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얄타협정은 강대국이 약소국의 운명을 마음대로 결정한 부당한(unjust) 거래였다.
동유럽의 스탈린 체제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오류중 하나이다.
- 부시 -
러시아는 유럽의 열한개 나라를 해방시켰다.
발트 3국은 국제무대에서 거스름돈이었으며 이는 모두가 인정해야 하는 이들 국가의 비극이다.
- 푸틴 -
미국의 전임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 불량국가들(?)을 난폭하게 소탕한 무법자의 이미지를 세계인에게 남기고 퇴임했다. 그러나 이 텍사스 카우보이가 거칠기만한 무뢰배는 아니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도로서 세상이 선과 악의 투쟁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믿는다. 또한 그는 자신이야말로 현세의 악을 물리칠 역사적 사명을 지니고 미합중국의 대통령 직위에 올랐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불량국가 아프가니스탄을 소탕하기 위한 카우보이의 첫번째 출진이 끝없는 정의(Infinite Justice)로 이름붙여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부시와 같은 도덕 흑백론자는 현실세계에서 여러가지 트러블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세상을 옳고 그름으로만 판단하는 것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맹점을 지니고 있음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가 뒷걸음질에 쥐를 잡듯이.. 부시도 실수로나마 객관적으로 잘한일 몇가지는 있을법하다. 본인이 판단할때 부시가 재임중 벌인 여러 일들중 가장 칭찬받을만한 것은 동유럽의 역사를 바로세운 행위이다. 얄타협정 등 과거 미국이 스탈린과 벌였던 추악한 뒷거래도 서슴치 않고 자아비판한다는 측면에서 볼때 부시는 정의의 사도가 될 자격을 일정부분 갖추고 있음을 인정해도 괜찮으리라!
에스토니안 의용군 기념비
- 에스토니안 무장친위대 -
1940년 6월, 발트3국이 스탈린에게 점령당한다.
최초에 스딸은 군사주둔권만 요구했다. 이후 이들 국가에는 자연스럽게 소비에트 괴뢰정권을 수립되었고, 이들이 소련과의 합병을 요구한다는 형식을 통해 발트3국을 통째로 삼켜버렸다. 여담이지만 후일 핀란드와 겨울전쟁을 벌일 당시도 스탈린은 비슷한 복안을 가지고 있었다.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핀란드 괴뢰정부가 소련내에 구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실 영국과 미국등 서방 강대국들은 이런 작은 나라들의 운명에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결국 잊혀진 발트3국 - 그중에서도 에스토니아에서만 전체 인구의 5% 이상이 스딸에게 숙청당했다. 독소전이 발발하자 스딸은 다시 10,000명의 에스토니아 엘리트들을 시베리아로 끌고 갔고 50,000명을 강제로 붉은군대에 징집했다.
1941년말 스탈린을 쫓아내고 독일군이 입성하자 에스토니아인들은 이들을 진심으로 열렬히 환영한다. 수도 탈린에서는 독일의 입성 1주년을 기념하여 에스토니아인 의용군이 창설되었다. 이들은 독일이 소련군에 밀려난 이후에도 격렬한 전투를 지속했지만, 결국 중과부적으로 모두 붙잡혀 처형되거나 시베리아로 끌려갔다.

