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평일에는 퇴근후에 인터넷을 1시간정도 합니다. 예전에는 그시간의 대부분을 디씨 2대갤에서 보냈습니다만 요즘은 모 사이트로 서식처를 옮겼습니다. 널리 알려지기를 원하는 곳은 아닌것 같아 주소는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밀리터리에 관련된 사이트는 아니지만 예전 디코를 떠올릴만큼 수준높은 글들이 많이 올라오는 곳이라 매우 즐겁습니다. 특히 요즘은 이덕하님이라는 진화심리학자분의 글에 매우 깊이 빠져있습니다.
아래는 그 사이트에 제가 썼던 질문과 이덕하님의 답변.. 그리고 저의 개인적 생각입니다.

밀리터리에 관련된 사이트는 아니지만 예전 디코를 떠올릴만큼 수준높은 글들이 많이 올라오는 곳이라 매우 즐겁습니다. 특히 요즘은 이덕하님이라는 진화심리학자분의 글에 매우 깊이 빠져있습니다.
아래는 그 사이트에 제가 썼던 질문과 이덕하님의 답변.. 그리고 저의 개인적 생각입니다.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난 Carrie Buck 이라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캐리는 태어날 때부터 정신박약아였습니다. 그녀가 18세가 된 1927년 Buck v. Bell이라는 유명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버지니아는 1924년 우생학 이론에 따른 단종법을 제정합니다. 이 법률은 유전적으로 열등한 아동의 출산을 막기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캐리의 변호사는 단종법에 의해 그녀의 생식능력이 제거되는 것이 헌법에 보장된 시민권에 위배된다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버지니아주의 단종법이 다수의 안전과 복지를 추구한다는 헌법정신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 판례에 따라 미국 33개 주에서 1970년대까지 단종법이 시행되었습니다.
판결문의 일부를 보겠습니다.
캐리 벅은 정신박약 증세가 있는 백인여성으로서 정당한 절차를 밟아 시설에 수용되었다. 그녀는 같은 시설에 있는 정신박약 어머니의 딸이며, 정신박약 사생아를 낳은 어머니이기도 하다. 중략...
특정 경우에 신중한 안전조치 아래 정신적 결함이 있는 사람들에게 단종시술을 하는 것이 환자의 건강과 사회의 안녕을 증진시키며, 남성의 경우는 정관절제술을 통해 여성은 난관절제술을 통해 간단히 시술이 가능하다. 중략...
정신병과 저능 등의 전이에서 유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경험을 통해 증명된다. 범죄를 저지른 타락한 후손을 처형할 때까지 기다리거나 그들이 정신박약으로 굶어죽도록 내버려두는 대신 사회가 그 종을 유지하는 것이 명백히 부적합한 자들을 방지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세계 전체를 위해 나은 일이다."
특정 경우에 신중한 안전조치 아래 정신적 결함이 있는 사람들에게 단종시술을 하는 것이 환자의 건강과 사회의 안녕을 증진시키며, 남성의 경우는 정관절제술을 통해 여성은 난관절제술을 통해 간단히 시술이 가능하다. 중략...
정신병과 저능 등의 전이에서 유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경험을 통해 증명된다. 범죄를 저지른 타락한 후손을 처형할 때까지 기다리거나 그들이 정신박약으로 굶어죽도록 내버려두는 대신 사회가 그 종을 유지하는 것이 명백히 부적합한 자들을 방지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세계 전체를 위해 나은 일이다."
제 질문은 두가지입니다.
첫째, 바보나 천재가 유전되거나 타고난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둘째, 이건 가치판단의 문제일수도 있겠습니다만.. 캐리 벅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후손을 남기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잘못된 일일까요?
아래는 이덕하님께서 올리신 답변입니다.
정리해보자면..
1. 바보나 천재는 유전되는가?
대중들이 우생학에 거부감을 갖게되는 가장 중요한 명제인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탄생하는 천재'라는 에디슨의 신화를 믿고 싶어합니다. 낭만적인 생각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사람들이 믿고 싶어하는 것이 항상 진리는 아닙니다.
2. 열악한 유전자를 단종하는 것이 정당한가?
두가지로 나눠서 생각해봐야 합니다. 자발적인 단종과 비자발적인 단종. 자발적인 단종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테고, 그 부분에 대한 논의는 생략합니다. 문제는 비자발적인 단종입니다. 가령 자녀에게 50% 확률로 이전되는 헌팅턴병에 걸린 사람이 자발적으로 단종하지 않고 후손을 남기려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때도 당사자의 자발적인 의사를 무조건적으로 존중하는 것이 올바를까요? 아니라면 강제적으로 그 사람의 생식능력을 제거하는 것이 올바를까요?
