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숙청기 소비에트 연방의 내무인민위원장으로서 무수한 사람들을 살해했던 베리아는 호색한으로도 악명을 떨쳤다. 이번에는 베리아의 엽색행각에 대해 상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다.

베리아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아래 포스트들을 참고하면 대략 감이 올 것이다.
스탈린의 만찬과 의심
스탈린과 베리아
대숙청

베리아의 숙청과정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트를 참고하면 된다.
흐루시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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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아는 아부카지아에 체류하는 동안 자신의 호화스러운 특별 열차에서 지냈다. 그는 이 열차를 타고 수후미로 가는 길이었다. 열차는 침대칸과 식당, 술을 마시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휴게실칸도 갖추고 있었으며 역사에서 조금 떨어진 철로 대피선에 정차해 있었다. 

저녁때가 되어 트빌리시로 출발할 계획을 세우던 참에 16세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베리아에게 다가왔다. 중키에 검은 눈과 백옥처럼 흰 피부를 지닌 이 소녀는 체포된 오라버니의 구명을 위해 밍글레리언 마을에서 이곳까지 베리아를 찾아왔던 것이다. 베리아는 이 소녀의 아름다음에 빠져들었다. 그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자며 소녀를 열차로 데려갔다. 그러나 베리아가 소녀를 데려간 곳은 휴게실이나 식당이 아닌 자신의 침실이었다.

그는 곧장 소녀에게 옷을 벗으라고 명령했다. 이에 놀란 소녀가 밖으로 나가려하자 베리아는 침실문을 잠가버렸다. 그리고는 소녀의 뺨을 때리고 한손을 뒤로 꺽어 침대위로 밀어올리고는 곧장 덮쳤다. 연약한 소녀는 별로 저항도 하지 못한채 베리아에게 강간을 당했다. 몇분후 베리아는 이 소녀를 어떻게 처리할까 생각에 빠져들었다. 감옥에 넣어둘수도 있고 이대로 쫓아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눈물에 젖은 소녀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움직인 베리아는 30분만 지나면 다시 이 소녀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는 소녀를 침실에 가둬둔 채 식당칸으로 가서 저녁식사와 보드카를 마셨다.

베리아는 밤새 소녀를 침실에 잡아두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당번에게 아침식사 두그릇을 침실로 가져오도록 명령했다. 나중에 볼일을 보러 갈때도 베리아는 소녀를 가둬두었다. 그는 소녀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소녀는 어리고 순진했지만 몸은 이미 자랄만큼 자라 있었다. 겉으로는 갸날퍼 보였지만 어느 정도의 풍만함을 갖추고 있었으며 가슴은 작았지만 입술은 두툼했다. 커다란 두 눈은 부드러우면서 품위가 있었다. 베리아는 이 멋진 물건을 지금 당장 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를 떠올렸다.

그는 수후미에 며칠간 더 체류하면서 지방도로와 고속도로의 보수, 주택과 병원, 학교의 신축 등 5개년 계획의 진척 상황을 감독했다. 물론 소녀는 계속 열차속에 감금되어 있었다.

이 소녀는 후일 베리아의 아내가 되었다.


위의 에피소드는 스탈린의 딸인 스베틀라나가 쓴 회고록에 나온 내용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녀가 전해들은 소문을 여과없이 전한 케이스가 많기 때문에 잘못된 정보가 들어있는 경우도 많다. 베리아의 아내인 니나는 후일 자신이 베리아에게 납치당해 강제로 결혼한 것이  아니라 자의로 그와 결혼했다고 술회했다. 따라서 위의 내용은 사실일수도 거짓일수도 있다. 하지만 베리아가 여자를 밝히고 엽색행각을 벌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스탈린의 사냥개인 베리아만의 특징은 아니었다. 흐루시초프를 비롯한 소련공산당 지도부 대부분이 여자를 매우 밝히는 호색한으로 유명했다.

