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9일은 세계공정무역의 날이었다. 2002년부터 매년 5월 둘째주 토요일을 공정무역의 날로 정했다고 한다. 간략히 설명하자면 공정무역이란 선진국에 부당하게 착취당하는 개발도상국 생산자들에게 정당한(더높은) 가격을 지불하여 상품을 구매해주자는 운동이다.
그러나 세상은 누군가의 숭고한 이상대로 흘러가는 법이 드물다. 무엇이 공정한지 부당한지 여부에 대한 판단도 불확실한 상태에서 공정무역이라는 말을 들먹이는 자체가 올바른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공급자에게 더 높은 가격을 쳐주는 것이 공정하다는 말은 현재의 가격이 불공정하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이들이 말하는 공정한 가격이란 무엇일까?

마르크스는 모든 재화의 잉여가치가 노동자에 의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어떤 상품에 이윤이 발생하는 것은 상품의 유통 과정이 아니라 생산단계에 있다고 정의한 것이다. 결국 이윤은 생산자(노동자)에게 돌아가야 마땅함데도, 자본가들은 노동에서 발생하는 잉여가치를 착취하여 자신의 뱃속을 채우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소비자들이 노동자를 착취한다는 개념은 제시하지 않았다. 이윤은 상품의 공급자들(가령 스타벅스와 원두커피 농가) 간에 공정하게 나눠져야하는 것이지 소비자들이 더 높은 가격을 부담해서 생산자를 보조하는 것은 마르크스에게 새로운 착취의 수단으로 보일 것이다. 따라서 공정무역 개념은 마르크스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주류 경제학은 어떤가? 애당초 주류경제학에서는 공정한 가격이란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가격은 공급과 수요가 만나는 균형점에서 결정될 뿐이다. 수요가 늘어나면 가격이 오르고 공급이 많아지면 가격이 떨어진다. 어떤 상품의 가격이 오르면 자연히 공급도 늘어나는데 이는 다시 가격을 낮추는 요인이 된다. 결국 언제나 가격은 균형을 맞추게 된다.
공정무역이란 상품의 가격을 올리는 행위이므로 필연적으로 공급의 증가를 부르게 된다. 결국 공정무역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수요와 공급 간의 간극 - 그만큼의 커피 원두를 사람들의 입이 아니라 땅속에 묻어버려야만 할 것이다. 채소값이 폭락하면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현재 공정무역으로 거래되는 커피원두는 전체의 0.1% 정도라고 한다. 이정도 수량은 폼내기 좋아하는 현시적 소비자들에 의해 충분히 소화가능하다. 그러나 공정무역의 비중이 10%, 20%로 늘어나면 결국 늘어나는 공급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원두를 폐기하지 않는다면 공정무역 커피와 일반 커피간의 가격차가 어마어마하게 벌어져 공급자간의 심각한 불평등을 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배추농가를 대상으로 실험해보자.
공정무역을 신봉하는 김치공장주 일동이 납품되는 배추값을 일괄적으로 20% 올려주기로 결의했다.
당연히 배추농가들의 소득은 뛰어올랐다. 이를본 무우농가들은 무우대신 배추를 파종하기로 결정한다.
다음해 배추의 공급은 50% 증가했다. 공장주들은 다시 20%의 가격을 올려서 배추를 구매하고 김치를 생산했다.
그러나 이들이 만든 김치의 절반이상이 팔리지 않은 상태로 창고에서 썩어나게 되었다.
결국 공정무역이라는 말은 사라진다.
전세계의 커피생산농가중 0.1%만이 더 높은 가격을 받는 것이 과연 공정할까? 모든 생산자들이 동일하게 가격을 올려받는 것은 불가능함이 자명하다. 결국 거대기업의 이윤극대화를 위한 추악한 마케팅 수단이 공정무역이라는 탈을 쓰고 소비자들의 호주머니를 열심히 도둑질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실태임에 틀림없다.

무고한 사람 열명을 숙청하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명의 스파이를 놓쳐서는 안된다.
- 니콜라이 예조프 -
지금의 공정무역이란 개념은 사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느낌이 강하죠.
지금의 왜곡된 가격 시스템은 왜곡된 유통구조에 기인한다고 믿는 저로서는 중간 유통 과정을 투명히 하고 의도적으로 매점매석을 하는 비양심 세력 척결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현실적 방법을 찾기란 쉽지 않네요.
