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어(Hawker Siddeley Harrier)는 영국이 개발한 세계 최초의 실용 수직이착륙기(V/ STOL)이다.
 
Prototype의 첫 비행은1960년에 이루어졌으며, 1970년대에 초기형 해리어가 성능의 한계에 이르자 미국의 맥도널 더글라스사에서 해리어 II를 개발하였다.



2차대전시 독일 Focke Wulf사의 수직 이착륙기 일러스트


- 실험기의 개발 -

수직 이착륙(Vertical takeoff or landing)항공기에 대한 연구는 2차 대전 후반 독일에서 시작되었다. 독일은 VTOL을 완성시키지는 못했지만, 여러 획기적인 개념들을 고안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각국에서는 실제 비행이 가능한 VTOL기의 개발이 강력히 추진된다.


VTOL기는 엔진에 수직 이착륙을 위한 별도의 기구가 필요하기 때문에 중량이 늘어나서, 통상형의 전투기에 비해서는 성능이 뒤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수직으로 이륙할 수 있다는 것은 활주로가 파괴되는 비상 상황에서도 운용할 수 있다는 잇점이 있다.

1940년대부터 1950년대 전반까지는 기체를 지면에서 수직으로 세우고 이착륙을 하는 테일 시터 방식의 VTOL기 개발이 시도되었지만 실용화되지 못했다. 때문에 1950년대 후반부터는 수평인 상태로 수직 이착륙하는 방식의 개발이 활발히 이루어지게 되었다.

당시 개발이 이루어지던 기체로는 서독의 EWR VJ-101C, VFW VAK-191B과 프랑스의 미라주 III-V, 영국의 P.1127, 소련의Yak-36등이 있었다. P.1127과 Yak-36는 통상 항공기와 같이 엔진을 배치하고, 이착륙시만 노즐을 작동시켜 추진력을 아래로 변경하는 방식이었고 다른 기체들은 이착륙시 아래로 추진력을 내는 리프트 엔진을 별도 탑재하는 방식이었다.

Yak-36이 밸런스 제어 문제를 끝내 해결하지 못하고 개발 중지된 후, 후속 기체인 Yak-38은 리프트 엔진 방식으로 전환했기 때문에 추진력 변환 엔진을 사용한 VTOL 기체는 P.1127만 남게 된다.

리프트 엔진을 사용하는 방식은 엔진이 2개 탑재되어 전체 중량이 늘어나서 수평 비행의 성능을 저하시키는 치명적 문제로 인하여 실용화에까지 이른 기체는 없었다.

그에 반하여 P.1127은 획기적인 추진력 편향 페가수스 엔진을 사용함으로써 효율적인 Vtol 기체를 만들내는데 성공하게 된다. P.1127은 1960년 10월에 첫 공중 정지 비행을 하였고, 1961년 3월 수평비행, 같은해 9월에는 공중 정지 상태에서 수평 비행으로의 전환에 성공했다.


P.1127


1962년 4월 NATO는 표준형 수직 이착륙 전투기의 선정을 실시하였다. 프랑스의 미라주 III-V와 P.1127의 발전형인 P.1154가 선정되었는데, P.1154은 P.1127의 엔진에 애프터 버너(afterburner)를 추가한 초음속기가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영국 공군과 해군의 요구사항에 대한 이견과 노동당 정권에 의한 대폭적인 군사비 삭감에 의하여 P.1154은 1965년 2월에 개발 중지가 된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개발은 서서히 진행되었고, 1964년 3월 Hawker Siddeley사는 P.1127을 개량한 실험기 Kestrel을 비행시켰다. 1965년의 P.1154개발 중지 결정에 따라, 영국 공군은 Kestrel을 실험기가 아니라 실용기로 전환하여 개발에 들어가게 되었다. 1964년에 영국, 서독, 미국으로 구성된 3개국 공동 평가 비행대에 의한 구체적인 운용까지 포함한 기체의 테스트가 시행되었던 것도 이런 결정에 힘을 더했다.

최종적으로 영국 공군은 Kestrel의 실용형으로 대지 공격기를 의미하는 GR이라는 명칭을 붙인 Harrier GR.1의 발주를 실시한다.


