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독일은 3호전차와 4호전차를 대체할 신형 전차(VK2001) 개발에 착수하였다. 신형전차는 20톤급으로 계획되었는데, 동부 전선에서 소련의 걸작 신형 전차 T -34를 만남으로써 30톤급 전차(VK3001) 개발로 선회하게 되었다.

이 계획의 결과물이 바로 판터(Panther)이다. 1943년부터 실전에 사용되기 시작하며, 전후에도 프랑스의 MBT(Main Battle Tank)로 사용되었다.

화력, 기동력, 방어력이 환상적으로 조합된 판터는 세계 대전 당시 다른 국가들의 좋은 벤치마킹 재료가 되었고, 세계대전 후 전차의 디자인을 고려할 때 T-34 전차와 함께 가장 자주 언급되었다.

1944년까지 판터는 Sd.Kfz. 171 번호를 부여받고 5호 전차(Panzerkampfwagen V)로 불렸지만, 1944년 2월 27일 히틀러(Hitler)의 지시로 로마자 V가 삭제되었다.

VI호전차인 티이거보다 늦게 계획되었다는 점을 혼동하지 말라는 총통의 배려일까?


T-34

1941년 봄 아직 독소 불가침 조약이 유효할 무렵 소련군 군사사절단이 독일을 방문했다.

유럽을 제패하고 승리감에 도취되어있던 히틀러는 이들에게 독일의 최신 주력전차인 4호전차를 보여주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소련 군사사절단의 반응은 의외였다. 이들은 4호전차가 독일의 가장 신형이라고는 믿지 않았던 것이다. 이들의 태도가 워낙 단호했기 때문에 독일군 병기국은 소련이 우수한 重전차를 보유하고 있음에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해 가을 바바로사 작전이 시작되자 비로소 KV-1 과 T-34/76 의 실체가 확인됐다.

이들 전차에 맞부딪친 독일군 기갑부대의 반응은 한마디로 경악이었다.

독일 전차의 아버지 하인츠 구데리안(Heinz Guderian) 장군을 포함한 팀이 급하게 동부전선으로 파견되어 T-34를 분석하였으며, 같은 두께로도 훨씬 뛰어난 방어력을 가지는 T-34의 경사장갑과, 무른 지형에서도 기동성을 발휘하는 넓은 캐터필러와 큼직한 로드휠, 뛰어난 관통력을 자랑하는 76.2mm 주포의 성능에 주목하였다.

곧이어 다임러 벤츠(Daimler-Benz, DB) 사(社)와 마쉬넨파브리크 아우그스부르크-뉘렌베르크 AG(Maschinenfabrik Augsburg-Nurnberg AG, MAN) 사에 30톤에서 35톤 정도의 중량을 가지는 전차의 개발 명령이 하달되었고, 1942년 4월 히틀러의 생일에 맞추어 프로토타입 VK3002가 완성되었다.



Daimler-Benz Panther Protoype VK3002(DB)


1942년에 공개된 두 회사의 프로토타입 중 다임러 벤츠의 것은 T-34를 그대로 모방한 것이었다. 다만 보다 많은 고급 장비가 들어가고, 외형을 단순화시킨 것 뿐이라고 봐도 무방하였다.

디젤엔진, 대형 강철제 전륜, 리프 스프링식 서스펜션, 궤도 배치 등이 T-34와 동일하였고 전투실에 두명의 인원이 배치되어 전차장과 포수의 역할을 하게끔 설계되었다.

이 안은 기동륜이 뒤에 있기 때문에 복잡한 동력전달 장치가 없다는 장점이 있었으며, 포탑의 크기가 작았다.

단순한 설계 탓에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생산이 가능하였고, 인원 경감과 피탄확률 감소에도 효과가 있었다.



Man Panther ProtoType


이에 반해 만사의 설계안은 T-34의 경사장갑을 채용한 것을 제외하면 순수한 독일전차의 전통에 충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양산형으로 채택된 것은 만사의 설계였다. 다임러 벤츠안에 대한 히틀러의 선호도 소련제를 그대로 카피할수는 없다는 독일의 국가적 자존심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아무튼 이에 따라 다임러 벤츠안에 대한 선행발주분 200량은 취소됐다.

