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웨이 해전(Battle of Midway, 일본측 작전명 MI 작전)은 1942년 6월 5일부터 7일간에 걸쳐 이루어진 태평양 중부의 미드웨이섬 근해에서 벌어진 일본과 미국의 해전이다.
이 전투는 레이테 전투와 함께 해전 역사상 가장 복잡한 전개를 보이면서도 승패의 갈림이 너무나 명확한 것으로 유명하다.
날짜변경선 부근에서 사흘에 걸쳐 벌어진 미드웨이 해전은 일본 항재기들이 미드웨이 섬을 공격하면서 시작되었다.
양측 함대의 함포 전투는 전혀 없었으며, 오로지 항공모함 함재기들의 어뢰 공격과 급강하 폭격, 전투기들의 어지러운 공중전만으로 승패가 갈렸다.
이 해전의 결과 미군은 항공모함 1척을 잃었고, 일본은 주력 항공모함 4척을 잃게 되어 태평양에서 일본이 누리던 항공 우위는 완벽하게 상실되었다.
- 일본의 전략 구상 -
태평양 전쟁 이전부터 전통적으로 일본 해군은 미국과의 전쟁이 벌어질 경우에는 수세적인 요격 작전을 취한다는 기본 방침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연합 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이러한 기존의 방침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으며, 적극적으로 공세에 임하여 미국 해군을 조기에 분쇄해야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총체적 국력에서 열세한 일본이 방어 태세를 취하더라도 공격의 시기와 위치를 능동적으로 결정하여 우세한 전력으로 덤벼들 미국에는 승산이 없으며, 이길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한방의 결전으로 일시에 적의 주력을 격파하여 전의를 상실시키는 것 뿐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 결전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하였다. 이른바 연합함대의 早起 결전론이다.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지 반년이 지나자 일본군은 최초의 작전 목적을 대부분 달성하게 되었고, 이어질 2단계 작전 구상에 들어가게 되었다.
대본영과 해군 군령부와는 별개로 연합 함대도 나름대로의 작전안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해군부는 남방 공략을 중시하여 인도네시아에서 진출을 멈춰버리는 것은 불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까닭은 오스트레일리아가 미국의 반격 거점이 되어 남방의 전황에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이라는 이유였다. 따라서 '오스트레일리아 북동부를 공략하여, 오스트레일리아를 영연방으로부터 빼내어 전쟁 종결을 앞당기도록 하자'라는 내용의 작전안을 육군측에 제시했다.
그러나 육군참모본부는 해군측 제안의 유효성은 인정하면서도 소련과 중국 전선에 대한 대비, 버마-인도 침공에 소요될 자원을 염두에 두고, 공략 범위가 불분명하며 막대한 병력이 필요한 작전에는 난색을 표명하였다.
이에 해군은 오스트레일리아와 하와이와간의 해상 교통로를 차단할 목적으로 사모아, 피지, New Caledonia섬을 공략하고 이를 바탕으로 오스트레일리아와의 전쟁을 끝낸다는 새로운 작전안을 내놓았다. 육군측은 소요 병력이 적고 다른 작전에 부담이 가지않을 계획이라 평가하고 이를 승인하였다. 이 계획은 FS작전으로 명명되었다.
한편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 함대 사령장관은 남방 공략 자체보다는 적의 항공모함 주력 부대를 포착 격멸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었다. FS 작전은 공략 예정지가 너무 멀며, 미국 항공 모함 기동부대가 건재한 상태에서의 작전 속개는 너무 위험하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또한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간의 해상 루트는 사모아 방면의 섬 몇개 점령한다고 해서 완전히 봉쇄할 수는 없기 때문에 전쟁 종결을 앞당긴다는 목적에도 부합되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다.
야마모토는 Ceylon섬을 공략하여 오스트레일리아 북쪽의 항구 포트 다윈을 공략하고, FS 작전의 목표들은 점령 대신 파괴만 실시하며 최종적으로는 하와이를 공략한다는 연합함대의 작전안을 채용해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해군부는 야마모토의 계획이 너무 방대하고 복잡하여 불확실성이 많다는 점과 하와이 공략은 지나치게 위험하다는 점을 들어 반대하였다.

- 미국의 대응과 일본의 작전 변경 -
태평양 중부 방면에서의 일본군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미해군 수뇌부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간의 해상 교통로를 차단하려는 일본측의 의도를 간파하게 되었다. 이에 미해군 함대 사령관(Commander in Chief of the United States Navy) 킹 제독은 태평양 함대 사령관 니미츠에게 아래와 같은 훈령을 하달하였다.
둘째, 오스트레일리아와 하와이 및 본토 서해안 간의 해상 교통로를 확보하라!
이는 적어도 당분간은 태평양 방면에서 수세 전략을 취한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완전히 두손 놓고 일본의 공격을 기다린다는 것은 전투의 장소와 시간을 일본이 일방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크게 불리한 입장에 놓일것이 뻔했다.
따라서 니미츠는 사모아섬 방면 전력을 증강함과 동시에, 일본이 점령한 길버트 제도와 마셜 제도를 공격한다는 방안을 강구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은 얼마 남지 않은 항공모함 전력을 몽땅 잃어버릴 위험이 있는 도박이라 사령부내에서 많은 반대에 부닥치게 되었다.
1942년 1월 8일, 태평양 함대 사령부에서 열린 작전 회의에서 할지 중장은 니미츠의 계획에 반대하는 장교들에게 패배주의자들이라고 꾸짖으며 적극적으로 공격을 지지하고 나섰고, 이에 니미츠의 반격 계획은 확정될 수 있었다. 한편 이 계획과는 별개로 워싱턴에서도 1942년 1월 10일 열린 통합참모본부 회의에서 루즈벨트 대통령이 해군 수뇌부에 진주만 기습에 대한 보복으로 도쿄를 폭격할 계획을 세우라고 지시하였다.
1942년 1월 11일, 진주만을 출항한 할지 중장 지휘하에 제 8 기동부대와 제 11 기동부대는 사모아섬에 해병대 병력을 내려놓고 길버트 제도와 마셜 제도를 공격하였다. 이 공격은 그리 큰 전과를 올리지는 못했으나, 야마모토는 수동적인 작전의 문제점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되었다.
연합함대 지휘부는 지금까지 제안했던 작전안이 통과되지 못했던 것은 육군측의 동의가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인식하에 해상 전력만으로 실시하는 공세 작전의 입안을 시작하였다. 이때 대상으로 상정된 것이 하와이 서쪽에 위치한 중부 태평양의 미드웨이섬이었다. 미 태평양 함대의 목구멍과 다름없는 이곳이 공격받을 경우 미국의 기동 부대가 틀림없이 출격할 것이고, 이를 적시에 포착하여 섬멸한다는 것이었다.
미드웨이섬은 일본 본토나 연합함대의 근거지인 트럭섬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던 관계로 점령후의 확보는곤란하다는 점은 연합함대 사령부도 잘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미드웨이 작전 이후에도 공세를 지속하여 미국에게 반격의 여지를 주지 않으면서 10월까지 하와이 공략 작전을 준비한다는 구상이었다.
대본영과 연합 함대 사령부는 이 작전안을 놓고 격렬하게 대립하였다. 마침내 4월 5일, 해군 군령부는 연합 함대의 주장에 굴복하고 기존의 FS 작전을 수정하여 미드웨이 공략안을 받아들였다.
