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유럽을 석권했던 Adolf Hitler의 최대 패착은 무엇일까?

여러 요인들을 꼽을 수 있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소련 침공일 것이다.

强敵 영국과의 전쟁을 마무리짓지 못한채 소련과 새로운 전쟁을 벌임으로써, 독일의 국력으로는 현실적으로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거대한 판을 벌인 것이다.



히틀러가 이렇게 무리하게 올인을 한 것은, 모두 그가 꿈꾸던 소박한(?) 희망 때문이었다.


히틀러는 정권 탈취를 목표로 활발하게 활동을 벌이던 1920년대 중반 무렵, 독일 민족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새로운 Lebensraum(Living Space,생존공간)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을 얻는다.






나의투쟁(Mein Kampt)을 보면 "독일 국민은 Lebensraum이 필요하며 그것은 동쪽에서 발견해야 한다"라는 대목을 발견할 수 있다.

좀더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열등한 인종이 어떤 땅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을때, 게르만족처럼 우수한 민족이 그 땅을 차지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정당하다.
이런 땅은 이것을 차지할 힘과 경작할 수 있는 부지런함을 동시에 갖춘 민족만이 가져야 한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50배나 많은 땅을 가지는 것은 결코 하늘의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독일은 정치적 견해의 경계선을 분명히 하여, 영원한 정의의 경계선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 땅은 우리의 레벤스라움에 필요함을 알아야 한다.



레벤스라움 이론은 독일 지리학자인 Friedrich Ratzel(1844-1904년)에 의해서 개발된 것이다.



Ratzel은 미국인들의 Manifest destiny라는 논리에서 힌트를 얻었다.


'명백한 운명'이라는 뜻을 가진 이 말은 1845년 미국의 텍사스 병합 당시 《데모크라틱 리뷰》지(誌)의 주필(主筆)이던 J.L.오설리번(1813∼95)이 동지(同誌) 7, 8월호에 게재한 논설 중
“아메리카대륙에 확대해야 할 우리의 명백한 운명은 해마다 증가하는 수백만 인구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하여 신(神)이 베풀어 주신 것이다” 라고 말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 후 미국의 영토팽창 이념의 표어가 된 이 말은 텍사스 병합에 뒤이은 뉴멕시코 ·캘리포니아 ·오리건의 합병 등 미국의 영토 확장주의 정책의 논거로 이용되었다.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에 따라 서부로 이주하는 미국인들



지리학자였던 Ratzel은 '명백한 운명'의 논리에 지리학 이론을 첨가하여 일반화시킨다.

그의 주장은 아래의 두마디로 모두 설명할 수 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종의 발달은 지리적인 상황에 대한 적응에 의해서 결정된다."
"생존에 필요한 공간을 차지하기 위한 팽창은, 건강한 인종의 선천적이며 필수적인 특징이다."

Ratzel의 이론은 Karl Haushofer와 Friedrich von Bernhardi 등의 학자들에 의해 더욱 발전된다.

특히 Von Bernhardi는 1912년 "독일과 다음의 전쟁"에서, 독일 민족의 새로운 Lebensraum으로 동부 유럽을 지목한다.

생존 공간 이론은, 1차대전중 러시아와 Brest Litovsk조약을 맺음으로서 결실을 맺는다.



Brest Litovsk 조약으로 확정된 국경


그러나 1919년 독일이 패함에 따라 어렵게 확보한 레벤스라움은 물거품이 되고, 생존 공간이 절실히 필요한 독일 민족의 지도자 히틀러는 결국 1941년6월에 바바로사 작전을 개시하기에 이른  것이다.



NSDAP는 Generalplan Ost(동부유럽에서 점령한 영토에 Lebensraum을 세우기 위한 히틀러의 계획)의 일부로 소련영토의 거대한 지역들을 독일의 식민지로 바꿀 것을 계획했다.

이 계획들은 국가사회주의 이론가인 Alfred Rosenberg가 소련 점령지역의 행정기구를 다음과 같이 나눔으로써 구체화된다.


Reichskommissariats
Ostland (발트해 연안 국가, 벨로루시와 동부 폴란드),
Ukraine (우크라이나와 인접하는 영토),
Kaukasus (코카서스 지역),
Moskau (모스크바 대도시권 및 인접하는 유럽 러시아)


besetztes.jpg


독일군이 점령한 영토에는 신속하게, 레벤스라움 구축을 위한 행정 기구들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히틀러의 소박한 소망'은 1942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 6군이 전멸하고,  1943년 7월 쿠르스크 전투에서 독일군이 재차 대실패를 함으로써 포기되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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