이 문제에 대해는 저는 아직도 무엇이 옳은지 모르겠습니다.
3. 장애를 가진 태아의 낙태와 우생학적 단종은 본질적(도덕적)으로 서로 다른가?
이 부분에서 전 이덕하님과 견해가 다릅니다. 우생학적인 단종과 태아의 낙태는 대상자의 자유와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유사한 행위이며, 도덕적으로는 오히려 우생학적 단종이 태아의 낙태보다는 훨씬 우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종은 자발적일수도 강제적일 수도 있습니다. 강제적인 경우에라도 단종은 단지 어떤 사람이 후손을 남기려하는 소극적 자유를 제한할 뿐입니다. 낙태도 마찬가지로 자발적일수도 강제적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제거될 대상인 태아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이뤄지게됩니다. 낙태 역시 태아에게는 강제적인 조치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장애를 가진(가질수도 있는) 후손을 낳을 권리보다는, 어떤 생명체가 (비록 장애를 가지고 있더라도) 스스로 삶을 유지할지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훨씬 본질적인 천부인권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요? 물론 태아가 인간인지.. 그렇다면 언제부터 인간으로 정의될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복잡한 정의과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미국에서 단종법은 진보주의자들의 끊임없는 공격으로 1970년대에 명맥이 끊긴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닉하게도 진보주의자들은 낙태권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진정으로 인간의 존엄권을 지키는 길일까요?
아래는 이덕하님께서 올리신 답변입니다.
키, 얼굴 생김새, 신체적 능력뿐 아니라 지적인 능력, 성격 등이 유전된다는 증거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따라서 개의 성격이나 지능을 인위 선택을 통해서 개량할 수 있듯이 인간의 경우에도 우생학적 조치(인위 선택)를 통해서 원하는 방향으로 개조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예컨대 인간의 키를 더 크게 만들 수도 있고, 수학을 더 잘하게 할 수도 있고, 더 착하게 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강제적 우생학적 조치에는 반대합니다. 저는 출산을 하든 말든 그것은 개인이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중증 정신지체자 불임 수술의 경우에는 두 가지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의 유전자풀(gene pool)을 고려한 우생학적 조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둘째는 태어날 아기의 인권의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만약 제 딸이 중증 정신지체자라면 저는 불임 수술을 시킬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 딸이 낳은 자식을 제가 부모처럼 키울 자신도 없고, 고아원에 보내는 것도 마음이 편하지 않고, 중증 지체자가 자식을 잘 키울 수 있다고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일종의 개인적 우생학적 조치에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헌팅턴 병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식을 낳을 경우 자식이 이 치명적인 병에 걸릴 확률이 50%나 됩니다. 만약 저에게 그런 유전자가 있다면 저는 불임 수술을 받을 것입니다.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정신병질(psychopathy)의 유전적 기초가 완전히 밝혀져서 임신 중일 때에 정신병질자가 될 것이 뻔하다는 것을 밝힐 수 있을 정도로 과학이 발전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현재의 기술로도 다운 증후군의 경우에는 임신 중에 알 수 있습니다. 만약 태아 상태(임신 초기)의 제 자식이 다운 증후군이 있거나 정신병질자라는 것이 확실하다면 저는 낙태를 선택할 것입니다. 만삭일 때에는 상황이 다릅니다. 제가 보기에는 태어나기 하루 전에 낙태하는 것은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죽이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임신 후반기의 태아도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있음이 명백할 경우 낙태가 허용되지 않습니까? 이 법률과 본문의 법률간에 본질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 낙태를 허용하는 것과 낙태나 불임을 강제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강제적 우생학적 조치에는 반대합니다. 저는 출산을 하든 말든 그것은 개인이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중증 정신지체자 불임 수술의 경우에는 두 가지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의 유전자풀(gene pool)을 고려한 우생학적 조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둘째는 태어날 아기의 인권의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만약 제 딸이 중증 정신지체자라면 저는 불임 수술을 시킬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 딸이 낳은 자식을 제가 부모처럼 키울 자신도 없고, 고아원에 보내는 것도 마음이 편하지 않고, 중증 지체자가 자식을 잘 키울 수 있다고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일종의 개인적 우생학적 조치에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헌팅턴 병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식을 낳을 경우 자식이 이 치명적인 병에 걸릴 확률이 50%나 됩니다. 만약 저에게 그런 유전자가 있다면 저는 불임 수술을 받을 것입니다.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정신병질(psychopathy)의 유전적 기초가 완전히 밝혀져서 임신 중일 때에 정신병질자가 될 것이 뻔하다는 것을 밝힐 수 있을 정도로 과학이 발전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현재의 기술로도 다운 증후군의 경우에는 임신 중에 알 수 있습니다. 만약 태아 상태(임신 초기)의 제 자식이 다운 증후군이 있거나 정신병질자라는 것이 확실하다면 저는 낙태를 선택할 것입니다. 만삭일 때에는 상황이 다릅니다. 제가 보기에는 태어나기 하루 전에 낙태하는 것은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죽이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임신 후반기의 태아도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있음이 명백할 경우 낙태가 허용되지 않습니까? 이 법률과 본문의 법률간에 본질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 낙태를 허용하는 것과 낙태나 불임을 강제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정리해보자면..
