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엽서를 그려가며 생계를 이어가는 오스트리아의 시골 출신의 가난한 한 무명화가가 있었다. 빈곤한 처지임에도 그는 가끔 시간을 내어 게르만 신화를 묘사한 바그너의 오페라를 관람하며 상상에 빠져들었다.

이후 전유럽을 휩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 이 병사의 배낭에는 항상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악보가 들어있었다.


그의 이름은 히틀러였다. 


Tannhauser.jpg


 
인구가 1/3로 줄어들 정도로 참혹했던 30년 전쟁의 피폐와 신성로마제국이 강제로 해체당했던 나폴레옹의 침략기를 지나며 독일인들 사이에서는 서서히 민족 의식이 싹터 나가기 시작하였다.


1813년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난 바그너는 독일에 애국주의의 물결이 절정으로 치닫던 격동의 시대를 살아갔다. 

독일을 통일한 제 2 제국의 위대한 수상 비스마르크는 바그너보다 나이가 2살 적었다. 바그너는 독일의 음악에는 독일의 정신과 혼이 담겨있어야만 한다고 확신했다.

따라서 그는 독일 민족의 참된 정신을 지니지 못한 유대인 작곡가들이 독일의 독소라는 점을 꾸준히 지적하였다.  이런 사상은 1850년 발표된 음악 속의 유대주의(Das Judenthum in der Musik)라는 글에 담겨있다.


탄호이저 서곡은 바그너의 무수한 걸작중 가장 바그너다운 곡이라 볼 수 있다. 

낭만적이며 웅장하고, 사색적이며 고독한 게르만의 스피릿이 듬뿍 담겨 있는 멋진 곡이다.

비슷한 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