MAN 사의 프로토타입은 경사장갑을 채용한 것을 제외하면 보다 독일 전차의 전통에 충실했다.

다임러 벤츠의 안에서 포탑이 앞에 치우쳐있음에 비해 만사의 설계안은 장포신 70구경포와 머즐브레이크의 중량을 배분하기 위해 포탑을 차체중앙부에 배치하고 있었다.

넓은 포탑에서는 전차장과 포수 및 장전수의 세 인원이 전투를 수행하며, 가솔린 엔진, 토션바(torsion-bar) 형식의 현가 장치가 적용되어 있었다.

이 안은 가솔린 엔진은 뒤에, 기동륜은 앞에 있었기 때문에 복잡한 동력전달장치가 필요해지는 등 매우 정교한 기술을 필요로 했다.

VK3002(DB)


VK3002(MAN)


VK3002(MAN)로 명명된 이 차량은 T-34나 다임러벤츠의 VK3002(DB)에 비해 훨씬 대형이었으며 애초 요구된 중량을 한참 넘어서고 있었다.


히틀러는 다임러 벤츠의 안을 마음에 들어했지만 1942년 5월 결국 채택된 것은 MAN 사의 안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MAN 사의 안이 라인메탈(Rheinmetall-Borsig)사의 기존 포탑 생산라인을 활용할 수 있는 반면, 다임러 벤츠의 안은 포탑 생산을 위하여 새로운 생산설비가 필요했기 때문에 전장투입이 지연된다는 논리였다.

MAN 사의 강철제 프로토타입은 1942년 9월 제작되어 쿠메르스도르프(Kummersdorf)에서 시험을 마쳤으며 공식으로 제작이 승인되었다.


판터는 최우선 순위로 생산이 지시되었지만, 차체 제작에 필요한 특화된 연장들이 부족하여 일정이 지연되었다.

12월에야 최초의 양산형이 생산되었고, 생산을 서두른 바람에 초기형들은 신뢰성에 문제가 많았다.

전차에 대한 수요가 상당하였기 때문에 생산은 MAN 뿐 아니라 다임러 벤츠에서도 이루어졌으며, 1943년부터는 마쉬넨파브리크 니더작센-하노버(Maschinenfabrik Niedersachsen-Hannover, MNH) 사와 카젤(Kassel)의 헨셸 & 존(Henschel & Sohn) 사로 확대되었다.

당초 예정은 MAN 사에서 한달에 250대의 전차를 생산하는 것이었다.

이 계획은 1943년 1월에 월 600대 생산으로 변경되었지만, 연합군의 폭격과 병목현상, 기타 난관들로 인하여 이 목표는 한번도 달성되지 못하였고, 고작 월평균 148대 생산으로 그쳤다.

1944년에는 월평균 315대 - 연간 총 3,777 대의 전차가 생산되었고, 그중 7월에는 380대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판터는 1945년 3월 생산이 중단될때까지 6,000대 가량이 생산되었다.

1944년 9월 1일까지 2,304 대의 전차가 생산되었고, 그 달에만 692 대의 전차가 파괴되었다.



앞으로 크게 돌출된 주포와 경사장갑을 제외하면 판터는 전형적인 독일식 전차였다. 당초 계획 중량이 35톤이었으나 전면 장갑을 60mm에서 80mm로 강화하라는 히틀러의 지시 등으로 인하여, 실제 양산된 판터의 중량은 43톤에 달하였다. 최고 속도도 60km/h로 계획하고 있었으나, 무게 증가에 따라 55km/h로 줄어들었다.

판터의 승무원은 운전수, 무전수 겸 전방 기관총 사수, 포수, 장전수, 그리고 전차장의 5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판터는 세계 최초의 근대 전차였다. 엔진 문제와 변속기 문제만 해결되었다면 판터는 티거 이상으로 훌륭한 전차가 되었을 것이다. 판터는 700 마력(515 kW) 3000 rpm, 23.1 리터 마이바흐(Maybach) HL 230 P30 V-12 가솔린 엔진을 사용하여, 기어와 조향장치를 통해 앞쪽에 위치한 두 개의 기동륜(sprocket)을 가동하였다. 이 엔진은 대체로 신뢰성이 괜찮은 수준이었지만 2,000킬로미터 정도를 주행하고 나면 수명이 급격히 떨어졌다. 엔진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1943년 후반 조절기를 삽입해 rpm은 2500으로, 힘은 600마력으로 감소시켰다. 이 조절기 때문에 전차의 최고 속도는 55 km/h에서 46 km/h로 떨어졌다.

