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전쟁(Six-Day War)이라 불리는 제 3차 중동 전쟁은 1967년 이스라엘과 아랍 연합(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 사이에 발생하여 6일만에 종결된 전쟁을 말한다.
이 전쟁의 결과로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의 지배권을 획득하여 옛 팔레스타인 전 지역을 통일하였고,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와 시리아의 골란 고원을 점령하였다.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점령한 영토
1948년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정착민들은 아랍 연합군을 패주시키고 이스라엘을 건국한다. 1차 중동전쟁이다.
8년 후 이스라엘군은 시나이 반도를 침공하여, 이집트군을 격파하고 수에즈 운하를 점령하였다. 2차 중동전쟁이다.
유엔이 중재에 따라 이스라엘은 군대를 철수 시켰고, 시나이 반도는 비무장 지대가 되어 유엔 평화 유지군이 주둔하였다.
결과적으로 시나이 반도 남단의 이집트 요새 샬름 엘 쉐이크가 비무장 지대에 포함됨으로서, 이스라엘은 홍해로 빠져나가기 위한 유일한 관문 - 아카바항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아랍측에서는 1964년 요르단의 암만을 본부로 하여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가 결성되어 이스라엘에 대한 게릴라 투쟁을 전개하고 있었다.
전차까지 동원한 이스라엘군이 요르단 국경을 5km 이상 침범하여 PLO 소탕을 벌인 일명 '엣사무' 사건이 벌이지자 요르단은 격노하게 된다.
1966년 2월에는 시리아에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여 친PLO성향의 바트당이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다. 이들은 골란 고원의 기지에서 불법적으로 만들어진 이스라엘 정착촌들에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같은해 4월 7일 이스라엘군은 포대를 제압하기 위하여 공군을 동원하고, 시리아군과 교전을 벌인다. 이스라엘 공군기들은 시리아 수도인 다마스커스(Damascus)상공까지 날아가 무력 시위를 벌였다.
당시 아랍측에는 소련의 KGB 관계자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KGB는 이집트 정부에게 이스라엘과 시리아 사이에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첩보를 전했다. 또한 시리아 정부에 대해서도 이스라엘이 시리아 침공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은 이스라엘군이 시리아를 공격한다면 이집트가 보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라크는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와 군사 동맹을 맺었다.

상호 방위조약에 서명하는 후세인 요르단 국왕과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
5월 16일 나세르는 유엔 평화 유지군에게 시나이 반도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UN 사무총장 우탄트는 사막지대인 시나이 반도에 대한 이집트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즉각적으로 UN군 철수에 동의하여 세계를 놀라게 한다.
5월18일 UN 평화유지군은 철수하고, 국경 지대로는 천여대의 이집트 전차가 전진배치되었다. 5월 23일 이집트는 이스라엘 아카바항으로 이어지는 티란 해협의 봉쇄를 선언한다.
이스라엘은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일어날 경우 이스라엘의 승산이 희박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아랍 3국의 행동에 대하여 미국에 중재를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 CIA는 아랍측의 선제 공격은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고, 베트남 전쟁에서 악전고투하던터라 중재 요구에 불응했다.
초조해진 이스라엘은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여기게 된다. 이스라엘은 기습 선제 공격을 결의하고, 동원 체제에 돌입한다. KGB는 이 정보를 알고 있었지만, 아랍 측에 전하지 않았다.
1967년 6월 5일 아침 이스라엘 공군의 작전을 개시한다.
공격은 아침 안개가 걷히고 주요 지휘관들이 출근하는 시간에 맞춰 이뤄졌다. 이스라엘 항공기들은 이집트의 촘촘한 레이더망을 피하기 위하여, 지중해를 멀리 우회하여 리비아 사막지대 상공을 통해 카이로에 돌입한다.
기습은 완벽 그 자체였다.
이집트 공군은 단 하루만에 MIG-21 90대를 포함하여, 총 410대의 항공기를 띄워보지도 못한채 지상하서 파괴당한다. 사실상 공군 전력의 궤멸이었다.
이집트 당국은 이같은 사실을 은폐하였고, 방송국들은 이미 지구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공군의 '빛나는 전과'를 떠들어 대었다.

