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의 히틀러에 대한 관심은 개인적인 흥미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간혹 저를 나치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오해 없으시길 빕니다.
그런 의미에서 힛통 찬양을 한번. 쿠쿠.
히틀러의 정치 철학과 이론들을 연구해보면 드물게 깊이 곱씹어볼만한 대목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교육에 대한 히틀러의 철학은 본인의 평소 생각과 꽤 많은 부분이 일치합니다. 저는 현대사회의 주입식 교육제도를 경멸합니다. 돈만 있다면 누구나 누릴수 있는 고등교육의 혜택도 반대합니다.
고등교육이란 진정으로 창조력과 재능을 가진 사람들... 신분을 떠나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고등교육을 받을 진정한 자격과 의무가 있습니다.
재능과 의지가 부족한 친구들에게 고등교육을 받게 하는 것은 본인과 가족, 국가 모두에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습니다.
모두가 학자나 관리가 될수는 없습니다. 누군가는 공장을 돌려야하고 나사를 조여야하며, 건설현장에서 땀흘려야만 합니다.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노력으로 길러진다는 거짓말에 선동되어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천재는 99%의 재능과 1%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은 결코 같은 출발선에서 스타트하는 스포츠 아레나가 아닙니다.
땀흘리는 블루칼라들이야말로 진정한 국가의 기둥입니다. 땀과 노동의 가치가 공정하게 평가받는 사회를 만들어야합니다.
천박한 금전만능주의와 교육 지상주의.. 모두가 관리가 되기 위해 줄달음치는 고시 지상주의를 때려부숴야만 대한민국이 한단계 더 도약할 수 있습니다.

- 신분과 무관하게 타고나는 재능 -
대개 현재 상류층으로서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는 부모를 가진 아이들이 고등교육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있다.
그러나 재능 그 자체는 언제나 상대적으로 평가될 수 있을 뿐이다. 농민의 아이들은 일반적 지식에 있어 부르주아의 아이들보다 못하다는 평을 듣는다. 그러나 부르주아의 자식들이 더 많은 지식을 가진것은 재능의 유무와는 관계없이 그 아이가 다방면의 교육과 부유한 생활환경의 혜택을 받은 점이 크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실제로 집안과는 무관하게 타고난 소질이 더욱 큰 영향을 미치는 유일한 분야는 오늘날의 예술계일 것이다.
예술가로서의 재능은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본디 타고난 것이어야 하며, 뒤에 타고난 재능을 더욱 빛나게 갈고 닦는다는 것에 의미가 있을 뿐이다.
가장 위대한 예술가가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는 사실은 그리 드문일이 아니다.
- 교육과 조련 -
의심할 여지없이 노련한 조련사가 영리한 푸들에게 믿기지 않을만큼의 재주를 가르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도 일정한 기계적 숙련을 가르칠 수 있다.
그러나 푸들의 조련이 동물의 이해력에서 나온것이 아닌것처럼 인간 또한 마찬가지이다. 재능이 없는 인간에게도 일정한 학문적 재주를 조련시킬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동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죽은 지식이며 쓸모없는 지식일 뿐이다.
그것은 살아있는 사전과 같은 인간을 만들며, 이런 조련은 인생의 특수한 경우나 결정적인 순간에 비참하리만큼 쓸모가 없다.
그들은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는 인류의 보다 나은 형성에 대한 어떠한 공헌도 할 수 없다.
지식의 가치라는 것은 적합한 재능을 가진 사람에 의해 죽어버린 지식에 영혼이 불어넣어질수록 커지게된다. 창조는 재능과 지식이 합쳐졌을때만 발현되는 것이다.
- 오늘날의 비참한 교육현실 -
오늘날의 인류가 이런 점에서 얼마나 큰 죄를 범하고 있는지는 아래의 예로 명료히 알 수 있다.
이따금 그라프지에는 흑인 변호사와 교사, 목사 그리고 훌륭한 테너 가수가 나타났다는 기사가 실려 독일인들을 놀라게 만든다.
어리석은 부르조아지들은 이러한 기적적 조련에 놀라 오늘날 교육 기술의 거짓말같은 결과에 대해 존경의 마음을 품는데, 유대인들은 교활하게도 이 사실에서 그들이 여러 민족에게 불어넣은 소위 '인간의 평등'이라는 이론의 정당함에 대한 새로운 증거를 만들어내려하는 것이다.
타락한 부르주아들은 이것이 진실로 모든 이성에 위배되는 죄라고는 상상치도 못한다.
최고의 문화인에 속하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정말로 보잘것없는 지위에 머물러있는데, 원숭이와 다를것없는 인간들을 오랫동안 조련하여 변호사로 만들었다는 것은 범죄적인 황당무계함으로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호텐토트나 줄루족조차 지적 직업으로 조련되고 있는데, 이것은 오늘날 재능이 있는 수십만이라는 사람들을 프롤레타리아의 진흙구덩이에 떨어뜨림으로써 영원한 조물주의 의지를 모독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는 푸들을 조련시키는 것과 완전히 같은 것으로서 전혀 학문적인 교육이라 할 수 없다. 이같은 노력과 배려를 지적 인종에게 돌린다면 어떤 사람이건 같은 일에 천배는 더 빨리 숙달될 것이다.