포션바 두개가 겹친 듀얼 토션바 형식의 완충장치는 기동륜과 뒷편의 유동륜(idler), 그리고 이중 배치된 각 8개의 보기륜(bogie wheel)에 부착되었다. 판터의 토션바 완충장치는 비용이 많이 들고 제작 시간도 길었지만 당시로서는 최고의 비도로(野地) 주행성을 제공하였다.


전차의 제어는 ZF 사에서 개발한 7단 구성 AK 7-200 싱크로메쉬(synchromesh) 기어박스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MAN 사가 개발한 조향 장치가 적용되었으며, 좌우의 기동륜이 완전히 독립되어 제자리 선회가 가능하였고, 기어를 높일수록 선회 반경은 커졌다. 선회반경이 의도했던 것보다 커질 경우에는 조향 브레이크를 걸어 반경을 좁힐 수도 있었다.


취역기간 내내 이 전차의 가장 취약한 부분은 주행 장치였다. 이는 전쟁기간 동안 독일에 '기어 가공 기계'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어떤 경우 수명은 종종 150 km 주행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도 있었다.


판터의 장갑은 두꺼운 '균질 압연 강판'으로 55도의 각도를 이루고 있었고, 용접 및 결합 장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80mm의 장갑 두께에다 경사도까지 부여된 장갑은 놀라울 정도의 방어력을 지녀 대부분의 연합군 무기로는 관통이 불가능하였다.


포탑의 전면부는 100 mm 두께의 주조로 만들어진 반원형 포방패(mantlet)가 위치하였다. 이러한 반원형 구조는 피탄률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지만 그 부작용으로 종종 숏트랩(shot-trap)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포방패 아래편에 명중한 포탄이 아래로 미끌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차체 상부를 관통해버리는 것이었다. 이 부분에는 운전수와 무전수가 양편으로 위치함은 물론 변속기와 조향장치, 무전장치가 모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그 피해는 치명이었다.

1944년 9월부터 하부에 돌출된 턱을 덧붙인 형태의 새로운 포방패가 G형(Ausf. G)에 장착되어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게 되었다.


판터의 장갑중 가장 취약한 부분은 두께 40-50mm에 불과한 측면 장갑이었다. 측면이 얇게 구성된 이유는 전차의 중량 감소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며, 이러한 약점으로 인하여 판터는 측면에서 가해지는 공격에 취약하였다. 따라서 독일의 전술은 측면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소련의 대전차포로부터 차체 하부를 보호하기 위하여 쉬르첸(Schurzen)이라고 부르는 5mm 두께의 사이드 스커트(side skirt) 장갑이 사용되었으며, 1944년 9월 새로운 G형의 판터로 교체될 때까지 찌메리트(Zimmerit)라고 부르는 시멘트 코팅이 A형(Ausf. A)에 표준으로 채택되어 '자석식 지뢰'의 피해에 대비하였다.


판터의 주포는 라인메탈제 7.5 cm KwK 42 (L/70)으로, 모두 79발(G형에서는 82발)의 포탄을 적재하였다. 이 주포는 APCBC-HE(Pzgr. 39/42), HE(Sprgr. 42) 그리고 APCR(Pzgr. 40/42)라고 불리는 3종류의 포탄을 사용하였는데, APCR탄은 항상 보급이 부족하였다.

주포의 구경 자체는 평균적인 것에 불과하였지만, 장약량이 많은데다가 장포신을 채택한 덕택에 포탄의 속도가 비약적으로 증가, 관통 성능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거의 수평을 그리는 포탄의 궤적은 목표를 더욱 쉽게 명중시킬 수 있도록 하였으며 거리에 따른 명중률의 변화도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이러한 판터의 주포는 티거에 장착된 8.8 cm KwK 36 L/56 전차포보다 관통력이 뛰어났으며 티거II와 야크트티거(Jagdpanther)에 장착된 8.8 cm KwK 43 L/71(8.8 cm Pak 43/3) 보다는 다소 위력이 떨어졌다.


