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바로사 작전이 시작되기 직전까지도 소련의 프로파간다는 쉴새없이 영국 제국주의자들과 그들의 용병인 드골에 대해 악담을 퍼부어대고 있었다. 그러나 독소전이 발발하자 공산주의자들의 태도는 순식간에 180도로 돌변하였다. 처칠과 드골에게 온갖 욕설을 퍼붓던 방송들은 독일군이 국경을 넘자 불과 몇시간만에 이들에게 더할나위없는 찬사를 바치기 시작한 것이다.
히틀러와 스탈린간에 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마다가스카르에서 들은 드골은 재빨리 런던의 대표부에 훈령을 보냈다.
양측은 곧 협상에 들어갔고 9월 28일, 소련은 기존에 국교를 맺고 있던 비시프랑스를 대신하여 자유프랑스를 공식 인정하였다.
1945년이 되자 히틀러가 패배할 것이라는 점은 명확해졌다. 그러나 연합국 수뇌부들은 폴란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놓고 골치아픈 논쟁에 빠져들었다. 당시 폴란드에는 두개의 정부가 있었는데 하나는 친서방적인 런던의 망명정부였으며, 다른 하나는 스탈린의 꼭두각시인 루블린 임시정부였다.
스탈린은 폴란드가 여러차례에 걸쳐 독일의 소련 공격을 위한 발판이 되었으므로 이곳에 괴뢰정부를 수립하는 것이 국가 안보에 필수불가결하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Stalin
한편 이 시점에서 드골에게는 아무런 물리력도 없었다. 그러나 그의 견해는 곧 전후 프랑스의 입장이 될 것이며, 서방 세계에서 무시하지 못할 발언권을 행사하리라는 점은 틀림없었다. 따라서 스탈린은 루블린 괴뢰정부에 대하여 아쉬운 소리를 하기위해 그를 모스크바로 불러들였다.
아래는 이 만남에 대한 드골의 회상인데, 스탈린의 협상 방식과 성격을 알수 있는 대단히 훌륭한 자료이다.
스탈린은 우리들의 손을 잡아 만찬장으로 이끌었다. 식탁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호화로웠으며 다양한 요리들은 놀랄만했다. 대원수는 내 옆에 앉아 대수롭지 않은 것들을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각 전선에서 진행중인 작전, 우리가 각각의 직무 속에서 보내는 생활들, 적국이나 연합국 수뇌들에 대한 평가 등이 테마였다. 그의 이야기는 항상 직접적이었다.
스탈린은 여러가지 요리들을 잔뜩 먹고 크리미아 포도주를 들이키고는 새 병을 집어들었다. 반면 식탁에 둘러앉은 러시아인들은 잔뜩 웅크린 모습으로 스탈린의 안색을 주의깊게 살피고 있었다. 건배를 할 차례가 오자 스탈린은 뜻밖의 장면을 연출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우선 프랑스와 나에 대해 존경의 뜻을 표명하였다. 나 역시 그와 소련을 존경한다는 뜻을 나타냈다. 이어서 스탈린은 미국과 루즈벨트에 대하여, 영국과 처칠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스탈린은 그곳에 있던 모든 프랑스인에 대해 한사람 한사람씩 차례로 경의를 표했다.
의례적 인사가 끝나자 스탈린은 다시 30번이나 기립하며 출석한 러시아인들의 건강을 축하하고 잔을 비웠다. 몰로토프, 베리아, 불가닌, 흐루시초프, 미코얀, 카가노비치 등이 지명을 받았다. 대원수는 그들 하나하나에 대해 장점과 책임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스탈린은 항상 소련의 강대함을 자랑하였다.
"보로프! 자네의 건강을 위하여! 자네야말로 우리의 포탄을 전장에 펼쳐놓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 그 포탄의 힘으로 적은 하나도 남김없이 분쇄될 것이다. 전진하라! 자네의 대포를 위해서 용감하라!" "쿠즈네초프 제독! 우리 함대의 전모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인내하라! 언젠가 우리는 세계 바다들을 제패할 것이다!"
그러나 스탈린은 때때로 찬사에 위협을 섞기도 했다. 그는 공군 참모총장인 노비코프에게는 다음과 같이 엄포를 놓았다. "우리나라의 비행기를 사용하는 것은 자네일세. 만일 서투르게 사용한다면 어떤 일이 자네를 기다리고 있는지 알겠지?"
스탈린은 발언이 끝나면 지명된 사람에게 다가오도록 짧게 명령했다. 지명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재빨리 그에게 달려간 후 조용히 앉아있는 다른 소련인들의 눈길을 받으며 대원수와 건배를 나누었다.