- 국가사회주의 교육 -
현재에도 재능과 소질을 타고난 수십만의 인민들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없는데, 전혀 재능이 없는 수십만의 인간들이 매년 고등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그 때문에 국가가 입는 손실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최근 수십년동안 북아메리카에서 유용한 발명이 대단히 많이 이루어졌으니 이는 북아메리카에서는 최하층의 사람이라도 재능만 있다면 고등교육을 받을 가능성이 유럽보다 많았음을 의미한다.
발명이란 주입된 지식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재능에 의해 영혼이 불어넣어진 사람에게만 가능한 것이다.
국가사회주의는 교육을 변화시킬 것이다.
민족주의 국가는 어떤 현존하는 사회계급에 결정적인 권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민족 구성원 중에서 가장 능력있는 두뇌의 소유자를 뽑아 관직에 앉혀야 한다.
민족주의 국가는 평범한 어린이들에게 학교 교육을 시킬 뿐만 아니라, 재능있는 사람을 마땅한 길로 인도하는 것 또한 의무로 짊어져야한다.
민족주의 국가는 중등 교육기관의 문을 재능있는 자라면 어떤 계급 출신이건 관계없이 완전히 평등하게 열어주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여겨야만한다.
국가는 이 과제들을 수행해야한다.
이것만이 죽은 지식의 대표자들에게서 국민의 독창적 지도층을 육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힛통 찬양을 한번. 쿠쿠.
히틀러의 정치 철학과 이론들을 연구해보면 드물게 깊이 곱씹어볼만한 대목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교육에 대한 히틀러의 철학은 본인의 평소 생각과 꽤 많은 부분이 일치합니다. 저는 현대사회의 주입식 교육제도를 경멸합니다. 돈만 있다면 누구나 누릴수 있는 고등교육의 혜택도 반대합니다.
고등교육이란 진정으로 창조력과 재능을 가진 사람들... 신분을 떠나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고등교육을 받을 진정한 자격과 의무가 있습니다.
재능과 의지가 부족한 친구들에게 고등교육을 받게 하는 것은 본인과 가족, 국가 모두에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습니다.
모두가 학자나 관리가 될수는 없습니다. 누군가는 공장을 돌려야하고 나사를 조여야하며, 건설현장에서 땀흘려야만 합니다.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노력으로 길러진다는 거짓말에 선동되어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천재는 99%의 재능과 1%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은 결코 같은 출발선에서 스타트하는 스포츠 아레나가 아닙니다.
땀흘리는 블루칼라들이야말로 진정한 국가의 기둥입니다. 땀과 노동의 가치가 공정하게 평가받는 사회를 만들어야합니다.
천박한 금전만능주의와 교육 지상주의.. 모두가 관리가 되기 위해 줄달음치는 고시 지상주의를 때려부숴야만 대한민국이 한단계 더 도약할 수 있습니다.

- 신분과 무관하게 타고나는 재능 -
대개 현재 상류층으로서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는 부모를 가진 아이들이 고등교육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있다.
그러나 재능 그 자체는 언제나 상대적으로 평가될 수 있을 뿐이다. 농민의 아이들은 일반적 지식에 있어 부르주아의 아이들보다 못하다는 평을 듣는다. 그러나 부르주아의 자식들이 더 많은 지식을 가진것은 재능의 유무와는 관계없이 그 아이가 다방면의 교육과 부유한 생활환경의 혜택을 받은 점이 크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실제로 집안과는 무관하게 타고난 소질이 더욱 큰 영향을 미치는 유일한 분야는 오늘날의 예술계일 것이다.
예술가로서의 재능은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본디 타고난 것이어야 하며, 뒤에 타고난 재능을 더욱 빛나게 갈고 닦는다는 것에 의미가 있을 뿐이다.
가장 위대한 예술가가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는 사실은 그리 드문일이 아니다.
- 교육과 조련 -
의심할 여지없이 노련한 조련사가 영리한 푸들에게 믿기지 않을만큼의 재주를 가르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도 일정한 기계적 숙련을 가르칠 수 있다.
그러나 푸들의 조련이 동물의 이해력에서 나온것이 아닌것처럼 인간 또한 마찬가지이다. 재능이 없는 인간에게도 일정한 학문적 재주를 조련시킬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동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죽은 지식이며 쓸모없는 지식일 뿐이다.
그것은 살아있는 사전과 같은 인간을 만들며, 이런 조련은 인생의 특수한 경우나 결정적인 순간에 비참하리만큼 쓸모가 없다.
그들은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는 인류의 보다 나은 형성에 대한 어떠한 공헌도 할 수 없다.
지식의 가치라는 것은 적합한 재능을 가진 사람에 의해 죽어버린 지식에 영혼이 불어넣어질수록 커지게된다. 창조는 재능과 지식이 합쳐졌을때만 발현되는 것이다.
- 오늘날의 비참한 교육현실 -
오늘날의 인류가 이런 점에서 얼마나 큰 죄를 범하고 있는지는 아래의 예로 명료히 알 수 있다.
이따금 그라프지에는 흑인 변호사와 교사, 목사 그리고 훌륭한 테너 가수가 나타났다는 기사가 실려 독일인들을 놀라게 만든다.
어리석은 부르조아지들은 이러한 기적적 조련에 놀라 오늘날 교육 기술의 거짓말같은 결과에 대해 존경의 마음을 품는데, 유대인들은 교활하게도 이 사실에서 그들이 여러 민족에게 불어넣은 소위 '인간의 평등'이라는 이론의 정당함에 대한 새로운 증거를 만들어내려하는 것이다.
