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書卷九十五
西南夷兩 朝鮮傳第六十五
朝鮮王滿, 燕人. 自始燕時, 嘗略屬眞番朝鮮 ,[師古曰 戰國時燕國略得此地].
爲置吏築障.[師古曰障, 所以自障蔽也, 音之亮反.]
秦滅燕, 屬遼東外 . 漢興, 爲遠難守, 復修遼東故塞, 至浿水爲界, [師古曰 浿水在樂浪縣, 音普蓋反.]
屬燕. 燕王盧 反, 入匈奴, 滿亡命, 聚黨千餘人, 椎結蠻夷服 而東走出塞, 度浿水, 居秦故空地上下障, 稍役屬眞番朝鮮蠻夷乃故燕齊亡在者王之,
[師古曰 燕齊之人亡居此地, 及眞番朝鮮蠻夷皆屬滿也.] 都王險.[李奇曰 地名也.]
조선왕 '만'은 연나라 사람이다. 연나라가 전성할 때로부터 일찌기 '진번','조선'을[사고는 전국시대에 연나라가 빼앗아 얻은 땅이다.] 침략해서 자기 나라에 붙여 관리를 두고 요새를 쌓았었다. [사고는 '장'은 스스로 가로막다이다. 음이 량으로 바뀌었다.] 그 뒤에 진나라가 연을 멸하자 요동 경계 밖을 소속시켰다. 한나라가 일어나자 그곳이 멀어 지키기 어려우니 다시 요동의 옛날 요새를 수축하여 패수에 이르러 경계를 삼아[사고는 패수는 낙랑현에 있다.
음이 보개로 바뀌었다.] 연에 속하게 했다. 연왕 '노관'이 반하고 흉노로 들어가자 '만'은 망명해 달아났다. 그는 무리 천여 명을 모아 가지고 머리에 상투를 틀고 오랑캐의 옷을 입고, 동쪽으로 달아나 요새 밖 으로 나가 패수를 지나 진나라의 옛 공지인 '상하장'에 살았다. 여기에서 그는 차츰 진번조선 오랑캐와 옛날 연나라, 제나라에서 망명한 자를 모아서 왕노릇하고[사고는 '연','제'나라 사람이 망명하여 거하는 땅이다. 이에 진번조선의 오랑캐는 모두 '만'에 속했다.] 왕검에[이기는 왕검은 땅의 이름이다.] 도읍을 정했다.
會孝惠高后天下初定, 遼東太守卽約滿爲外臣, 保塞外蠻夷, 毋使盜邊 蠻夷君長欲入見天子, 勿得禁
止. 以聞, 上許之, 以故滿得以兵威財物侵降其旁小邑, 眞番臨屯皆來服屬, 方數千里.
마침 효혜고후때에 천하가 처음 정착되자 요동태수는 '만'에게 외신 자리를 주어서 요새 밖에 있는 오랑캐들을 막아 변방에 도둑질하지 못하게 하고, 또 오랑캐의 군장이 천자께 들어와 뵙겠다고 하면 이를 금지하지 말도록 약속하려고 조정에 알렸더니 천자는 이를 허락했다. 이렇게 되어 '만'은 군사의 위엄과 재물을 얻어 그 옆의 조그만 고을들을 침략하여 항복받으니 진번, 임둔이 모두 그에게 속했다. 그 땅이 수천 리가 되었다.
傳子至孫右渠,[師古曰 滿死傳子, 子死傳孫. 右渠者, 其孫名也.] 所誘漢亡人滋[師古曰 滋, 益也.]
多, 又未嘗入見[師古曰 不朝見天子也.] 眞番辰國欲上書見天子, 又雍閼弗通.[師古曰 辰謂辰韓之國
也. 雍讀曰壅.] 元封二年, 漢使涉何 諭右渠, 終不肯奉詔.[師古曰 , 責讓也, 音才笑反.] 何去
至界, 臨浿水, 使馭刺殺送何者朝鮮裨王長,[師古曰 長者, 裨王名也. 送何至浿水, 何因刺殺之.] 卽
渡水, 馳入塞, 遂歸報天子曰 殺朝鮮將]. 上爲其名美, 弗詰, 拜何爲遼東東部都尉. 朝鮮怨何, 發兵
攻襲, 殺何.
