몰했겠지요.
여하간 서로 결전을 하겠다고 달려든다면 최대사거리부터 포격을 개시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요?
대 낙각탄이 두려운쪽은 거리를 좁혀야 하겠지요. 거리를 좁히는 쪽은 화력을 50%~66%밖에 활용을
못할테고..
추격을 위해 거리를 좁히는것과 대낙각탄이 두려워서 거리를 좁혀야만 하는것은 다르지 않겠습니까?
처음부터 끝까지..비스는 쫒기는 쪽..영국은 쫒는쪽이었으니..
40킬로를 두고 포격을 하려한다면.. 비스는 전장을 이탈하여 대서양으로 나가버리면 그뿐..
대낙각탄이 난무하는 전장은..
당시로서는 태평양에서 연합함대가 꿈꾸던 미일함대결전에서나 상상할 수 있겠고..
이렇다면 육박필중을 주장하는 연합함대는 미함대를 향해 만세돌격을 할지도 모르겠군요.
여튼 당시 전함들간의 포격이 상대적으로 전함의 최대사거리보다 훨씬 안쪽에서 이루어진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당시 전함들은 훨씬 먼거리에서 교전하도록 설계된것 역시 사실입니다.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의 성능을 최대한 끌어내지 못한건지..
하드웨어가 쓸데없이 너무 앞서나간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최신식이었고.. 이차대전 역시 전함의 시대였다면 뒤떨어진 소프트웨어는 금방 발전을 했겠지요.
비스가 그때까지 살아있었다면.. 지금같은 대접도 못받는 확실한 구닥다리 신조함으로 낙인 찍혔을 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쫒고 쫓기는 맹추격 중이라 거리를 좁혀야했다는 것은 사실관계에 부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당시 토비 제독은 순수하게 본인의 의사로 교전거리를 좁힌 것입니다. 정말 비스마르크가 달아나는 중이었다면 어떻게 최고속력이 더 느린 KGV가 비스를 따라잡을수 있었을까요?
어뢰보다는 함포로 전함을 격침시키기가 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어려운 것과 불가능한 것은 다른 개념입니다. 만약 함포로 비스를 격침시키는 것이 애당초 불가능했다면 토비 제독이나 처칠 수상이 놀라워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유폭이건 뭐건 함포로 전함을 격침시킨 사례는 수도없이 많습니다.
또한 전함간의 교전이 최대사거리에서부터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좀 잘못된것 같습니다. 2차대전중 벌어진 해전 몇가지의 사례를 찾아봤지만 주포의 발사가 최대사거리에서부터 이루어진 경우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후로 벌어진 전함간 교전이라는 Surigao Strait 해전에서도 USS 웨스트 버지니아는 38km 거리에서 레이더로 적함대를 포착했지만, 초탄을 날린 것은 27km 거리였습니다. 야마시로에 사격이 명중하기 시작한 거리는 21km였습니다. 왜 최대사거리 내의 적을 바로 공격하지 않고, 27km거리까지 기다렸을까요?
최대사거리에서의 공격이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 정답일겁니다. 탄착이 너무 넓게 흩어지면 애당초 협차라는 것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그건 위협에 불과한 것이지 실질적으로는 공격의 의미가 없을겁니다.
요약을 해보면
1. 유틀란트해전 당시 원거리 포격전의 전훈으로 인해 수평방어력 역시 중요하며, 근거리뿐 아니라 원거리에서
포탄 중량과 높은 낙하각도로 피해를 줄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2. 이에 따라 이후 전함들은 수평방어력 강화 및 대중량탄을 사용하게 됩니다.
Necrocant님 의견은 2차 대전중 전함간의 함포전 사례를 보면 의외로 근거리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고.
또한 2차대전 당시 함포가 1차대전때보다 많이 발전했기 때문에.. 실제 상황에서 대낙각탄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 이론에 불과하다. 로 요약할 수 있겠지요.
제 의견은
1. 2차 대전당시 함포전의 경우 특수한 상황이 많으며..
(Surigao Strait는 야간, 비스-후드,POW간 함포전의 경우 추격전
비스-로드니,KGV의 경우.. 원인 불명 (전 추격전이라고 봅니다.)
2. 전함이라는 함의 존재이유를 볼때 정상적인 상황
예를 들어 2차대전판 유틀란트 해전 같은 함포결전이 있었다면
분명 대낙각탄이 난무하는 함포전이 진행되었을 것이다.. 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그 근거로는 당시 일어난 장거리 포격전 사례
(푼다스틸로 해전, 글로리어스 격침 등)
그리고 저위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들은 비스-영함대간 결전이 왜 그리 근거리에서 일어났는가..
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일 뿐 주장을 뒤받침하지는 못하는것 같군요.
논리적으로 본다면 POW나 KGV, 로드니는 분명 비스를 상대로 원거리에서 포격을 하는것이 훨씬 유리합니다.
수평방어가 뛰어나기 때문이지요. 근거리로 가면 불리하냐.. 근거리로 가면 똑같아 지지 더 불리할것이 뭐겠습니까?
그럼 왜.. 최대사거리 언저리인 30킬로미터 근방에서 포격을 개시하지 않았을까..
포탄이 아까워서?
맞으면 대박, 빗맞아도 본전인 상황에서 뭐가 아쉬워서..
오히려 비스가 말려들어 서로 30킬로 거리를 두고 포화를 주고 받는다면 권투선수와 검도선수가 거리를 벌이고 싸우는
격인데..
당시 영함대는..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참고로 아이오와의 16인치포의 경우 명중율을 실험한 Data가 있네요.
http://www.navweaps.com/Weapons/WNUS_16-50_mk7.htm
3만야드에서 비스마르크 크기 목표에 대해 측면 2.7%, 정면 1.4%
27킬로 거리에서 4~5회 일제사격이면 명중탄이 나온다는 이야기인데..
