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시오니즘이 퍼져나가며 영국 통치하의 팔레스타인에는 유대인들이 지속적으로 이민을 왔다. 이에 아랍인들과 유대인의 분쟁도 차츰 치열해지기 시작했다. 아랍인들은 독립된 팔레스타인 국가를 부정하고 유대인들을 공격했고, 유대인들도 폭력으로 정면 대응했다. 킹 데이비드 호텔에서는 유대인들의 테러로 92명이 사망하기도 한다.
계속되는 테러에 지친 영국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유엔에 넘겼고, 유엔은 유대인과 아랍인을 나누어 독립시킨다는 결정을 내린다. 1948년 5월 14일 드디어 유대인들이 독립국 수립을 선포하자 주변 아랍국 군대들이 일제히 팔레스타인으로 진격했다.

벤구리온과 골다 메이어
신생 이스라엘의 운명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졌다. 전쟁이 벌어지기 직전 텔아비브에서는 유대인 지도자들이 회합을 가졌고, 벤구리온은 현재의 부족한 전력을 토로하였다.
그러나 당시 이들이 무기 구매로 사용할 수 있는 현금은 고작 500만달러에 불과했다. 이에 후일 이스라엘의 수상이 되는 여걸 골다 메이어가 급히 미국으로 건너가 2,500만달러를 조달하는데 성공한다.
텔아비브 근처에서 격추된 이집트군의 스핏파이어 - 영국공군 마크가 그대로 새겨져 있는 점이 이채롭다.
1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자 이스라엘의 상공은 순식간에 이집트군의 스핏파이어가 지배하게 되었다. 이집트에서 물러난 영국군은 자신들이 사용하던 무기를 그대로 이집트군에 넘겨준 것이었다.
그러나 5월 29일 텔아비브로 순조롭게 진격중이던 아랍군은 갑자기 상공으로부터 치열한 공격을 받게된다.
바로 이스라엘이 체코슬로바키아로부터 구입한 BF-109(정확히는 S.199전투기)였다. 체코에는 BF-109를 조립하던 스코다 군수공장이 있었다. 체코가 독립하자 이 공장은 AVIA사로 이름을 바꾸고, 재건된 체코군을 위해 남아있던 설비를 활용하여 Bf109를 재생산하였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총 24기의 BF-109를 구입했는데 격렬한 전쟁중 끝까지 비행 가능한 상태로 남은 것은 5대에 불과했다.

이스라엘군의 BF-109
2차대전중 유럽상공의 왕좌를 놓고 결전을 벌이던 BF-109와 스핏파이어는 전쟁이 끝난후 머나먼 아랍땅에서 다시 공중전을 벌인 것이다.
여담이지만 19년 후에도 이땅에서는 독일제 4호전차를 사용한 시리아와 미국제 셔먼을 사용한 이스라엘간에 6일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무고한 사람 열명을 숙청하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명의 스파이를 놓쳐서는 안된다.
- 니콜라이 예조프 -


연합국 무기와 추축국 무기의 결전이 중동에서 이렇게 펼쳐지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