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이 하나 있다. 이 섬에는 경제학이라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산다. 그들의 선조는 1776년경 이 섬으로 이주해 왔다. 그들의 손에는 2권의 성경이 쥐어져 있었다. ‘도덕감정론’이란 구약과 ‘국부론’이란 신약이었다.
이들은 이 성경을 쓴 애덤 스미스를 필두로 한 일단의 철학자들이었다. 그러다 1830년대를 전후해 이 섬으로 고전물리학 서적이 흘러든다. 미적분 수학공식과 초기 고전물리학 이론이 소개된 책이었다. 레옹 발라, 윌리엄 제번스, 빌프레도 파레토 같은 이 섬의 사제들은 이 책을 읽고 ‘유레카’를 외쳤다. 그들은 이 수학과 물리학 이론을 도입해 그때까지 철학담론이었던 경제학을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수리과학으로 탈바꿈시킨다.
수많은 힘과 에너지가 서로 상쇄돼 균형을 이루는 상태를 뜻하는 균형개념이 도입돼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순간이 일반화된다. 사물을 끌어당기는 중력처럼 인간의 이기심이 보편적으로 작동한다는 믿음이 세워진다. 그리고 제한된 조건에서 시장거래는 그 이기심이 균형을 이루는 파레토 최적까지 계속된다는 이론이 확립된다.
이 섬에서 앨프리드 마셜, 폴 새뮤얼슨, 케네스 애로 같은 수학 천재들이 이 섬에서 성인(聖人)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물리학을 꿈꾸는 경제학 이론과 법칙이 현실과 잘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실 시장에선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재고창고와 재고관리기술이 이를 반증한다. 수확체감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과학기술 시장의 경우 지식에 대한 투자가 늘수록 기하급수적인 성장이 이뤄진다.
무엇보다 경제학 이론이 전제하는 합리적 인간의 비현실성이 문제였다. 현실적 인간은 ‘매우 복잡한 상황에 직면해 있는 정말 단순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적 인간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한 상황에서 정말 머리가 좋은 존재’이다.
이에 대한 불평불만이 커질 무렵 밀턴 프리드먼이란 사제가 나타나 경제학 이론은 예측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결과가 합리적이면 과정의 불합리성은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으로 이를 잠재운다. 섬 주민들은 자신들의 종교가 과학의 반열에 올랐다고 기뻐했다.
이런 신화는 1987년 복잡계 과학을 연구하는 산타페연구소 소속 10명의 세계 최고 과학자가 이 섬에 상륙함으로써 금이 간다. 이들은 이 섬이 한계주의 시대 이후 외부와 단절돼 최신 물리학 생물학 이론을 모른 채 50여 년을 지냈다는 것을 일깨웠다. “50년 넘게 서방세계와 단절되는 바람에 1950년대에 생산된 고물 자동차를 계속 뜯어고쳐 굴리는 쿠바를 보는 것 같다”는 충격적 발언까지 나왔다.
경제학자들은 에너지 보존법칙으로 잘 알려진 열역학 제1법칙에만 근거한 일반균형을 추구하다 보니 ‘닫힌 체계’에 갇혔다. 우주나 생명체는 시스템 내부에 에너지가 증가하면 무질서(엔트로피)를 방출하는 열역학 제2법칙이 작용하는 ‘열린 체계’임이 밝혀졌다. 왜 수요공급의 법칙이 맞아떨어지지 않는지, 왜 가격이 하나로 모아진다는 일가(一價)원칙이 적용되지 않는지가 뚜렷해졌다. 이기적이면서도 모든 정보를 알고 있다는 완전합리성의 가정도 비과학적이란 비판에 직면했다. 경제학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신고전파 경제학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경제학의 새 패러다임을 제창하고 있는 복잡계 경제학의 선두주자가 집필한 이 책의 내용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위와 같다. 저자는 기존 경제학을 ‘자기충족의 학문’ ‘기상학보다도 현실 예측력이 떨어지는 학문’이라고 통탄하며 최신 물리학, 생물학, 컴퓨터 이론을 접목한 복잡계 경제학의 놀라운 설명력을 과시한다.
저자에 따르면 성장이냐 분배냐, 시장이냐 정부냐 등의 기존 좌우담론은 모두 철 지난 유행가에 불과하다. 복잡계 경제학에서 인간은 이기적인 동시에 이타적이고 경쟁하는 동시에 협력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경제학 섬의 원주민에게 인간의 이기심만으로도 세상이 돌아간다는 애덤 스미스의 ‘신약’뿐 아니라 이타심의 중요성을 설파한 ‘구약’을 함께 읽을 것을 권한다.