후드나 POW가 접근전을 하려한 이유는 일단 접어두고, 23,000미터 거리까지 근접해서 초탄을 발사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KGV와 로드니는 어째서 22,000미터 거리까지 접근해서야 초탄을 발사했을까요? 원거리에서 대낙각탄을 쏴대는 것이 정말로 더 유리하다면 그 거리까지 발포를 미룰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결국 무조건 멀리서 먼저 포격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은 검증되지 않은채 떠돌아다니는 일종의 소문 - 무수한 실전사례들과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 하나의 관념일 뿐입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논리처럼 영국 전함들이 원거리에서 장점을 보인다면 로열 네이비 전함들은 어째서 인파이팅을 선호했을까?
현실에 부합되지 않는 이론이나 논리.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는 이론과 논리는 별로 쓸모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논리를 만드는 것이지 논리를 합리화하기 위해 현실을 꿰어맞출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원거리 포격전이 유리한지는 다르기 때문에 무조건 멀리서 포격하는것이 유리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당시 전함들이 보다 장거리에서 포격을 가하기 위해 만들어 진점은 분명 사실이며..
23킬로미터 라는 거리는 전함의 최대사거리에는 한참 못미치지만..
어떤 기준을 대더라도 대낙각탄이라 할 수 있는 24도 근방의 입사각을 보이는 각도입니다.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솔직히 왜 당시 전함들의 초탄발사거리가 최대사거리에 훨씬 못미쳤는가는
저역시 의문 입니다만.. 여러 사정이 있겠지요. (실제 최대사거리 근방에서 포격을 한 경우도 있음)
하지만 거의 25킬로 내외에서의 초탄은 분명히 대낙각으로 입사 합니다.
로드니의 16인치포는 2만 5천 야드에서 24.6도, 3만야드에서 30.1도의 낙각을 보여줍니다.
--> 비스 vs 로드니간 포격전에서도 초탄은 대낙각으로 입사.
2. 영 해군이 인파이팅을 선호했다는것은 성급한 일반화 라고 보여집니다.
영전함의 구조자체가 인파이팅에 중점을 두고 만들어 지지 않았으며.. 이는 의견이나 관념이 아닌 Fact 입니다.
또한 푼다스틸로에서 워스파이트의 24킬로미터에서의 명중탄은..
26도에서 36도 사이의 입사각을 보였을 것인데.. 이역시 대낙각 입니다.
(연돌을 관통하고 반대변 장갑에 격돌해서 폭팔했죠)
3. 최대 사거리에서 포격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수상기를 이용한 탄착군 측정이 필수적 입니다.
이런 소규모 전투 혹은 야간, 악천후에서는 이루어 지기 힘듭니다.
이것이 왜 당시 초탄사격이 25~27킬로 내외 짧게는 20킬로 정도에서 이루어 졌는지에 대한 답이 될 수 있겠군요.
하지만 결코 2만 5천 미터 내외의 거리가 짧은 거리도 아니고.. 이 거리에서의 입사각은 일반적으로
대낙각 입니다.
20km 중반에서 초탄이 발사되었다는 것은 실제 교전거리는 그보다 더 가깝게 상정한 것이지요.
그리고 수상기를 이용해서 탄착군을 관찰한다는 것은 이론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그런 방법을 적용해서 교전을 벌인 사례가 있었는지 여부는 좀 의문스럽군요. 당시에 오늘날과 같은 데이터링크나 GPS가 있는것도 아닐테니 기술적으로 쉬운 일은 아닐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국 전함들이 인파이팅을 위주로 설계했는지 아웃레인지를 위주로 설계했는지 여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방면에는 별로 지식이 없습니다. 단지 실전에서 영국해군이 보인 행동으로 미루어 짐작할 뿐이지요.
아쉬운게 비스마르크 선미에 대형 로켓 미사일 런처같은게 있었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항공기로 무선 유도 조정을 해서 적선에 맞추는...먼산
최대사거리부터 교전을 시작하지 않는 이유에 정확성 문제나 탄의 낭비를 이야기하시는데, 그 전에 핵심적인 포인트를
놓치고 계시는 것은 아닌가합니다. 맞추려고하는 이유는 피해를 주기 위함입니다. 피해를 주지 못한다면 맞추는 의미가 없겠지요. 최대 사거리는 말 그대로 포탄이 도달하는 일반적인 최대 탄착군의 평균 거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 아무리 거포라고 해도 함대함 교전에 사용하는 포탄의 경우 탄두에 들어가있는 화약의 양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뚫고 들어가는데 필요한 질량으로 채워졌기 때문이겠지요? 폭발형 탄도 물론 함께 구비하고 있었겠지요.
아무래도 최대사거리라는 것은 이 폭발형 탄을 사용하여 지상의 목표물을 타격할때나 쓰이는 것이 아닌가합니다. 결국 중요한 점은 최대사거리에서 대함용 탄을 맞춘다고해도 그게 의미가 있냐는 부분입니다. 30Km를 날아가는동안 에너지 손실을 무시 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쉽게 이해하자면 포구를 떠날 때는 우사인 볼트처럼 달려나갔지만, 30Km즈음 갔을 때는 환갑을 넘긴 어르신의 뜀박질 수준의 힘밖에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교전 돌입시 선공권을 가지고 있다고한다면 우선 고려하는 거리는 최대 사거리가 아니라 탄착 수정등을 포함하는 명중률과 실질적인 피해, 다시 말하면 가지고 있는 함포가 가장 위력을 발휘하는 사거리를 함께 고려하여 거리를 좀 더 밀던가, 당기던가하는 지점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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