한편 1942년 4월 8일에 할지 중장 지휘하의 미 제 16 기동부대가 도쿄 폭격의 임무를 가지고 진주만을 출항하였다. 4월 18일, 둘리틀 중령 지휘하의 B-25 폭격대가 기동부대 항공모함에서 날아올라 도쿄와 그밖의 주요 도시들을 폭격하였다. 일본이 이 공격으로 받은 피해는 극히 미미했지만, 본토 상공에 적기가 나타난 것만으로도 일본은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게되었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불안이 퍼져나갔고 야마모토 장관에게도 비난투서가 날아왔다. 야마모토는 이 사건으로 이미 내정하고 있던 미드웨이 작전의 필요성을 한층더 절감하게 되었다.
5월 5일, 해군부는 작전 명령 제 18호를 발령하여 미드웨이 작전을 공식 승인하였고, 실행 부대로는 야마모토 이소로쿠 장관 지휘하에 함정 약 350척, 항공기 약 1,000기, 총병력 10만명의 대함대가 편성되었다.
한편 미국은 일본군의 향후 행동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니미츠는 1942년 3월 4일 벌어진 오아후섬에 대한 일본군의 폭격과 같은 달 11일에 미드웨이섬에 일본군 신형 비행정이 접근하다 격추된 사건을 일본군의 새로운 공세에 대한 징조로 판단하였다. 그러나 니미츠는 향후 일본의 진로가 하와이, 미드웨이, 미국 본토 서해안 중 어디로 향하게 될지 여부는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진주만 공격직전에 변경된 일본군의 암호는 미국 첩보부에서 JN-25으로 불리고 있었다. 4월 무렵에는 이 암호가 단편적으로 해독되어, 일본군이 태평양 정면에서 새로운 작전을 기도 하고 있는 것이 파악되었으나, 여전히 시기와 장소가 불명확하였다. 5월경에는 암호 해독이 더욱 진행되어 암호문에 등장하는 'AF'라는 장소가 주요 공격 목표라는 점이 밝혀졌다. 그러나 이곳이 어디를 가르키는지는 여전히 불명확했다. 그러나 'A' 'AO' 'AOB'가 알류샨 열도 방면인 것은 명백하다고 판단되었다.
워싱턴은 일본의 공격 목표를 하와이로 판단하였고, 육군 육군 항공 부대는샌프란시스코나 알래스카.. 혹은 미국 본토 서해안이 목표라고 주장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5월 중순까지도 일본군의 목표가 어디인지 여부는 불명했으나, 니미츠와 태평양 함대 정보 관계자들은 미드웨이 가 목표라는 심증을 점차 굳혀가게 되었다.

미드웨이
5월 11일, 첩보부의 Joseph Finnegan 소위의 제안에 따라 "미드웨이의 바닷물 여과 장치의 고장으로 음료수가 부족하다."라는 긴급 통신이 평문으로 송신되었다. 이 내용을 포착한 일본의 웨이크섬 정보대는 "AF는 음료수 부족이라고 하는 문제가 있으므로, 공격 계획은 이를 고려 할 것"이라는 내용을 발신하였다. 이에 따라 미드웨이가 일본측의 주 공격목표라는 것이 명확해지게 되었다.
5월 26일까지 태평양함대사령부는 암호 해독에 성공하여 일본측 각부대의 병력, 지휘관, 예정 항로, 공격 시기등을 모두 밝혀내게 된다. 그러나 워싱턴에서는 여전히 이 정보는 일본측의 교란 작전이 아닐까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논쟁은 계속되었지만 니미츠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5월 26일 이후에는 일본군이 암호를 바꾸었기 때문에 더이상의 해독은 불가능해졌다.
하와이는 미국에 있어서 태평양 방면의 수비와 공격을 취할 수 있게 해주는 전략 근거지이며, 미드웨이는 이 하와이의 전초 기지였다. 니미츠는 5월 3일, 미드웨이를 시찰하고 병력과 장비를 더 증원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미드웨이에 집결된 항공기는 약 120기에 병력은 3,027명에 이르렀다. 육상 병력은 사기가 높았지만, 항공 부대는 여기저기서 긁어모은 잡동사니 부대라서 정비병이 부족하였다. 이에 따라 승무원들은 자기 스스로 정비와 연료 보급을 실시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군의 공격이 6월 3일부터 5일까지 이루어질 것이라는 내용은 미군이 훤하게 알고 있었다. 또한 연합함대가 양동 작전으로 일부 부대를 알류산 열도로 향하게 할 것이라는 점도 역시 꿰뚫어보고 있었다.
니미츠는 주어진 정보에 근거하여 요격 작전을 입안했는데, 여전히 일본군에 비해 현저히 부족한 전력을 감안하여 알류산 방면에는 최소한의 전력만 할당하고 주력 부대는 모두 미드웨이에 집중하도록 하였다. 이 작전안은 5월 28일, '태평양 함대 사령관 작전 계획 제29~42호'로 발령되었다.
첫째. 가능한한 빨리 적을 발견하여 기습을 방지한다.
둘째. 적 항공모함을 우선적으로 격파하여 미드웨이에 대한 항공기 공격을 저지한다.
셋째. 잠수함 전력은 초계하다 적을 발견하면 적시에 공격한다.
넷째. 미드웨이 수비대는 철저히 미드웨이섬을 사수한다.
그러나 이 시급한 시점에 니미츠의 수중에는 2척의 항공모함밖에 없었다.
제 17 기동 부대(TF-17)의 플레처 소장은 산호해 해전에서 일본의 Port Moresby 공략을 저지하고 적의 주력 항공모함에 데미지를 주었다. 그러나 자신도 주력 항모인 렉싱톤을 잃고 요크타운도 크게 부서지는 댓가를 지불했다. 요크타운은 단 1발의 폭탄에 명중되었지만, 배연기 시스템이 파괴되어 보일러가 정상 출력을 내지 못해서 최고 속도가 매우 저하된 상태였다.
니미츠는 즉각 태평양 남부에 위치해 있던 플레처의 부대를 하와이로 귀환시켰고, 요크 타운은 5월 27일에 진주만에 도착하자마자 드라이독에 담겨서 긴급 수리에 들어갔다. 기술자들이 벌떼같이 달라붙었으며, 심지어 니미츠도 요크타운 함내를 돌아다니며 피해 상태를 조사하고 필요 물품을 직접 정리했다.

드라이독의 요크타운
불꽃튀는 수리작업으로 인해 하와이의 전력망에 과부하가 걸려 여러차례 정전까지 발생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 68시간이 지난 5월 30일 아침에 요크타운은 비행기를 탑재하고 드라이독을 떠날수 있었다. 엔지니어들은 항해중에도 여전히 수리를 계속하고 있었다.
이에 앞선 5월 28일, 제 16 기동 부대(TF-16)의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이 진주만을 출항하였다. 결국 가능한 모든 전력을 총동원하겠다는 니미츠의 결심으로 인해 간신히 3척의 항공모함이 다가오는 결전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6월2일, 제 17 기동부대와 제 16 기동부대가 미드웨이 섬의 북동쪽에 합류하였고, 총지휘는 17기동부대의 플레처 소장이 담당하게 되었다.