판터는 총열에 장갑판을 추가해 장갑 전투 차량용으로 개량된 MG-34 기관총 두정을 장비하였다. 그중 한정은 포방패에 주포와 병렬로 위치하여 있었으며, 나머지 한정은 전면부 경사장갑에 위치하여 무전수가 사용하였다.

초기 생산형인 D형(Ausf. D)과 A형 초기에는 우편함처럼 열리는 플랩을 기관총을 발사구로 이용하였다. A형 후기와 G형에는 전면의 볼마운트(ball mount)를 사용하여 기관총을 발사하였다. A형에는 주조제 전차장용 큐폴라(cupola)에 강철 환대를 장착하고 이 위에 대공방어용으로 MG-34 기관총이나 기타 기관총을 장착하였지만, 실전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았다.


판터는 4호 전차를 지원하고 3호 전차를 대체하는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전차 사단(Panzer Division)은 두 개의 전차 대대로 구성되어, 하나는 판터로 다른 하나는 낡았지만 아직 사용가능한 4호 전차들로 채워졌다. 1943년 중반부터 각 전차 대대는 대부분 판터로 교체되었다.

반면 티거 전차들은 특화된 중전차 대대로 조직되어 기존 두개의 전차 대대와 별개로 운용되었으며, 오직 그로스도이칠란트 사단(Grossdeutschland Panzer Division)만이 기존 편제에 티거 전차들을 구성하여 사용하였다.



판터는 1943년 7월 쿠르스크(Kursk)에서 첫 실전을 치렀다. 초기형 모델은 궤도나 완충장치가 부서지고 엔진이 과열로 화염에 휩싸이는 등 기계적인 문제가 많이 발생하여 적의 공격으로 파괴되는 숫자보다 고장으로 주저앉는 경우가 더 많을 정도였다.

1943년 7월 10일 제 XLVIII 전차군단이 보고한 바에 따르면 7월 5일 전투 결과 판터 200대로 시작하여 131대가 고장수리중이고 오직 38대만이 사용가능 상태라고 하였다.

히틀러의 판터 조기 투입 명령에 반대했던 하인츠 구데리안은 초기 판터의 전투 수행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연료와 오일 시스템 보호가 취약한 덕에 판터는 너무 쉽게 불탔고 승무원들은 훈련 부족으로 쓰러져갔지만 그래도 화력과 전면 장갑의 방어력 만큼은 훌륭하였다."

기계적 결함으로 전투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판터는 소련의 전차 263대를 격파하였다.

쿠르스크 전투 이후 기계적 결함이 많은 D형은 대대적으로 개수되어, 보다 안정적인 전차로 거듭났다.

1943년 후반부터  1944년 초까지 동부전선에서는 판터의 수가 급증하였다. 1944년 6월 서부와 동부의 전차중 절반 이상이 판터로 교체되었다.


Barkmann의 모퉁이 - 후일 소개할 기회가 있을듯.


연합군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날때까지 대부분의 전투에서 판터와 맞닥뜨려야 했다.

가장 널리 알려진 독일의 판터 전차장은 제 2 무장친위대 기갑사단 "다스 라이히"(2nd SS-Panzer Division - Das Reich)의 에른스트 바크만 상사(SS-Oberscharfuhrer Ernst Barkmann)이다.



Ernst Barkmann

증가하는 판터의 위협에 대한 소련의 대응은 신속하였다.

1943년 소련은 여전히 1941년식의 76.2mm 주포를 장착한 T-34/76을 운용하고 있었다. 이 전차포는 판터의 전면장갑에 무력하였기 때문에 소련 전차들은 판터를 격파하기 위해 측면에서 공격을 가해야만 했지만, 판터는 어떤 각도에서도 장거리에서 T-34를 격파할 수 있었다.

T-34를 강화하는 계획이 곧 수립되었고, 3인의 전투원이 포탑에 배치되는 새로운 T-34/85 전차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 전차는 판터와 대등하게 싸울 수는 없었지만 주포의 성능이 향상된 데다가 수적으로 훨씬 우세하였다. 더하여 T-34의 차체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자주포인 SU-85나 SU-100이 개발되기도 하였다. 1944년 중반까지 소련군은 판터보다 많은 수의 T-34/85를 생산 배치하였다.

