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권력의 향기에 약한 법이다. 따라서 국가권력의 결정체인 독재자에게는 언제나 여자들이 줄줄 따르게 마련이다. 가령 히틀러는 여색을 밝히는 타입이 아니었음에도 여자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에바 브라운은 총애를 독차지하기 위해 벌거벗은 몸으로 이상야릇한 포즈를 취한 비디오를 촬영하여 총통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절대왕정 시절 유럽에서는 자신의 부인을 왕에게 상납하는 것이 권력으로 가는 지름길중 하나였다. 부인들 또한 자신의 몸이 선물로 진상되는 것을 싫어한 것 같지는 않다.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14세나 잉글랜드의 헨리8세는 주변 신하들의 부인을 통해 여러명의 사생아를 두었다.
그렇다면 과거 절대군주들보다 더욱 막강한 권세를 누린 스탈린의 경우는 어떨까?
적절한 사례가 있다. 몰로토프와 그녀의 아내인 젬추지나 그리고 스탈린간의 셰익스피어적인 삼각관계가 그것이다.
- 스탈린과 젬추지나 -
스탈린의 심복 몰로토프는 까자끄 마을 출신의 가난한 유태인 처녀 파울리나 세묘노브나 젬추지나(Polina Zhemchuzhina, Полина Семеновна Жемчужина)와 결혼했다. 그녀는 활동적이고 정치적인 성향이 강해 스탈린의 취향에 맞아떨어지는 여성은 아니었다. 문제는 반대로 여자들이 스탈린에게 손쉽게 빠져든다는 점에 있었다.
미남 스탈린 - 1902년
몰로토프의 회고록에 따르면 그는 유형지에서 고생할 당시 스탈린과 편지를 주고받다 친구사이가 되었다. 이 둘은 같은 집에서 살게 되었는데 스딸은 몰로토프의 애인 마루샤를 가로채버렸다. 젊은 시절의 서기장은 나름대로 미남(?)이라 따르는 여자들이 많았는데, 그는 사양치 않고 이들중 상당수와 성관계를 맺었던 것 같다. 몰로토프는 스탈린이 모든 면에서 자신보다 우월하다는 점을 인정했기에 그의 부하로 지내는 것에는 별로 불만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여자를 가로채는 행위에는 꽤 감정을 가졌던 것 같다.
오랜 시간이 지난후 서기장이 된 스탈린은 여전히 짬이 날 때마다 몰로토프의 집에 놀러가서 시간을 보냈다.
스탈린의 아내인 나데즈다 알릴루예바가 자살하자 크레믈린의 퍼스트 레이디 자리는 공석이 되었다. 이때 젬추지나가 그자리를 조용히 차지하였다. 스탈린이 홀아비로 지내는 동안 그가 필요로 하는 시기에는 언제나 젬추지나가 곁에 있었다. 그녀는 스탈린의 가정살림과 자녀들의 교육까지 돌보았다. 세월이 흘러 젬추지나는 소비에트 연방의 인민위원이 되었고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담당하며 스탈린의 대식구를 거두었다. 그녀는 스탈린의 기분을 정확히 파악하여 어디서 물러서야 하며 언제 한걸음 더 나아가야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젬추지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나이가 있었다. 내무인민위원 베리아였다. 그는 NKVD의 두목이 된 직후부터 젬추지나에 불리한 온갖 자료를 빈틈없이 수집하고 있었다.
베리아
2차대전중 소련 정보국 내에 반파시스트 위원회(Jewish Anti-Fascist Committee) 라 불리는 유대인들의 모임이 결성되었다. 이들의 임무는 외부에서 전쟁물자를 구입하여 소련군에 공급하고, 서방의 유대인 커뮤니티를 통해 프로파간다를 하는 것이었다. 이 조직의 위원장은 중앙위원회 멤버이자 프로핀테른 의장이던 솔로몬 로조프스키(Solomon Lozovsky)가 맡고 있었다. 젬추지나도 여기 참가했다. 로조프스키는 서방측에 매우 잘 알려져 있는 인물로, 기자들 사이에서는 소련 정부의 공식 대변인으로 통했다.
우크라이나가 탈환되었을 때 로조프스키가 주동이 되어 새로운 신문의 발간을 기획했다. 그러던 어느날 스탈린에게 '크림 반도의 타타르족을 모두 추방한 뒤 그곳에 유대인으로 구성된 공화국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 실린 신문이 배달되었다. 스탈린은 이 제안이 국제 시오니스트들의 음모라고 생각했다. 이들이 크림반도를 소비에트 연방에서 제외시키려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궁극적으로 시오니스트들이 그곳에 미제국주의의 전초 기지를 마련하여 소련 체제를 위협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라고 판단했다. 스탈린은 결국 불안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광적인 숙청을 단행하였다. 로조프스키와 위원회의 간부들은 즉각 체포되었다.