또한 공정무역이라는 것의 품목들도 간단한 수공예품이나 지역에서 생산된 기호성 식품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한 것은 소비자의 취향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 것이지요. 그런 소비자의 선택이 제품 가격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가령 같은 청바지라도 리바이스 딱지가 붙냐 안붙냐의 가치는 달라집니다. 마찬가지로 공정무역상품이라는 딱지도 하나의 브랜드 입니다. 리바이스 입고 좋은 청바지 입었다고 좋아하는 것과 공정무역상품 사먹고 좋은 일 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다 가격에 포함되 있는 것이지요.
이 공정무역이라는 것이 가난이 대물림 되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안전망은 만들어 주자는 취지로 소소하게 시작된 운동이죠. 쉽게말해 가격을 더 깍을 수도 있는데 너도 먹고 살아야 되니깐 생산투자 비용을 고려한 최소한의 가격선을 유지해 준다는 생각입니다. 생산은 계속하고 판매는 열심히 하는데 빛만 지는 경우를 벗어나자는 것이지요.
이런한 공정무역은 보수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는 보조금이라고 비난받고, 좌파라는 분들 중에서도 실제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난을 하는 분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생소한 개념 같군요. 확실한 것은 공정무역의 수해를 입은 분들이 아직은 소수라는 것이고, 그 분들이 최소한의 삶을 영유한다면 그것이 사회적으로 소모되는 비용을 줄인다는 것입니다.
공정무역주의자들이 일궈낸 업적(?)중 가장 자랑할만한 것이 아마 후진국 어린이 노동자 문제일 것입니다. 세계시장에 저렴하게 풀리는 축구공이나 카펫등의 상품이 후진국 아동들을 착취해서 생산한 물품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들의 주장대로 어린이 노동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물론 어린이들중 선택받은 일부는 선진국 자선가들의 도움을 받아 학교에 다니며 친구들과 뛰어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기존의 카펫공장보다 더욱 열악한 산업전선에.. 심지어는 아동매춘에 뛰어들어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선의로 행한 일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는것은 아니라는 살아있는 증거이자 현실입니다.
돈은 경제시스템안에서 돌기시작하면 그 규모가 커집니다. 시장에 1000원을 투입했다고하면 돌다보면 시장에는 2000원이 생겨나있고, 또 있다보면 3천원이 생겨나있고 그런겁니다. 그런데 이에 중심이 되는 부분은 이 돈과 교환될 재화가 있어야한다는 점이고, 이 재화를 생산하는 쪽이 부실하게되면 이 시스템의 순환에 악영향이 끼쳐지게 됩니다. 생산레벨을 고사 시킬 수는 없기 때문에 정부차원의 지출이 계속되게 되고, 결국 이 돈도 따지고보면 공급자에게 흘러들어가는 상황이 되는 것이지요. 결국 소비자가 생산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은 이 순환구조에 건강성을 불어넣고, '불공정한 분배'로 인한 역기능의 무한루프를 줄일 수 있습니다. 물론, 방법론적인 것에 따라 과정상에 혼란이나 어려움은 올 수 있겠지요. 흠.
생산비를 건지지 못하면서도 생산을 하는 경우는 우리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생산비는 건집니다. 그런데, 이는 생산한 물건을 공급자에게 넘김으로해서 건지는게 아니라 국고 지원을 받으면서 생기는게 있어 가능한 경우입니다. 문제는 이 국고지원.. 즉 세금으로 살려놓는다는 측면입니다. 이는 결국 소비자인 우리가 이중으로 금전지출을 하게된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걸 함부로 커트 할 수도 없는 이유는 이제 정말 이 방법, 저 방법 다 써도 생산비 못건지는 상황이 생기면 다 팔고 손 털고 나가는 경우가 생길수 있기 때문이거나, 혹은 다 빼앗기고 나앉는 사람들이 양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농민들중에(전부던가?) 기름도 면세유를 지급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이를 몰래 주유소에 팔기도 하지요. 즉,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부분들을 전용하면서 얻는 이득까지 포함해서 생산비를 건지는 경우가 없다고 할 수 없다는 점이지요. 제 주위에서도 몇명한테 이야기 들을 정도이니 그야말로 공공연한 비밀정도가 되겠지요.