동맹군들과 함께 이스라엘의 엉덩이를 걷어차는 나세르
완벽한 기습을 위해서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는 이집트 공군 조종사들의 가족 사항과 레이더 요원들의 근무 습관, 또한 주요 지휘관들의 출근 상황까지 세밀하게 분석하였다고 한다.
시리아, 요르단 공군도 단 25분 만에 무력화되었다.
전광석화같은 이 공격으로 아랍측은 총 410기의 항공기를 잃었다.
제공권을 완벽하게 손에 넣은 이스라엘은, 지상군으로 진격하여 순식간에 요르단강 서안, 가자, 시나이 반도, 골란 고원을 모두 점령하여 영토를 4배나 넓혔다.
요르단과 이집트는 6월 8일에 휴전협정에 조인하고, 시리아도 6월 10일 휴전에 동의한다.
- 남부 전선 -

이스라엘 지상군의 최초 공격은 시나이 반도에서 시작되었다. 이곳에는 8만명의 이집트 수비군이 1,000대의 신형 탱크와 함께 주둔하고 있었다.
6월 5일 새벽. 이스라엘 남부 방면군 사령관 가비시 장군 휘하에는 3개 사단 6만 5천명의 병력과 650대의 전차가 공격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명령을 기다리는 이스라엘 전차 부대원들
아침 7시 45분 무선 통신이 침묵을 깨고 공격 명령을 내린다.
"전 부대 통신개방. 8시 공격 개시 - 모든 부대는 사력을 다하여 적을 격파하고 목표를 탈취할 것"
전차와 병력 수송 장갑차들은 국경을 넘어 진군을 시작한다.

전선 시찰중인 이스라엘 국방장관 모세 다이얀(Gen Moshe Dayan,왼쪽 애꾸눈)
같은 시간 이집트 공군은 비행장에서 모두 불타고 있었다. 공격은 시나이 반도 국경 139마일 전체에서 북부, 중부, 남부의 3방향으로 맹렬하게 시작되었다.
이스라엘군의 맹공에 이집트 군은 변변한 반격도 못한채 혼란속에서 졸전을 거듭하였다.
이집트군은 IS-III와 T-55등의 최신 전차로 무장하고 있었으나, 훈련 부족으로 인해 장비를 적절하게 다루지 못했다. 지휘관들은 이집트, 시라아 통합군 사령관인 아메르 원수를 마중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고 있었으며, 보안을 고려하지 않은 무전 통신은 이스라엘군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이집트 정규군의 낯뜨거운 졸전에 비하여, 팔레스타인 난민으로 구성된 20사단은 가자지구에서 게릴라전으로 이스라엘군을 효과적으로 괴롭혔다.

살아남은 이집트군은 수에즈 운하를 향하여 도주하기 시작했다.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한 이스라엘 공군기들은 마음껏 공격을 퍼부어 무수한 탱크와 차량을 부쉈고, 패잔병을 재편하려는 이집트군의 모든 노력은 무위로 돌아간다.
3일만에 수백 대의 이집트군 탱크들이 파괴되었고, 국경의 모든 진지들이 붕괴되었다. 이스라엘 기갑부대는 시나이 반도를 진격하여 패주하는 이집트군을 공격했다.
이후에도 일방적인 전투를 거듭하다, 마침내 6월 9일 이스라엘군은 수에즈 운하의 동쪽 기슭에 다윗의 별을 게양함으로서 남부 전선은 종결된다.
이집트군 포로들
- 동부 전선 -

전쟁이 발발한 6월 5일 이스라엘 정부는 요르단의 후세인 국왕에게 비공식 불가침 협정을 제의했다.
그러나 후세인은 이집트측의 끊임없는 '승전 방송'에 고무되어, 이스라엘의 제안을 거부하고 예루살렘 신시가지에 포격을 가했다. 
Lebanon 일간지 al-Hayat의 풍자화 -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인물이 아랍 탱크들에 의해 곤경에...
이스라엘군 주력이 시나이 반도에 집중되어 있는 이틀간 계속된 포격으로 약 5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동시에 요르단군 기갑부대들도 공격태세를 갖추었다. 그들은 서쪽으로 진격하여 이스라엘 영토를 둘로 갈라놓을 야심을 품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몇몇 부대들이 황급히 남부 전선으로부터 소환되어 동부 전선에 재배치 되었고, 공군은 요르단군의 진지와 기갑부대에 대한 공습을 시작하였다.
이스라엘 예비군을 주력으로한 동부 방면군은 해안지대에서 내륙으로 이동하면서 요르단 영토로 진격하였다.
6월7일 새벽 두 개의 이스라엘 전차 부대가 구예루살렘을 포위했고, 이스라엘 특공대가 공격을 시작했다.
UN본부의 아랍 대표단은 예상치 못한 참패에 당황하여 휴전 절차를 진행하였고, 동시에 이스라엘 특공대는 6 월 7일 아침 10시에 예루살렘 - 통곡의 벽에 이르렀다.
이스라엘군 통곡의 벽앞에 서다.
궁지에 몰린 후세인은 이집트에 긴급 지원 요청을 했지만, 나세르는 "미군의 대규모 부대가 이스라엘군으로 위장하여 이 전쟁에 개입했다"라는 비난 성명을 공동으로 발표하는 것으로 화풀이를 할 뿐이었다.
믿었던 이라크의 지원군은 요르단강을 건너기도 전에 이스라엘군의 폭격을 당하고, 혼비백산하여 철수한다.
결국 더이상 버티지 못한 후세인 국왕은 UN안보리가 제의한 휴전 조건에 동의하여 전투 중지 명령을 내리게 되었다.
- 북부 전선 -