1. 바보나 천재는 유전되는가?
대중들이 우생학에 거부감을 갖게되는 가장 중요한 명제인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탄생하는 천재'라는 에디슨의 신화를 믿고 싶어합니다. 낭만적인 생각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사람들이 믿고 싶어하는 것이 항상 진리는 아닙니다.
2. 열악한 유전자를 단종하는 것이 정당한가?
두가지로 나눠서 생각해봐야 합니다. 자발적인 단종과 비자발적인 단종. 자발적인 단종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테고, 그 부분에 대한 논의는 생략합니다. 문제는 비자발적인 단종입니다. 가령 자녀에게 50% 확률로 이전되는 헌팅턴병에 걸린 사람이 자발적으로 단종하지 않고 후손을 남기려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때도 당사자의 자발적인 의사를 무조건적으로 존중하는 것이 올바를까요? 아니라면 강제적으로 그 사람의 생식능력을 제거하는 것이 올바를까요?
이 문제에 대해는 저는 아직도 무엇이 옳은지 모르겠습니다.
3. 장애를 가진 태아의 낙태와 우생학적 단종은 본질적(도덕적)으로 서로 다른가?
이 부분에서 전 이덕하님과 견해가 다릅니다. 우생학적인 단종과 태아의 낙태는 대상자의 자유와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유사한 행위이며, 도덕적으로는 오히려 우생학적 단종이 태아의 낙태보다는 훨씬 우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종은 자발적일수도 강제적일 수도 있습니다. 강제적인 경우에라도 단종은 단지 어떤 사람이 후손을 남기려하는 소극적 자유를 제한할 뿐입니다. 낙태도 마찬가지로 자발적일수도 강제적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제거될 대상인 태아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이뤄지게됩니다. 낙태 역시 태아에게는 강제적인 조치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장애를 가진(가질수도 있는) 후손을 낳을 권리보다는, 어떤 생명체가 (비록 장애를 가지고 있더라도) 스스로 삶을 유지할지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훨씬 본질적인 천부인권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요? 물론 태아가 인간인지.. 그렇다면 언제부터 인간으로 정의될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복잡한 정의과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미국에서 단종법은 진보주의자들의 끊임없는 공격으로 1970년대에 명맥이 끊긴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닉하게도 진보주의자들은 낙태권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진정으로 인간의 존엄권을 지키는 길일까요?

무고한 사람 열명을 숙청하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명의 스파이를 놓쳐서는 안된다.
- 니콜라이 예조프 -
2009.02.02 13:52:40
장애인, 동성연애자 및 혐오자, 적국 인종말살작전을 펼친 친위대 살인부대와 법으로 단종법을 만든 미국 주 의회와의 다른점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는군요...
2009.02.03 09:58:10
중요한 점은 국가가 결정하냐, 개인이 결정하냐의 문제인 것 같은데...
경제문제도 원칙적으로 그렇듯이 개인의 자유와 결정이 가장 우선되야 할 문제인 것 같다.
경제문제도 원칙적으로 그렇듯이 개인의 자유와 결정이 가장 우선되야 할 문제인 것 같다.
2009.05.25 18:13:12
안녕하세요 ^^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그런데 글에서 조금 오류가 있는 것 같네요~
캐리벅은 사실상 정신박약자가 아니였다고 합니다.
단지 입양된 곳 가족의 친척이 캐리벅을 강간하여 임신시키자,
그 가족의 음모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하네요. 나중에 캐리벅이 낳은 자식도 우등상을 받을 정도로
똑똑했다고 하고요.
