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62는 세계 최초로 활강포를 탑재한 실용 전차이다.

세계의 모든 총과 대포는 강선포(rifle-bore)와 활강포(smooth-bore)로 나뉜다.

1차 세계 대전에서 전차가 처음 등장한 이래로, 오랜 기간 전차포는 강선포만 사용되어왔다.

강선포는 포신 내부에 강선을 새겨넣어서 탄이 회전하도록 하는데, 여러 종류의 탄을 사용할 수 있고, 일정한 탄도를 얻어낼 수 있다는 유리한 점이 있지만, 
포의 마모가 심해서 활강포의 포신보다는 수명이 짧고 철갑탄을 사용하기 어려웠다.

더욱 큰 문제는 동일한 운동 에너지에서 더 높은 관통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포탄이 얇고  길어 져야 하는데,  포탄의  회전만으로는 만족스러운 안정성을 유지하기가 점점 어려워 진다는 점이었다.


1950년대부터 구소련은 강선포의 문제를 개선한 날개안정분리철갑탄(APFSDS;Armor Piercing Fin Stabilized Discarding Sabot)과 함께 활강포를 개발하기 시작하였고, 드디어 1961년 115㎜ 활강포 U-5TS를 장비한 T-62가 개발되면서 활강포 전차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T-55

구소련에서 100 mm포를 탑재한 T-54를 실용화시킨 이후, 서방은 전차 화력의 열세를 뒤집기 위한 연구 개발에 몰두하였다.

그 결과 1950년대말에 영국 빅커스사는 105 mm전차포 L7을 완성하였고, 독일 레오파드와 미국의 M60 등 신형 전차에 탑재되어 소련 전차에 대항하게 되었다. 우리 K-1전차에도 L-7이 사용되었다.

서방의 도전에 대한 응전으로 소련은 1950년대부터 기존의 강선포를 대체하여, 긴 사정거리와 큰 장갑 관통력을 가진 APFSDS탄과 115mm 활강포의 개발에 착수하였다.

50년대에 개발된 T-54/55에도 실험용으로 100mm 활강포가 장착된 적이 있었지만, 실제 채용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APFSDS탄의 날개가 측면에서 부는 바람에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이었다.

바람의 영향을 받는 것은 활강포의 치명적인 단점으로, 미래의 서방 활강포는 센서를 사용하여 바람의 영향을 보정해주게 된다. 

반면 당시 소련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음에도 115mm 활강포 장착 전차를 개발한 이유는 서방의 표준 전차포인 105mm/L51의  L-7/M-68에 비해 T-54/55의 100mm 전차포 화력이 너무 뒤떨어지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T-62는 1,500m 이상의 거리에서는 탄착군이 너무 넓게 형성되어 사격의 정밀도가 떨어지게 된다.


어쨌든 이 신형 활강포를 탑재한 전차를 최대한 빨리 실용화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 소련은, 1957년부터 제183 공장 설계국에서 알렉산더 모로조프 기사를 중심으로  하여  T-55를 베이스로 한 신형 전차의 개발에 착수하였다.

이 전차가 1961년 T-62 전차로 제식 채용되었다.



T-62의 포탑은 기존의 T-54/55보다 더 원형에 가까운 형상을 가진다. 마치 밥사발을 뒤집어 놓은 듯한 작은 포탑에, 길이가 6.325m나 되는 115 mm 활강포가 쑥 빠져나와 있다.

여담으로 이 전차는 개발 당시부터 차체의 높이가 정해져 있었다고 하는데, 따라서 승무원 공간은 아주 좁아서, 키가 163cm를 넘는 병사는 전차병이 될 수 없었다고 한다.


115 mm활강포 U-5 TS는 PAFSDS탄을 포구 초속 1,680 m/s로 발사하여, 사정거리 1,000 m의 목표물에 대해 330mm의 장갑 관통력을 자랑하고 있다.