1944년 3월 23일 독일은 소련의 T-34/85 전차와 122mm 주포를 장비한 IS-2 중전차를 판터와 비교하였다. 독일측의 발표에 따르면 판터는 T-34/85에 비하여 정면 공격력이 월등하였으며(판터 G형은 2킬로미터 거리에서 T-34/85를 격파할 수 있었던 반면 T-34/85는 500미터 거리까지 접근하여야 판터를 격파할 수 있었다), 측면과 후면 공격력은 거의 유사하였고 IS-2와 비교해서는 정면 공격력은 더 낫지만 측면과 후면은 IS-2가 더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1943년과 1944년 판터는 모든 연합군의 전차를 2킬로미터 거리에서 격파 가능하였으며 특히 숙련된 승무원들의 보고에 따르면 1킬로 거리에서 명중률이 9할이나 되었다.


동부와 대조적으로 서부전선의 연합군 대응은 지지부진하였다.

1944년 안지오(Anzio) 전투까지 연합군은 판터와 마주치질 못하였고, 그나마 수적으로 적었다. 미 육군은 북아프리카 전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티거와 마주쳤고, 이 전차의 숫자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었다.

이들은 판터도 마찬가지로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노르망디 전투(Battle of Normandy)에서 대치할 독일 전차 역시 중전차 한줌에 나머지는 구식 4호 전차들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실상 노르망디의 독일 전차 절반이 판터였으며, 미군의 75mm 주포를 장착한 셔먼(Sherman)은 판터의 전면장갑을 관통할 수 없었다.


M4A2 Sherman

미국은 76mm 주포를 장착한 셔먼(Sherman)들과 90mm 포를 장착한 대전차 자주포들을 긴급 배치하였고 나중엔 퍼싱(Pershing) 중전차를 개발해 도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터의 전면장갑은 너무나 강했다.

미육군 통계를 따르면 한 대의 판터가 격파될 동안 5대의 M4 셔먼이 격파되었다고 한다.



M26 Pershing

영국군은 대전차포로 명성을 얻은 17파운드 포를 주포로 장착한 셔먼 파이어플라이(Sherman Firefly)로 독일 중전차들을 대응하였다. 노르망디의 경우 파이어플라이와 일반 75mm 셔먼의 비율은 1:4 정도가 되었다. 1945년 영국군은 코멧(Comet) 전차를 개발해 도입하기도 하였다.


판터는 전쟁이 끝나는 시점까지 주력으로 남았다. 장포신의 75 mm KwK 40 L/48 주포를 장착한 4호 전차가 생산 단가면에서나 신뢰성 면에서 조금 더 유리하였기 때문에 4호 전차 역시 판터와 같이 계속 생산되었다. 그러나 4호 전차의 생산이 지속된 가장 주된 이유는 생산 체제를 전부 판터 쪽으로 바꾸는 것보다 4호 전차를 계속 생산하는 것이 빠듯한 전차 전력 유지에 조금이나마 더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벌지 전투(Battle of the Bulge) 시기에는 추가 장갑을 장착한 일부 판터가 연합군의 위장색과 식별표식을 그리고 M10 울버린(Wolverine) 대전차 자주포로 위장하여 활동하였다. 이들은 미군으로 위장한 공수부대 병력과 같이 활동하였으며 그 활약은 미비하여 이들은 대부분 식별되어 격파되었다.


노획된 판터들은 소련군에게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심지어 소련군은 전공을 세운 전차병들에게 판터를 수여해 운용케 하였으며 기계적 고장이 나면 더이상 수리해 사용하지 않고 폐기하였다. 독일 전차병들을 위한 판터 사용법(Pantherfibel, Panther Primer)도 번역되어 소련 전차병들에게 지급되었다.


1943년 2월에는 판터 II가 기획되어 티거 II와 최대로 부품 공유가 가능하게끔 하려던 시도가 있었다.

판터 II는 티거 B형(Ausf. B)과 거의 유사한 차대와 바퀴, 궤도, 완충장치 그리고 제동장치를 채택하였다. 또한 포방패 역시 보다 작게 설계하여 상호 공유가 가능하도록 하였다. 이는 독일어로 투름 밋 슈말러 블렌데(Turm mit schmaler Blende, narrow-mantlet turret)라고 불렀다.