참 안타까운 사연입니다. '세상을 바꾼 법정'을 참고하셔도 될 것 같아요~ 그럼 ...
그런데 글에서 조금 오류가 있는 것 같네요~
캐리벅은 사실상 정신박약자가 아니였다고 합니다.
단지 입양된 곳 가족의 친척이 캐리벅을 강간하여 임신시키자,
그 가족의 음모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하네요. 나중에 캐리벅이 낳은 자식도 우등상을 받을 정도로
똑똑했다고 하고요.
참 안타까운 사연입니다. '세상을 바꾼 법정'을 참고하셔도 될 것 같아요~ 그럼 ...
2009.08.06 09:38:50
1번에 대해서 이의가 있습니다. 재능이라는 것은 타고나는 부분이 많은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 문제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뉴턴은 비범한 재능의 소유자였지만, 그 전에 뉴턴의 선조들이 물리학에서 뉴턴에 필적하는 업적을 세워온 것은 아닙니다. 가우스는 수학사상 최고의 천재들 중 한 명이었겠지만, 그 전과 그 후에 가우스 집안이 수학계를 쥐고 흔든 것은 아닙니다. 저라도 가우스의 자식이나 친척이라고 하면 평균보다 재능이 뛰어날 것이라고 기대는 하겠지만, 다음 세대에서 가장 뛰어난 수학자도 반드시 가우스 집안에서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겁니다.
물론 뉴턴이나 가우스의 부모도 '좋은 조건에서는' 뉴턴이나 가우스에 필적하는 업적을 보였을 수도 있는데 단지 조건이 별로 좋지 않아서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유명한 물리학자 파인만도 자신의 아버지가 - 아버지는 물리학자가 아니었지만 - 자신의 생각하는 방식을 형성하는데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를 말하기도 했죠.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그리고 국가가) 그걸 사전에 예측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뉴턴이건 가우스건 파이만이건 태어나기 전에 그런 재능의 소유자가 나올 것이라고 예측할 수 없었으며 지금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타고난 재능의 차이'가 '국가에 의한 단종'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 타고나는 재능을 국가가 예상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국가가 '타고난 재능'을 이유로 자식을 낳아라 말아라 결정할 수 있겠습니까.
뉴턴은 비범한 재능의 소유자였지만, 그 전에 뉴턴의 선조들이 물리학에서 뉴턴에 필적하는 업적을 세워온 것은 아닙니다. 가우스는 수학사상 최고의 천재들 중 한 명이었겠지만, 그 전과 그 후에 가우스 집안이 수학계를 쥐고 흔든 것은 아닙니다. 저라도 가우스의 자식이나 친척이라고 하면 평균보다 재능이 뛰어날 것이라고 기대는 하겠지만, 다음 세대에서 가장 뛰어난 수학자도 반드시 가우스 집안에서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겁니다.
물론 뉴턴이나 가우스의 부모도 '좋은 조건에서는' 뉴턴이나 가우스에 필적하는 업적을 보였을 수도 있는데 단지 조건이 별로 좋지 않아서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유명한 물리학자 파인만도 자신의 아버지가 - 아버지는 물리학자가 아니었지만 - 자신의 생각하는 방식을 형성하는데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를 말하기도 했죠.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그리고 국가가) 그걸 사전에 예측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뉴턴이건 가우스건 파이만이건 태어나기 전에 그런 재능의 소유자가 나올 것이라고 예측할 수 없었으며 지금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타고난 재능의 차이'가 '국가에 의한 단종'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 타고나는 재능을 국가가 예상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국가가 '타고난 재능'을 이유로 자식을 낳아라 말아라 결정할 수 있겠습니까.