타락한 부르주아들은 이것이 진실로 모든 이성에 위배되는 죄라고는 상상치도 못한다.
최고의 문화인에 속하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정말로 보잘것없는 지위에 머물러있는데, 원숭이와 다를것없는 인간들을 오랫동안 조련하여 변호사로 만들었다는 것은 범죄적인 황당무계함으로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호텐토트나 줄루족조차 지적 직업으로 조련되고 있는데, 이것은 오늘날 재능이 있는 수십만이라는 사람들을 프롤레타리아의 진흙구덩이에 떨어뜨림으로써 영원한 조물주의 의지를 모독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는 푸들을 조련시키는 것과 완전히 같은 것으로서 전혀 학문적인 교육이라 할 수 없다. 이같은 노력과 배려를 지적 인종에게 돌린다면 어떤 사람이건 같은 일에 천배는 더 빨리 숙달될 것이다.

- 국가사회주의 교육 -
현재에도 재능과 소질을 타고난 수십만의 인민들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없는데, 전혀 재능이 없는 수십만의 인간들이 매년 고등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그 때문에 국가가 입는 손실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최근 수십년동안 북아메리카에서 유용한 발명이 대단히 많이 이루어졌으니 이는 북아메리카에서는 최하층의 사람이라도 재능만 있다면 고등교육을 받을 가능성이 유럽보다 많았음을 의미한다.
발명이란 주입된 지식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재능에 의해 영혼이 불어넣어진 사람에게만 가능한 것이다.
국가사회주의는 교육을 변화시킬 것이다.
민족주의 국가는 어떤 현존하는 사회계급에 결정적인 권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민족 구성원 중에서 가장 능력있는 두뇌의 소유자를 뽑아 관직에 앉혀야 한다.
민족주의 국가는 평범한 어린이들에게 학교 교육을 시킬 뿐만 아니라, 재능있는 사람을 마땅한 길로 인도하는 것 또한 의무로 짊어져야한다.
민족주의 국가는 중등 교육기관의 문을 재능있는 자라면 어떤 계급 출신이건 관계없이 완전히 평등하게 열어주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여겨야만한다.
국가는 이 과제들을 수행해야한다.
이것만이 죽은 지식의 대표자들에게서 국민의 독창적 지도층을 육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고한 사람 열명을 숙청하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명의 스파이를 놓쳐서는 안된다.
- 니콜라이 예조프 -
2008.07.08 12:15:40
어떤 사람이건 조련시키면 일정 수준의 지식을 갖추게 되겠지. 그러나 재능은 99% 선천적이라고 생각한다.
재능을 타고난 인간이 있고 우둔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도 있는 법인데.. 이들을 모두 동일한 출발선에 몰아넣고 공정하게 경쟁하라는 것이 과연 합리적일까? 그리고 경쟁에서 낙오한 인간들에게는 무능하다는 낙인을 찍고 사회적 냉대와 멸시를 공공연하게 드러내지.
죽은 지식의 주입에 머무르고 있는 오늘날의 교육은 부모의 사회적 부와 지위를 대물림하기위한 장치에 다름아니다. 진정으로 정의롭고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사람의 타고난 재능을 더 공정히 평가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만 한다.
육체적 재능은 다들 인정하면서 왜 정신적 재능은 선천적임을 인정하려하지 않는가?
살리에르가 99% 더 노력하면 과연 모짜르트의 재능을 능가할 수 있을까?
어떤 둔재가 뼈를 깍는 노력을 하면 과연 아인슈타인이 될 수 있을까?
재능을 타고난 인간이 있고 우둔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도 있는 법인데.. 이들을 모두 동일한 출발선에 몰아넣고 공정하게 경쟁하라는 것이 과연 합리적일까? 그리고 경쟁에서 낙오한 인간들에게는 무능하다는 낙인을 찍고 사회적 냉대와 멸시를 공공연하게 드러내지.
죽은 지식의 주입에 머무르고 있는 오늘날의 교육은 부모의 사회적 부와 지위를 대물림하기위한 장치에 다름아니다. 진정으로 정의롭고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사람의 타고난 재능을 더 공정히 평가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만 한다.
육체적 재능은 다들 인정하면서 왜 정신적 재능은 선천적임을 인정하려하지 않는가?
살리에르가 99% 더 노력하면 과연 모짜르트의 재능을 능가할 수 있을까?
어떤 둔재가 뼈를 깍는 노력을 하면 과연 아인슈타인이 될 수 있을까?
2008.07.08 19:38:30
전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효율화를 위해서 인간을 희생시킬 수는 없다는 말이지...
인문계, 실업계 고등학교도 결국 공정한 평가 시스템의 하나이고 그런 노력은
여러방면으로 연구되고 있다고 본다.
극단적인 이상주의를 경계하자는 말이다.
인문계, 실업계 고등학교도 결국 공정한 평가 시스템의 하나이고 그런 노력은
여러방면으로 연구되고 있다고 본다.
극단적인 이상주의를 경계하자는 말이다.
2008.07.13 19:11:42
나치 관련 자료를 흥미있게 보다가 글을 남겨놓습니다.
위에 포스팅된 글이 히틀러의 교육철학인듯 한데 재미있게 잘봤습니다.