어쨌든 베리아와 그의 부하들이 자동차로 모스크바 시내를 돌아다니며 마음에 든 여자를 루비안카로 데려가 강간했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후일 베리아에게 강간당한 소녀들 중의 한 부친은 베리아가 처형당할때 스스로 집행인이 되고 싶다고 탄원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가 최초로 흘러나온 것은 베리아가 체포된지 2주일 후 열린 중앙위원회 총회였다. 중앙위원 니콜라이 샤타린은 베리아가 많은 여성들과 성관계를 가졌고, 특히 창녀들과 무분별한 관계를 가진 끝에 매독에 걸렸다고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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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루시초프는 자신의 회고록에 베리아의 엽색 행각을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베리아의 압송이 끝난것을 확인한 말렌코프는 귓속말로 나에게 말했다.  "베리아가 체포됐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내 경호 책임자가 와서 전해준 말인데 자기의 7학년짜리 의붓딸을 베리아가 겁탈했다는거요. 아마 1년쯤 전에 그의 장모가 사망하자 소녀만 집에 남겨두고 그 사람의 부인이 병원에 갔다는거요. 어느날 저녁에 소녀는 우연히 베리아가 사는곳 근처에 있는 식료품 가게로 빵을 사러 갔다가 자기를 주의깊게 바라보는 늙은이와 마주치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베리아 였다고 하오. 소녀는 섬뜩하게 놀라 어찌할바를 모르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 그녀를 베리아의 방으로 밀어넣었다고 합니다. 베리아는 우선 저녁 식사를 들라고 권했고 그가 건네준 음료수를 철없이 받아 마신 소녀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잠이 들어 그사이 강간을 당하고 만 것이라 하오. 수면제를 탄 음료수를 소녀에게 먹인 것이오. 그래서 나는 그 소녀의 아버지에게 베리아의 죄상을 조사하는 검찰관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으라고 전했소."

후일 밝혀진 일이지만 베리아에게 겁탈당한 여자는 처녀와 부인을 가릴것 없이 100명을 넘었다. 베리아의 수법은 항상 똑같았다.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수면제가 든 포도주를 권한뒤 잠이 들면 범하는 것이었다.


베리아가 체포된 후 그의 사무실에서는 다음과 같은 물품들이 발견되었다.

외제 여자용 스타킹 11켤레, 여자용 실크 팬티 11장, 여자용 스포츠복, 블라우스, 드레스용 옷감 샘플, 실크 스카프와 손수건, 여성들이 보낸 수많은 연애편지, 기타 주색잡기에 이용되는 갖가지 물품들.

이것이 어떤 용도로 쓰인 것인지는 명확하다.

타데우스 위틀린은 자신의 책에서 베리아의 행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베리아의 승용차는 여고생들이 많이 오는 붉은군대 극장 근처에 서있는 경우가 많았다. 2시가 지나자마자 여고생들은 극장문을 나서서 제각기 집으로 향한다.

푸르스름한 색의 승용차 창문에는 커튼이 반쯤 처져 있었는데 그 안에서 베리아는 어슬렁거리면서 어린 암사슴을 노리는 표범처럼 여고생들을 살펴보곤 했다. 그러다가 뺨이 불그레하고 입술이 촉촉한 14~5세짜리 여고생이 눈에 띄면 그는 턱짓으로 그 학생을 찍는다.

그러면 그의 부하인 사르키소프 대령이 승용차에서 내려 그 소녀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베리아는 가끔 쌍안경까지 들고 자신에게 찍힌 여학생의 공포에 질린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심지어 베리아가 강간에 더해 가혹행위까지 했다는 소문이 1980년대 이후 모스크바에서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베리아가 희생자를 때리고 고문하여 살해한 다음 목욕탕에서 염산으로 녹여버렸다는 끔찍한 이야기까지 유포되었던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1970년대 이후 모스크바에 유포된 소문.. 즉 베리아의 집 뒷마당과 지하실에서 사람의 뼈가 발견되었다는 소문에 근거한 것인데, 베리아의 아들이나 주변 사람들에 의해 철저히 부정되고 있어서 그리 신빙성이 높다고 볼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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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한 사람 열명을 숙청하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명의 스파이를 놓쳐서는 안된다.


- 니콜라이 예조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