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11월23일부터 27일까지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연합국 수뇌(루즈벨트, 처질, 장제스)들이 모여 회담을 가졌다.

이들은 일본과의 전쟁에서 상호간에 협력과 전쟁이 끝난후 일본의 영토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관한 연합국의 기본 방침을 결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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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담 결과 다음와 같은 카이로 선언(Cairo Declaration)이 공식적으로 채택되었다.

1. 3국은 일본에 대한 장래의 군사행동을 협의하였다.
2. 3국은 야만적인 적국에 가차 없는 압력을 가할 것을 의결하였다.
3. 일본의 침략을 저지하고 응징할 것이나, 3국 모두는 영토확장의 의도가 없다.
4. 제 1차 세계대전 후 일본이 탈취한 태평양의 여러 섬들을 빼앗고 만주와 타이완, 펑후제도 등을 중화민국에 반환하며 그동한 탈취한 모든 지역에서 일본을 축출한다.
5. (특별조항) 한국인의 노예상태에 유의하여 적절한 절차에 따라 한국에 자유와 독립을 줄 것이다.



이것은 청일전쟁이후 일본이 획득한 모든 기득권들을 박탈하겠다는 것이었다. 

본전 생각이 간절한 대일본제국 입장에서는 최악의 순간이 되기 전까지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임에 틀림없었다.




- 결호작전(決号作戦, 케츠고 사쿠센) -


1945년 4월 1일 오키나와에 상륙한 미군은 6월 23일까지 섬 전지역을 장악하였다.
 

일본은 완전히 궁지에 몰렸다. 마리아나에서 출격한 B-29 폭격기들은 일본의 대도시를 휩쓸어버리고, 이제는 심심풀이로 자그마한 중소도시에까지 폭탄을 투하하는 형편이었다.  

곳곳에 부설된 기뢰와 미군 잠수함의 위협으로 해상 교통망은 마비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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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미국의 칼끝이 본토를 향할 것은 명백하였으나, 일본의 전쟁 지속능력은 완전히 고갈된 상태었다.



그럼에도 일왕을 비롯한 일본의 전쟁 지휘부는 1억 총옥쇄(摠玉碎)의 구호아래 본토결전 준비에 광분하고 있었다. 


대본영은 결호작전(決号作戦, 케츠고 사쿠센)이라는 최후의 방어 작전을 입안하였다.


우선 미국의 공격이 예상되는 큐슈와 간토의 대비태세를 강화하기 위해 동일본과 서일본을 관할하는 제1총군(第一総軍), 제2총군(第二総軍)을 창설하여 결전작전준비요강(決戦作戦準備要網)을 시달하였다.

결1호(決一号) : 홋까이도(北海道), 치시마(千島) 방면
결2호(決二号) : 토호쿠(東北) 방면
결3호(決三号) : 칸토(関東) 방면
결4호(決四号) : 토카이(東海) 방면
결5호(決五号) : 주코쿠(中部) 방면
결6호(決六号) : 큐슈(九州) 방면
결7호(決七号) : 조선(朝鮮) 방면
결토호(決と号): 최종 특공작전

본토에는 만주나 북방에서 재배치된 증원군을 포함하여 일반사단 40개와 독립 혼성 여단 22개 등 약 150만의 병력이 대기중이었다.

해군도 같은 시기 해군총대사령부(海軍総隊司令部)를 창설하여 남동 방면 함대와 남서 방면 함대를 제외한 해군의 모든 전력을 통일하여 지휘하게 되었다. 초대 해군총대 사령장관에는 도요타 소에무 대장이 임명되었다.

또한 의용병역법(義勇兵役法)이라는 법률이 공포되어, 15세부터 60세까지의 남성과 17세부터 40세까지의 여성 2,800만명을 총알받이로 동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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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창으로 무장한 소녀 국민의용대(國民義勇隊)


이들은 그나마 화승총을 비롯한 시대착오적 구식 총기로 무장된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죽창과 낫, 활과 일본도 등의 원시적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본토결전에서 사용될 전술은 아래와 같았다.