댓글에는 `효율이라기보다는 정의라고 해두자.' 라고 쓰셨는데 결국 재능있는 타고난 인재들에게 그에 걸맞는 교육을 받게하고 그렇지 않은 (설사 부모의 계급이 높더라도) 평범한 사람이 타고난 재능이상의 고등교육을 받게하지 않는 교육 정책이 합리적이기라 생각되기에 효율이라는 기계적인 잣대보다 비합리, 불평등을 거부하는 의미로 주관적인 잣대인 `정의`라는 말을쓰신것 같습니다만 `정의`의 의미가 좀 주관적인 면이 큰편이그런지 저러한 교육정책이 정의롭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군요... 필력이 딸려서 구체적으로 설명기힘든게 아쉽습니다.
다만 예전에 본영화중에 히틀러의 교육철학과 같은 사회제도를 가진 가상의 미래세계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있어서 추천해드리고 싶네요... 결과적으로는 이런식의 교육철학을 부정하는 영화이기는 하지만 여러가지 의견을 수용한다는 의미에서 한번쯤 보셨으면 합니다.
`가타카`라는 영화입니다.
위에 포스팅된 글이 히틀러의 교육철학인듯 한데 재미있게 잘봤습니다.
댓글에는 `효율이라기보다는 정의라고 해두자.' 라고 쓰셨는데 결국 재능있는 타고난 인재들에게 그에 걸맞는 교육을 받게하고 그렇지 않은 (설사 부모의 계급이 높더라도) 평범한 사람이 타고난 재능이상의 고등교육을 받게하지 않는 교육 정책이 합리적이기라 생각되기에 효율이라는 기계적인 잣대보다 비합리, 불평등을 거부하는 의미로 주관적인 잣대인 `정의`라는 말을쓰신것 같습니다만 `정의`의 의미가 좀 주관적인 면이 큰편이그런지 저러한 교육정책이 정의롭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군요... 필력이 딸려서 구체적으로 설명기힘든게 아쉽습니다.
다만 예전에 본영화중에 히틀러의 교육철학과 같은 사회제도를 가진 가상의 미래세계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있어서 추천해드리고 싶네요... 결과적으로는 이런식의 교육철학을 부정하는 영화이기는 하지만 여러가지 의견을 수용한다는 의미에서 한번쯤 보셨으면 합니다.
`가타카`라는 영화입니다.
2008.07.13 19:34:36
아! 가타카. 저도 재미있게 봤습니다.
제가 굳이 정의라고 이야기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현대자본주의 사회는 본질적으로 무한경쟁의 정글과 같습니다. 사회라는 정글에서의 서열은 그 개체의 능력이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으로 매겨지겠죠.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불평등합니다. 개개인들의 선천적 능력에도 현격한 차이가 있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에도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이렇게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사회에서 우리들은 경쟁을 하고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끊임없이 주입되는 기회의 균등이라는 프로파간다에 세뇌되어 현실의 비참함을 잊습니다. 이건 결코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습니다.
누군가 경쟁에서 승리해야한다면 그 영광은 순수하게 재능과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경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는 약자들에게는 그들에게 맞는 지위를 찾아줘야 합니다. 필연적으로 패배할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정글의 생존경쟁에 내몰며 그것이 정의라고 하는 것은 위선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학문과 공부에 취미와 재능이 없는 수백만의 아이들에게 강제로 주입되는 고등지식이 도대체 왜 필요한 것일까요?
제가 굳이 정의라고 이야기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현대자본주의 사회는 본질적으로 무한경쟁의 정글과 같습니다. 사회라는 정글에서의 서열은 그 개체의 능력이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으로 매겨지겠죠.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불평등합니다. 개개인들의 선천적 능력에도 현격한 차이가 있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에도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이렇게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사회에서 우리들은 경쟁을 하고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끊임없이 주입되는 기회의 균등이라는 프로파간다에 세뇌되어 현실의 비참함을 잊습니다. 이건 결코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습니다.
누군가 경쟁에서 승리해야한다면 그 영광은 순수하게 재능과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경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는 약자들에게는 그들에게 맞는 지위를 찾아줘야 합니다. 필연적으로 패배할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정글의 생존경쟁에 내몰며 그것이 정의라고 하는 것은 위선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학문과 공부에 취미와 재능이 없는 수백만의 아이들에게 강제로 주입되는 고등지식이 도대체 왜 필요한 것일까요?
2008.07.13 22:28:27
가타카를 이미 보셨다니 ^^;
보셔서 아시겠지만 가타카의 사회제도가 위의 히틀러 교육사상과 거의 같습니다. 물론 히틀러의 사상에서는 가타카와 다르게 블루컬러가 사회의 역군,기둥이라고 하는것을 보니 능력으로 인해 생기는 계급 차등, 그로인한 사회갈등을 막기위해서 고민을 한것같습니다만... 제생각에 이말은 단순히 선전용 구호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저런식으로 재능을 기준으로 갈라 놓는다면 분명 합리적으로는 보이나 시스템에 의해서 특정분야에 재능이 없다고 분류되어버린 사람들중 몇몇은 다른 분야로, 아니면 해당분야의 좀더 하급분야로 강제 이동이 될텐데 그 사람들은 가타카의 주인공처럼 분명 반감을 가지게 될테니까요.