2009.08.09 04:36:03
제 글의 핵심은 타고난다는 것과 예측가능하다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예측가능한 요소라면 차라리 후천적인 조건 쪽이겠죠. 이미 태어난 아이의 지능을 (노력 등의) 후천적인 요소를 통해서 어느 정도 바꿀 수 있는가의 문제와 앞으로 태어날 아이의 지능을 충분히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더욱 어려운 것은 천재란 무엇인가의 문제입니다. 천재라고 해도 종류가 다양하니까요. 천재와 정신병자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도 있는데, 그 말에 어울리는 천재도 있고 그렇지 않은 천재도 있습니다. 파인만처럼 성격도 좋고 천재성도 넘치는 사람도 있고, 가우스처럼 뛰어난 천재지만 남들을 전부 바보취급하는(이해할 만은 합니다만) 사람도 있고, 아인슈타인처럼 특정 분야에서는 천재적이지만 다른 쪽은 딱 관심을 끊어버리는 기인도 있고, 갈루와처럼 성격파탄에 완전히 미친놈인 경우도 있죠.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마지막 경우입니다. 어떤 사람을 봤을 때 이 사람이 단순히 성격 드럽고 제정신이 아닌 놈일 뿐인지, 그렇지만 천재의 유전자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후손들 중에 천재가 나올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과학적인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지능이라는 것이 어떠한 메커니즘으로 되어 있는지, 유전자는 어떤 식으로 지능과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매우 피상적으로밖에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완전한 천재가 아닌 보통 정도의 재능을 갖는 경우까지 고려한다면 태어나기 전에 사전에 판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타고나는 능력의 문제는 유전병에 대한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유전병의 경우에는 유전의 영향이나, 그 유전의 영향이 어떤 식으로 자손에게 적용되는지 (자손이 같은 유전병을 가질 확률 몇 퍼센트라는 식으로) 과학적인 판단이 가능하지만 타고나는 능력의 경우에는 그런 판단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즉 이 문제는 '과학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결과를 인정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도덕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결코 예측가능하지 않은 것을 예측할 수 있다고 고집하는 주장에 대한 문제'입니다. 전적으로 윤리적인 차원의 문제이며, 논란의 가치도 없습니다. 단종법 문제에 개인의 타고난 능력 문제를 끌어들이신 것만으로도 극단적인 우생학 근본주의자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더욱 어려운 것은 천재란 무엇인가의 문제입니다. 천재라고 해도 종류가 다양하니까요. 천재와 정신병자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도 있는데, 그 말에 어울리는 천재도 있고 그렇지 않은 천재도 있습니다. 파인만처럼 성격도 좋고 천재성도 넘치는 사람도 있고, 가우스처럼 뛰어난 천재지만 남들을 전부 바보취급하는(이해할 만은 합니다만) 사람도 있고, 아인슈타인처럼 특정 분야에서는 천재적이지만 다른 쪽은 딱 관심을 끊어버리는 기인도 있고, 갈루와처럼 성격파탄에 완전히 미친놈인 경우도 있죠.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마지막 경우입니다. 어떤 사람을 봤을 때 이 사람이 단순히 성격 드럽고 제정신이 아닌 놈일 뿐인지, 그렇지만 천재의 유전자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후손들 중에 천재가 나올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과학적인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지능이라는 것이 어떠한 메커니즘으로 되어 있는지, 유전자는 어떤 식으로 지능과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매우 피상적으로밖에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완전한 천재가 아닌 보통 정도의 재능을 갖는 경우까지 고려한다면 태어나기 전에 사전에 판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타고나는 능력의 문제는 유전병에 대한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유전병의 경우에는 유전의 영향이나, 그 유전의 영향이 어떤 식으로 자손에게 적용되는지 (자손이 같은 유전병을 가질 확률 몇 퍼센트라는 식으로) 과학적인 판단이 가능하지만 타고나는 능력의 경우에는 그런 판단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즉 이 문제는 '과학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결과를 인정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도덕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결코 예측가능하지 않은 것을 예측할 수 있다고 고집하는 주장에 대한 문제'입니다. 전적으로 윤리적인 차원의 문제이며, 논란의 가치도 없습니다. 단종법 문제에 개인의 타고난 능력 문제를 끌어들이신 것만으로도 극단적인 우생학 근본주의자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2009.08.10 11:01:16
누가 천재가 될지를 콕 찝어 예측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대체로 어떤 유전적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이 천재가 될 가능성이 높은지는 예측 가능하겠지요. 우리들은 후천적인 노력과 환경을 중시하는데 노력만으로 선천적인 능력을 뒤집기란 매우 힘듭니다. 마침 오늘 뉴스에 이런 기사가 떴군요.지능은 타고난다! 인간이 태어나기도 전에 유전자 분석을 통해 타고날 능력을 계량화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볼수 없겠지요.하지만 유전적인 능력 차이를 후천적인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하는것 또한 옳다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2009.10.31 22:54:46
바보와 천재는 물론 유전됩니다. 이제 바보와 천재를 정의할 시간입니다.