- 양측의 전력과 작전 계획의 특징 -
1942년 5월 27일 오전5시 - 일본의 나구모 주이치(南雲忠一) 중장이 인솔하는 제1 항공 전대 - 아카기(赤城), 카가(加賀), 제 2 항공 전대 - 소류(飛龍), 히류(蒼龍)를 중심으로한 나구모 기동부대(제1 기동 함대)가 히로시마로부터 출항하였다. 5월 28일에는 제 5함대 사령관인 호소가야 모시로 중장이 지휘하는 별동대가 알류샨 열도를 향하여 출발했고, 미드웨이 상륙부대로 내정된 이찌기 부대 3,000명과 해군 제 2 연합특별육전대 2,800명이 사이판섬에서 수송선단을 타고 출항하였으며 구리다 중장이 지휘하는 제 7 전대가 괌을 출발하여 수송선단과 약 50km 의 거리를 두고 동쪽으로 전진하며 호위를 담당했다.
5월 29일, 미드웨이 공략부대의 주력인 제 2함대가 출항하였다. 같은날 야마모토 사령장관이 지휘하는 본대도 출발했다. 야마모토의 본대는 전함 3척(야마토, 나가토, 무쓰), 경항공모함 1척(호쇼), 경순양함 1척(센다이), 구축함 9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모두 합쳐 정규항모 5척, 경항모 3척, 전함 11척, 중순양함 13척, 경순양함 9척, 구축함 65척의 거대한 세력으로 여기에다가 잠수함 22척과 수상기 모함, 소해정 및 기타 보조함정들을 합치면 거의 200척에 이르는 대함대이며 이들의 배수량을 모두 합하면 150만톤이 넘었다. 작전에 참가한 해병과 조종사 숫자는 10만명 이상이며 제독만 20명에 달했다. 근대전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함대가 집결한 것이었다. 물론 미국은 2년뒤 이때의 일본 함대보다 훨씬 거대한 규모의 대함대를 조직하여 레이테 해전을 벌이게 된다.
한편 일본 함대에 맞서 미드웨이를 방어해야할 태평양 함대의 주력은 제 16 기동부대와 17 기동부대로 이루어져 있었다. 스프루언스 소장이 지휘하는 제 16 기동부대는 정규항모 2척을 보유했으며, 플래처 소장의 제17기동부대는 정규항모가 1척 뿐이었다. 알류샨 열도 방어를 위해서는 로버트 테오발트(Robert Alfred Theobald) 소장 지휘하에 제 8 기동함대를 편성했는데 여기는 항공모함이 한척도 없었다.
전체적으로 볼때 미드웨이 해전에서 동원 가능했던 태평양 함대의 전력은 일본 연합함대에 비해 확실히 열세였다. 함재기의 성능과 승무원들의 숙력도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측면들도 미국이 더 열세한 실정이었다.

연합함대 사령장관 :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
- 제1전대(연합함대사령장관직할)
- 전함 야마토(大和)、나가토(長門)、무츠(陸奥)
- 제3수뢰전대(第三水雷戦隊) 사령관 : 하시모토 신타로(橋本信太郎)소장
- 경순양함:가와우치(川内)
- 제 11구축대(第一一駆逐隊)
- 구축함:후부키(吹雪), 시라유키(白雪), 하츄유키(初雪), 무라카모(叢雲)
- 제19 구축대
- 구축함:이소나미(磯波), 우라나미(浦波), 시키나미(敷波), 아야나미(綾波)
- 항공대 사령:우메타니(梅谷薫) 대령
- 항공모함:호쇼(鳳翔)
- 구축함:유카제(夕月)
- 특무대(特務隊) 사령:하라다(原田覚) 대령
- 잠수함 모함:치요다(千代田)
- 수상기 모함:닛신(日進)
제 1 함대(주력 부대) 
사령장관:다카스 시로(高須四郎) 중장
- 제2전대
- 전함:이세(伊勢),휴가(日向),후소(扶桑),야마시로(山城)
- 제9 전대 사령관:岸福治 소장
- 경순양함:키타카미(北上)、오이(大井)
- 제24 구축대
- 구축함:유미카제(海風)、야마카제(山風), 카와카제(江風), 수주카제(涼風)
- 제27구축대
- 구축함:유구레(夕暮)、시라추유(白露)、시구레(時雨)
- 제20구축대
- 구축함:아마기리(天霧)、아사기리(朝霧)、유기리(夕霧)、시라쿠모(白雲)
제 2 함대(미드웨이 공략부대)
사령장관:곤도 노부타케(近藤信竹) 중장
- 제4전대 제1소대 사령관 : 近藤信竹中将
- 중순양함:아타고(愛宕),초카이(鳥海)
- 제5 전대 사령관:다카기 다케시 유우(高木武雄) 중장
- 중순양함:묘오코(妙高),하구로(羽黒)
- 제3전대 제1소대(第三戦隊第一小隊) 사령관:미카와(三川軍一)중장
- 전함:공고(金剛)、比叡
- 제4 수뢰 전대 사령관:니시무라 쇼우지(西村祥治) 소장
- 경순양함:유라(由良)
- 제2 구축대
- 구축함:사미다레(五月雨)、하루사메(春雨)、무라사메(村雨)、유다치(夕立)
- 제9 구축대
- 구축함:아사구모(朝雲)、미네구모(峯雲)、나추구모(夏雲)、三日月
- 항공모함:즈이호우(瑞鳳)
- 제7 전대(지원대)第七戦隊(支援隊)사령관:구리다 타케오(栗田健男) 중장
- 중순양함:미쿠마(三隈)、모가미(最上)、쿠마노(熊野)、수주야(鈴谷)
- 제8 구축대
- 구축함:아사시오(朝潮)、아라시오(荒潮)
- 제2 수뢰 전대-호위대(第二水雷戦隊-護衛隊) 사령관:타나카 라이조우(田中頼三)소장
- 경순양함:진추(神通 )
- 제 15 구축대
- 구축함:오야시오(親潮)、쿠로시오(黒潮)
- 제16 구축대
- 구축함:유키카제(雪風)、도키추카제(時津風)、아마추카제(天津風)、하추카제(初風)
- 제18 구축대
- 구축함:시라누이(不知火)、카수미(霞)、카게로(陽炎)、아라레(霰)
- 제 11 항공 전대 사령관:후지타류 타로(藤田類太郎) 소장
- 수상기모함:치토세(千歳)
- 구축함:하야시오(早潮)
- 미드웨이 점령대
- 수송선 18척
- 제2 연합 특별 육전대(第二連合特別陸戦隊) 사령관:오오타 미노루(太田実) 해군 소장
- 요코스카 제5 특별 육전대(横五特-横須賀第五特別陸戦隊)), 오5특(呉五特),
- 제 11 설영대(第一一設営隊), 제 12 설영대(第一二設営隊), 제4 측량대(第四測量隊)
- 육군 이찌끼 지대(陸軍一木支隊) 지대장:이찌끼(一木清直) 육군 대좌
- 수송선 18척
제 1 항공 함대(제 1 기동부대) 
사령장관:나구모 주이치(南雲忠一) 중장
- 제 1 항공 전대(第一航空戦隊). 사령관:나구모 주이치 중장
- 항공모함 :아카기(赤城)- 제로센21기, 99함폭21기, 97함공21기, 카가(加賀) - 제로센21기, 99함폭21기, 97함공30기
- 제2 항공 전대. 사령관:야마구치 다문(山口多聞) 소장
- 항공모함:히류(飛龍) -(제로센21, 구구함폭21, 97함공21)、소류(蒼龍) -(제로센21, 99함폭21, 97함공21)
- 제8 전대. 사령관:아베 코우키(阿部弘毅) 소장
- 중순양함:토네(利根), 지쿠마(筑摩)
- 제 3전대 제 2소대(第三戦隊第二小隊)
- 전함:하루나(榛名), 키리시마(霧島)
- 제10 전대 사령관:키무라 스스무(木村進) 소장
- 경순양함:나가라(長良)
- 제 4 구축대
- 구축함:아라시(嵐)、노야키(野分)、하기카제(萩風)、마이카제(舞風)
- 제 10 구축대