그런데 유통과정에서 상인이 챙기는 마진은 사실 어쩔수 없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중세 유럽의 장원사회에서는 일정한 지역내에서 모든 상품이 자급자족되었지요. 이시절의 상품가격은 그 상품이 가지는 본원적 가치에 약간의 마진이 추가되는 단순한 구조였을 겁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지구 끝에서 끝으로 재화와 용역이 끊임없이 운반됩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석유보다 물이 비싸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물보다 석유가 더 비싸지요. 세계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어떤 재화의 본원적 가치보다는 그 재화를 이동시킴으로써 얻어지는 유통과정의 부가가치가 더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연결되는 유통구조 - 손쉽게 택배를 생각해봅시다. 이 경우 중간에서 누군가 챙기는 마진은 없을지 모르지만 물류비 자체가 매우 비쌉니다. 하지만 상인들이 대규모로 상품을 거래할 경우 - 물론 이들이 중간마진은 챙기겠지만 물류비 자체는 규모의 경제 덕분에 훨씬 저렴해집니다. 결국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직거래를 통해 생산자에게 더 높은 이윤을 보장해 준다는 것은 적어도 국제무역이 이루어지는 상품에 한해서는 발생되기 힘든 현상이라고 사료됩니다.
그 틀 속에서 새롭고 다양한 거래 속에 직거래 방식 - 생산자와 소비자 생협형태의 거래 방식과 비슷한 방식의 틀 속에서 국제무역에서도 공정무역이 자리잡고 있는데 재화의 생산방식과 거래방식이 국제간의 거래이다 보니 거대해 지거나 자본의 착취가 생성되는 것이 필연적으로 형성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피해들을 생산노동자들이 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지난 과정의 빈곤의 굴레에서는 조금은 벗어낫다고는 하지만 그러인한 자본- 노동의 착취 구조는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공정무역의 커피를 생산하는 생산자 들은 그러한 틀 안에서 노동자로 갇히게 되는 이중적 구조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한 형태의 거래 방식을 취한 공정무역의 제품들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착한 상품으로 변모해 소비자들을 이중적으로 착취하는 높은 가격의 구매를 요구하는 형태의 상품으로 자리잡고 있는 현실 입니다.
직거래 방식의 가장 큰 장점은 중간 유통마진을 줄임으로서 소비자에게 보다 질 좋고 싼 가격으로 판매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품질을 검증되지 않는 상품들이 다양한 형태의 인증마크로 비싸게 팔리고 있습니다.
위 에서 수공예 제품을 예를 들었는데 공정무역 상품의 경우 가장 활발히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부분 중에 하나라고 봅니다. 가난한 생산자들은 판매에 대해 힘이 들기에 자신들이 생산한 제품들을 조금이라도 제 값을 받기위해 노력을 하지만 언제나 자본이 정해놓은 가격에 자신의 노동의 감가를 고통시켜야 합니다. 이러한 생산자 공동체에서 만든 제품들 (특히 자본의 방식에서 촌티나고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하여 아직 자본의 손때가 안 묻었닥고 할까? - 이윤 창출이 된 다면 무지막지하게 수입해서 풀어놓겠죠) 그들의 건강한 삶의 공동체를 지킬 수 있는 유통이 직접적으로 이루어져서 자본의 시장과 겨루어야 하는데 언제나 시장에서 외면 당하기 때문에 착한 소비자들과의 만남으로만 머무르고 있습니다.
지금의 자본의 정한 가격 보다 조금 더 주고 사서 시장의 가격보다 조금 싸게 판매가 된다면 금상첨화겠지요.
이것을 조금이라도 균열 시킬 수 있는 방식- 자본주의 물류 시스템을 이용하는 방식 중에 물물교환 방식이 있습니다.
저희 단체에서 작년부터 작게나마 시작해 아직은 초기 단계라 이렇다고 말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현재 국내에서 이루어지는 공정무역의 거래 방식과 조금은 다른 형태이기에 상당히 어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논쟁이나 토론이 활발히 이루어져서 현재 국내 공정무역 시장에도 활력을 주기를 바라고 또한 다름대로 어려운 과정에서 하고 있는 공정무역 상품들의 소비를 촉진시키려는 움직임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 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까요. 소비자들에게 가격을 올릴 것도 없이 공급자가 자신의 이윤을 줄여서 노동자에게 준다면 공정가격은 가능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