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38은 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미국의 대형 쌍발 프로펠러 전투기이다. 별명은 라이트닝(Lightning)
미군은 유럽에서는 무스탕, 태평양에서는 커세어를 주력 전투기로 사용했지만, P-38은 양 전선에서 주력 기종에 버금가는 쌍발 주력 전투기로 사용되었다.
록히드사社(Lockheed )에서 장거리 고속 요격 전투기 용도로 개발하였으며 독특한 겉모양과 뛰어난 성능 때문에 쌍꼬리의 악마, 날으는 사닥다리 등의 별명이 붙었다.
2차대전 이전 공군 전략가들은 미래의 항공전을 장거리 전략 폭격기와 쌍발 전투기들이 주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쌍발 전투기들은 막강한 무장과 항속거리에도 불구하고 둔한 기동성 때문에 항공전의 주력이 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함이 밝혀졌고, 쌍발기들은 지원 용도의 전투기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P-38은 예외였다. 이 기종은 장거리 호위, 정찰, 지상 공격 등에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였고, 폭격 선도기와 야간 전투기 등의 용도로도 사용되었다.
1937년 설계가 시작되고 1938년 12월 시제기 XP-38이 완성되었다.
XP-38은 1939년 1월 27일 처녀비행에 성공하고, 1939년 9월 20일 미육군항공대가 P-38로 제식 채용하는 동시에 66대를 발주하면서 양산에 돌입하였다.
1941년 10월부터 첫 번째 양산형 P-38D가 육군 항공대에 인도되었다.
1941년 10월 P-38 시리즈의 완성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 받는 P-38E형의 1호기가 생산 시작된다.
210대가 생산된 P-38E는 100대 이상이 정찰기 F-4로 개조되었고, 1942년 4월부터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에서 실전에 투입되었다. 이후 F·G·J·K·L 등의 개량형이 개발되었으며, 태평양 전선을 비롯하여 북아프리카·지중해·서유럽·러시아 등 제2차 세계대전의 모든 전선에서 연합군의 주력 전투기로 활약하였다.
K·L 등 후기형은 앨리슨사가 개발한 1475마력의 V-1710-111 수랭식 터빈엔진 2개를 장비하여 7,940㎏에 달하는 무거운 기체임에도 불구하고 시속 666㎞의 빠른 속도로 비행이 가능하였다.
무장은 기수 부분에 20㎜ 기관포 1문과 12.7㎜ 중기관총 4정을 장착하였다.
- 개발略史 -
1930년대 공군 전략가들은 장거리 폭격기에 의해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호언 장담하였다.
따라서 미국은 적국의 폭격기들을 본토에서 먼 해상에서 요격할 전투기를 원하게 된다.
1937년 미육군 항공군단(United States Army Air Corps)은 2만 피트(6100 m) 상공에서 시간당 360 마일(580 km/h)을 비행할 수 있는 요격기를 입찰하였고, 록히드는 이 제안에 따라 P-38을 고안하였다.
벨(Bell) 사의 P-39 에어코브라(Airacobra)와 커티스(Curtiss) 사의 P-40 워호크(Warhawk) 또한 같은 목적으로 설계된 전투기들이었다.
홀 하이버드(Hall Hibbard)와 켈리 존슨('Kelly' Johnson)이 이끄는 록히드 설계팀은 현존하던 전투기들과 차별화되는 몇가지의 설계 끝에 2개의 동체를 조종석을 사이에 두고 연결한 쌍발 전투기의 설계를 이끌어내었고, 이 기체에 2정의 200발 들이 .50 구경(12.7 mm) 브라우닝(Browning) 기관총과 500발 들이 2정의 .30 인치(7.62 mm) 브라우닝 기관총, 그리고 올즈모빌(Oldsmobile) 37 mm 기관포 15발을 장비하였다.
당시 대부분의 전투기들이 기관총을 날개에 장비하여 탄환이 발사된 이후 전방의 어떠한 지점에서 모이게끔 설계하였던데 비하여 록히드의 전투기는 무기를 중앙에 배치하였다.