판터와 판터 II의 가장 주목할 차별성은 변속장치와 장갑증가에 있다. 포탑 자체는 동일하다. 판터 II는 7.5 cm KwK L/70 전차포를 위해서만 설계되었으며 8.8 cm KwK L/71 전차포의 탑재가 고려되지 않아 결국 계획 포기로 이어졌다.

판터 II 프로젝트는 차체 한대 생산 후 폐지되었으며, 이 차대는 현재 패튼 박물관(Patton Museum)에 전시되어 있다.


Panther II

1944년 3월 전쟁 말기에 포탑의 크기를 줄여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낮은 포탑(Schmalturm)을 생산하기 위한 시도는 그해 8월 시험 포탑(Versuchsturm) 생산으로 이어졌다. 이 포탑은 G형의 차대에 설치되기 위한 것으로, 보다 두꺼운 장갑에 입체 거리탐지기(stereoscopic rangefinder)가 고정 장착되었고 88mm KwK L/71 전차포를 수용할 수 있었으며 포방패의 숏트랩을 방지하는 구조도 포함되어 있으면서 기존의 포탑보다 크기가 작은 것이었다. 이 포탑은 현재 반파된 상태로 남아 보빙턴 전차 박물관(Bovington Tank Museum)에 전시되고 있다.


Panther Schmalturm Turret

같은 시기 판터의 개량은 F형(Ausf. F)으로 이어져 1945년 4월에 생산이 시작되었다. 이 전차는 낮은 포탑에 방어력이 더욱 증가되었다. 이 전차는 다임러 벤츠와 루르스탈-하팅겐(Ruhrstahl-Hattingen steelworks)에서 생산이 이루어졌지만 전쟁이 끝날때까지 생산이 이루어졌다는 증거는 찾아볼 수 없다.


1945년 전후, 50대의 판터가 프랑스 503e 연대(503e Regiment de Chars de Combat)에 배치되었다. 이후 1950년까지 이들 판터들은 프랑스제 ARL 44 중전차로 교체되었다.


- Variants -



Ausf D1 (Ausf A) : 1942년 11월 20대의 초도 생산분


Ausf. D: 1942년 12월부터 1943년 9월까지 842량 생산(초도 생산분 20대 포함)

D형은 Prototype 이후, 처음으로 양산된 형식이다. 

초도 생산분 20량은 21,000cc 엔진을 탑재하고 있으며 전차장용 큐폴라 때문에 포탑 좌측장갑판이 불룩하게 도드라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 글라시스판의 두께도 이후의 양산형과는 달리 60mm 이다. 21량째의 생산분으로부터는 글라시스판이 80mm 가 되었고 큐폴라가 포탑 내측으로 이동, 좌측면의 도드라진 부분이 없어졌으며 23,880cc 의 신형엔진이 탑재되고 신형 트랜스미션이 도입돼 기동성이 크게 향상됐다.

D후기형은 방어력이 향상된 신형 주조제 큐폴라가 설치됐으며 이는 드럼형 큐폴라를 장착했던 초기형에도 부착되었다. 또 판터는 슐체른을 표준으로 장착하고 있다.

판터계열에 일관되게 사용된 마이바하 HL230P30 엔진은 6개의 실린더가 60도의 각도로 배치된 V자형 12기통 수냉식엔진으로 가솔린을 연료로 사용했다.

최대출력은 3000rpm 에서 700마력을 기록했으며 압축비는 6.8:1, 전지는 보쉬사의 12볼트 밧데리이다. 조향장치는 만사의 것으로 최소회전반경은 1단에서 5m, 2단에서 11m, 3단에서 18m, 4단에서 30m, 5단에서 43m, 6단에서 61m, 7단에서 80m이다. 

서스펜션은 앞에 대형의 기동륜, 8개의 접시형 로드휠, 1개의 소형 유도륜으로 각각 구성되었으며 전륜은 중량분산을 위해 서로 중복되도록 배치됐다. 전륜은 고무테두리가 붙은 접시형으로 직경은 86cm, 두께는 10cm이다. 캐터필러는 강철주조제로 폭은 66cm, 드라이 싱글핀방식으로 한쪽에 각 87개가 연결되었다.