베리아는 이제 때가 되었음을 알아챘다. 그는 그동안 수집한 각종 증거들을 스탈린에게 들이대어 젬추지나를 체포하도록 했다. 그녀는 심문을 받았으나 곧 풀려났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베리아의 공격이 시작되었음을 알아챈 그녀는 가족에 피해를 입힐까 두려워하며 스스로 집을 떠났다. 이후 8개월 동안 젬추지나는 가족들과 일체 접촉을 끊고 지냈다.
몰로토프와 젬추지나
그녀는 2년 동안 형무소에서 복역한 후 다시 3년간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지냈다. 아내가 갇혀있는 동안 베리아는 정치국 회의에서 나를 만날 때마다 내 귀에 조그마한 목소리로 "파울리나 젬추지나는 아직 살아있다구!"라고 야유를 했다.
- 몰로토프 -
젬추지나는 가족이 연루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자신의 남매들이 사는 집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체포될 때 남매들까지 함께 체포되었는데 여동생은 그만 수감중에 사망하고 말았다.
한편 몰로토프는 크레믈린에서 쫓겨나지도 않았고 정치국원 자리에서 밀려나지도 않았다. 그러나 모든 권력이 스탈린과 베리아의 손에 들어있는 이상 감히 서기장의 결정에 반론이나 의문을 제기할 수는 없었다. 심지어 그것이 자신의 아내에 관련된 문제여도 말이다. 젬추지나를 중앙위원회에서 축출하는 결의안에 몰로토프는 기권했다. 그러자 스탈린은 그를 흉악한 인간이라고 매도하기 시작했다.
몇년의 시간이 지나 시베리아의 강제노동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던 젬추지나는 1953년 1월 모스크바의 루비안카로 소환되었다. 이른바 '시오니스트 의사들의 음모'에 연루된 혐의를 조사하기 위함이었다. 그녀는 1953년 2월 내내 조사에 시달렸다. 그러나 3월 2일 시간이 멈춘듯 갑자기 모든 것이 중단되었다. 스탈린이 쓰러진 것이다.
1953년 3월 9일 스탈린의 장례식이 치뤄졌다. 이날은 마침 몰로토프의 생일이었는데 흐루시초프와 말렌코프는 그에게 생일선물로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다. 몰로토프는 "아내가 돌아왔으면 좋겠다."라는 바램을 나타냈고 젬추지나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녀가 체포되었을 때 모든 사람들 - 심지어 남편조차도 감히 그녀가 살아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치 못했다. 그러나 젬추지나는 5년간의 수용소 생활에서 살아남았고 이후에도 17년의 여생을 더 살았다.
이런 고초를 겪었음에도 스탈린에 대한 젬추지나의 애정과 존경은 변함없었다. 그녀는 스탈린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그 자리에서 기절을 했다. 1950년대 후반 흐루시초프를 중심으로 '스탈린 격하운동'이 벌어졌을 때는 스탈린의 딸인 스베틀라나를 다음과 같은 말로 위로하였다.
아버지가 나라안의 모든 배신자들을 분쇄했기 때문에 전쟁이 났을때 당과 인민이 한 덩어리가 되어 싸울수 있었지.
아버지에 대한 이런 변함없는 충성심을 스베틀라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젬추지나는 스탈린의 박해를 운명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일까?후일 젬추지나의 심문기록중 조그마한 메모지가 발견되었다. 과연 이 절절한 심정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당신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내 삶은 지탱될 수 있었고, 또 아직도 당신이 고통에 찢기고 남은 내 가슴과 당신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남김없이 원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내 삶은 이어졌습니다.
# 부록. 스딸린을 생각하라!
만약 당신의 작업이 어려움에 부딪히거나 혹은 자신의 능력이 의심스럽거든 그 분을 생각하시요! 스띨린을...
그러면 당신은 확신을 얻게될 것이오.
만약 당신이 쉬어서는 안될때 피곤함을 느끼거든 그 분을 생각하시오. 스딸린을..
그러면 일이 수월해질 것이오.
만약 당신이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자 하거든 그 분을 생각하시오. 스딸린을...
그러면 당신은 옳은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오.
스딸린이 말한것은 인민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인민들이 말한 것은 스딸린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오.
- 1950년 프라우다의 한 기자 -

무고한 사람 열명을 숙청하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명의 스파이를 놓쳐서는 안된다.
- 니콜라이 예조프 -
여기서 궁금한 게 있는데요. 독일군은 진짜 러시아땅에 들어간 적은 있나요?
벨라루시나 우크라이나가 아닌 현재의 러시아땅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스탈린그라드는 러시아네요.
나폴레옹처럼 모스크바까지 간 것도 아니고 고작 변방에서 싸우다가 저렇게 베를린을
점령 당하고 여자들마저 흉한 꼴을 당하면 억울하잖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