1. 미해군 기동부대에 대해서는 항공기에 의한 특공작전과 야간의 통상 공격으로 대항하여 수송선단의 호위를 방해한다.
2. 주력함정 대다수를 잃은 해군은 남아있는 구축함과 잠수함 및 특공 병기로 미군에 대항한다.
3. 적수송선단이 300km내로 접근하면 항공 공격과 잠수함, 자폭 잠항정 등으로 공격하며 해안까지 접근하면 회천과 진양등의 특공 공격을 비롯하여 가능한 모든 수단으로 대항한다.
4. 적의 상륙 부대가 내륙에 진격할 경우 동시에 상륙지점에 반격을 개시하여 혼전 상태를 만들어 미해군 전함의 함포 사격과 항공기의 폭격 지원을 무용지물로 만든다.
5. 적 항공기에 대항할 요격기는 완벽하게 은닉하여, B29 등의 대형기만을 집중 공격하고 전투기는 무시한다.


결호 작전을 위해 준비된 자살공격대는 대략 아래와 같다.

1. 가미카제(神風) : 자살 공격 전투기. 육군항공대 2,100기, 해군항공대 2,700기
2. 사쿠라바나(桜花) :폭격기에서 발사되는 인간 유도 미사일
3. 카이텐(回天) : 인간 어뢰
4. 신요(震洋) : 자살 모터보트 (육군형은 1인 승선, 해군형은 2인 승선)
5. 카이류(海龍) : 자살 잠항정.
6. 복룡(伏龍) : 인간수뢰

일본의 광신적인 준비태세로 미루어 본토결전이 벌어진다면 전무후무한 대량살상이 벌어질 것임은 명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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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운폴 작전(Operation Downfall) -

4월 12일, 미국 육군참모총장 마샬 장군은 필리핀의 맥아더에게 아래와 같은 전보를 보냈다.

현재 통합참모본부내에서 향후의 전략 수립에 있어 두가지 의견이 대립되고 있다. 

첫째, 일본 본토 공격에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며 해군과 공군에 의한 봉쇄와 폭격이 더 오래 이루어져야한다. 또한 이를 위해 중국의 산동반도나 한국, 혹은 쓰시마섬에 발판을 만드는 작전이 필요하다라는 주장.

둘째, 불필요한 준비과정 없이 병력의 준비가 되는대로 직접 일본 본토를 공격해야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소련의 빠른 참전이 필요하다라는 의견

귀하의 견해를 회신해달라.


4월 20일, 맥아더는 아래와 같은 회신을 보냈다.

전쟁의 조기 종결을 위해서는 일본본토 공격이 필수 불가결하며, 이를 위해서는 먼저 큐슈를 공격하여 혼슈에서의 결전을 엄호하기 위한 공군 기지를 확보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큐슈 공격의 예정일은 11월 1일이 적당하다.


맥아더의 제안은 통합참모본부 내부에서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참모본부 의장인 윌리엄 라이(William Daniel Leahy) 제독은 "이미 괴멸되고있는 일본에 대해 상륙작전을 수행할 필요가 없다."라는 의견을 제시하였고, 해군 작전부장 어네스트 킹 제독도 "지상 병력 투입에 의한 본토 침공보다 해군의 해상 봉쇄가 효과적"이라고 주장하였다. 

전략공군 총사령관 아놀드 원수 또한 "일본 본토에의 전략폭격과 해상 봉쇄가 더 효과적"이라는 신중론을 펼쳤다.

이들은 그동안 미군이 벌인 상륙작전에서의 인명 손실을 볼때 일본 본토 상륙전에서는 더욱 심각한 수준의 희생자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였던 것이다.
 
 
반면 "일본 본토 침공으로 세계대전을 조기에 종결해야한다."는 맥아더 원수의 주장은 육군참모총장 마샬 원수의 확고한 지지를 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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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5일, 통합참모본부는 논란끝에 맥아더의 제안을 최종 승인하고, 그를 일본 본토 침공의 최고책임자로 내정하였다.


맥아더는 이 계획 전체를 몰락작전(Operation Downfall)이라는 암호명으로 정하고, 하부 작전의 1단계를 Operation Olympic(큐슈 상륙작전), 이어질 2단계 작전을 Operation Coronet(혼슈 상륙작전)으로 명명하였다.

준비 단계로 미군은 열도 전체에 대해서 철저한 해상봉쇄를 실시하고 농경지에 약제를 살포하여 식량난을 일으키며, 지독한 일본의 결전태세에 대응하여 독가스의 사용까지 고려되었다.


올림픽 작전의 실시 예정일은 1945년 11월 1일이며 코로넷 작전의 예정일은 1946년 3월 1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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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픽 작전(Operation Olympic) -
 
올림픽 작전은 큐슈 남부에 상륙하여 코로넷 작전시 동원될 비행장을 확보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었다.