- 구축함:카자쿠미(風雲)、유구모(夕雲)、마키구모(巻雲)、秋雲
- 제 17 구축대
- 구축함:이소카제(磯風)、이소카제(浦風)、하마카제(浜風)、타니카제(谷風)
제 5 함대(북방 부대) 
사령장관:호소카야 츠카사(細萱戊子郎) 중장
- 본대 제 5 함대 사령장관 直率
- 중순양함:나치(那智)
- 구축함:이카주치(雷)、이나주마(電)
- 제 4 항공 전대(제2 기동부대) 사령관:츠노다(角田覚治) 소장
- 항공모함:류호(龍驤)、준요(隼鷹)
- 제 4전대 제 2소대
- 중순양함:타케오(高雄)、마야(摩耶)
- 제7 구축대
- 구축함:우시오(潮)、아케보노(曙)、사자나미(漣)
- 제 1 수뢰전대 사령관:오모리(大森仙太郎) 소장
- 경순양함:아부쿠마(阿武隈)
- 제 21구축대
- 구축함:若葉、初春、初霜
- 키스카섬 점령대
- 수송선:1척
- 육군북해지대 지대장 : 호즈미(穂積松年) 소좌
- 수송선:1척
- 제 21 전대 사령관:오노(大野竹二)대좌
- 경순양함:키소(木曾)、타마(多摩)
- 제 6구축대
- 구축함:히비키(響)、아카추키(暁)、하카제(帆風)
- 아투섬 점령대
- 수송선:2척
- 마이즈루 진수부(舞鶴鎮守府) 제 3 특별육전대 지휘관 : 무카이(向井一二三) 해군소좌
- 수송선:2척
- 제 1잠수전대 사령관:야마자키(山崎重暉)소장
- 제2잠수대
- 제4잠수대
- 제15잠수대
- 제2잠수전대 사령관 : 이치오카(市岡寿)소장
- 제7잠수대
- 제8잠수대
제 6 함대(선발부대) 
사령장관:코마츠(小松輝久)중장
- 본대
- 경순양함:카토리(香取)
- 제 8잠수전대(선발 지대
- 잠수모함:愛国丸、報国丸
- 잠수함 : 8척
- 제 3잠수전대
- 잠수모함:靖国丸
- 잠수함:6척
- 제 5잠수전대
- 잠수모함:1척
- 잠수함:9척



총사령관 : 체스터 니미츠(Chester W. Nimitz)
제 17 기동부대

사령관 : 프랭크 플레처(Frank J. Fletcher) 소장
- Task Group 17.5 (항공모함 Group)
- USS Yorktown - 사령관 Elliott Buckmaster
- Yorktown Air Group (Including elements of Saratoga Air Group) (25 F4F-4, 37 SBD-3, 13 TBD-1) - Lt. Commander Oscar Pederson
- Task Group 17.2 (순양함 Group) - 사령관 William W. Smith
- 중순양함 : USS Astoria, USS Portland
- Task Group 17.4 (구축함대) - 사령관 Gilbert Hoover (COMDESRON 2)
- 구축함 USS Hammann, USS Anderson, USS Gwin, USS Hughes, USS Morris, USS Russell
제 16 기동부대 
사령관 : 레이몬드 스프루언스(Raymond A. Spruance) 소장
- Task Group 16.5 (항공모함 Group)
- USS Enterprise - 함장 George D. Murray
- Enterprise Air Group (27 F4F-4, 38 SBD-2/3, 14 TBD-1) - Lt. Cmdr. C. Wade McClusky
- USS Hornet - 함장 Marc A. Mitscher
- Hornet Air Group (27 F4F-4, 38 SBD-1/2/3, 15 TBD-1) - 사령관 Stanhope C. Ring
- Task Group 16.2 (순양함 Group) - 사령관 Thomas C. Kinkaid (COMCRUDIV 6)
- USS Atlanta, USS Minneapolis, USS New Orleans, USS Northampton, USS Pensacola, USS Vincennes
- Task Group 16.4 (구축함대) - 사령관 Alexander R. Early (COMDESRON 1)
- USS Phelps, USS Worden, USS Monaghan, USS Aylwin, USS Balch, USS Conyngham,USS Benham,USS Ellet,USS Maury
- 급유대
- USS Cimarron, USS Platte, USS Dewey, USS Monssen
잠수함부대

사령관 : 로버트 잉글리쉬(Robert H. English) 소장
- Task Group 7.1
- USS Cachalot,USS Flying Fish,USS Tambor,USS Trout,USS Grayling,USS Nautilus,USS Grouper,USS Dolphin,USS Gato
USS Cuttlefish,USS Gudgeon,USS Grenadier
- USS Cachalot,USS Flying Fish,USS Tambor,USS Trout,USS Grayling,USS Nautilus,USS Grouper,USS Dolphin,USS Gato
- Task Group 7.2
- USS Narwhal, USS Plunger, USS Trigger
- Task Group 7.3
- USS Tarpon, USS Finback, USS Pike, USS Growler
미드웨이 수비대
- 해병 항공대 Group 22 - 대령 Ira Kimes
- VMF-221 Major Floyd B. Parks, USMC (KIA)
- VMSB-241 Major Lofton R. Henderson, USMC, KIA
- 해군 Air Units - 대위 Cyril Simmard
- Detachments of Patrol Wings 1 and 2 (PBY-5 and PBY-5A Catalinas)
- VT-8 TBF Avenger detachment (from USS Hornet)
- 제7 육군항공군 파견대 소장 Gen. Willis Hale
- B-26 Marauders 4기
- B-17 Flying Fortress 17기
- 지상부대 해병대 대령 Harold Shannon
- 해병대 제 2 특공대 C, D 중대
- 해병대 제6 해병대대 대령 Shannon
- 제1 어뢰정 전대 - PT Boat 8대
- 4기의 정찰기와 기타 장비들
그러나 태평양 함대는 일본 연합함대에 비해 몇가지 잇점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야마모토의 지나치게 복잡한 계획에 따라 연합함대의 세력은 분산되었으나 태평양 함대의 전력은 집중되어 있었다.
둘째, 태평양함대는 레이더를 가지고 있었다.
셋째, 태평양함대는 미드웨이섬이라는 육상 항공기지를 가지고 있다.
넷째, 태평양함대는 연합함대의 의도와 계획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야마모토의 작전안은 지나치게 복잡했으며 유연하지 못했다. 연합함대의 전력은 크게 미드웨이, 알류샨, 야마모토의 본대로 나뉘어 있었다.