바보는 모두가 수긍하겠지만 천재는 그렇지 않습니다. 언어천재, 수학천재, 미술천재 등 수많은 종류가 있으며 미술천재에도 색 배치에 재능이 있는 부류와 모양을 잘 그리는 부류, 그림을 보고 소리를 듣는 등 공감각을 발휘하는 부류 등이 있을겁니다. 이제 여기 존재하는 종류의 천재들을 정리했습니다.
컴퓨터를 잘해도 천재라고 하지요. 그렇다면 PC가 대중화되기 전에는 바보였는데 대중화되면 느닷없이 천재가 되는 사람도 있겠죠. 기술의 발전에 따라 앞으로 어떤 천재가 등장할지도 모르지만 컴퓨터만 특별한 종류라고 반박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제 정신병으로 천재성을 발휘하는 부류를 다뤄봅시다. 편집증이나 자폐증 환자들 중에 천재들이 많습니다. 이 병들이 나으면 천재성을 자주 상실하곤 하지요.
이제 얄짤없이 가봅시다. 수학천재만 인정하고 정신병이 없어야 한다고. 예언력, 천리안을 갖고 있거나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수학을 못해도 천재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아인슈타인도 수학을 못 하던 시절이 있었죠...
결론은 유전되고 안되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기준이 애매할 뿐.
진보주의자들의 주장은 잘못됐지만 낙태를 금지하다가 불법시술만 늘어나기 때문에 저는 낙태를 지지합니다.
바보는 모두가 수긍하겠지만 천재는 그렇지 않습니다. 언어천재, 수학천재, 미술천재 등 수많은 종류가 있으며 미술천재에도 색 배치에 재능이 있는 부류와 모양을 잘 그리는 부류, 그림을 보고 소리를 듣는 등 공감각을 발휘하는 부류 등이 있을겁니다. 이제 여기 존재하는 종류의 천재들을 정리했습니다.
컴퓨터를 잘해도 천재라고 하지요. 그렇다면 PC가 대중화되기 전에는 바보였는데 대중화되면 느닷없이 천재가 되는 사람도 있겠죠. 기술의 발전에 따라 앞으로 어떤 천재가 등장할지도 모르지만 컴퓨터만 특별한 종류라고 반박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제 정신병으로 천재성을 발휘하는 부류를 다뤄봅시다. 편집증이나 자폐증 환자들 중에 천재들이 많습니다. 이 병들이 나으면 천재성을 자주 상실하곤 하지요.
이제 얄짤없이 가봅시다. 수학천재만 인정하고 정신병이 없어야 한다고. 예언력, 천리안을 갖고 있거나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수학을 못해도 천재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아인슈타인도 수학을 못 하던 시절이 있었죠...
결론은 유전되고 안되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기준이 애매할 뿐.
진보주의자들의 주장은 잘못됐지만 낙태를 금지하다가 불법시술만 늘어나기 때문에 저는 낙태를 지지합니다.
2009.11.02 17:55:21
지적장애(바보)와 천재는 우연찮게 세상에 태어납니다.
대체로 평범한 부모들에게서 태어납니다. 우수한 부모들에게서 지적장애자가 태어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꾸준히 단종을 한다고 해도 지적장애자가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스스로 육아를 할 수 없는 장애자들이
아이를 출산하는 것을 막아 사회비용을 줄일 수는 있겠지요.
대체로 평범한 부모들에게서 태어납니다. 우수한 부모들에게서 지적장애자가 태어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꾸준히 단종을 한다고 해도 지적장애자가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스스로 육아를 할 수 없는 장애자들이
아이를 출산하는 것을 막아 사회비용을 줄일 수는 있겠지요.