이것은 태평양전쟁 내내 보여준 '육군항공대 항공기의 엄호하에서 작전을 실시한다.'라는 맥아더 특유의 신념이 그대로 드러나는 계획이었다.


작전(X-DAY)은 1945년 11월 1일에 시작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작전을 지원할 해상 부대는 항공 모함 42척과 전함24척, 구축함 400척 이상으로 이루져 있었으며, 상륙 부대는 총 14개 사단에 달하였다.
 
이 병력들은 점령지 오키나와를 경유하여 투입될 예정이었다. 또한 주작전의 기만책으로 10월23 ~ 30일 사이 8만명 병력의 제 9군단을 코치현에 상륙시킨다는 파스텔(Pastel)작전이 구상되어 있었다.

 
올림픽 작전의 실행 주력부대는 제 6군이며, 예하 3개 군단이 각각 미야자키, 오오스미 반도, 사츠마 반도로 상륙하게 되어 있었다. 미군은 공격 병력이 방어군의 3배 이상일 것이라고 추측하였고 오오스미 반도에는 일본군의 방어 시설이 있지만, 미야자키나 사츠마 반도는 방어준비가 허술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총 동원되는 병력은 252,000명의 보병과 87,000명의 해병대로 구성된 16개 사단이며, 유럽 전선의 부대가 투입될 예정은 없었다.
 
제5함대(스프루언스 제독)는 10척의 항공 모함, 16척의 지원 항공 모함으로 상륙 작전에의 근접 지원을 실시하며, 수송선까지 포함한 총 함선의 수는 3,000척에 이르렀다.
 
제3 함대(할지 제독)는 17척의 항공 모함과 8척의 고속 전함에 의해서 기동 공격을 담당했다. 1945년 중순까지 연합군은 1,200기의 전투기가 투입 가능했고 그 수는 시간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었다. 올림픽 작전이 개시될 시점까지 미해군은 22척의 항공 모함, 영국 해군은 10척의 항공 모함을 준비할 예정이었으며, 1,914기의 전투기가 운용 가능했다.
 
올림픽 작전은 큐슈 전체를 점령하는 것이 목표는 아니었다. 남큐슈의 점령으로 이후 코로넷 작전의 전진기지를 만드는 것이 이 작전의 순수한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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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넷 작전(Operation Coronet) -
 
이것은 중부 혼슈 해안으로 상륙하여 최종적으로 일본의 수도인 도쿄를 점령하기 위한 작전이다.

상륙 예정일(Y-DAY)은 1946년 3월 1일이었다. 코로넷 작전에는 예비병력까지 포함하여 총 25개 사단이 동원될 예정이었다.
 
상륙지점은 쇼난 해안과 쿠쥬쿠리로 예정되어 쇼난에는 제 8군, 쿠쥬쿠리에는 유럽에서 이동된 제 1군을 상륙시킬 예정이었다.
 
Y데이 3개월 전부터 함포 사격과 공습으로 예정 지점에 대규모 준비공격을 실시하고, 1946년 3월부터 두 방면의 주력군이 협공하여 10일후 도쿄를 포위하여 전쟁을 끝낸다는 계획이었다.
 


1945년 6월 18일 해리 트루먼 미 대통령이 출석한 가운데 합동참모본부에서 다운폴 작전 진행시 발생할 미군 사상자 숫자가 논의되었다.

육군과 해군의 전문가들이 다양한 예측을 내놓았지만 최소한 25만명의 미군 사상자가 발생하고 전쟁이 16개월 이상 더 연장될 것이라는 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심지어 전사자만 50만명이 발생할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것은 이후 얄타회담에서 트루먼이 소련의 참전을 요구한 이유중 하나가 되었다.
 

어쨌든 작전은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어 1945년 7월 10일부터 미 제 38기동부대는 일본 본토 공습에 나서 도쿄를 공격하였고, 14일에는 홋까이도까지 진출하여 맹공을 퍼부었다.

7월 15일에는 전함 사우스다코타, 인디애나, 메사추세츠가 도쿄에서 북동쪽으로 440km 거리에 위치한 데이코쿠 제철소에 포격을 가했다. 미국의 전함이 일본 본토에 직접 포격을 가하는 상황이 된 것이었다.
 

혼슈 북부와 홋카이도 공격을 마치고 남하한 제 38 기동부대는 7월 24일부터 28일까지 구레 군항을 비롯한 일본 남해안에 맹공을 가하여 전함 이세, 휴가, 하루나 등을 비롯한 수많은 함정들을 격침시켰다.