호소카야의 제5함대는 북태평양으로 진격하여 알류샨 열도의 두 섬을 점령할 예정이었다. 미드웨이 방면에서는 나구모의 제1항공함대의 함재기들이 우선 항공 전력을 제압하고 곤도 노부타케 중장의 제5함대가 전진하여 섬을 점령한다는 계획이었다. 야마모토는 만일 미 태평양함대가 자신의 꾀임수에 넘어가 필사적인 공격을 가할 경우 자신의 본대가 들이쳐서 일거에 적을 격멸한다는 원대한 구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복잡한 작전은 결국 전체 전력의 1/3로 미국 태평양함대 주력과 맞서게 되는 결과를 빚게 되었다.
일본 해군은 정면 대결보다는 전력을 분산시켜 여기저기서 불쑥 튀어나와 복잡한 기습을 벌이는 방식을 선호했다. 자신들의 전력이 상대를 압도하던 미드웨이에서도 자신들이 압도적인 열세이던 레이테에서도 똑같은 방식을 작전을 벌였던 것이다.
- 전투의 시작 -
5월 30일, 도쿄의 해군본부는 미군 항공모함들이 미드웨이로 이동할 것이라는 정보를 얻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구로시마 가마히토 소장에게 이를 나구모 중장에게 알리도록 했으나, 구로시마는 무선 봉쇄 해제를 반대했다. 나구모와 야마모토는 대략 555km 가량 떨어진 상태였다. 구로시마는 나구모 제독도 도쿄의 전문을 수신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야마모토가 무전을 보낼 것을 지시했음에도 독단적 판단으로 명령을 수행하지 않았다.
구로시마의 추측과는 달리 나구모는 도쿄로부터 오는 무전을 전혀 수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미군 항공모함들이 산호해 근처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5월 31일에 태평양 함대는 진주만을 출항했고 미드웨이에서는 새벽부터 카탈리나 정찰기를 날려 일본 함대의 위치를 찾고 있었다. 38대의 카탈리나가 부채살 모양으로 정찰에 나섰다. 미국은 일본 함대가 6월 2일에서 3일 사이에 미드웨이 근처까지 도착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고 약간이라도 빨리 이들을 찾아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6월 1일, 최초 작전계획에 따라 일본 잠수함들이 진주만을 정찰했다. 그러나 태평양함대의 기동부대들은 이미 출항한 상태였기 때문에 미군 함대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따라서 일본 해군 지휘부는 미국 해군이 이미 미드웨이 동북쪽에서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6월 2일, 나구모는 참모들과 전략 회의를 열었다. 구사카 류노스께 소장과 겐다 미노루 중령 등 진주만 공격을 입안하고 지휘했던 쟁쟁한 이력의 참모들이 나구모를 보좌하고 있었다. 이들은 그때까지 가지고 있던 정보로 분석해보건데 나구모와 참모들은 미군 항공모함 기동부대는 없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 공격 계획을 세웠다. 나구모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전제를 세웠다.
첫째, 미국은 일본의 계획을 모르며, 아군의 위치를 모른다
둘째, 근처에 미국 항모 기동부대는 없다.
이러한 전제에 따라 나구모와 참모들은 다음과 같이 작전 계획을 세웠다.
미드웨이를 기습 공격해서 항공기들과 활주로를 대파하고 상륙작전을 상공에서 엄호하며, 이후 미드웨이로 접근할 지 모르는 미국 해군의 항공모함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격파한다
연합함대의 움직임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내려다보고 있는 미국함대의 정보력을 까맣게 모르고 있는 일본측의 작전안이었다.
6월 3일 아침, 잭 레이드(Jack Reid) 소위가 조종하는 카탈리나 정찰기가 일본군 함대를 발견했다. 첫번째 보고는 정확한 함종을 구분하지 못하고 단지 적의 함대를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이후 추가 보고를 통해 자세한 함대 구성이 알려졌다. 레이드가 발견한 함대는 곤도 노부나케 중장이 지휘하는 상륙전대였다. 이찌끼 지대를 주축으로 한 5,800여명의 상륙부대를 태운 수송선 12척과 수송선을 호위하는 순양함 6척으로 이루어진 함대였다.
미드웨이 동북쪽 500km 지점에서 대기중이던 플레처 제독과 스프루언스 제독의 제 16, 17 기동함대는 나구모의 본대를 끈기있게 기다렸다. 이날 저녁 샌드섬의 기지에서 이륙한 카틸리나 편대가 어둠을 이용하여 엔진을 끈채 활강하여 바다에 착륙한 다음 곤도 함대에 어뢰 공격을 가했다. 이 공격으로 2척의 수송선에 약간의 피해를 주었으나 항해에는 지장이 없었다. 
- 미드웨이 해전 -
6월 4일 2시 45분경, 나구모의 제1 항공함대는 미드웨이 북서쪽 460킬로미터 지점에 도착했다. 이때부터 각 항공모함은 함재기 발진 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나구모는 공격대가 출격 준비를 하는 동안, 정찰기를 내보내 미드웨이와 인근 해역을 수색하기로 한다. 항공모함 아카기와 카가에서 각 1기, 순양함 도네와 치쿠마에서 2기, 전함 하루나에서 1기 등. 총 7기가 오전 4시 30분에 출격할 예정이었으나 도네에서 발진 예정이던 정찰기가 사출기 고장으로 30분 지연되어 오전 5시 정각에 출발했으며 치쿠마에서 출발한 정찰기는 엔진 고장으로 중도에 귀환했다. 나머지 정찰기들도 날씨가 좋지 않아 원래 예정했던 것에서 절반 정도만 정찰하고 복귀해야 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치쿠마에서 출발했다 엔진 고장으로 돌아온 정찰기는 예정대로 비행했을 경우 미국 기동부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결국 나구모는 자신이 공격받기 전까지는 미국 기동함대의 존재를 전혀 모를 수밖에 없게 되었다.
4시 45분에 미드웨이 1차 공격대가 출발했다. 나구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공격대의 절반인 108대만 출격시키고 나머지는 잔류시켰다. 공격대의 지휘관은 진주만 폭격에도 참가한바 있는 도모나가 죠이치 대위였다. 1차 공격대는 항공 엄호를 위한 제로센 36기, 97식 함상 공격기 36기, 99식 함상 폭격기 36기로 구성되었다.
도모나가 대위가 지휘하는 공격대가 미드웨이 섬으로 향하고 있던 중, 미드웨이 섬에서 출발한 정찰기가 이 공격대를 발견했다. 일본측 호위 전투기가 즉시 이 정찰기를 추격했고 카탈리나는 구름 속으로 숨어들었다. 미드웨이섬에 공격대 출현이 보고된 것은 5시 45분이었다. 10분후인 5시 55분에는 미드웨이의 레이더에서도 이 공격대를 발견하였고, 즉각 모든 전투기에 발진 명령이 떨어졌다. B-17 폭격기 편대는 일본 전투기가 접근할 수 없는 고공으로 대피했다. 5시 57분에는 공격대를 발견했던 정찰기가 일본 기동부대를 발견했다.
6시 5분 이 보고가 미국 기동부대에 전해졌다. 항공모함 요크타운, 호넷, 엔터프라이즈 등에서 정찰기가 날아올랐다.