Harrier GR.1

GR.1은 1966년 8월에 첫번째 비행을 하였으며, 1968년 7월부터 실전 배치가 시작되었다. 별도로 개발되던 복좌형 T.2의 최초 비행은 1969년 4월이며, 부대 배치는1970년 7달부터 이루어진다.

해리어가 배치된 최초 비행대는 조종사들에게 헬리콥터로 비행 훈련을 실시하여, 작전 능력을 1970년 1월까지 획득하였다.


- Sea Harrier -

1969년 영국 해군은 경항공모함에서의 사용을 고려한 V/STOL 함재기의 연구를 시작하였다. 제트 전투기가 점차 커지고 중량이 증대해 가는 것에 따라 항공 모함도 더욱 커지고 복잡하지게 되었다. 그러나 V/STOL기를 함재기로 사용한다면 항공모함의 설비를 간략화할 수 있고,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잇점이 있었다.

1971년 공군의 해리어 GR.1을 이용한 함상 테스트가 시행되었고 양호한 결과를 얻어내어 해리어를 개량한 함재기의 개발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 기체는 Sea Harrier FRS.1으로 명명되어 1975년에 양산이 결정되고 1978년에 첫 비행을 실시하였다.

Sea Harrier FRS.1은 GR.1의 개량형으로서 대함 - 대공 겸용 레이더를 장비하여 기수가 더 날카로워졌다. 또한 조종사의 시야를 더 좋게 하기 위해, 콕핏이 통상형 해리어에 비해 약간 위로 부풀어 오른 물방울형 캐노피를 채택하였다. 그 밖에도 유압 계통 등의 내부 시스템들이 전면적으로 개수되었다.


Sea Harrier FRS.1

해리어는 엔진 노즐을 4개 장비하여 노즐의 방향을 0도에서 98.5도까지 바꿀 수 있다. 엔진 노즐의 각도가 90도를 넘기 때문에 저속으로 후진도 할 수 있다. 또한 공중에서 정지한 상태나 저속 비행시에는 통상적인 자세 제어 기구로 안정성을 획득하기 힘들기 때문에, 엔진으로부터 우회된 공기의 배출구를 날개 등 기체 여기저기에 배치하고 있다. 해리어가 탑재한 터보팬 엔진은 일반적인 방식과 달리 터보 팬과 터보 제트 부위가 서로 역회전하고 있다. 이것은 엔진 회전으로 생긴 동체 회전 효과를 상쇄하여, 공중에서 정지시의 안정성을 높이고 있다. 터보팬으로부터는 압축 공기가 전방 노즐에, 터보 제트로부터는 배기가스가 후방 노즐에 분출되어진다.

해리어의 조종 방법은 일반적인 고정익기와는 완전히 달라서 조종수에 대한 훈련은 헬리콥터의 조종을 병행하여 이루어진다. 수동으로 자세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항상 버튼 30여개를 조작해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복잡함으로 인하여 1971년부터 45명의 조종수가 조종 실수로 인하여 사망하였고 이는 전투로 인한 사망자보다 더 많은 것이다.

해리어는 엔진 냉각수를 탑재하고 있다. 이것은 수직 이착륙시에 엔진이 오버히트되는 것을 막는 역할로서, 냉각수의 용량은 최대 약 90초 분량의 분사량 정도 뿐이다. 따라서 공중에서 정지한 상태의 기동은 60초 정도로 제한되어 있다.

한편 수직 이착륙시 고속의 제트 배기열이 지면으로 내뿜어지면 상당량의 먼지가 발생한다.  이 먼지가 동체의 흡기구로 들어갈 경우 엔진 손상이 일어날 우려가 있다. 또한 간이 패널식의 활주로에서는 해리어의 엔진 배기열에 의해 바닥이 손상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 실전 -
 
해리어는 수직 이착륙 항공기로서는 유일한 실전 참가 기록이 있다. 포클랜드 전쟁 당시 아르헨티나와의 교전에 참가하여 24기를 격추하는 동안 전투로는 1기도 손실하지 않았다.

이 전투 결과에 대해서는 여러 논란이 있는데, 전쟁 직전 영국이 도입했던 신형 AIM-9L Sidewinder 미사일 덕택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기체의 능력과 파일럿의 기량 또한 승리에 기여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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