또한 사람의 재능을 특정한 잣대로 나누어 정말 큰 문제는 다양성의 부재라고 생각합니다. 징스라는 둔재가 아인슈타인처럼 될수 없다는것은 맞습니다만 징스는 징스이면 되는것이지 아인슈타인을 닮아서 상대성이론 2탄을 만들어야 하는것은 아니기때문입니다. 사회든 학문이든 다양성이 있어야 건전하고 발전적일테니까요. 둔재의 논문이 세간의 주목은 받지 못할수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짝에 쓸모없는 쓰레기 논문 하나가 세상에 추가된것은 아닙니다. 그 분야의 다양성이 늘어난것이죠.
아인슈타인 역시도 어린시절에는 문제아였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입니다. 아인슈타인 뿐만이 아니죠 위인전기에 나오는 사람들중 대기만성형인 사람들이 무척 많습니다. 아마 히틀러의 교육철학 하 였다면 상대성 이론이 세상에 나오는데는 얼마나 더 시간이 걸렸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일단 최소한 아인슈타인이 해내지는 못했을테니까요.
그리고 주인장님의 정의라고 표현한 이유도 잘 읽었고 그 뜻에 대해 100% 동의 하는 바입니다. 분명한 승자와 패자가 있는 정글에 이미 패배를 선고 받고 경쟁을 강요 받는다는건 정의롭지 못한 사회입니다. 이는 분명한 자본주의의 폐해라고 생각합니다. 주인장님 말처럼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맞는 지위를 찾아준다던가 하는일을 하기위해 선진국들은 복지정책이란것을 마련하고 있습니다만 자본주의를 기본으로 이를 보완하기위한 복지정책은 완벽할수가 없기때문에 지위를 찾아준다는 식으로 적극적 개입은 거의 안되고 경쟁에 다시 참여할수 있도록 도와주는 형태를 기본으로 점점 그 범위를 늘려가고 있는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사항은 사회시스템의 문제이지 교육은 조금 다르게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을 경쟁시스템으로 이해하면 참가자들은 계속 불해해질거라고 생각되며 정의롭지도 못할것입니다. 이는 아마 한국에서 일반적인 교육과정을 거치셨다면 동의 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교육은 교육해야 마땅한것을 교육해야 하며 교육받고 싶은것을 교육 받을수 있어야 하고 교육받는 당사자가 무었을 교육받고 싶은지 스스로 알수 있는 힘을 키워줘야한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 교육현실은 제 경험상 위의 세가지다 제대로 충족이 되지 못하기때문에 올바르지 않고 정의롭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성장했습니다만 위에 나온 히틀러의 교육철학역시 이런 맥락에서는 마찮가지인것 같습니다. 시스템이 그사람의 재능을 몇가지 테스트로 결정해 버려서(그게 아무리 치밀하고 정교한 테스트라고 할지라도) 최소한 교육받고 싶은걸 교육받을수 있지도 스스로 교육받고싶은 내용을 알아내는 힘을 기를수도 없게 될것이기때문입니다.
마지막에 주인장께서 물음하신 내용... 주입식의 고등교육이 왜 필요한것인가... 이건 교육해야 마땅한것을 교육하기 위해서 일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마 주인장께서 물음하신건 이런의미는 아니실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사회의 잘못된 교육현실을 말씀하신거라 생각되는데 그럼 질문을 바꿔서 '필요없는걸 왜하고 있느냐?' 라고 해서 답한다면 그건 우리 사회의 어른들이 교육을 교육으로 이해하지 않고 단순히 정글경쟁의 준비단계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조심스레 자문해봅니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가타카의 사회제도가 위의 히틀러 교육사상과 거의 같습니다. 물론 히틀러의 사상에서는 가타카와 다르게 블루컬러가 사회의 역군,기둥이라고 하는것을 보니 능력으로 인해 생기는 계급 차등, 그로인한 사회갈등을 막기위해서 고민을 한것같습니다만... 제생각에 이말은 단순히 선전용 구호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저런식으로 재능을 기준으로 갈라 놓는다면 분명 합리적으로는 보이나 시스템에 의해서 특정분야에 재능이 없다고 분류되어버린 사람들중 몇몇은 다른 분야로, 아니면 해당분야의 좀더 하급분야로 강제 이동이 될텐데 그 사람들은 가타카의 주인공처럼 분명 반감을 가지게 될테니까요.
또한 사람의 재능을 특정한 잣대로 나누어 정말 큰 문제는 다양성의 부재라고 생각합니다. 징스라는 둔재가 아인슈타인처럼 될수 없다는것은 맞습니다만 징스는 징스이면 되는것이지 아인슈타인을 닮아서 상대성이론 2탄을 만들어야 하는것은 아니기때문입니다. 사회든 학문이든 다양성이 있어야 건전하고 발전적일테니까요. 둔재의 논문이 세간의 주목은 받지 못할수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짝에 쓸모없는 쓰레기 논문 하나가 세상에 추가된것은 아닙니다. 그 분야의 다양성이 늘어난것이죠.
아인슈타인 역시도 어린시절에는 문제아였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입니다. 아인슈타인 뿐만이 아니죠 위인전기에 나오는 사람들중 대기만성형인 사람들이 무척 많습니다. 아마 히틀러의 교육철학 하 였다면 상대성 이론이 세상에 나오는데는 얼마나 더 시간이 걸렸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일단 최소한 아인슈타인이 해내지는 못했을테니까요.