전쟁 이틀째인 6월 6일. 이집트 군의 연전연승을 선전하는 카이로 방송에 자극받은 시리아는 10여대의 전차를 앞세운 2개 대대 병력으로 다프나와 아시모레트 두방향에서 공격을 감했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북부 방면군의 호된 반격을 받고 200여명의 전사자를 내고 별 소득없이 철수하였다. 이후 전선은 고착 상태에 빠져들었다.
이스라엘 북부군 사령관인 엘리자르 장군 휘하 병력들은 대부분 중, 남부군에 배속되어 있었으므로, 우선 이들 전선이 마무리되어 병력이 충원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전선들에서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자, 이스라엘군은 북부의 골란 고원으로 향했다.
시리아는 골란 고원을 수년에 걸친 대공사를 통해,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들어 두었다.
두께 1m 이상의 철근 콘크리트제 속에 T34/ 85 전차와 4호 전차가 버티고 있었고, 총연장 8km에 달하는 참호선은 모두 강철판으로 뚜껑이 덮여 있어 공중폭격에도 끄떡이 없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소련 군사 고문단은 이 곳의 요새가 마지노선보다 튼튼하다고 감탄하였는데, 독일군은 마지노선을 우회하여 프랑스를 점령했지만, 이 중동의 마지노선은 달리 우회할 루트도 없다는 것이 이스라엘의 고민이었다.
하지만 시리아가 이토록 철썩같이 믿고 있는 이 방어선에도 몇 가지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다.
첫째. 아무리 강력한 요새라도 보급이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 시리아군은 개전 초에 공군력이 이스라엘에 의해서 소멸되었으므로, 안정적인 보급선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둘째. 시리아 내정의 불안이었다. 쿠테타로 집권한 시리아 바트당 정부는 역쿠데타의 위협에 시달려, 전쟁이 시작된 이후에도 대부분의 병력과 전차들은 수도에 배치되어 있었다.
이스라엘은 UN의 휴전 협정이 발효되기 이전에, 전략적 요충지인 골란 고원을 점령하기로 결정하였다.
공격은 전폭기들이 폭격으로 시작되었다. 가파른 바위산으로 탱크와 보병들의 공격이 시작된다.

북부 전선에서는 전설적인 골라니 보병 여단(Golani Brigade)이 맹활약을 하였다. 이 부대는 13개의 시리아군 진지를 점령하라는 임무를 받았는데, 그 중 하나인 텔 파할요새는 100m이상의 철조망과 지뢰지대로 보강되어 있는 난공불락이었다.
모세 클라인 중령이 이끄는 골라니 여단 1대대는 차량 통과가 가능한 지점까지 최대한 M3 반궤도 장갑차를 밀어 올렸다.
곧 시리아군 벙커에서 발사된 대전차포 세례를 받은 장갑차들이 비탈로 굴러 떨어졌고, 보병들은 급경사를 기어 오르기 시작했다.
마침내 철조망 앞에 도달한 병사들도 기관총탄을 뒤집어 쓰고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으며, 부상을 입은 병사들은 사력을 다해 기어가서 철조망 위에 자신의 몸을 던져 뒤따르는 전우들이 자신의 몸을 밟고 통과할 수 있도록 했다.
불과 100 미터를 돌격하는 동안 8명을 제외하고 모든 대원이 전멸해버린 중대도 생겼다.
항상 최고 지휘관이 공격의 선봉에 선다는 이스라엘군의 전통에 따라 장교들의 희생도 극심했다. 대대장 클라인 중령을 비롯한 대부분의 중, 소대장들이 전사했고, 따라서 지휘권은 하위 계급으로 차츰 위임되어 목표 진지에 돌입하였을 때는 한명의 중사가 부대를 지휘하고 있는 경우나 단 3명의 병사가 시리아군 참호속으로 돌입한 중대도 있었다.
결국 골란 고원 전투는 이스라엘군의 승리로 끝났고, 진격은 계속되었다. 이스라엘 군은 부채꼴로 퍼져 한 부대는 지방 행정수도 엘쿠네이트라를 점령하였으며, 또 한 부대는 다마스커스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 진격했다.
6월 10일 휴전이 마침내 발효되었을 때, 이스라엘군 일부는 시리아 수도가 보이는 위치에 거의 도달해 있었다.

