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당시 국방차관보로서 프랑스의 참패에 도의적인 책임을 느껴야 마땅할 드골(Charles André Joseph Marie de Gaulle )은 페탱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수상으로 취임한 다음날 영국으로 도피해버렸다.
그리고 처칠의 지시에 따라 "과거 영광스러웠던 군인의 불쌍한 그림자가 허영을 위해 자신의 명예와 조국을 팔았다."라며 페탱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기 시작하였다.
Charles de Gaulle
드골의 발언중 가장 유명한 한마디가 바로 "위대하지 않은 프랑스는 프랑스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드골에 따르면 위대하지 않은 비시정부는 결코 프랑스가 아니었다. 그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위대한 프랑스는 전쟁에서 질수 있는 권리도 항복할 자유도 없었다.
런던에서의 안전한 투쟁에 재미를 붙인 드골은 1940년 6월 19일 프랑스와 독일의 휴전협정이 조인된 직후 라디오에서 아래와 같은 선언을 한다.
2. 페탱 정부는 휴전에 동의하였으며 프랑스 국민을 독일의 노예상태로 전락시켰으므로 불법적인 정부이다.
3. 페탱이 독일과 맺은 휴전협정은 원천무효이다. 이 협정문의 10호는 프랑스 국민들이 독일에 반대하여 무기를 들고 투쟁하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누구를 무엇을 위한 위대한 프랑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들의 무력집단인 레지스탕스 신문에 실린 프로파간다를 보도록 하자.
그가 우리를 살해하기 때문에 그를 살해하라!
자유롭기 위해 그를 살해하라!
반역자를 살해하라!
우리를 비난하고 적을 돕는 자들을 살해하라!
애국자를 체포하는데 공헌한 경찰관을 살해하라!
민병대를 살해하라!
반역의 길을 선택한 그들을 살해하라!
미친 개처럼 때려잡아라!
해충을 죽이듯 박멸하라!
독일군이 프랑스를 떠나자 그즉시 모든 권력을 레지스탕스들이 탈취하였다.
이들이 설치한 인민재판소가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했다. 물론 판사도 변호사도 없었다. 레지스탕스 요원들이 모든것을 결정했다. 재판 내용에 관한 어떠한 기록도.. 심지어 피고인들의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았다.
리옹에서만 14,311명이 체포되고 4,342명이 살해되었으며 290명의 여성이 강간당했다.
부인들은 자기 남편의 애인을 부역자로 몰았고, 혼란을 틈타 약탈과 살해로 미쳐날뛰던 범죄자들은 과거 그들을 괴롭혔던 변호사들과 경찰관을 부역자로 몰아 처단하였다. 매춘부들 또한 부역자로 처단당했다. 심지어 셍-막심이라는 시골 마을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이 비공산주의자 레지스탕스 대원들을 16명이나 죽인 사례까지 발견되었다.
부역자 남편이 살해되고 부인은 강간당한 채 자신의 11살된 아들과 함께 살해되었다. 묶인 사람이 자신의 딸이 12번이나 윤간당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아이는 내팽개쳐진 채 그 어머니가 강간당했다. 부역 혐의자의 눈을 찌르고, 성기가 잘리고 불타는 침대 위에 눕혀졌다.
한 신부는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파야 했고 성기를 총격당한 뒤에 생매장 되었다. 어떤 부역자들은 맨발로 깨진 유리 위를 걸어야 했고, 여성들은 체포자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다리를 벌려야했으며 가슴이 도려내어졌다.
해충을 죽이듯 반역자들을 박멸하라는 증오에 가득찬 선동은 달성되었다.
이것이 바로 드골이 말했던 위대한 프랑스의 참모습이었다.

무고한 사람 열명을 숙청하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명의 스파이를 놓쳐서는 안된다.
- 니콜라이 예조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