아들에게 전하고 다시 손자 우거[사고는 '만'이 죽고 아들에게 전하고 아들이 죽고 손자에 전하니 '우거'이다. 그 손자의 이름이다.]에게 이르렀다. 그러나 그가 꾀여 온 한나라에서 도망 온 사람이 매우 많았는데도[사고는 '자(滋)'는 '더한다'란 뜻이다.] 한 번도 입견[사고는 천자를 보지 않았다.]하지 않았다. 진번과 진국이 글을 올려 천자를 보고자 해도 또 그에게 막혀 통하지 않았다.[사고는 '진'은 '진한'의 나라이다. '옹(雍)'은 '옹(壅-가로막다)로 읽는다.]
원봉 2년에 한나라 사신 '섭하'가 '우거'를 꾸짖고 깨닫게 하려고 했으나, 우거는 천자의 조서를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사고는 '초( )'는 '꾸짖다.' '사양하다.'는 뜻이다. '재소'음으로 바뀌었다.] 이에 '하'는 돌아가려고 국경에 이르러 패수에 다다랐다. '하'는 갑자기 말을 달려 전송하려고 나온 조선 비왕 '장'을[사고는 '장'은 비왕의 이름이다. '하'를 보내려고 패수에 이르러 '하'로 인하여 찔려 죽임을 당하였다.] 찔러 죽이고 즉시 패수를 건너 요새 안으로 달려 들어갔
다.
그는 돌아가서 천자에게 보고하기를, "조선 장수를 죽였습니다."하니 천자는 그의 한 일을 가상히 여겨 아무런 말도 묻지 않고 '하'를 '요동동부도위'로 삼았다. 조선은 '섭하'를 원망하여 군사를 내어 습격해서 '하'를 죽였다
天子募罪人擊朝鮮. 其秋, 遣樓船將軍楊僕 從齊浮渤海, 兵五萬, 左將軍荀 出遼東, 誅右渠. 右渠
發兵距險. 左將軍卒多率遼東士 [如淳曰 遼東兵多也.] 兵先縱,[王先謙說 史記作 卒正多, 多是卒正
名, 如解非.] 敗散. 多還走, 坐法斬.[師古曰 於法合斬.] 樓船將齊兵七千人先至王險. 右渠城守,
窺知樓船軍少, 卽出擊樓船, 樓船軍敗走. 將軍僕失其衆, 遁山中十餘日, 稍求收散卒, 復聚. 左將軍
擊朝鮮浿水西軍, 未能破.
천자는 죄인들을 모집하여 조선을 쳤다. 그해 가을에는 또 누선장군 양복을 '제'로부터 '발해'를 건너 파견하니 군사가 오만 명이었다. 좌장군 '순체'는 요동으로 나가서 '우거'를 쳤다. 이에 '우거'는 군사를 내어 험한 곳에서 막았다. 좌장군은 요동 사람을 군사로 많이 거느리고 가서[여순은 요동병사가 많았다.] 먼저 공격했으나['왕선겸'이 말하길 '사기'에서 기록한 '卒正多'에서 '多'는 병사의 이름이 옳다.라고 했으나 '여순'은 잘못된 해석이라 했다.]패하여 흩어졌다. 많은
병사들이 되돌아왔는데, 법에 저촉되어 참형에 처하여졌다.[사고는 법에 '참'함이 마땅하다.] '누선'은 군사 7천 인을 거느리고 먼저 '왕검'에 도착했다. '우거'가 성을 지키고 있다가 누선의 군사가 적은 것을 탐지하고 곧 나가서 '누선'을 치니 누선의 군사는 패해 달아났다. 이에 장군 양복은 그 군사들을 잃고 산 속에 숨은 지 10여 일에 차츰 흩어진 군사들을 수습해 모았다. 좌장군은 조선 패수 서쪽 군사를 쳤으나 깨치지 못했다.