주포는 라인메탈제 KwK 42 75mm 70구경포로 조준기는 쌍안경식의 TZF12 였다. 부무장은 7.92mm 동축 MG34 기관총 1정과 같은 종류의 대공기관총 1정, 차내비치용의 9mm MP38 기관단총 1정으로 구성되었고 이외에도 포탑앞쪽 좌우에 9cm 발연탄발사기 6기가 장착되었다.

승무원의 외부관측장치로는 운전병용 직시형 창과 슬릿, 페리스코프 2개, 무선수용으로 2개의 페리스코프, 전차장용으로는 큐폴라에 6개의 방탄유리로 만들어진 페리스코프가 제공되었다.

한편 D형의 초기생산차량은 차체 전면 좌우에 보쉬 헤드라이트 2개를 장착하고 있었지만 생산이 진행되면서 좌측의 1개만 장착되었다. D형은 무선수석에 기관총이 탑재되어 있지 않고 리어패널의 배기파이프가 단순한 원통형 2개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판터 D형은 1943년 1월부터 양산이 시작돼 다음달부터 부대배치가 이루어졌으나 많은 기계적 문제점이 드러나 4월 기존의 배치된 모든 차량이 수리를 위해 회수됐다.

이 차량들은 수리후 제51및 52전차대대에 지급됐으며 7월의 쿠르스크 전투에 투입됐다.

하계공세를 준비중이던 1943년 5월 12일까지 배치된 판터 D형은 총250량이었다.


Ausf. A: 1943에서 8부터 1944 5까지 2,200량 생산

D형으로부터 외관상 큰 변화는 없지만, 문제가 많았던 변속기를 변경하는 등 기계적 신뢰성을 높였다. 주포 조준기는 양안 관찰식으로부터 외눈 관찰식으로 변경되었다.


Ausf. G: 1944년 3월부터 1945년 4월까지 2,953량 생산. (3,100량 생산설도 있음)

G형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측면 장갑판이 한장의 강철판으로 만들어지면서 경사각도가 가파르게 변하며 약간 강화된 점이다. 이것은 판터의 차대를 개조하여 야크트판터를 만들다 보니 기존 판터의 측면 장갑판 경사로는 넉넉한 전투실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변경된 사항이다.


야크트판터와의 생산공정 동일화는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판터의 생산에도 역으로 적용되었다. 

다른  중요한 특징은 전면의 운전병용 관측창이 폐지되었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운전병 해치 주위의 관측용 페리스코프들도 없어졌다. 대신 운전병 해치 바로 앞에 선회식 페리스코프 1대를 설치, 시야를 확보토록 했다.

한편 해치의 개폐 방식도 A, D형의 들어올려 회전시키는 것 대신, 단순하게 옆으로 젖히는 구조로 변경되었다.
 
 G형의 생산도중 엔진데크의 형상에 변화가 있었다. 일부 차량에 적용된 새로운 형태는 공기흡입구의 그릴형태가 달라지고 왼쪽 냉각팬용 하우징이 높이 돌출된 것이 특징이다. 이는 라디에이터와 오일쿨러의 배치에 변화가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현재 애버딘과 보빙턴박물관에 전시된 차량이 이에 해당된다.


Ausf. G : 신형 포방패

1944년 중반경부터는 대부분의 G형이 신형 포방패를 장비하게 되었다. 이는 기존의 원형 포방패는 아랫부분에 피격될 경우 튀어나간 포탄이 차체 상부나 포탑링쪽으로 돌진하는 현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아랫쪽을 두툼하게 한 친(chin,턱)형 포방패가 장착됐다. 생산단가가 약간 오르긴 했지만 방어력 향상에는 큰 효과를 보였다.

후기형에서는 또 트랜스미션이 기어비가 낮은 ZF-AK7-400 으로 변경됐다.

G형은 동부,서부,남동부등 전전선에서 사용됐으며 헝가리,동프러시아,벨기에등 독일군이 최후의 저항을 벌였던 곳마다 모습을 드러냈다. 1944년말-1945년경에 독일군 전차사단 보유전차의 절반이상이 판터였다. 1944년말 아르덴느공세때 B군집단은 총 450량의 판터를 보유하고 있었다.



Ausf. F: 1944년 10월 ~ 1945년 3월까지 1량의 시제품과 8량의 미완성품 생산.