에스토니안 의용군의 동상이 세워짐과 동시에 러시아군 기념비는 철거되었다. (오른쪽)
2차대전이 끝난후 소련에 의해 재점령된 소국 에스토니아의 비극에는 세계 어느 나라도 신경쓰지 않았다. 루즈벨트와 처칠은 이미 얄타회담에서 이 약소국의 운명을 스탈린에게 맡기기로 결정해놓은 터였다. 푸틴이 말했듯이 발트3국은 강대국간의 거래에서 발생하는 거스름돈에 불과했던 것이다.
결국 에스토니아인의 1/3이 스탈린을 피해 해외로 떠났다.
이후 오랜기간 소련에 의해 통치되던 에스토니아와 발트3국은 영원히 소련에 삼켜질것 같았다. 그러나 동유럽에 민주화의 열풍이 몰아치던 1991년, 이들은 거대한 인간띠를 형성하며 소련군의 총칼에 맞섰고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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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04년..
오랜 세월동안 잊혀졌던 에스토니안 의용군을 기리는 비석과 묘지가 세워졌다. 이들에게 소련군은 침략자였고, 에스토니안 친위대는 용감한 애국자들이었던 것이다.
아래는 에스토니안 무장친위대의 노래
1.
Kord võitles Lõuna-Venemaal
kaugel Doni steppides
uljas eesti SS-pataljon,
lauldes laulu Kuradist.
Kord paisati itta, kord läände,
kõikjal seisime kaljudena
ning Neveli sood ja Tsherkassõ
meil iial unuda ei saa.
후렴
Rünnak relvade terases, tules,
kõlab leekides Kuradi naer-ha-ha-haa!
Võrsub vabadusidu,
ei murta neid ridu,
kes Eesti eest annavad kõik.
2.
Aeg sangarid kord unustab
ja tandrid tasandab
ja surnupealuu sõdurist
vaid tuul veel jutustab.
Teed tagasi meie jaoks pole
ehk küll häving on silmade ees.
Vaba kodu eest palju ei oleks
kui langeb meist viimnegi mees.
# 비슷한 글이 인터넷에 떠돌던데 이건 제가 예전에 디씨인사이드에 올렸던 글을 다듬어서 재탕한 것입니다.

무고한 사람 열명을 숙청하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명의 스파이를 놓쳐서는 안된다.
- 니콜라이 예조프 -
발트3국의 역사는 독일기사단의 진출로부터 시작되었고 독일문화가 발트문화의 기초를 이룹니다. 물론 게르만인들도 많이 이주하여 발트인들과 섞여 살고 있었습니다. 러시아 혁명의 중요한 지도자인 카메네프의 아버지가 발트게르만인이고, NSDAP의 이론가이던 알프레드 로젠베르크도 발트게르만 출신입니다.
어쨌든 에스토니아를 비롯한 발트3국은 러시아보다 경제적으로도 부유하고 문화도 뛰어납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통치를 참지 못했던 것은 우리보다 못하다고 깔보던 나라의 폭력적 지배를 받아들이기가 정서적으로 힘들었기 때문이지요. 이들도 마찬가지 이유로 소련의 지배를 참지 못했고 독일을 환영한 것입니다. 그 댓가로 2차대전이 끝난후 스탈린의 무지막지한 보복을 받게 되지만요.
그런데 '이들이 과거 제정러시아의 지배는 어떻게 참아냈느냐?'라는 질문을 할수 있는데, 제정러시아는 발트3국의 자치권을 잘 보장해 주고 종주권을 얻어내는데 만족했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독일군은 해방자가 아니라 러시아로 가기 위해서 그 땅을 거쳐 갔을 뿐입니다.
발트국이 나토 회원국인 것을 보니 러시아도 그다지 이 땅에 미련은 없는 것 같군요.
현재 독일은 그루지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반대하는 입장이며 러시아와의 협력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뭐.. 그러던차에 2차대전에 끼어들고 결국 핵 두방 처맞고 GG치게됩니다.
일본우익의 가장 잘못된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조선 병합과 그 이후의 식민지배에 대한 해석을 자신들 독단으로 내리려하며, 심지어 그 견해를 피해국에게까지 세뇌교육하려 든다는 것이지요. 그건 역사해석의 다양성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인것 같습니다. 서로간의 동의로 섹스를 한 것인지 강간인지는 여성의 유권해석이 최우선되어야 마땅할 터인데..


스섹시에 사정을 참으라는건지 아님 아예 스섹을 하지 말라는건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