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만든 조직에는 어디에나 예외없이 특권을 누리는 계층이 존재한다. 이것은 국가 뿐만 아니라 종교집단에서도 마찬가지이다. 

20세기의 가장 거대한 실험이라는 공산주의.. 인류의 진보와 평등을 위한 고귀한 이상으로 수많은 기적을 이뤄냈던 이 체제.. 무수한 혁명가의 피와 땀으로 이뤄낸 공산주의의 평등이란 이념도 사실 소수의 특권층이 합법적으로 권력과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에 불과했다는 점은 역사가 잘 증명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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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보수파의 쿠데타에 맞서 연설중인 옐친. 오른쪽은 재선 유세중 춤을 추는 모습]

공산주의의 본질에 대해서 짧으면서도 솔직하게 고백된 회고록이 한편 있다. 바로 보리스 옐친의 글이다. 아래 내용은 옐친의 회고록중 '스무명을 위한 공산주의'라는 챕터 일부를 요약한 것이다.

여담이지만 특권을 누리던 공산당 지도부의 모습을 맹렬히 비판하던 옐친 또한 자신의 집권이후 새로운 특권층이 양산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공산당 간부들이 누리는 특권은 러시아 국가두마 의원이나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 일부 부유층에게 그대로 이전된 것이다.

공산당 특권 계급의 피라미드 정상까지 올라가면 거기에는 모든 것이 있다. 바로 공산주의의 실현이다! 이 공산주의에는 세계 혁명도, 고도의 생산성도, 전체의 조화도 불필요하다. 이 공산주의는 각기 다른 국가이며 각기 다른 인간을 위한 공산주의의 실현이 완전히 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과장도 아니며 단순한 이미지도 아니다. 혁혁히 빛나는 공산주의 미래사회의 근본원칙을 생각해 보자. '각자의 능력에 따라 각자의 필요에 따라'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각자의 능력이란 그다지 우수하지 못하다. 대신 필요는 항상 너무나 크므로 현재의 공산주의는 불과 20명 정도의 인간을 위해서만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 공산주의를 만들어낸 것은 KGB의 제 9과이다. 전능한 9과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란 없다. 당 지도자의 생활은 이 부서의 끊임없는 감시하에 놓여지며 어떤 희망도 이루어진다.

모스크바 강가의 녹색 벽으로 둘러싸인 별장에서는 광대한 대지 위에 정원이 있고 경기장과 어린이 놀이터도 있다. 어느 창 아래든 경비원이 서있고 경보장치가 부착되어 있다.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나같은 신분에게도 요리사 세명, 급사 세명, 하녀 한명, 정원사와 기타 조수들이 딸려 있다. 우리 집에서는 나도 아내도 자신의 손으로 무엇이든 해결하는데 습관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 별장에서는 정말 몸둘곳이 없는 실정이었다.

이른바 자주적인 행동은 여기서 허용되지 않는다. 이 호화로움이 편리함과 쾌적함을 조금도 느끼지 못하게 한다는 것에 또한 놀라웠다. 대리석이 생활에 어떤 따스함을 제공할 수 있겠는가?

누군가와 잠시 만나는 것, 접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영화관, 극장, 미술관 등 어떤 공공장소에 갈때도 반드시 사전에 경비원이 그곳에 가서 철저히 체크하여 장소를 봉쇄한 후에야 간신히 갈수 있다. 작은 영화관은 별장에도 있어 매주 목, 토, 일요일에 영사기사가 필름을 지참하고 일부러 찾아온다. 병원은 초현대적이며 의료기술의 최신 설비가 외국에서 수입되고 있다. 병원 내부는 널직하며 호화로운 실내 장식이 되어있다.

의사들은 책임을 추궁당하는 것이 두려워 무엇하나 혼자 결정하지 않고 언제나 고도의 기술을 지닌 전문의가 5명, 10명씩 모여 협의한다. 이 KGB 제 4과의 무책임한 의사들을 나는 그다지 신용하지 않았다. 나 한사람을 위해 의사가 매일같이 진찰해 주지만 그의 머리 속에는 직업적인 자유, 인간적인 자유가 결여되어 있었다.

모든 중앙위원회 서기, 정치국 후보위원, 정치국원의 곁에는 경비원들이 붙어 다닌다. 나에게 늘 붙어있던 조심스런 경비 책임자는 유리 표드로비치라 하였다. 이 인물의 기본 임무중 하나는 자신이 경호하는 자로부터 의뢰가 들어오면 즉시 그것을 들어주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새로운 양복을 맞추고 싶다."라고 말하면 정확히 지정된 시각에 집무실의 문이 조심스럽게 노크되며 재단사가 칫수를 재러 나타난다. 이튿날에는 가봉을 하고, 착오없이 새로운 양복이 완성되는 것이다. 3월 8일, 아내의 생일에 어떤 선물을 하고 싶다. 이것도 문제없다. 아무리 섬세한 여성의 취미라도 만족시킬 수 있는 완비된 카탈로그를 가지고 와서 골라달라고 한다.

# 어떤 인물의 사상과 역사에 대해 알고 싶다면 회고록을 읽는것이 좋다. 물론 평전을 읽는것도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자신의 생생한 기억을 바탕으로 작성된 회고록과 타인에 의해 쓰여진 평전의 현장감이 동일하길 바랄수는 없다. 본인이 가장 흥미로워하는 두 역사인물.  히틀러와 스탈린은 아쉽게도 회고록을 남기지 않았다. 따라서 이 두 인물을 알기 위해서는는 역사가들이 작성한 평전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간혹 다른 사람들의 회고록에 양념처럼 들어가있는 두명의 독재자에 대한 회상이 훨씬 질높은 현장감을 우리들에게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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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한 사람 열명을 숙청하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명의 스파이를 놓쳐서는 안된다.


- 니콜라이 예조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