포탑 양측면에 M48/60의 것과 비슷한 거리측정용 스테레오식 페리스코프를 수납하는 공모양의 돌출부가 있다.

주포는 75mm KwK 42/1 70구경포로 동축기관총으로 MG42 가 장비됐다. 또 포탑 이외에도 후부차체 상면장갑이 16mm에서 25mm로 강화됐으며 운전수석및 무선수석 해치의 형태에도 변화가 있다.

차체기관총의 총가는 MP 44를 사용할수 있도록 개조됐으며 일선부대에서 지휘형으로 쉽게 개조할수 있도록 무전기, 포탄랙의 위치를 고려했다.

혁신적인 기술을 사용했지만, 실제 양산에는 들어가지 못한 모델이다.


Befehlspanzer Panther  제식번호 : Sd.Kfz.267 - 350량 생산(D 형75 량,A 형200 량,G 형75 량)

표준 Fu5 무전기와 상급부대 연락을 위한 장거리 무전기 Fu8을 장착한 지휘전차.

350량 이외에도 개조킷을 이용하여 추가적으로 개조된 지휘 판터 전차가 존재함.


- 판터의 섀시를 이용한 Variants -


Jagdpanther - 제식번호 : Sd.Kfz.173

판터의 차체에 8.8cm PaK43/3 L/71 주포를 장착한 돌격포.




Beobachtungspanzer Panther

포병의 착탄 관찰을 위한 관측 전차.

2정의 MG-34 기관총과 가짜 주포 설치

1944년 후반기부터 1945년까지 41량이 개조됨. 귀중한 전차전력인 판터를 쓸데없는 용도로 개조했다는 비판에 직면하여, 대부분 전차 타입으로 원복.


Bergepanther - 전차 회수용 차량

초기에는 D형의 차체에 간이 크레인을 붙인 형태가 만들어졌다.
이후 A형 초기 차체와 G형 차체를 사용하여 양산된다.

제 653 重전차대대에서는 D형 차체에 IV호 전차 H형의 포탑을 얹어 지휘 전차로 현지 개조하였다고 한다.


- Spec -


- Crew(승무원): 5

- 전투하중: Ausf. A 45.5t, Ausf. D 43.0t, Ausf. G(강철제 보기륜 장착시 46.58t)
- 길이: 주포포함 8.66m, 주포없이 6.87m
- 너비: 3.27m, 사이드 스커트 장착시 3.42m
- 전고: 2.99m
- 도로주행 속도: 3,000 rpm으로 55km/h (2,500 rpm으로는 46km/h)
- 주행거리: 200km
- 궤도: Kgs 64/660/150 (가이드 핀이 2열, 너비 660mm, 86개 연결)
- 대지접촉: 3.92m
- 대지압력: 0.88 kg/cm²
- 완충장치: 듀얼 토션바. 2번째와 7번째 스윙 암(swing arm)으로 충격흡수
- 엔진: Maybach HL 230 P30 V-12 23.095리터(4행정 3,000 rpm으로 700 hp, 2,500 rpm으로 600 hp)
- 연료: 가솔린 또는 74옥탄(74 octane) 720 리터 (혼합비 6.8:1, 도로주행시 1km당 3.5 리터)
- 변속장치: ZF AK 7-200 synchromesh manual, 전진 7단 후진 1단
- 조향장치: MAN single-radius clutch-brake
- 클러치: Fichtel & Sachs LAG 3/70H
- 포탑조정: 좌우 360°(초당 24° 선회가능), 상하 +18°/-8°
- 무전기: Fu 5 transmitter/receiver 또는 Fu 2 receiver
- 주포: 반자동 7.5 cm Kwk 42 L/70 (포구속도 1,120 m/s) 포탄 79발(G형은 82발) 적재
- 조준기: A/G형 TZF 12a, D형 Leitz TZF 12. 배율 2.5×/5×, 범위 28°/14°
- 장갑
차체: 前下 60mm/35°,前上80mm/35°,側下 40mm/90°,側上 40mm/50°(G형 50mm/60°),後40mm/60°
포탑:前D형 80mm/78°A형110mm/78° G형100mm/80°,側 45mm/65°,後45mm(65°)上15mm(5°, G형30mm/5°)
- 포방패: 120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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