한판의 희극같은 만찬이 끝나자 스탈린과 드골은 살롱으로 돌아갔다. 살롱에서는 양국의 외교관들이 끈질긴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드골은 이 협상에는 아무런 흥미가 없다는 듯이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자 눈치가 빠른 스탈린은 선수를 쳤다.
"아! 외교관들이란 참.. 이 얼마나 수다스러운 친구들이란 말인가? 이 무리들을 잠자코 있게 하는 방법은 기관총으로 모조리 쏴 죽이는 것 뿐이다. 불가닌! 기관총을 한자루 가져오게!"
어이없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전환한 스탈린은 드골을 근처의 홀로 안내하여 영화를 보여주었다.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독일군에 침공에 맞서 소련군과 민중은 용기로 일어선다. 이윽고 독일군은 패퇴하게 되고 독일 곳곳에서 혁명이 일어나 파시즘의 폐허 위에 소련의 원조로 평화와 번영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스탈린은 박수를 치며 외쳤다. "역사의 끝이 드골씨의 마음에 드실지는 모르겠습니다."
화가난 드골은 받아쳤다. "당신들의 승리는 나로서도 즐거운 일입니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서는 전쟁의 시작이 영화에 그려진 것과 같은 사정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므로 더욱 즐겁습니다."
Charles de Gaulle
스탈린과 드골이 뼈있는 말을 주고받으며 영화를 감상하는 동안 양국의 외교관들은 지루한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소련측은 루블린 정부의 무조건적인 승인을 끝없이 프랑스측에 요구하였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드골은 한밤중에 영화 한편이 끝나자 스탈린에게 말했다.
스탈린은 망치로 얻어맞은 표정이 되었다. "좀 앉으십시요. 이제 곧 다른 영화가 상영됩니다."
그러나 드골이 손을 내밀었으므로 얼떨결에 스탈린도 악수를 하고 그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드골은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재빨리 자리를 빠져나왔다.
몰로토프가 새파랗게 질려서 뛰어왔다. 그는 스탈린과 소련의 계획이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다는 데 낭패감을 감추지 못했다. 만약 프랑스와의 협약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스탈린은 모든 책임을 그에게 뒤집어씌울 것이 틀림없었다. 드골은 프랑스 대사관으로 이동했다.
새벽 2시경 모리스 드쟝이 새로운 소식을 가지고 드골을 찾아왔다. 스탈린이 협약에 프랑스와 루블린에 대해 단순한 문장을 집어넣더라도 만족하겠다는 의향을 표했다는 것이다. 결국 다음날 양국간의 협약이 체결되었다.
이외에도 전후 양국이 국제연합에 가입하는 것과 조약의 유효기간이 20년이라는 점이 명기되었다. 체결식은 엄숙하게 이루어졌다. 두나라 외무장관은 대표단에게 둘러싸인채 프랑스어와 러시아어로 된 문서에 서명했다. 스탈린과 드골은 이들 뒤에 서있었다.
체결이 끝나자 스탈린은 만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이기건 지건 기분을 상하지 않는 승부사의 면목을 발휘했다.
몇시간 전 부하들과 건배를 나누며 보여주던 격렬한 장면과는 전혀 다른.. 어찌보면 다른 모든 일에 초월한 것 같은 태도로 스탈린은 말했다. "결국.... 승리한다는 것은 죽음뿐입니다. 히틀러는 빠져나갈 재주가 없는 가여운 사나이입니다."
드골이 그를 파리로 초청한다는 의사를 표시하자 스탈린은 말했다. "어려운 일이지요. 나는 늙었고 이제 멀지않아 죽을 것입니다." 이어서 그는 느닷없이 폴란드에 대한 감정을 토로하기 시작하였다.
강하게 독립한 민주주의 폴란드 만세! 프랑스, 폴란드, 소련의 우정 만세!
드골은 대답했다. "나는 스탈린씨가 폴란드에 대해 말씀하신데 대하여 찬성합니다."
스탈린은 다시 대답했다. "나를 믿어 주십시요! 만일 당신들의 프랑스가 필요로 한다면 우리는 마지막 수프까지 당신들과 나누어 먹을 것입니다. "
감동적인 발언을 끝낸 대원수는 주위를 둘러보다 드골과의 모든 회담에 출석했던 통역관 보도세로프에게 눈길을 주며 험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는 모든것을 너무나 상세하게 알고 있단 말이야. 너를 시베리아에 보내고 싶구나."

무고한 사람 열명을 숙청하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명의 스파이를 놓쳐서는 안된다.
- 니콜라이 예조프 -
프로파간다에 의해 사람들이 천국을 지옥으로, 또는 지옥을 천국으로 여기도록 할 수 있다. - 히틀러 -


소련 인민들이 전부 백치들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바뀌는 미디어의 선전 내용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생각해보니 재미있군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