6시 15분, 미드웨이 상공에 미군 버팔로 전투기와 F4F 와일드캣 전투기들이 떠있었다. 일본군 공격대가 미드웨이 55킬로미터 전방까지 접근하자 이들을 추격중이던 카탈리나 정찰기가 조명탄을 투하하여 공격대의 위치를 알렸다. 이것을 신호로 고공에서 대기중이던 미군 전투기들이 일본군 편대를 덮쳤다. 이 기습으로 공격대중 2기가 격추되고 여러 대가 피탄되었으나, 제로센들이 즉각 반격에 나섰다. 나머지 폭격대는 계속 미드웨이로 향했다. 이 전투에서 미군 전투기 27대 중 17기가 격추되었고 귀환한 10기중에서도 8기는 심하게 부서져 폐기 처분되었다. 남은 전투기는 2기에 불과했다.
양측 전투기가 상공에서 접전을 벌이는 와중에 일본 공격대는 미드웨이를 폭격했다. 격납고와 발전소를 비롯한 여러 시설이 공격을 받았지만, 도모나가는 나구모 사령관에게 추가적인 공격이 필요하다고 타전했다. 1차 공격대의 피해는 폭격기 2기와 제로센 2기에 불과했다.
USS Enterprise (CV-6)
7시 5분, 미국 기동부대의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이 출격 준비에 들어갔다. 뇌격기 29대, 급강하 폭격기 67대, 호위 전투기 20대가 1시간 내에 출격할 예정이었다. 이때 미군 함대와 일본군 함대 간 거리는 280킬로미터였다. 준비가 끝난 호넷부터 VT-8 어뢰 공격 비행대(VT-8) 소속 TBD 데버스테이터 어뢰 공격기 15대, SBD 돈틀레스 급강하 폭격기 35대 및 전투기 10대를 발진시켰고, 엔터프라이드도 TBD 데버스테이터 어뢰 공격기 14대, SBD 돈틀레스 급강하 폭격기 35대, 전투기 10대를 발진시켰다. 모두 119대였다.
7시 10분, 나구모는 도모나가 대위의 보고를 읽고 있었고, 상공에는 제로 전투기가 초계 중이었으며 갑판에는 무라다 시게하루 소좌가 지휘하는 2차 공격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무라다 소좌의 편대는 혹시 모를 미국 해군의 항공모함이나 전함에 대비해 어뢰를 장착한 상태였다. 이때 폭탄 대신 어뢰를 장착한 B-26 폭격기와 해병 항공대의 TBD 데버스테이터 뇌격기들이 일본군 항공모함에 공격을 가해왔다. 이들은 미드웨이에서 출격한 항공기였다.
1930년대에 제작된 TBD 데버스테이터 뇌격기는 이 시점에 이미 완전한 고물이 되어 있었다. 이 기종의 유일한 무기인 어뢰는 성능이 신통치 않아 목표물 아래로 빗나가기 십상이었고 간혹 명중시켜도 불발이 되었다. 최고속력은 100마일이었고 완전한 무장을 갖추면 전투행동반경도 175마일에 불과했다. 길쭉하고 느릿느릭한 TBD는 제로 전투기들에게 모두 손쉽게 격추되었다.
7시 15분, 나구모는 결정적인 명령을 내렸다. 2차 공격을 위해 무라다 소좌의 공격대가 장비하고 있던 어뢰를 빼고 다시 폭탄을 장비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아직 정찰기들로부터는 어떠한 보고도 없는 상태였다. 재무장에는 30분이 소요되었다.
7시 30분 도네에서 30분 늦게 출발했던 정찰기가 미군 기동부대를 발견했다. 그러나 아직 이 함대에 항공모함이 있는지 여부는 자세히 보고되지 않았으며, 나구모는 즉각 항공모함이 포함되어 있는지 확인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7시 55분 미드웨이에서 출격한 로프톤 핸더슨(Lofton R. Henderson) 소령 지휘하의 해병 항공대 급강하 폭격기 편대가 항모 히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핸더슨 소령이 지휘하는 16대의 돈틀레스 급강하 폭격기 편대는 전투기 호위도 없이 히류에 돌진했으나 아카기, 히류 그리고 전함 기리시마 등 주위 함정에서 쏴대는 대공 포화와 전투기 편대에 의해 10대가 격추되고 6대가 겨우 귀환하는 데 성공했다. 핸더슨 소령은 피탄되자 항모 카가에 충돌을 시도했으나 가가에 못 미쳐 바다에 추락했다.
8시 10분 도네의 정찰기가 순양함 5척, 구축함 5척으로 이루어진 미군 함대를 발견했다고 보고했으며, 5분후에 20,000 피트 상공에서 B-17 폭격기 편대가 일본군 항모를 공격했지만 한발도 명중하지 않았다.
8시 20분 도네 정찰기가 다시 미군 항모로 보이는 함정을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이때 미드웨이에서 날아온 해병 항공대 소속의 11대 폭격기가 다시 일본군 항공모함을 공격했지만 역시 소득은 없었다.
8시 25분 미국 해군 잠수함 노틸러스 호가 일본군 전함을 목표로 어뢰를 발사했으나 일본 함대는 손쉽게 이 공격을 회피했다. 이때 도모나가 대위의 1차 미드웨이 공격대가 함대로 돌아왔다. 나구모와 겐다 미노루 중좌, 구사카 류노스케 소장은 고민에 빠졌다. 현재 일본군 항공모함 비행갑판에 대기 중인 전투기들은 육상 공격용 폭탄을 장착한 채 대기하고 있었다. 도모나가 공격대를 착함시키려면 갑판에 현재 대기 중이던 전투기들은 모두 갑판 아래 격납고로 내려 보내야 했고, 미드웨이 공격도 당연히 늦춰질 수밖에 없다. 착함한 전투기 대신 공격대를 내보내려면 반대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미국 항공모함들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폭탄을 빼고 어뢰 등으로 무장을 교체해야 했다. 히류에 탑승하고 있던 야마구치 제독은 갑판에 대기 중인 폭격기와 전투기들을 이륙시켜 장착 중인 폭탄으로 항공모함을 공격하자는 의견을 보내왔다.
8시 35분 나구모는 기존의 육상 공격용 폭탄을 장착하고 갑판에 대기 중이던 폭격기들을 다시 격납고로 내려 보내고 도모나가 대위의 공격대를 착함시킬 것을 결정했다. 도모나가 공격대가 착함하고 연료를 재보급 받는 동안 기존 공격대는 다시 어뢰로 무장을 교체하고 항공모함 공격을 준비하도록 했다. 연료 보급과 어뢰 장착 작업이 끝나는대로 미국 항공모함을 목표로 출격시키겠다는 속셈이었다. 함상 공격기는 800킬로그램짜리 육상 공격용 폭탄을 빼고 833킬로그램짜리 어뢰를 다시 장착하고, 함상 폭격기는 250킬로그램짜리 함선 공격용 폭탄을 다시 장착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도모나가 대위의 공격대가 항모에 착함하기 시작한 것은 08시 37분이었다.
8시 30분 플레처 17 기동부대의 항공모함 요크타운에서 급강하 폭격기 17대와 뇌격기 12대가 출격했다.
8시 40분에 공격대가 일본군 항공모함이 있으리라 예상했던 좌표에 도착했지만 바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구모는 이미 요크타운쪽을 향해 북동쪽으로 이동중이었던 것이다. 호넷의 급강하 폭격기 편대는 미드웨이 남서쪽으로 향하고 있었고, 2개의 뇌격기 편대는 북쪽으로 이동했으며 엔터프라이즈의 급강하 폭격기 편대는 북서쪽으로 향했다. 미군의 공격은 뒤죽박죽이었다.