시장이냐 정부냐를 따지는 좌우논쟁은 낮은 차원으로 내려가는 19세기 환원주의가 아니라 더욱 높은 차원에서 이를 통합해 바라보는 21세기 시스템 사고를 통해 자연스럽게 해소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게 여전히 이념이란 믿음은 시대착오적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끊임없이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는 지식이다. 원제 ‘The Origin of Wealth’(2006년).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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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정적으로 '시장'을 옹호하는 입장이다.
여러가지 견해와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내가 시장을 옹호하는 가장큰이유는
경제학적으로도 그렇지만 철학적으로도 '우열(優劣)'을 중시하기 때문일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한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다.
못하는 것 같고... 이기심만이 아닌 이타심도 고려의 대상이지만 결국
이기심이 결정적 요인이라는 것 아니겠냐...
물론 미국에서는 갑부들이 기부금도 많이 내고 하지만.... 그것조차도
질서유지를 위한 고행으로서의 의무가 강요하는 배려가 아닐까...?
다시 말하자면 자본주의 질서를 유지하기위한......
여하튼 마지막에 너가 하는말은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래서 스미스의 이론이 가치있는 것이 되겠다...
도덕적인 것이 어째서 어떠한 비중도 차지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공정한 경쟁 자체가 도덕적인 거다.
세계 여러 나라를 봐도 도덕부라는 정부 기관은 없지만, 공정거래위원회라는 기관은 어디나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니?
뇌물 주고받고 분식회계하고 비자금 조성하고. 품질 안좋은 제품을 마케팅만으로 팔아먹으려 하고.
이런 것들이 비도덕적인 행위고, 아담 스미스가 염려했던 바다.
법을 도덕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좀....
그렇다면 정부의 모든개입은 도덕적인 것이 될 수도 있겠다...
나는 법과 도덕이 상관관계가 있지만 법이아닌 도덕은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스미스가 말한 '도덕'이 공정거래법같은 것인지는 몰랐다..... 사실일까?
불공정한 경쟁은 비도덕적이기 때문에 법으로 규제한다는 거다.
도덕적이지 않은 합법 행위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도덕적인 불법 행위란 거의 없다.
참고로 아담 스미스는 사회 조직이나 도덕 체계가 인간들의 계획과 이성이 아니라 행동과 본성에 의해서 발전되어 왔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그 치밀한 철학적 기초 위에 국부론이라는 집을 지은거다.
아담 스미스가 사회 도덕은 무시하고, 몰가치한 시장 제일주의만 설파한게 아니란 말이다. 그건 아담 스미스의 메시지를 곁귀로 들은 편견들이 만들어낸 설화에 불과하지.
대용품으로 도덕을 들고나온 철학은 여기서 빠져줘야한다. 그저 스미스의
인간적인 면이겠지... 소망이기도 하고....
불공정한 경쟁은 비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불법일 뿐이지...
그것도 법에 명시된 불공정한 경쟁만...
사회조직이나 도덕체계가 계획과 이성이 아니라 본성에 의해서 발전되다니...?
무슨말인지 모르겠구나... 본성에의해서 도덕이 발전된다니..?
나는 스미스가 공헌한 것은 시장제일주의뿐이라고 생각한다.
이타심으로써의 도덕은 저 유명한 예수도 들고나오는 것이지만 해결불능이다....
지식과 잘만들어진 법만이 필요한 것이겠지...
사실 이 글을 올린 이유는 '친노 반노 사이에 보이지않는손 논란'이라는 뉴스
헤드라인을 보고 궁금해서 기사를 찾다가 잘못 찾은 기사였다.
읽어볼만해서 올렸고....
친노 반노사이의 보이지않는손 논란은 역시나 정치적 보이지않는손이었다.ㅎㅎ.....
법이라는 것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다. 법 = justice지.
justice와 injustice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 이게 바로 도덕이 하는 일이지.
불공정한 경쟁은 부도덕이 아니라 불법일 뿐이라는 말은 법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구나.
그리고 하나를 더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만...
이타심은 도덕적이고 이기심은 비도덕적이라는 것은 종교적인 접근 방식이고, 자본주의는 자본 축적과 이자 소득이 부도덕한 것이 아니라는 청교도적 믿음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라는 점을 잊으면 안된다.


기사쓴 인간은 아담 스미스를 읽어보기나 했는지 모르겠다.
아담 스미스는 이기심만으로 세상이 돌아간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기심이 이타심보다 경제 행위의 동기가 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는 것 뿐이다.
오히려 '공정한 제3의 관찰자'에 의해 동의되는 행동만이 도덕적이라고 주장하는게 아담 스미스다.
또한 경제학이 세상이 복잡하다는 것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세상이 예측할 수 없을만큼 복잡하니 이론은 오히려 가능한한 단순하게 만들어야 현실에 적용이 가능한거다.
이 복잡한 현실세계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간 심리를 모두 변수로 놓고 이론을 만드는게 가능할까? 말장난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