天子爲兩將未有利, 乃使衛山因兵威往諭右渠. 右渠見使者, 頓首謝 願降, 恐將詐殺臣 今見信節, 請
服降. 遣太子入謝, 獻馬五千匹, 及 軍糧.[師古曰 亦饋字.] 人衆萬餘持兵, 方度浿水, 使者及左
將軍疑其爲變, 謂太子已服降, 宜令人毋持兵. 太子亦疑使者左將軍詐之, 遂不度浿水, 復引歸. 山
報, 天子誅山.
천자는 두 장수가 모두 싸움에 이롭지 못하다 해서 이에 '위산'을 시켜 군사의 위세로써 가서 우거를 타일러 보라 했다. '우거'는 사자를 보자 머리를 조아리면서 사과하고 "항복하기를 원하나 장군이 속여서 우리를 죽일까 두려워했더니 이제 '신절'을 보았으니 청컨대 항복하겠습니다"했다. 태자를 보내서 들어가 사례하고 말 5천 필과 군량을 바치고,[사고는 '궤( )'는 또한 '궤(饋-식사를 대접하다.)이다.] 무리 만여 명이 병기를 가지고 바야흐로 패수를 건너려 했지만, 사자
와 좌장군은 그들에게 변이 있을까 의심하여, 이르기를 "태자는 이미 항복했으니 사람들은 마땅히 병기를 갖지 말라"하니 태자 역시 사자와 좌장군의 거짓을 의심하였다. 이리하여 패수를 건너지 않고 군사를 이끌고 되돌아갔다. '위산'이 이 사실을 천자께 보고하자 천자는 '위산'을 베었다.
左將軍破浿水上軍, 乃前至城下, 圍其西北. 樓船亦往會, 居城南. 右渠遂堅城守, 數月未能下.
이 때 좌장군은 패수 위에 있는 군사를 깨치고, 앞으로 성 밑에 이르러, 성 서쪽과 북쪽을 포위했다. '누선'도 역시 여기에 달려가 성 남쪽에 군사를 주둔시키니, '우거'는 성을 굳게 지키고 나가지 않았다. 수개월이 되도록 성은 함락되지 않았다
左將軍素侍中, 幸,[師古曰 親幸於天子.] 將燕代卒, 悍, 乘勝, 軍多驕. 樓船將齊卒, 入海已多敗
亡, 其先與右渠戰, 困辱亡卒, 卒皆恐, 將心慙, 其圍右渠, 常持和節. 左將軍急擊之, 朝鮮大臣乃陰
間使人私約降樓船,[師古曰 與樓船爲要約而請降.] 往來言, 尙未肯決. 左將軍數與樓船期戰, 樓船欲
就其約, 不會. 左將軍亦使人求間隙降下朝鮮, 不肯, 心附樓船. 以故兩將不相得. 左將軍心意樓船前
有失軍罪,[師古曰 意, 疑也.] 今與朝鮮和善而又不降, 疑其有反計, 未敢發. 天子曰 將率不能前,
乃使衛山諭降右渠, 不能 決, 與左將軍相誤, 卒沮約.[師古曰 與專同. 卒, 終也. 沮, 壞也.] 今
兩將圍城又乖異, 以故久不決. 使故濟南太守公孫遂往正之, 有便宜得以從事. 遂至, 左將軍曰 朝鮮
當下久矣, 不下者, 樓船數期不會. 具以素所意告遂曰 今如此不取, 恐爲大害, 非獨樓船, 又且與朝
鮮共滅吾軍. 遂亦以爲然, 而以節召樓船將軍入左將軍軍計事, 卽令左將軍戱下執縛樓船將軍,[師古曰
戱讀與麾同.] 幷其軍. 以報, 天子(許)誅遂.[王先謙說 史記贊 荀 爭勞, 與遂皆誅, 作[誅]無疑.