날개에 무기를 배치하는 경우에는 약 100~250 야드 앞에 설정된 탄착 지점에 목표물을 두어야 하다보니 종종 파괴된 적기의 파편에 손상을 입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였지만, 중앙에 무기를 배치한 경우 사정거리가 1천 야드 정도로 더 길어져 그러한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었으며, 수평사격 전략 또한 구사할 수 있었다. 
Allison V-1710
무기가 배치된 조종석의 양편에 이어진 동체에는 각각 1천 마력(746 kW)의 터보 충전식 12 실린더 Allison V-1710 엔진이 장착되었으며 각각 다른 방향으로 회전하는 프로펠러가 사용되었다.

XP-38
1937년 6월 22일 시험 모델 22를 통하여 타 업체들과의 입찰에서 승리한 록히드는 1938년 7월 프로토타입 XP-38의 제작에 들어갔으며, 프로토타입은 1939년 1월 27일 첫 비행에 성공하였다.
1939년 2월 11일 미 육군 항공군단의 군단장 헨리 아놀드(Henry "Hap" Arnold)의 명에 따라 라이트 비행장(Wright Field)에서의 시험을 위하여 캘리포니아에서 뉴욕으로 날아간 P-38의 비행 시간은 7시간 2분이었는데, 비록 착륙 이후에 고물이 되어버렸지만 비행 성능에 만족한 군은 1939년 4월 27일에 13대의 YP-38을 주문하게 되었다.

YP-38
그러나 YP-38의 제작은 지연되었고, 1940년 9월까지도 첫 항공기의 제작이 완료되지 못하였다. 1940년 9월 16일에야 납품이 시작된 YP-38은 1941년 6월에야 모두 군에 인도되었다. YP-38은 수제작한 XP-38에 비하여 많은 부분이 개선되었으며 더 가벼워졌고 프로펠러 회전 방향도 바뀌어 보다 안정적인 조준과 사격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시험비행중 꼬리가 흔들리는 문제가 발견되었다. 고속 주행, 특히 하강중에 항공기의 꼬리가 심하게 요동치면서 기수가 앞으로 고꾸라져 조종사로 하여금 비상탈출할 수 밖에 없게끔 만드는 문제였다. 1940년 11월 4일의 시험비행에서는 고속 강하중 아예 꼬리부분 구조물이 떨어져나갔고, 시험비행사 랄프 버든(Ralph Virden)이 목숨을 잃었다. 기체 균형으로 인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작업이 뒤따랐으며, 결국 문제는 P-38J 형에 이르러서야 완전히 해결되었다.
P-38이 가진 또 하나의 문제는 만일 비행중 한 엔진이 정지해버리는 경우 비행기가 가동중인 엔진의 날개쪽 방향으로 돌아가버리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쌍발 항공기의 경우 엔진 하나가 정지하면 다른 하나를 최대 출력으로 끌어올려 운용하는데, P-38과 같은 경우 이러한 방법을 썼다가는 기체가 뒤집어지면서 지면으로 곤두박질하는 것이었다.
결국 P-38의 조종사들은 엔진 하나가 정지하는 경우 다른 엔진의 출력을 낮추어 기체의 안정을 되찾은 후에야 다시 천천히 출력을 올릴것을 교육받게 되었다. 그 외에도 양편에 위치한 엔진 때문에 조종석이 기후 환경에 따라 너무 뜨거워지거나 혹은 너무 차가워지는 현상도 발생하였지만 이 문제는 이후 개량을 거쳐 점차 해결되었다.
1939년 9월 20일 미육군 항공군단(USAAC)을 위한 YP-38들이 제작 및 테스트되기 전에 미육군 항공단(USAAF)은 P-38A형 66대를 주문하였고, 이중 30대가 1941년 중반 인도되었지만 전체가 다 무장되지는 못하였고, 이렇게 무장되지 못한 기체는 기본 사양인 .50 인치 2정과 .30 인치 2정 대신에 4정의 .50 인치 기관포와 1개의 37 mm 기관포로 무장되었다.