그리고 주인장님의 정의라고 표현한 이유도 잘 읽었고 그 뜻에 대해 100% 동의 하는 바입니다. 분명한 승자와 패자가 있는 정글에 이미 패배를 선고 받고 경쟁을 강요 받는다는건 정의롭지 못한 사회입니다. 이는 분명한 자본주의의 폐해라고 생각합니다. 주인장님 말처럼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맞는 지위를 찾아준다던가 하는일을 하기위해 선진국들은 복지정책이란것을 마련하고 있습니다만 자본주의를 기본으로 이를 보완하기위한 복지정책은 완벽할수가 없기때문에 지위를 찾아준다는 식으로 적극적 개입은 거의 안되고 경쟁에 다시 참여할수 있도록 도와주는 형태를 기본으로 점점 그 범위를 늘려가고 있는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사항은 사회시스템의 문제이지 교육은 조금 다르게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을 경쟁시스템으로 이해하면 참가자들은 계속 불해해질거라고 생각되며 정의롭지도 못할것입니다. 이는 아마 한국에서 일반적인 교육과정을 거치셨다면 동의 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교육은 교육해야 마땅한것을 교육해야 하며 교육받고 싶은것을 교육 받을수 있어야 하고 교육받는 당사자가 무었을 교육받고 싶은지 스스로 알수 있는 힘을 키워줘야한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 교육현실은 제 경험상 위의 세가지다 제대로 충족이 되지 못하기때문에 올바르지 않고 정의롭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성장했습니다만 위에 나온 히틀러의 교육철학역시 이런 맥락에서는 마찮가지인것 같습니다. 시스템이 그사람의 재능을 몇가지 테스트로 결정해 버려서(그게 아무리 치밀하고 정교한 테스트라고 할지라도) 최소한 교육받고 싶은걸 교육받을수 있지도 스스로 교육받고싶은 내용을 알아내는 힘을 기를수도 없게 될것이기때문입니다.
마지막에 주인장께서 물음하신 내용... 주입식의 고등교육이 왜 필요한것인가... 이건 교육해야 마땅한것을 교육하기 위해서 일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마 주인장께서 물음하신건 이런의미는 아니실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사회의 잘못된 교육현실을 말씀하신거라 생각되는데 그럼 질문을 바꿔서 '필요없는걸 왜하고 있느냐?' 라고 해서 답한다면 그건 우리 사회의 어른들이 교육을 교육으로 이해하지 않고 단순히 정글경쟁의 준비단계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조심스레 자문해봅니다.
2008.07.13 23:31:33
오! 대단한 글이군요. 저도 징스님의 생각과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인간의 잠재된 능력을 찾아주는 것, 개개인들의 소질과 능력에 맞는 위치를 알려주는 것.. 두가지의 교육이 병행되어야만 하겠지요.
사실 평소 교육문제에 대해서 깊이있는 고찰을 해본적이 없습니다만, 피상적으로나마 현재 대한민국의 교육체계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느껴왔습니다.
평범한 부모들에게 지워진 엄청난 교육비 부담. 사교육 열풍. 영재 교육 열풍. 조기 외국어 교육 열풍. 이런게 다 무슨 쓸모가 있을까요? 설령 쓸모가 있다 하더라도 그건 교육받는 전체 아이들의 극히 일부에게나 유용할 뿐이겠지요.
제아무리 대기만성형의 인물이 있다해도.. 그들이 선천적으로 타고나지 못한 재능을 후천적인 노력으로 갈고닦았다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단지 그들의 재능을 세상이 몰랐던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돌을 주워 아무리 갈고닦는들 다이아몬드가 되겠습니까?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 원석을 가공해야만 만들어지는 법입니다. 물론 돌도 잘 다듬으면 나름대로 세상에 유용하고 쓸모있는 재화가 될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자신이 들고있는 돌을 잘 닦으면 다이아몬드가 될거라고 말해주는 것은 일종의 잘못된 세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떤 인간의 잠재된 능력을 찾아주는 것, 개개인들의 소질과 능력에 맞는 위치를 알려주는 것.. 두가지의 교육이 병행되어야만 하겠지요.
사실 평소 교육문제에 대해서 깊이있는 고찰을 해본적이 없습니다만, 피상적으로나마 현재 대한민국의 교육체계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느껴왔습니다.
평범한 부모들에게 지워진 엄청난 교육비 부담. 사교육 열풍. 영재 교육 열풍. 조기 외국어 교육 열풍. 이런게 다 무슨 쓸모가 있을까요? 설령 쓸모가 있다 하더라도 그건 교육받는 전체 아이들의 극히 일부에게나 유용할 뿐이겠지요.
제아무리 대기만성형의 인물이 있다해도.. 그들이 선천적으로 타고나지 못한 재능을 후천적인 노력으로 갈고닦았다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단지 그들의 재능을 세상이 몰랐던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돌을 주워 아무리 갈고닦는들 다이아몬드가 되겠습니까?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 원석을 가공해야만 만들어지는 법입니다. 물론 돌도 잘 다듬으면 나름대로 세상에 유용하고 쓸모있는 재화가 될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자신이 들고있는 돌을 잘 닦으면 다이아몬드가 될거라고 말해주는 것은 일종의 잘못된 세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2008.07.14 12:59:03
징스씨 주장은 국가나 세상이 천재의 잠재력을 몰라보고 미쳐 그 천재의 가치가 나타나기 전에 매장시켜 버릴 수도 있다는 위험을 말하는 것 같다.