按各本皆誤.]
좌장군은 본래 천자를 모시어 왔고, 다행히[사고는 다행히 천자와 친했다.] 연나라의 대를 잇고, 병사가 사납고, 싸움에 이기니, 군사들까지 교만하였다. '누선'은 제나라 병사로 바다로 들어가 이미 여러 번 패한 일이 있고, 또 먼젓번에 우거와 싸울 적에도 곤욕을 받아 군사를 잃은 터여서 그 군사들은 모두 두려운 마음을 가졌고, 장수들도 부끄러운 마음을 가졌었다. 이리하여 비록 우거를 포위는 했어도 언제나 화친할 의사를 가졌다. 이 때 좌장군이 공격을 서두르자 조선의 대신 들은 비밀히 사람을 보내서 사사로이 누선에게 항복하기를 약속했다.[사고는 청하여 누선에게 항복할 약속을 하였다.] 그러나 이런 말이 오고 가기만 하고 아직 결정되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 까닭에 좌장군이 자주 '누선'을 보고 조선군과 싸울 것을 말했지만, '누선'은 조선이 항복한다는 약속을 이루고자 하여 여기에 응하지 않고 있었다. 또 좌장군도 역시 몰래 사람을 시켜 틈을 타서 조선으로 하여금 항복하도록 종용하였으나, 조선은 이미 마음을 누선에게 주고 있었으므로 좌장군의 말에 응하지 않았다. 이러고 보니 두 장수들은 서로 마음이 맞을 리가 없었다. 좌장군은 혼자 생각하기에,[사고는 '意'는 '의심하다'란 뜻이다.] 누선이 전에는 군사를 잃은 죄가 있었고, 이제 또 조선과 사사로이 좋게 지내는데도 조선이 여전히 항복하지 않고 있음을 보면 혹시 반간하는 일이라도 있지 않을까 하여 자기 역시 쉽게 군사를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천자는 말하기를, "전에 장졸들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기로 '위산'을 시켜 우거를 타일러 항
복하게 했더니 일을 매듭 짓지 못하여 좌장군과는 계획이 서로 어긋나서 마침내 약속을 깨치게 되었었다. [사고는 '전( )은 '전(專-마음데로)'과 같다. '卒'은, '終'이고, '저(沮)'는, '괴(壞 -무너뜨리다)'이다.] 그러던 터여서 이제 두 장수가 성을 포위했는데도 일이 이상하게만 되어 일부러 시간을 끌고 오래도록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에 제남태수 '공손수'를 보내서 가서 일을 바로잡도록 해서 편의대로 처리하도록 했다. 공손수가 도착하자 좌장군은 말하기를, "조선이
함락된 지 이미 오랬을 것이오. 그런데도 아직까지 그대로 있는 것은 누선이 여러 번 약속을 어기고 싸우지 않은 때문이오." 하고 자기의 뜻을 말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수'에게 말하기를, [이제 형세가 이렇게 되었는데도 조선을 취하지 않으면 큰 해가 될까 두렵소. 그것은 비단 누선 뿐만이 아니라, 그가 또 조선과 함께 군사를 합쳐 우리를 치러 올 것이오" 이 말을 듣자 '수'도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절부를 가지고 누선장군을 불러 좌장군 군중에 들어가 일을 계획하도록 했
다. 이렇게 해놓고 즉시 좌장군 휘하 군사를 시켜 누선장군과 그 군사들을 잡아 결박하게 하고 [사고는 '戱'음은 '麾(휘-대장기)'와 같다]군사를 합친후 천자에게 보고하자 천자는 '수'의 의견을 허락했다.[왕선겸이 말하길 사기에는 "순체에서 서로 다투니 공손수를 모두 주살했다"고 했다. '誅'자는 의심치 않는다. 각각의 판본은 모두 잘못이다. ]
左將軍已幷兩軍, 卽急擊朝鮮. 朝鮮相路人 相韓陶 尼谿相參 將軍王 [應 曰 凡五人也, 戎狄不知
官紀, 故皆稱相. 師古曰 相路人一也, 相韓陶二也, 尼谿相參三也, 將軍王 四也. 應氏乃云五人,
誤讀爲句, 謂尼谿人名, 失之矣. 不當尋下文乎? 音頰.]相與謀曰 始欲降樓船, 樓船今執, 獨左將
軍幷將, 戰益急, 恐不能與,[如淳曰 不能與左將軍相持也. 師古曰 此說非也. 不能與猶言不如也.]