이 기체들에는 방탄유리와 조종석 방탄판이 설치되어 유럽 전선으로 보내졌으며, 실전 투입 이후 보고를 접수한 미육군 항공단은 아직 인도되지 않은 36기에 대해서 방탄능력 강화 및 자체봉인 연료탱크 장착 등의 개량을 해줄것을 요구하였다. 
P-38D
이렇게 제작된 36대의 P-38들은 D 형이라는 명칭이 부여되었으며, 결과적으로 P-38B 형이나 P-38C 형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D 형들은 하자를 찾아내는 역할 외에도 항공단이 이 형식의 기체를 운용하는 경험을 쌓기위한 목적으로 이용되었다.

P-38E
1945년까지 약 1만대 가량 생산된 P-38 시리즈 가운데 우수한 전투기로 평가 받는 E형은 1941년 10월 1호기가 완성되었다.
E형에는 Hispano-Suiza 20mm 기관포를 탑재하였고 기수쪽 랜딩기어(NOSE GEAR)가 후방 접철식 으로 변경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CAL50 기관총의 탄약 적재량이 각 기총당 200발에서 500발로 증가되었다.
엔진 상부 후면에 위치한 이전의 Air Scoop는 제거되었다. P38-E형 생산 말기에 해밀톤 스텐다드(Hemilton Standard)속이 빈 철제 프로펠러는 커티스 일렉트릭(Curtis Electric) 듀랄루민 프로펠러로 교체가 되며 E형까지 조종사 캐노피가 우측개폐식으로 이후 기종은 후방개폐식으로 개수된다.
많은 P38E형은 엔진 및 기타 개수작업을 거쳐 P38G형으로 교체작업을 받게되며 또한 99기의 E형은 F4 사진 정찰기로, 섬에 주둔한 일본군에 대항하기 위해 수상비향기로 전환된다.
E형은 1942년 4월부터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에서 실전에 투입되었다. 이후 F·G·J·K·L 등의 개량형이 개발되었으며, 태평양 전선을 비롯하여 북아프리카·지중해·서유럽·러시아 등 제2차 세계대전의 모든 전선에서 연합군의 주력 전투기로 활약하였다.
210기의 E형, 527기의 F형, 1082기의 G형, 601기의 H형, 2970의 J형, 3810기의 L형등 기타 파생형을 포함하여 총 9923기의 P38 라이트닝이 생산되었다.
1940년 3월 영국과 프랑스는 총 667 대의 P-38을 주문하였으며, P-38E 형을 기본으로 프랑스용은 322F, 영국용은 322B라는 모델명이 각각 부여되었는데, 터보 충전기는 미국 수출입법에 의거하여 제거되었으며 커티스 토마호크(Tomahawk)기와의 상호 운용을 위하여 우선회 엔진이 채택되었다.
프랑스가 1940년 6월 항복하면서 프랑스의 주문량은 영국이 감당하게 되었고, 기존 모델명은 라이트닝 I(Lightning I)로 다시 명명되었다. 1942년 3월 3대의 라이트닝 I 기가 영국에 도착하였지만 터보 충전기가 없어 최고속도가 300 마일(480 km/h)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데다가 조작성도 나빠 주문이 최소되었다.
수송을 기다리고 있던 140 대의 라이트닝 I은 미국식 역선회 엔진으로 변경되어 미육군 항공단에 인도되었지만 터보 충전기는 여전히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RP-322라는 이름의 훈련기로 사용되었다.
RP-322 훈련기들은 강력하고 복잡한 새 P-38 전투기 훈련에 기여하게 되었으며 저고도에서는 여전히 빠른 속도를 자랑하여 훈련기로는 제격이었다.