정의에 관한 징스씨의 주장은 인간지능의 태생적 한계를 부정하는 것 같다.
지능이 개인별로 다르게 태어나는 것 조차 정의롭지 못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부모의 노력이자 후대에는 다시 본인의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가장 정의로운 사명이 아닐까?
후천적인 교육은 제외하고서라도 태생적으로 높은 지능을 물려받고 태어나는 인간이 낮은 지능을 가지고 태어나는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야말로 나는 정의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체제의 복지제도 역시 완벽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어떻게 어리석은 인간과 현명한 인간을 모두 만족시켜가며 또한 발전에 발전을 이룩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심지어 그 복지제도조차 확대 축소를 번갈아가며 최대한의 성장과 분배를 안배하는 것이 현대의 자유주의이자 자본주의이다. 100% 만족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잘 굴러가고 있는 체제라고 생각된다.
교육문제의 경우도 지금의 교과목들이 필요없는 것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 필요하 교육내용들이고 이러한 기본적인 교육내용들을 충실히 이해해야만 차후에 본인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알고자 하는지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고본다. 고교과정까지의 교육은 결코 고등교육이 아니다.
그리고 효율화를 위해 우열을 세부적으로 가려서 같은 집단에 포함시켜 교육시키는 것이야말로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 매우 유익할 것이라 생각된다. 교과내용을 충분히 이해한다면 굳이 비싼돈을 들여 학원에 다닐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의미에서 공교육의 극단적인 우열화, 서열화는 매우 필요하고 교육을 넘어서 국가 경쟁력을 위해서도 필수조건이다.
네크로의 주장은 100% 옳은 말이지만 그것은 이상주의와 다를바가 없고 그래서 스스로 '효율'을 '정의'라는 말로 대체하였던 것이 아닐까?
일찍이 누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던가? 정글경쟁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정의에 관한 징스씨의 주장은 인간지능의 태생적 한계를 부정하는 것 같다.
지능이 개인별로 다르게 태어나는 것 조차 정의롭지 못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부모의 노력이자 후대에는 다시 본인의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가장 정의로운 사명이 아닐까?
후천적인 교육은 제외하고서라도 태생적으로 높은 지능을 물려받고 태어나는 인간이 낮은 지능을 가지고 태어나는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야말로 나는 정의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체제의 복지제도 역시 완벽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어떻게 어리석은 인간과 현명한 인간을 모두 만족시켜가며 또한 발전에 발전을 이룩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심지어 그 복지제도조차 확대 축소를 번갈아가며 최대한의 성장과 분배를 안배하는 것이 현대의 자유주의이자 자본주의이다. 100% 만족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잘 굴러가고 있는 체제라고 생각된다.
교육문제의 경우도 지금의 교과목들이 필요없는 것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 필요하 교육내용들이고 이러한 기본적인 교육내용들을 충실히 이해해야만 차후에 본인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알고자 하는지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고본다. 고교과정까지의 교육은 결코 고등교육이 아니다.
그리고 효율화를 위해 우열을 세부적으로 가려서 같은 집단에 포함시켜 교육시키는 것이야말로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 매우 유익할 것이라 생각된다. 교과내용을 충분히 이해한다면 굳이 비싼돈을 들여 학원에 다닐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의미에서 공교육의 극단적인 우열화, 서열화는 매우 필요하고 교육을 넘어서 국가 경쟁력을 위해서도 필수조건이다.
네크로의 주장은 100% 옳은 말이지만 그것은 이상주의와 다를바가 없고 그래서 스스로 '효율'을 '정의'라는 말로 대체하였던 것이 아닐까?
일찍이 누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던가? 정글경쟁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2008.07.14 17:15:45
정글은 아름다운게 아니라 추악함 그 자체지.
온갖 인간군상들이 처절하게 아비규환의 생존경쟁을 벌이는 지상의 지옥. 가장 아름다운 미녀도 얼굴 한가죽 들어내면 추악하기 그지없고.. 겉으로는 평화로워보이는 세상도 속을 들여다보면 아비지옥과 다를바없다.
흉악한 마음을 감추고, 겉으로 웃는 추잡하고 위선적인 인간군상들이 득시글거리는 속세.. 아! 우화등선하고싶다.
온갖 인간군상들이 처절하게 아비규환의 생존경쟁을 벌이는 지상의 지옥. 가장 아름다운 미녀도 얼굴 한가죽 들어내면 추악하기 그지없고.. 겉으로는 평화로워보이는 세상도 속을 들여다보면 아비지옥과 다를바없다.
흉악한 마음을 감추고, 겉으로 웃는 추잡하고 위선적인 인간군상들이 득시글거리는 속세.. 아! 우화등선하고싶다.
2008.07.14 18:11:54
종교의 발생원인중의 하나가 바로 그런 마음가짐 아닐까....
이 아름다운 세상을 속세라고 표현하고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마치 이세상 저 너머에는 '이데아계'같은 뭔가 좋은 세상이 있을 것 같은착각....
거기서는 사자와 사슴이 서로 얼싸안고 노래부르고 있을까?^^
그게 과연 재미있을까?
지금의 이 세상이야말로 뭔가 역동적이고 살아 꿈틀거리는 매력적인 천국이 아닐까?^^
경쟁의 좋지않은 모습이 존재하는게 사실이지만 우리는 경쟁덕에 이렇게 호화롭게 생활하고
있는 중이거늘....