2010.02.23 14:05:20
현재의 지능테스트를 고안했던 비네는 자신의 테스트가 학생들의 선천적 지능을 측정하는 수단이 되는 것에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비네는 자신의 테스트가 학습부진아를 가려내어 학습부진아들에게 적절한 학습을 하도록 한 것이지요. 문제는 이런 비네의 테스트가 미국으로 옮겨가서 스탠포드-비네 검사가 되었을 때 생겨난 것이지요.. 원래 비네의 테스트는 선천적인 지능을 측정하려고 고안해낸 것이 아니었지만, 미국의 터먼은 그 테스트를 통해 선천적인 지능을 측정하려고 하였고, 인종이나 계급적 차이에 따라서 선천적인 지능이 다르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여기서 하나의 문제가 생깁니다. 과연 지능지수는 선천적인 지능을 예언할 수 있는가? 글쎄요.. 어디까지나 지능지수는 현재 한 학습자의 지능을 수량화시킨 것에 불과하지, 그 자체가 선천적인 지능을 그대로 반영하진 않습니다. 두뇌의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적지 않아서, 유전자 외에도 태내에서의 우연한 자극, 어릴 적의 약물의 영향, 질병 경험, 잦은 독성물질 노출(저소득층 지역일수록 독성물질에 자주 노출되겠죠..), 사회적 상호작용 부재, 다양한 지적 경험의 부재 등등 다양한 요인들이 두뇌의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한 예로, 태아 시기에 두뇌의 발달이 활발한데, 이 때 잠시라도 감기에 걸릴 때에도 두뇌의 발달이 잠시 멈춥니다. 유아의 두뇌 발달은 출생 시에 대뇌피질의 수상돌기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지 않는데.. 후천적 경험을 통해 수상돌기의 갈래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더 나아가 갈래들이 솎아질 때에도 후천적 경험을 통해 필요한 연결들이 강해지고 필요하지 않은 갈래들이 솎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유전자는 결코 환경에 전혀 영향받지 않는 독재자가 아니며, 도리어 환경과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거기에 또 하나 필요한 논의가 있는데.. 과연 지능이란게 단일 유전자의 영향을 받는가 입니다. 전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생각보다 단일한 것이 아니라서, 좌반구와 우반구를 잇는 뇌량이 절단된 환자의 경우, 각자가 서로 다른 자아를 가지는 양상을 보입니다. 오른손이 단추를 채울 때, 왼손이 단추를 푸는 식으로요.. 어쨌건, 두뇌의 기관은 매우 다양한데다가, 유전자의 경우도 유전자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지능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한동안 스피어맨의 g요인설이 대세를 이루다가... 요새 가드너의 다중지능설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가드너에 따르면 지능은 8가지 지능이 있다는 것이지요. 어쨌건, 지능은 결코 단일화할수도 없고, 단일 요인에 의한 것도 아니며, 단일 유전자에 의한 것도 아니란 것입니다. 물론 사회적 성공이나 지능에 있어서 본인이나 가족의 노력 외에 비의도적인 요인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비의도적인 요인들이 전부 유전자의 몫으로 취급받아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여기서 하나의 문제가 생깁니다. 과연 지능지수는 선천적인 지능을 예언할 수 있는가? 글쎄요.. 어디까지나 지능지수는 현재 한 학습자의 지능을 수량화시킨 것에 불과하지, 그 자체가 선천적인 지능을 그대로 반영하진 않습니다. 두뇌의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적지 않아서, 유전자 외에도 태내에서의 우연한 자극, 어릴 적의 약물의 영향, 질병 경험, 잦은 독성물질 노출(저소득층 지역일수록 독성물질에 자주 노출되겠죠..), 사회적 상호작용 부재, 다양한 지적 경험의 부재 등등 다양한 요인들이 두뇌의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한 예로, 태아 시기에 두뇌의 발달이 활발한데, 이 때 잠시라도 감기에 걸릴 때에도 두뇌의 발달이 잠시 멈춥니다. 유아의 두뇌 발달은 출생 시에 대뇌피질의 수상돌기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지 않는데.. 후천적 경험을 통해 수상돌기의 갈래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더 나아가 갈래들이 솎아질 때에도 후천적 경험을 통해 필요한 연결들이 강해지고 필요하지 않은 갈래들이 솎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유전자는 결코 환경에 전혀 영향받지 않는 독재자가 아니며, 도리어 환경과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거기에 또 하나 필요한 논의가 있는데.. 과연 지능이란게 단일 유전자의 영향을 받는가 입니다. 전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생각보다 단일한 것이 아니라서, 좌반구와 우반구를 잇는 뇌량이 절단된 환자의 경우, 각자가 서로 다른 자아를 가지는 양상을 보입니다. 오른손이 단추를 채울 때, 왼손이 단추를 푸는 식으로요.. 어쨌건, 두뇌의 기관은 매우 다양한데다가, 유전자의 경우도 유전자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지능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한동안 스피어맨의 g요인설이 대세를 이루다가... 요새 가드너의 다중지능설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가드너에 따르면 지능은 8가지 지능이 있다는 것이지요. 어쨌건, 지능은 결코 단일화할수도 없고, 단일 요인에 의한 것도 아니며, 단일 유전자에 의한 것도 아니란 것입니다. 물론 사회적 성공이나 지능에 있어서 본인이나 가족의 노력 외에 비의도적인 요인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비의도적인 요인들이 전부 유전자의 몫으로 취급받아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2010.11.08 00:31:11
메디치님과 동의합니다..