P-38 전투기에 라이트닝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 또한 이 RP-322 훈련기들의 덕택이었다. 록히드는 자사의 항공기에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을 붙이던 관례대로 당초 이 전투기의 이름을 아틀란타(Atalanta)로 명명하였지만, 영국에서 지은 라이트닝이라는 이름이 결국 널리 사용되게 되었다.
- 實戰 -
P-38을 처음 인도받은 부대는 제 1 전투단(1st Fighter Group)이었다. 
P-38 14th Pursuit Group
진주만(Pearl Harbor) 공습 이후 이 부대는 샌디에고(San Diego)에 있는 제 14 추적단(14th Pursuit Group)에 병합되어 서부해안 방어에 투입되었다. 실전에 최초 투입된 P-38은 E 형 F-4 버전이었는데, 이는 기관포를 4개의 카메라로 교체한 정찰기 개조형으로써 1942년 4월 4일 오스트레일리아 외곽의 제 8 사진정찰 편대(8th Photographic Squadron) 소속으로 임무에 나섰다. 1942년 9월 당시 오스트레일리아 공군(Royal Australian Air Force)에는 이러한 정찰기형 모델이 3대 있었다.
1942년 5월 29일 25 대의 P-38이 알래스카의 알루샨 군도(Aleutian Islands)에서 임무를 시작하였다.
이 전투기의 긴 항속거리는 1,200 마일(2,000 km)에 달하는 군도들의 상공을 누비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며 이 전투기들은 2차 대전이 끝나기까지 이곳에서 임무를 지속하였다. 알루샨 군도들의 열악한 환경은 이 새 전투기를 시험하는데 이상적인 곳이기도 하였다.
적과의 교전보다는 기후와 기타 이유로 유실되는 라이트닝들이 더 많았으며, 하늘색과 바다색이 회색빛으로 거의 같은 환경 때문에 조종사가 수시간에 걸친 비행끝에 착각을 일으켜 비행기를 몰고 바다로 돌진하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러하던 중 1942년 8월 9일 제 11 공군 제 343 전투단의 P-38E 두대가 천 마일(1,600 km)에 달하는 순찰임무 도중에 일본군의 카와니시 수상기(Kawanishi H6K 'Mavis')를 발견하여 격추시켰는데, 이는 P-38이 격추한 첫 일본 항공기로 기록되게 되었다.
미드웨이 해전(Battle of Midway) 이후 미육군 항공단은 볼레로 작전(Operation Bolero)에 부응하기 위하여 전투단들을 영국으로 재배치하였는데, 제 1 전투단 소속의 라이트닝들도 아이슬랜드(Iceland)를 통하여 대서양을 건너 영국에 배치되었다.
1942년 8월 14일 P-38F 한대와 P-40 한대로 구성된 팀이 아이슬랜드 상공에서 연합군 선박을 노리던 포케불프(Focke-Wulf) Fw 200 콘돌(Condor) 전투기를 격추시켰는데, 이는 미육군 항공단의 첫 독일 공군(Luftwaffe) 전투기 격추로 기록되었다.
이후 347 회의 출격 동안 한번도 적과 조우하지 않은 제 1, 14, 그리고 82 전투단은 횃불 작전(Operation Torch)의 지원을 위하여 북아프리카로 이동, 제 12 공군 휘하로 들어가게 되었다. 라이트닝들은 1942년 11월 19일 B-17 폭격기들을 호위하며 튀니지(Tunis)로 비행하였으며, 1943년 4월 5일에는 제 82 전투기 편대 소속의 라이트닝 26 대가 적기 31 대를 격추시킴으로써 지역내 제공권 확보에 기여함으로써 독일측으로부터 '포크 모양 꼬리의 악마(der Gabelschwanz-Teufel)'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라이트닝들은 전쟁이 종결될때까지 지중해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독일 상공에서의 폭격 임무를 몇 차례 마친 연합군은 제 8 공군 소속 중폭격기들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장거리 호위 전투기들이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고, 이에 1943년 9월에 제 55 전투단 소속 P-38H 전투기들이 영국 제 8 공군으로 이전되었으며, 뒤이어 제 20, 364, 479 전투단이 가세하였다.