7월 31일부터 연료보급을 실시한 제38기동부대는 다시 북상하여 8월 9일부터 홋까이도와 한반도, 혼슈 북부를 공격하고 8월 10일부터 도쿄 인근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 태평양 전쟁의 종결 -

1945년 8월 7일 트루먼 대통령은 방송으로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하여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열여섯 시간전 미국 비행기가 일본의 중요한 군사기지인 히로시마에 폭탄 하나를 투하하였다. 이 폭탁은 TNT 2만톤 이상의 위력을 가졌다.

이 폭탄을 갖게된 우리는 이미 지닌 막강한 힘에 새롭고도 혁명적인 파괴력을 추가하였다. 이것은 원자폭탄으로서 우주의 기초를 이루는 힘을 이용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일본이 어떤 도시에 가진 생산기지도 보다 빠르고 완전히 말살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춘 셈이다. 우리는 일본의 조선소, 공장 및 통신시설을 파괴할 것이다.

우리는 일본의 전쟁능력을 완전히 파괴할 의도임을 명백히한다.

지난 7월 28일 포츠담에서 최후통첩을 보낸 것은 일본 국민을 철저한 파괴로부터 구하기 위함이었다.

다음날인 8월 8일, 원자폭탄의 놀라운 위력에 전세계가 놀란 가운데 얄타회담의 합의에 따라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했다.


8월 9일, 두번째 원자폭탄이 나가사키에 투하되었다.


8월 10일, 더이상 버틸 기력을 상실한 일본은 격렬한 내부논쟁 끝에 스위스 정부를 통하여 미국에 포츠담 선언을 수락할 용의가 있음을 전달하였다.

일본정부는 몇주 전 당시 중립관계에 있던 소련 정부에 평화 회복을 알선하여 줄 것을 의뢰한 바 있다. 불행히도 평화를 위한 이 노력이 실패하였으므로 천황폐하의 뜻을 받들어 전쟁으로 인한 이루 말할수 없는 고초를 가급적 신속하게 종식시키려는 노력으로 다음과 같은 결정에 도달하였다.
일본정부는 1945년 7월 26일 미국, 영국과 중국의 수뇌가 포츠담에서 발표하고 후일 소련정부가 서명한 공동선언의 각 조항을 천황 폐하의 국가통치에 관한 대권을 훼손하는 어떠한 요구도 포함되지 않는다는 양해 아래 수락할 용의가 있다. 일본정부는 이 양해 사항이 보증될 것을 충심으로 바라며 이 취지에 대한 명백한 표시가 조속히 이루어지기를 열망한다.


8월 11일, 미국정부는 연합국을 대표하여 다음과 같은 회답을 보냈다.

항복하는 순간부터 일왕 및 일본정부의 국가 통치에 관한 권한은 연합군 최고사령관에게 종속되며 사령관은 항복조항의 이행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조치를 취한다.
일왕은 일본정부 및 대본영에 대하여 포츠담선언의 각 조항을 실시함에 있어 필요한 사항에 서명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며 그 서명을 보증해야한다. 또한 일본의 육해공군 당국과 그 지휘하에 있는 모든 무력집단에 대하여 전투행위를 중지하고 무기를 인도하도록 명령해야 하며, 그밖의 항복조항의 실시를 위해 연합군 최고사령관이 발하는 명령에 따라야 한다.
일본정부는 항복 즉시 포로와 민간 억류자들이 연합국 선박에 최대한 신속하게 승선할 수 있도록 지정된 안전한 장소로 수송하여야한다. 일본의 최종적인 정치형태는 포츠담 선언에 따라 일본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 결정한다. 연합군은 포츠담 선언에서 제시된 모든 사항들의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 일본에 주둔한다.


8월 12일, 트루먼 대통령은 일본정부가 미국의 회신을 검토하는 동안 전략공군의 일본 공격을 중지하도록 명령하였다.

그러나 맥아더 지휘하의 제 5공군과 제 7공군은 계속하여 일본 본토에 맹공을 퍼부었다. 8월 13일에는 할지 제독의 제 3함대 소속 함재기 1,000기가 도쿄에 마지막으로 대공격을 가했다.

1945년 8월 15일, 드디어 일왕은 항복을 선언하였고 태평양전쟁과 제 2차 세계대전은 공식적으로 종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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