USS Hornet (CV-8)
9시 10분 호넷과 엔터프라이즈에서 발진한 어뢰 공격대가 나구모 함대를 발견했으며, 공격은 9시 25분에 시작되었다. 이들은 혼란스러운 상황 탓에 호위해줄 와일드캣도 양동작전을 펼칠 급강하 폭격기도 없었다. 초계중이던 제로센들은 공격대를 손쉽게 격퇴했다. 9시 40분에 엔터프라이즈의 VT-6 뇌격대가 다시 공격을 벌였으나 이들 역시 손쉽게 제압되었다.
9시 45분 엔터프라이즈와 요크타운에서 발진한 급강하 폭격기 편대는 나구모 본대를 뒤따라가던 구축함 아라시의 항적을 발견했다. 이들은 이리저리 헤매느라 연료가 거의 떨어져가는 상태였으나 아라시를 항로를 추적하여 기동부대를 발견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이들은 곧 일본 기동부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정각 10시에 요크타운에서 발진한 VT-3 뇌격대가 세번째로 일본 함대를 공격했다. 이들도 앞선 공격대와 같은 운명을 맞았으나 제로센의 제로센의 초계 비행을 산만해지게 만들었다. 초계기들은 급강하폭격기를 발견할 수 있는 고도에 대기하지 않고 모두 해수면 근처에 내려와 있었다. 계속되는 교전으로 많은 전투기들이 급유와 재무장을 위해 항공모함에 착륙했고, 대공포들도 살아남은 뇌격기들을 소탕하느라 분주했다.
10시 22분 엔터프라이즈와 요크타운에서 출격한 급강하 폭격기들이 드디어 일본 기동부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폭격기들은 시속 250마일의 속도로 급강하하여 폭탄들을 목표물에 명중시켰다. 일본 항공모함의 갑판에는 재급유와 무장을 위해 항공기와 정비 요원, 연료와 어뢰, 폭탄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카가가 먼저 공격을 당했다. 즐비하게 널린 폭탄과 연료가 순식간에 유폭을 일으키며 갑판에 큰 구멍을 뚫어놓았다. 폭탄 한개는 함교를 명중시켜 함장을 포함한 사령탑의 장교 전원이 순식간에 전멸했다. 이와 동시에 동력이 끊겨 카가는 멈춘 상태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나구모의 기함 나구모의 기함 아카기도 공격을 당했다. 폭탄 한발이 격납고를 뚫고 그안에 보관된 어뢰들을 폭발시키자 선체 전체가 쪼개지기 시작했다. 
공격받은 아카기
6분 후에는 다른 두 항모에서 북동쪽으로 10~12마일 정도 떨어져 있던 소류도 3기의 미군 급강하폭격기에 의해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함장인 야나기모토 제독은 물에 잠긴 함교 위에서 반자이라고 외치며 죽어갔다.
아카기에 탑승중이던 장교 후치다 미츠오는 후일 이 재앙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불타오르는 일본 함대 - 상상도
마지막 항공모함인 히류는 계속된 미군 뇌격대의 공격으로 남동쪽으로 약간 이동해 있었기 때문에 급강하폭격기의 공격을 모면할 수 있었다.
이 때 야마모토가 이끄는 본대는 제1 항공함대 55km 후방에서 미드웨이로 향하고 있었다. 상황 보고를 받은 야마모토는 후퇴냐 전진이냐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오전 11시에 그는 공격을 계속할 것을 결심했다. 본대에는 2척의 항공모함이 있었고 알류샨 열도로 파견된 공격대에도 항공모함 2척이 남아 있었다. 그는 이 전력으로 공격을 계속할 것을 결심한 것이다.
제 1 항공함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항공모함 히류의 제2 항공전대 사령관인 야마구치 다문 소장은 10시 40분, 고바야시 미치오 대위에게 급강하 폭격기 18대와 전투기 6대를 이끌고 즉각 미국 항공모함을 공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히류에서 발진한 급강하 폭격기들은 요크타운을 발견하여 공격을 시작했다.
공격이 시작될 무렵 요크타운은 급강하 폭격기들을 착함시키면서 전투기들에게는 연료 등을 급유하고 있었다. 레이더로 일본 공격대의 접근을 알아낸 요크타운은 즉시 전투기들을 날리고 급강하 폭격기들은 다른 배로 대피시키며 전투를 준비했다. 호넷과 엔터프라이즈에서도 전투기 28대가 요크타운을 지원하기 날아갔다.

공격받는 요크타운
대공사격과 미군 전투기들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일본 급강하 폭격기대는 요크타운에 2발의 폭탄을 명중시켰다. 요크타운은 심각한 피해를 입었으나 여전히 함을 조종할 수 있었다. 오후 2시까지 기관실 등의 응급 수리가 마무리되어 18노트의 속도를 낼 수 있었으며, 비행갑판도 수리된 상태였다. 일본군 급강하 폭격기 18대 중 13대는 격추되었으며, 공격대 지휘관 고바야시 대위도 전사했다.
이때 항공모함 소류에서 발진했던 정찰기가 히류에 착함하면서 상황을 보고했다. 야마구치 소장은 미드웨이 1차 공격대를 지휘했던 도모나가 대위에게 어뢰 공격기 10대와 전투기 6대를 이끌고 미군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도모나가 대위는 12시 45분에 히류를 출발했다. 도모나가 대위의 어뢰 공격기는 왼쪽 연료 탱크가 파손되어 오른쪽 연료 탱크에만 급유를 받은 뒤 이륙했다.
미국 항공모함을 찾던 일본군은 요크타운을 발견했으나, 수리가 끝나 호위함에 둘러싸인 요크타운을 다른 항공모함으로 착각했다. 폭탄 명중으로 야마구치 소장은 요크타운이 대파되었다고 추측했지만, 요크타운 수리반의 능력은 야마구치 소장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도모나가 대위는 공격을 명령했고, 어뢰 2발이 요크타운에 명중했다. 폭탄에 이은 어뢰 2발이 요크타운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도모나가 대위 자신은 요크타운의 갑판에 충돌했다. 도모나가 공격대가 요크타운에서 물러갈 즈음, 미군 정찰기가 히류를 발견했다.
플레처는 즉시 히류 공격을 명령하여 오후 4시에 엔터프라이즈에서 돈틀리스 급강하 폭격기 20대, 호넷에서 16대가 이륙했다. 엔터프라이즈에서 발진한 20대 중 10대는 원래 요크타운의 함재기였다. 도모나가 공격대의 생존기들이 히류에 착함한 것은 4시 30분이었다. 야마구치 제독이 재공격을 명령하여 일본군은 다시 공격을 준비했다. 남은 전력은 전투기 6대, 어뢰 공격기 4대, 급강하 폭격기 5대가 전부였다. 오후 5시, 미군 급강하 폭격기들이 히류를 폭격하기 시작했다. 폭탄 4발이 갑판에 명중했고, 히류는 폭발과 함께 함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 공격 대기 중이던 나머지 엔터프라이즈의 급강하 폭격기들은 목표를 바꿔 전함 하루나를 공격했다. 5시 30분에 현장에 도착한 호넷 공격대는 하루나와 순양함 치쿠마를 공격했다. 더 이상 공격을 할 필요가 없다고 미군은 판단했던 것이다.
6월 5일 새벽 2시 30분, 야마구치 소장은 퇴함을 명령하고 자신과 히류의 함장 가쿠 도메오는 침몰하는 히류에 남았다. 야마구치의 부관이 배에 아직 돈이 남아 있다고 보고했을때 그는 그대로 놔두라고 명령하며 중얼거렸다고 한다.