영국의 열악한 연료 조달 사정과 더하여 10대 1이라는 숫적 열세 하에서도 P-38들은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해나갔다. 저질 연료의 사용으로 인한 엔진 고장도 드문 일이 아니었다. 유럽에서의 임무를 통하여 알려진 많은 문제점들이 수정된 P-38J형이 등장하였지만 1944년 9월 즈음에는 제 8 공군의 호위기 대부분이 P-51로 채워지게 되었다. 호위기로써의 자리는 내주었지만 제 8 공군은 F-5 정찰형 라이트닝들을 계속 운용하였다.
P-38이 가장 활약한 곳은 태평양 전선이었다. P-38은 태평양에서의 임무 조건에 적합하였으며 장거리 운용에 빛을 발했고, 미국의 어느 전투기들보다도 일본 전투기들을 격추시킨 기록을 많이 보유하게 되었다.
태평양의 따뜻한 기후 하에서는 콕피트가 얼어붙는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대신 조종석이 종종 더워지는 문제가 발생하였기 때문에 P-38 조종사들은 반바지에 테니스 신발 차림으로 전투에 임하곤 했다.
P-38 전투기들은 일본의 미쯔비스 제로(Mitsubishi Zero) 전투기들보다 기동성이 좋지는 못하였지만 속도와 상승력 면에서는 훨씬 뛰어났기 때문에 미국 조종사들은 전투에 임할지 퇴각할지를 결정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으며, 전투에 임하는 경우 P-38의 강력한 화력은 독일 전투기에 비하여 방어력이 취약한 일본 전투기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제로 전투기의 설계자인 지로 호리코시(Jiro Horikoshi)는 P-38의 쌍발 엔진음이 남태평양의 모든 일본 조종사들에게 익숙해졌으며, 또한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 바 있다.
뉴기니(New Guinea) 일대를 책임지고 있던 미국 제 5 공군의 조지 케니 장군(George C. Kenney)은 기존의 P-39나 P-40을 대체할 만한 충분한 P-38들을 확보하기가 어려웠지만, 제 5 공군 소속의 P-38들은 일본 항공기들을 상대로 꾸준히 실적을 올려나갔다. 
Yamamoto를 잡기 위해서 날아오르는 라이트닝 편대
그 중에 괄목할 전과로는 1943년 4월 18일 일본 해군 전략가이자 진주만 공격의 입안자, 야마모토 이소로쿠(Yamamoto Isoroku) 제독이 탄 항공기를 요격한 것이었다.
미국 암호해독가들은 야마모토가 폭격기로 이동한다는 전문을 해독하였고, 이에 16 대의 라이트닝 전투기들이 출격, 일본군에 탐지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태평양 상공을 3~15 m 높이로 늦게 날아 700 km 거리를 이동하였다. 
Yamamoto Hunt
이윽고 야마모토 제독이 탑승한 미쯔비시 G4M('Betty') 폭격기와 호위 제로 전투기들을 발견한 라이트닝들은 공격을 개시하였고, 12 대가 엄호하는 가운데 4 대가 폭격기에 공격을 집중, G4M을 정글 위로 추락시켰다.
1943년 3월 2~4일 동안 제 5 공군 소속의 P-38들은 오스트레일리아 폭격기들과 함께 비스마르크 해(Bismarck Sea)에서의 전투에 참가하여 일본군에 참담한 패배를 안겼는데, 제 39 전투기 편대 소속 P-38 에이스 밥 파롯(Bob Faurot)과 호이트 이즌(Hoyt 'Curley' Eason)이 두번째 날의 전투에서 모두 전사하였다.