이것은 T-54/55가 탑재하는 100 mm포의 1.5배 이상의 위력이다. 또한 HEAT탄을 사용할 때에도 포탄이 회전하지 않기 때문에 메탈 제트가 한 점에 집중되어 보다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또한 U-5 TS는 550mm의 관통력을 자랑하는 9M117 대전차 미사일도 발사할 수 있었다.


차체는 기존의 T-54/55와 거의 같지만, 115 mm포탄이 100 mm포탄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60cm정도 차체를 연장하여 포탑링 후부에서부터 엔진룸 격벽까지의 공간에 새롭게 포탄 21발을 수용할 수 있는 탄약고를 마련하였다.

차체의 연장에 따라, 후부 로드휠의 배치 간격이 넓어진 점도 T-54/55와의 차이점이다.



그리고 T-62는 냉전이 절정에 달했을 때 개발된 만큼, 핵전쟁에 대비하여 화생방 상황하에서 승무원을 완벽하게 보호할 수 있다.

탑재 엔진은 T-55의 것과 같지만, 구동 장치의 개량으로 기동성은 약간 향상되었다.


T-62가 서방에 최초로 공개된 것은 1965년 5월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벌어진 '대 독일 승전 20주년 기념 군사 퍼레이드'때였다.

서방에서는 아직 한창 개발중이던 활강포를 소련이 재빨리 실용화하고 있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렇지만 1973년 발생한 제 4차 중동 전쟁에서 이집트와 시리아군이 장비한 T-62가 이스라엘군에 다수 격파, 노획 되어 비밀이 밝혀졌다.

우선 T-62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되던 115 mm 활강포는 사격 통제 시스템이 2차 대전 수준의 원시적인 것이었고, APFSDS탄도 가공 정밀도가 낮아 사정거리 1,500 m이상에서는 현저하게 명중율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포탑 내부는 거주성이 나빠서 숙련된 승무원들도 분당 4발 정도의 발사 속도밖에 내지 못하여, 집단적인 전차 전투에 있어서 서방 전차의 3배 이상 수적 우세를 확보하지 않는 한, 대등하게 싸울 수 없을 것이라고 평가되었다. 



가령 포탑 내부 바스켓이 채용되지 않아서 장전수는 포탑의 회전과 함께 몸을 돌려야만 했고(돌리지 않으면 구조물에 깔릴 수 있음) 토션바의 성능이 좋지 않아 차체의 진동은 아주 심했으며..  너무 좁은 내부 구조는 승무원들에게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이처럼 혹독한 평가를 받은 T-62였지만, 제 1차 체첸 분쟁에서는 의외로 호평을 받았다.

신형 T-80이 구조상의 약점으로 인해 손쉽게 격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T-62는 지뢰나 RPG의 공격을 받아도 포탄이 유폭하지 않았기 때문에 뜻밖으로 강한 생존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북한은 구소련으로부터 T-62를 수입 함과 동시에 라이센스 생산을 행하여, '천마호'라고 부르는 독자적 모델을 개발하였다. 천마호의 구체적인 생산대수는 불분명하지만 1,800량 전후를 보유하고 있다고 짐작되고 있다.

2001년 러시아 옴스크 전차 공장을 시찰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러시아에 신형 T-90의 공급을 요청했지만 거절 당했다고 한다.

북한은 이때부터 천마호를 베이스로 T-90에 상당한 전차 개발을 시작하여 2002년에 완성했다고 하는데 아직 확실히 밝혀진 정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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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원 -

- 무게 40 tonnes
- 길이 6.63 m
- 너비 3.30 m
- 높이 2.40 m
- 승무원 4명 (commander, driver, gunner, loader)

- 장갑  240 mm 
- 주포 115 mm smoothbore gun U-5TS
- 부무장 armament 7.62 mm PKMT machine gun in coaxial mount
- 엔진 diesel model V-55 580 hp (463 kW)
- Power/weight 14.5 hp/tonne
- Suspension torsion bar
- 작전 반경 450 km, 650 km with extra tanks
- 최고 속도 50 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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