나는 종교계에서 말하는 천국이 실제로 존재하고 거기에 들어가는 입장권이 내게 주어진다고해도
정중히 거절하겠다. 하나의 문학적 표절!^^
이 아름다운 세상을 속세라고 표현하고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마치 이세상 저 너머에는 '이데아계'같은 뭔가 좋은 세상이 있을 것 같은착각....
거기서는 사자와 사슴이 서로 얼싸안고 노래부르고 있을까?^^
그게 과연 재미있을까?
지금의 이 세상이야말로 뭔가 역동적이고 살아 꿈틀거리는 매력적인 천국이 아닐까?^^
경쟁의 좋지않은 모습이 존재하는게 사실이지만 우리는 경쟁덕에 이렇게 호화롭게 생활하고
있는 중이거늘....
나는 종교계에서 말하는 천국이 실제로 존재하고 거기에 들어가는 입장권이 내게 주어진다고해도
정중히 거절하겠다. 하나의 문학적 표절!^^
2008.07.14 18:22:38
사자와 사슴이 춤을 추건 키스를 하건 이데아가 있건 없건 그건 알바 아니다. 중요한건 바로 현실이 카오스라는 점이니까.
과연 이게 역동적으로 살아 꿈틀거리는 매력적인 천국이냐?
동물의 왕국을 한번 보도록.
사자의 한끼 식사가 되지않기 위해서 처절하게 도망치는 사슴의 생존본능.
어떻게든 DNA를 후손에게 물려주려는 종족보존의 본능에 피를 철철 흘리며 싸워대는 수컷들.
오직 죽지 않기 위해 도처에서 벌어지는 처절한 생존투쟁..
도대체 이 생명들에게 삶이란 어떤 의미일까? 뭐 인간이라고 별로 다를것 같진 않군. 오히려 이성을 지닌 인간에게 세상은 더 고통스러운지도 모르겠다.
죽음도 영원도 두려워하는게 인간이라는 존재인데. 세계에 절대이성은 부재중이고 신은 벌써 사망한지 오래지.
과연 이게 역동적으로 살아 꿈틀거리는 매력적인 천국이냐?
동물의 왕국을 한번 보도록.
사자의 한끼 식사가 되지않기 위해서 처절하게 도망치는 사슴의 생존본능.
어떻게든 DNA를 후손에게 물려주려는 종족보존의 본능에 피를 철철 흘리며 싸워대는 수컷들.
오직 죽지 않기 위해 도처에서 벌어지는 처절한 생존투쟁..
도대체 이 생명들에게 삶이란 어떤 의미일까? 뭐 인간이라고 별로 다를것 같진 않군. 오히려 이성을 지닌 인간에게 세상은 더 고통스러운지도 모르겠다.
죽음도 영원도 두려워하는게 인간이라는 존재인데. 세계에 절대이성은 부재중이고 신은 벌써 사망한지 오래지.
2008.07.15 07:22:21
이 세계는 하나의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닐 것이다.
생각하는 개인들의 시각의 차이겠지...
프로파간다같은 것이겠지..
나는 지금의 이 세계가 천국이라고 생각한다.
헤겔에 의하면 절대이성은 언젠가 도래할 것이고, 신은 사망한게 아니라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신이 죽었다는 말은 결국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을 돌려표현한 것이겠지..
DIXI!!
생각하는 개인들의 시각의 차이겠지...
프로파간다같은 것이겠지..
나는 지금의 이 세계가 천국이라고 생각한다.
헤겔에 의하면 절대이성은 언젠가 도래할 것이고, 신은 사망한게 아니라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신이 죽었다는 말은 결국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을 돌려표현한 것이겠지..
DIXI!!


70:30정도라고 말하면 맞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억지는 아닐 것이다.
극단적인 수치는 아니지만 70:30 이라는 비율도 어마어마한 차이다.
그런의미에서 기회의 균등을 위해서라도 교육은 모든 사람들에게 일정과정 제공되어져야하고
이건 국가사회주의와 대립되는 자유주의의 특징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부모의 신분과 2세의 재능은 인과관계는 아닐지라도 상관관계 이상을 의미한다고 본다.
실제로 체격조건이나 성격등은 2세에게 많은부분 전달되는 것 같다.
다만 예술과 지성은 같은 개념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오히려 대립적이기까지 하다.
예술은 감수성이 주요한 매개가 될 것이고 감수성은 비교적 불안정한 조건속에서 길러지는 경향이 있다.
헤르만헤세의 '지와 사랑(나르치스와 골트문트)'이라는 작품도 예술과 지성의 이질관계를
잘 설명해주는 예가 될 것 같다.
결국 위의 글은 재능과 노력의 구분과 차이를 극단적으로 갈라놓았다.
개개인의 재능의 차이에 관한 명확한 구분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간과한 부분도 있는 것 같고
개별인간들의 고유한 사고와 개성을 무시한 체 과일장수가 불량사과를 겉만보고 걸러내듯
국가사회주의 역시 인간을 도외시하며 극단적인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면이 있다고본다.
*. 디지털 케이블 42,700원이랜다. 그래서 송파쪽은 3만원대라고 하니
일단 상담원이 이름과 전화번호가르쳐 달라고 하고 연락이 없네...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