王又不肯降. 陶 路人皆亡降漢. 路人道死.
좌장군은 마침네 두 군대를 합치게 되자 급히 조선을 치기 시작했다. 이 때 조선 정승 '로인'과 '한도', 니계상 '삼', 장군 '왕협'등이[응소에 무릇 다섯사람이다. 오랑캐는 관직에 서열을 알지 못한다. 고로 모두 재상을 칭한다. 사고가 말하길 재상 '로인'이 하나요, 재상 '한도'가 둘이요, 니계상 '참'이 셋이요, 장군 '왕협'이 넷이다. 응소는 이에 오인을 말하니 그 글귀가 잘못되었 다. '니계'는 사람이름이다. 그것을 잊었다. 마땅히 아래 글귀에서 찾지 못했다. ' (겹)'음은 '頰(협)'이다.] 서로 의논하기를, "처음에 우리가 누선에게 항복하려했으나, 누선이 이제 잡혀 버리고 ,홀로 좌장군이 군사를 합치니 이제 싸움이 더욱 급하여 능히 함께 하지 못함이 두렵다. [여순은 '不能與'는 좌장군이 재상을 보존한다. 사고는 이 말은 '非'이다. '不能與'는 오히려 '不'과 같다.] 왕 또한 항복하지 않는다."했다. '한도'와 '왕협', '로인'은 모두 도망해서 한나라에 항복했는데, '로인'은 중도에 죽었다.
元封三年夏, 尼谿相參乃使人殺朝鮮王右渠來降. 王險城未下, 故右渠之大臣成已又反, 復攻吏. 左將
軍使右渠子長[師古曰 右渠之子名長.] 降相路人子最,[師古曰 相路人前已降漢而死於道, 故謂之降
相. 最者, 其子名.]} 告諭其民, 誅成已. 故遂定朝鮮爲眞番臨屯樂浪玄 四郡. 封參爲 淸侯,[師古
曰 音獲.] 陶爲秋詳侯,[晉灼曰 功臣表 秋詳屬渤海. 師古曰 詳音千餘反.] 爲平州侯, 長爲幾
侯. 最以父死頗有功, 爲沮陽侯. 左將軍徵至, 坐爭功相嫉乖計, 棄市. 樓船將軍亦坐兵至列口當待左
將軍,[蘇林曰 列口, 縣名也. 度海先得之.] 擅先縱, 失亡多, 當誅, 贖爲庶人.
원봉 3년 여름에 니계상 '삼'이 사람을 시켜 조선왕 우거를 죽이고 와서 항복했다. 그러나 '왕검성'은 함락되지 않았는데 '우거'의 대신 '성기'가 반하여 거듭 관리들을 공격했다. 이리하여 좌장군은 '우거'의 아들 '장'과[사고는 우거의 아들 이름이 '장'이다.] 항복한 정승 '로인'의 아들 '최'를[사고는 정승 '로인'은 전에 이미 한나라에 항복하고 길에서 죽었다. 옛날에 정승이 항복했다. '최'는 그 이름이다. ] 시켜 그 백성들을 회유하고 '성기'를 베니 이로써 조선이 평정되어
'진번', '임둔', '낙랑', '현도'의 사군을 두었다. '삼'을 봉하여 '획청후'를[사고에 ' (홰)음은 '獲(획)'이다.] 삼고, '한도'는 '추저후'를[진작이 말하길 공신표에 '추저'는 '발해'에 속한다. 사고는 '詳(저)'음은'千餘(천여)'로 바뀌었다.] 삼고, '협'으로 '평주후'를 삼고, '장'으로 '기후'를 삼았다. '최'는 그 아버지가 죽었고, 자못 공로가 있다 하여 '저양후'를 삼았다.