야마구치의 마지막 순간
8시 20분, 히류는 바다 밑으로 사라졌다.
한편 왼쪽으로 26도 기울여진 요크타운은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엘리엇 벅마스터 함장이 6월 5일 오후 2시 55분에 퇴함을 명령했다. 요크타운은 6월 6일에도 그 상태로 바다에 떠 있었고, 니미츠 제독은 요크타운을 진주만으로 예인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한 척의 항공모함이 아쉬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예인 작업이 시작되기 전, 일본군 잠수함 이-168이 요크타운을 공격했고, 6월 7일 아침에 배가 뒤집히며 침몰했다.
- 알류샨 열도 전투 -
알류샨 열도로 향한 호소가야 중장의 일본군 북방 함대는 예정대로 알류샨 열도 공략 작전(AL 작전)을 개시했다. 6월 3일, 1차 공격을 시도했으나 안개 때문에 일본 해군 함재기들은 일부는 귀환하고, 일부는 더치 하버의 미군 시설에 상당한 피해를 주었다.
6월 4일 오후, 호소가야 중장은 야마모토 제독으로부터 항공모함 함대를 미드웨이로 급파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2차 공격에 나섰던 함재기들이 돌아오자 호소가야 제독이 알류샨 공격을 중단하고 미드웨이로 항로를 변경하려던 순간, 야마모토 제독으로부터 미드웨이로 오지 말고 계속 알류샨 열도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의미가 없다고 야마모토는 판단한 것이다.
호소가야 제독은 6월 6일에 공격을 재개하여 이투 섬과 키스카 섬에 일본 해군 육전대(해병대) 12,250명을 상륙시켜 두 섬을 점령했다. 이 방면에서의 공격은 전술적으로 성공했지만 결과적으로 베링해의 얼어붙은 섬을 고생스럽게 점령한 것에 따른 전략적 잇점은 거의 없었다.
일본은 이 두 섬의 점령을 대대적으로 선전하여 미드웨이 해전의 패배를 일반 국민들에게는 숨겼다.
- 평가 -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태평양 전쟁 개시 전에 "일본은 개전으로부터 반년, 혹은 1년 정도 우세를 유지할 수 있지만 그 이후는 미국의 국력에 압도될 것이다."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국력으로 압도되기도 이전에 졸렬한 전략, 전술을 사용함으로서 2배의 전력을 가지고도 미드웨이에서 참패했다. 또한 전투 결과에 대한 전훈 연구회도 열리지 않았고, 패전의 책임자도 처벌되지 않았다.
후일 일본군의 잘못된 지휘에 대한 구체적 비판은 6월 4일 나구모가 내린 결정에 집중되었다.
나구모는 함대를 보호해야할 전투기와 폭격기를 대부분 미드웨이로 투입하여 미군 항공모함이 갑자기 출현할 것을 대비하지 않았으며 적 항모 발견이 보고되었을 때 즉각적으로 공격대를 날려보내지 않고 폭탄 대신 어뢰로 무장을 바꾸게 함으로서 귀중한 시간을 낭비했다는 것이다.
특히 폭탄 대신 어뢰로 무장을 변경하게 한 것이 거센 논란에 휩싸였다. 물론 당시 일본의 어뢰는 우수했으므로 무장을 교체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춘후 적함대를 궤멸시킨다는 결정 자체는 훌륭했다. 그러나 전투에서는 때때로 훌륭한 결정보다는 즉흥적인 임시변통도 필요한 법이다. 결국 고지식한 그 결정이 일본 항모들의 갑판에 휘발유와 무장한 비행기, 폭탄들이 널려있는 상태로 공격을 받도록 한 것이다.
야마모토의 주력 함대가 뒤에 쳐져있게 했던 계획도 비난의 도마에 올랐다. 전함이 다른 전함과 순양함을 격파하는 해전의 주력병기인 시절은 이미 지나갔던 것이다. 야마모토의 거대 전함들은 나구모 기동부대와 동행하여 대공포 우산을 씌워주는 역할을 담당해야했다. 야마토를 비롯한 일본의 초거대 전함들은 미드웨이에서는 물론 그 이후의 해전에서도 별다른 역할을 담당하지 못했다. 반대로 미군은 전함과 중순양함에게 항공모함을 보호하거나 적의 지상군을 포격하는 임무를 부여했다.
일본해군 군령부는 미드웨이에서의 패배를 국민들에게 은폐하기 위해 부상자들까지 따로 격리하였다. 단지 알류샨 열도에서 대승했다는 것만 발표되었다. 심지어는 참모본부나 도조 히데키 총리대신 겸 육군상게까지 정확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 전투 이후에도 1차 솔로몬 해전이나 남태평양 해전 등의 부분적인 해전에서 여전히 일본은 우세를 유지했지만, 과달카날과 뉴기니, 타라와섬 전투에서 참패함으로서 일본의 태평양 전선은 더이상 유지가 불가능해졌다.
1943년말에는 일본의 패색이 짙어졌으며, 후일 미드웨이 해전은 태평양전쟁의 전환점이었다고 평가되었다. 미 해군 작전부장 어네스트 킹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일본은 이 전투에서 상실한 항공 전력을 벌충하기 위해 야마토급 3번함을 항공모함 시나노로 개장하였다. 전함 이세와 휴가는 항공 전함으로 개장되었다. 상선을 개장하거나 건조비용을 줄인 호위 항공 모함을 15척 추가 건조하는 것도 계획되었으나 별반 진전은 없었다. 또한 미드웨이와 과달카날을 둘러싼 소모전에서 숙련된 항공기 승무원들이 많이 손실되었으나 보충이 그에 미치지 못해서 이후 일본 기동부대는 규모상 미드웨이 해전 당시를 능가했더라도 실질적으로는 그 전력을 다시는 회복하지 못했다.
미드웨이 전투의 대실패로 단기 결전에서 승리하여 조기에 전쟁을 끝낸다는 전략은 완전히 무의미해졌다. 따라서 군령부와 대본은 장기전을 주축으로 한 전략으로 급거 전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대본영은 이 해전을 '항공 모함 호넷과 엔터프라이즈를 격침시켰으며 아군의 손해는 항공 모함 1척과 중순양함 1척이 침몰하고 또다른 항공모함 1척 크게 부서진 것 뿐'이라고 발표하였다. 이 왜곡된 전투 결과는 일왕에게까지 그대로 보고되었으며, 일본이 항복하는 날까지 보안이 유지되었다.
반면 미국은 전쟁전부터 건조를 진행중이던 에섹스급 항공모함의 건조가 착실히 진행되고 있었으며, 덕분에 필리핀해 해전이나 레이테 해전에는 무려 20척이 넘는 항공모함을 동원하여 일본을 압도할 수 있게 되었다. 미드웨이의 승리로 여유가 생긴 루즈벨트는 태평양 방면에 배치된지 얼마되지 않은 M4전차 300량과 다른 무기들을 회수하여 북아프리카로 보냈다. 이 물자는 9월 3일에 수에즈에 도착하였고 10월 23일에 시작된 몽고메리의 엘알라메인 반격에 크게 기여하였다.

무고한 사람 열명을 숙청하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명의 스파이를 놓쳐서는 안된다.
- 니콜라이 예조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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