인간의 지능은 유전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우리의 지능은 계속 개발되고 있습니다..
6개월 전에 지능지수와 지금에 지능지수는 고뇌의 양과 질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달라질 겁니다..
물론 고민없이 먹고 자고 싸기만 한다면 퇴화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요..
갑자기 불현듯 국민학교 1학년 봄하기 때 진행되었던 불쾌한 기억이 떠오르네요..
지능지수검사라는 건데..
저는 그때 그런것을 처음 접했고, 말없이 얌전했던 제 마음안에 불꽃같은 분노가 일었었죠..
그건 '이따위 종이 쪼가리 위에 놓인 질문 몇가지 가지고 인간에 지능에 위아래를 정할 수 있다는 거냐!' 였습니다..
맞다 틀리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순간부터 사고가 차단되고 거기서 오류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후진국에서 보기 드문 정신병이 유난히 선진국에 많은 것은 율법 때문이 아닐까 하는 데요..
인간은 원래 기계가 아니라 실수를 반복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근데 그 율법에 가짓 수와 정도 심해지면 인간의 본연에 모습에서 벗어나고
동시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기회마져도 사라지는 게 아닐까요?..
어떤 결정 다음에는 기회에 비용이라는 멋있는 이름의 후회에 대변인이 있을 뿐 입니다..
그래도 결정을 안하고 가만히 고민만 하는 것보단 낫습니다..
그들은 법을 만들고 그것을 시행해가면서 더 깨닫고 더 소중한 것을 많이 얻을 것 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희에게 다른 길을 택할 수 있는 귀한 자료와 다음 선택이란 숙제를 남겼네요..
애기들 이야긴데 아동교육학회의 여러번 재기되는 논문 내용 중에 하나인데..
요즘 아이들중에 거의가 글짜나 숫자 쓰기를 배울 때 역대응되는 모양으로 그린다고 합니다..
아직 뚜렷한 원인은 없지만 제 견해로는 우뇌에 발달로 머릿속에 주입된게 재창조가 일아나서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더 나아가 이게 우뇌 때문이라면 인간은 경험과 환경에 따라 지능이 발달한다는 더 없는 좋은 예가 되지 않을까요?
인간의 지능은 유전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우리의 지능은 계속 개발되고 있습니다..
6개월 전에 지능지수와 지금에 지능지수는 고뇌의 양과 질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달라질 겁니다..
물론 고민없이 먹고 자고 싸기만 한다면 퇴화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요..
갑자기 불현듯 국민학교 1학년 봄하기 때 진행되었던 불쾌한 기억이 떠오르네요..
지능지수검사라는 건데..
저는 그때 그런것을 처음 접했고, 말없이 얌전했던 제 마음안에 불꽃같은 분노가 일었었죠..
그건 '이따위 종이 쪼가리 위에 놓인 질문 몇가지 가지고 인간에 지능에 위아래를 정할 수 있다는 거냐!' 였습니다..
맞다 틀리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순간부터 사고가 차단되고 거기서 오류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후진국에서 보기 드문 정신병이 유난히 선진국에 많은 것은 율법 때문이 아닐까 하는 데요..
인간은 원래 기계가 아니라 실수를 반복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근데 그 율법에 가짓 수와 정도 심해지면 인간의 본연에 모습에서 벗어나고
동시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기회마져도 사라지는 게 아닐까요?..
어떤 결정 다음에는 기회에 비용이라는 멋있는 이름의 후회에 대변인이 있을 뿐 입니다..
그래도 결정을 안하고 가만히 고민만 하는 것보단 낫습니다..
그들은 법을 만들고 그것을 시행해가면서 더 깨닫고 더 소중한 것을 많이 얻을 것 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희에게 다른 길을 택할 수 있는 귀한 자료와 다음 선택이란 숙제를 남겼네요..
애기들 이야긴데 아동교육학회의 여러번 재기되는 논문 내용 중에 하나인데..
요즘 아이들중에 거의가 글짜나 숫자 쓰기를 배울 때 역대응되는 모양으로 그린다고 합니다..
아직 뚜렷한 원인은 없지만 제 견해로는 우뇌에 발달로 머릿속에 주입된게 재창조가 일아나서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더 나아가 이게 우뇌 때문이라면 인간은 경험과 환경에 따라 지능이 발달한다는 더 없는 좋은 예가 되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