좌장군을 불러 들여, 앉아서 자기들의 공로를 다투다가 서로 미워하노라 계교를 어그러뜨렸다 해서 '기시'의 형에 처했고, 누선장군도 역시 군사가 먼저 '열구'에[소림은 열구는 현의 이름이다. 바다 건너 먼저 닿는 곳이다.] 이르렀으면 마땅히 좌장군을 기다려야 옳은데 멋대로 먼저 쫓다 가 많은 군사를 잃어버리니 마땅히 베일 것이나 용서해서 서인을 만들었다.
贊曰 楚 之先, 歷世有土. 及周之衰, 楚地方五千里, 而句踐亦以< >伯.[師古曰 伯讀曰覇.] 秦滅
諸侯, 唯楚尙有 王. 漢誅西南夷, 獨 復寵. 及東 滅國遷衆, 繇王居股等猶爲萬戶侯. 三方之開,
皆自好事之臣. 故西南夷發於唐蒙司馬相如, 兩 起嚴助朱買臣, 朝鮮由涉何. 遭世富盛, (動)能成
功, [景祐 殿 本都有動字] 然已勤矣.[師古曰 已, 甚也. 言其事甚勤勞.] 追觀太宗塡撫尉 ,[師古
曰 言文帝以恩德安撫之也. 塡音竹刃反.] 豈古所謂[招 以禮, 懷遠以德]者哉. [師古曰 春秋左氏傳
僖七年諸侯盟于 母, 管仲言於齊侯曰 臣聞之, 招 以禮, 懷遠以德. 謂離貳者也. 懷, 來也. 言
有離貳者則招集之, 恃險遠者則懷來之也. 故贊引之.]
찬에서 말하길 '초오'는 옛 조상 때부터 역대로 그 땅이 있어서, 주나라가 쇠하여 초나라 땅은 사방 오천리가 되어 '구천'은 이로써 '오'일가를[사고는 '伯'은 '覇(패)'이다.] 이루었다.
진나라가 제후를 멸했다. 오직 초나라에는 '진왕'있었다. 한나라가 서남쪽 오랑캐를 베어도, 유독 진왕만은 사랑받았다. '동오'가 나라 없어져 옮겨도, '유왕거고'들은 오히려 '만호후'가 되었다. 세 방위 모두 열리니 모두 일 좋아하는 신하이다. 서남쪽 오랑캐는 '당몽' '사마상여'에게서 일어나고, '양오'는 '엄조' '주매신'에게서 일어나고, '조선'은 '섭하'로 해서 대마다 융성해졌다.
능히 성공하여[ '경우' '전'에 본부에는 '동'자이다.] 부지런해졌다.[사고는 '已'는 '甚(심-성하다)'이다. 그 일을 매우 부지런히 노력한다는 말이다.] 태종의 사랑하고 위로한 은덕 보면,[사고는 문제는 말로써 은혜와 덕을 편안히 했다. '塡(전)'음은 '竹刃'로 바뀌었다.] 이 어찌 예의로 부르고 덕으로 인도한 게 아닐까.[사고는 '춘추좌씨전'에 희칠년 재후가 영모에게 약속하였다.
관중의 말은 제나라후에게 말하길 신하가 그것을 물으니 '招 以禮, 懷遠以德'라 했다. ' '는 '離貳者'이고 '懷'은 '來'이다. '離貳者'란 말은 예를 불러 모으는 것이고, ' 恃險遠者'는 덕을 품는 것이다. 고로 찬에서 이것을 인용한 것이다.]

무고한 사람 열명을 숙청하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명의 스파이를 놓쳐서는 안된다.
- 니콜라이 예조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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