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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린내나는 2차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자 무자비한 강철남의 제몫 챙기기와 복수극이 시작되었다.


1941년 8월 14일 체결된 대서양헌장에는 '조인국은 세력 확장을 추구하지 않고, 주민들의 자유 의사에 반하는 영토 변경을 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이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원칙에서 스탈린은 예외였다.


얄타회담에서 스탈린은 동프로이센과 폴란드 동부 및 발트3국에 대한 영토권을 확보했으며, 일본과의 전쟁에 참가하는 댓가도 따로 짭짤하게 챙겼다. 그는 외몽골과 사할린 남부 및 쿠릴열도에 남만주 철도의 권리와 뤄순항까지 요구했다. 루즈벨트는 별다른 저항없이 이런 탐욕스런 요구에 순순히 동의했다.

스딸의 도둑질로 가장 큰 피해자가 된 것은 중국이었다. 연합국의 일원임에도 얄타 회담에 참가하지 못한 장개석은 앉아서 만주를 도둑맞게 되었다. (만주는 후일 모택동에게 반환되어 중국 공산화의 거점 역할을 한다.)

 

1944년 5월 31일에는 스탈린의 요구에 따라 유럽을 해방하는 과정에서 연합군의 보호를 받게된 소련인들은 그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무조건 소련으로 송환하도록 결정되었다.

독일군 포로들중 10% 가량이 소련인이었다. 그들중 소련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미국은 독일 군복을 입은 사람은 특별한 의사를 표시하지 않는한 무조건 독일인으로 취급한 반면 영국은 스딸과의 약속에 있어서 약간의 융통성도 발휘하지 않았다.

 이것은 소련이 해결해야할 문제다. 영국 정부의 소관이 아니며, 때가 되면 소련이 원하는 모든 사람을 소련에 넘겨주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이 소련으로 가서 총살당하거나, 영국 법률에 정한 것보다 상대적으로 가혹한 대접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신경쓰지 말아야 한다. 
- 영국 외무부 법률고문 태트릭 딘 -


영국인들은 심지어 2차대전과 관계없는 소련인들까지 송환했다.

오스트리아 남부에서 투항한 5만명의 카자끄들이 그 케이스이다. 이들은 이 전쟁과는 무관하게 적백내전 당시 백군으로 참가하여 볼셰비키들과 싸우다 망명한 사람들이었다. 영국은 열차편으로 카자끄들을 몽땅 송환해버린다.

카자끄들의 아내와 아이들도 일종의 보너스로서 함께 송환되었다.


독일군 소속 카자끄 기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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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한 사람 열명을 숙청하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명의 스파이를 놓쳐서는 안된다.


- 니콜라이 예조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