P-38의 운용은 혼재된 결과를 보여준다. 일단 P-38은 단발 엔진 전투기들에 비하여 조종이 어려웠으며, 엔진에 문제가 있어서 적의 공격으로 격추된 수보다 고장으로 주저앉은 경우가 더 많았고, 유럽 전선에서의 경우 조종사가 추위에 시달려야 했다.
P-38J-25 형이 등장하기 전까지 P-38들은 독일 공군에게 '앉아있는 오리들'이란 별명으로 불뤼었는데, 엔진의 결함과 아울러 강하 플랩이 변변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독일 조종사들은 P-38이 뒤에 붙었을때는 종종 급강하 기동하여 이를 떨쳐버리곤 했다.
P-38은 최고의 공중전용 전투기는 아니었지만 작전거리, 적재중량, 속도, 상승력, 화력 면에서 최고의 전투기였다. P-38은 믿음직한 요격기였으며, 충분히 숙련된 조종사가 탑승한 경우 무서운 공중전 능력도 보여주었다. 특히 태평양 전선에서 P-38은 1,800 여대의 일본 항공기들을 격추시켰으며, 100 명 이상의 에이스를 배출하였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남겨진 수천대의 P-38들은 제트 엔진의 시대가 오면서 모두 퇴역하였다. 이탈리아는 라이트닝 후기형 50대를 공수받아 몇년간 운용하였으며, 이후 일부를 온두라스(Honduras)에 판매하였다. 나머지 P-38들은 대당 1,200 달러(USD)에 판매되거나 폐품처리되었다.
록히드 사의 시험조종사 토니 레비어(Tony LeVier)는 이 P-38 중의 한대를 구매하여 경주용 비행기로 개조하였다. 1946년에서 1949년 사이 라이트닝은 경주에서 인기있는 기종이었으며, 밝은 색으로 도색된 라이트닝들은 특유의 소음을 내며 경주에 참여하였다.
F-5 형의 일부는 측량 회사들에게 판매되어 지도 제작을 위한 사진 촬영에 사용되기도 하였다.
1950년 이후 라이트닝은 점차 줄어들었고, 현재 20대가 조금 넘는 라이트닝만이 남아있으며 일부는 비행이 가능한 상태이다.
갈베스턴(Galveston)에 있는 론 스타 비행 박물관(Lone Star Flight Museum)에는 찰스 맥도널드(Charles MacDonald)의 풋 풋 마루(Putt Putt Maru) 색상이 그려진 P-38L 형이 전시되어 있으며, 1946년 카글 항공 측량회사(Kargl Aerial Surveys) 소속이었던 두 대의 F-5G는 현재 시카고의 양크 항공 박물관(Yank's Air Museum)과 맥민빌(Mcminnville)의 에버그린 항공 박물관(Evergreen Aviation Museum)에 전시되어 있다.
다음은 P-38의 종류와 생산대수(괄호안)이다.

- XP-38 (1) 프로토타입
- YP-38 (13) 시험기
- P-38 (30) 최초 양산기
- XP-38A (1) 압박 콕피트 장착
- P-38D (36)
- P-38E (210)
- F-4 (100+) P-38E 기반 정찰기
- Model 322 (3) 영국공군 수출용
- RP-322 (147) 미국 육군 항공단 훈련기
- P-38F (527)
- F-4A (20) P-38F 기반 정찰기
- P-38G (1,082)
- F-5A (180) P-38G 기반 정찰기
- XF-5D (1) F-5A 개량형
- P-38H (601)
- F-5C (123) P-38H 기반 정찰기
- P-38J 2,970 new radiator style
- F-5B (200) P-38J 기반 정찰기
- F-5E (605) P-38J/L 기반 정찰기
- P-38K (1) 주걱모양 프로펠러 장착
- P-38L-LO (3,810)
- P-38L-VN (113)
- F-5F (?) P-38L 기반 정찰기
- P-38M (75) 야간 전투기
- F-5G (?)

무고한 사람 열명을 숙청하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명의 스파이를 놓쳐서는 안된다.
- 니콜라이 예조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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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