환호하는 IDF 병사들
전쟁 결과 이스라엘의 영토는 2만700㎢에서 6만8600㎢로 불어나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430대의 적 항공기와 800대의 탱크를 노획하거나 파괴했으며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에 1만 5000명의 사상자를 내게 했다. 이스라엘이 치른 대가는 40대의 비행기 손실과 803명의 전사자뿐이었다.
절망적인 패배를 당했음에도, 아랍측은 소련의 지원으로 급속하게 전력을 회복하여 복수의 칼을 갈게 된다.
6일 전쟁을 일자별로 간단하게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 Day1(6월5일):이스라엘의 이집트 공격
- Day2(6월6일):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장악
- Day3(6월7일):통곡의 벽(Waling Wall)과 성지(聖地) 예루살렘을 점령
- Day4(6월8일):이스라엘의 이집트군 완전 격멸(시나이반도 점령)
- Day5(6월9일):이스라엘 골란고원(Golan heights)점령
- Day6(6월10일):전쟁 종료
이스라엘 참전군:26만4000명, 사상자 779명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및 다른 아랍국가 참전군:30만명, 사상자 2만명
시나이 반도는 1979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에 의해 이집트에게 반환됐다. 
캠프 데이비드 협정 - 이스라엘 총리Menachem Begin 미대통령Jimmy Carter 이집트 대통령Anwar Al Sadat
가자지구에서는 2005년 철수했다.
휴전 협정이 체결된지 불과 반년후, 요르단은 PLO를 지원하여 요르단강 서안을 공격했지만 영토 회복에는 실패한다.
이집트는 시나이 반도를 잃어, 수에즈 운하를 사이에 두고 이스라엘과 마주 보게 되었다.
1968년 이집트군이 운하 너머에 포격을 가하고, 소모전쟁으로 불리는 포격전이 시작되었다. 이 전투로 수에즈 운하는 통행이 불가능해졌다.
소모 전쟁은 불규칙하게 2년간 계속되었지만, 1970년 6월 이스라엘군이 수에즈 운하를 넘어 이집트군을 공격하여 포격 진지를 파괴했다. 1개월후 양국은 정전했다.
1970년은 아랍의 전환점이 된다.
9월 요르단이 PLO를 공격하여 내전이 발생한다.
그러나 요르단은 국제적인 비난을 당하여 고립되고, PLO는 레바논으로 대피하여 이후 레바논 내전의 불씨가 된다.
요르단 내전 직후 아랍 민중들의 혁명 영웅이던 나세르가 사망하고, 사다트가 새로운 이집트의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사다트는 상대적으로 온건파였지만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 반환 협상에 미온적으로 응했고, 결국 새로운 전쟁의 불씨가 되었다.

무고한 사람 열명을 숙청하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명의 스파이를 놓쳐서는 안된다.
- 니콜라이 예조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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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대로 욤키푸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최악의 기습을 당했지만 이겨내고 이집트 쪽을 안정시키면서 위협에서 벗어난 뒤에 국가적인 방향성을 많이 상실했지 않나 싶습니다. 실용주의적인 노동당 정권이 붕괴되면서 극우당의 지지기반이 확대되다가 도중에 레바논 내전으로 다시 균형이 유지되었지만 동구권이 붕괴되면서 유대인이 유입되면서 국제정세가 바뀌면서 또 다시 극우정권의 지지기반이 확대되면서 요즘에는 여러가지로 막장스러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죠.
그동네가 좀 평화로웠으면 좋겠습니다만, 딱히 방법은 보이지가 않는 거 같네요.


미그21 90대를 지상에서 잃어버리다니....!!!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선전포고
없이 친 모양이군.... 그래도 그렇지.....
유럽과 동아시아가 역사와 전통을 이어오는 동안
이집트문명과 메소포타미아문명은 그동안 무엇을 한 것일까?
이슬람교가 기독교보다 못한 종교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