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 탄생 129주년 기념 포스팅.



- 스탈린의 첫번째 여인 -


1903년, 혁명가로서 러시아 전역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있던 스탈린은  예카테리느 스바니드제(Ekaterina Svanidze)라는 이름의 그루지아 여성과 결혼했다. 혁명가의 결혼생활은 기묘하였다. 이 부부는 마르크스주의에 기인한 양성 평등의 원칙보다는 남편이 절대권을 휘두르는 그루지아의 전통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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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는 이들의 결혼생활에 대해 논평했다.
그것은 만인이 평등하다고 생각했던 스탈린의 사고방식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생활이었다. 어쨌든 그의 결혼 생활은 원만해 보였는데, 그것은 오로지 남편에 대한 스바니드제의 무조건적인 복종과 헌신 덕분이었다.
그녀는 남편에 대한 신성불가침 전통이 뿌리깊게 박혀있는 그루지아 여인이었던 것이다.

스탈린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아내도 독실한 그리스정교 신자였다. 그녀는 스탈린이 혁명의 길을 버리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스탈린이 혁명가의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떠날 때마다 그녀의 가슴은 늘 근심으로 가득했고, 꼭 다시 볼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곤 했다.

스탈린 또한 자신의 아내를 사랑했던 것 같다. 1907년, 예카테리느가 젊은 나이로 죽었을 때 그는 몸소 관을 준비하고 비통한 심정을 토로하였다.
그녀는 돌같이 차가운 나의 심장을 따뜻하게 해준 여자였다. 이제 그녀는 죽었고, 그녀의 죽음과 함께 인간에 대한 나의 따뜻한 감정도 사라져 버렸다.
아! 내 가슴은 말할 수 없이 허망하고 쓸쓸할 뿐이다.

이것은 스탈린이 평생 남긴 말들중 가장 인간적인 것이었다,


- 스탈린의 두번째 여인 -

1919년, 스탈린은 옛 동료의 딸인 나데즈다 알릴루예바(Nadezhda Alliluyeva)와 재혼했다. 그들은 크레믈린내에 있는 단촐한 아파트에 살림을 차렸다. 주변인들의 평가에 따르면, 나데즈다는 스딸에 비해 너무 어렸고 너무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녀는 모스크바 시내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학생들이나 노동자들과 담소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농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잔학 행위에 대해 들었다. 나데즈다는 스탈린에게 억압 정책을 완화해 줄 것을 간청했다. 그러나 스딸이 이런 요청을 들어줄 리가 없다. 이때부터 이들의 관계는 다소 긴장 상태에 빠져들었다. 나데즈다도 나름대로 혁명에 대한 이상을 가진 여성이었기 때문에 스탈린의 가혹한 정책에 결코 찬성할 수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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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혁명 기념 파티에서 스탈린은 거나하게 취한 상태로 여러사람 앞에서 그녀에게 무례한 말을 내뱉았다. 나데즈다는 바로 파티장을 박차고 나갔다. 그리고 그날밤 스탈린의 인간적인 결점과 정치적 실패를 힐난하는 쪽지를 남기고 자살했다.

이 부부의 딸인 스베틀라나(Svetlana Alliluyeva)는 당시의 상황을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어머니의 죽음은 치명적이었어요. 어머니를 그저 친구로서, 보통사람으로서만 여겼던 아버지의 믿음을 송두리째 깨버린 셈이었죠.

이 일 이후, 스탈린은  크레믈린 내의 다른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리고 다시는 그들이 함께 살았던 곳을 찾이 않았다.

그는 쿤체보에 별장을 짓고, 크레믈린을 떠난 이후 20년간 그곳에서 홀로 살았다. 그러나 스탈린은 결코 나데즈다를 잊지 못했다. 스탈린은 행복한 모습의 아내 사진을 확대하여 예전에 살던 크레믈린의 아파트와 시골 별장에 걸어두었다. 그는 가끔 "가장 가깝고, 가장 충실했던 친구가 어째서 자신을 배반했을까.."라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나데즈다의 죽음으로 스탈린은 잠시 감정의 균형을 잃었다. 그는 정치국 회의에서 사의를 표명했다. 스탈린의 말이 끝나자마자 정치국 위원 몰로토프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안돼! 절대 안돼! 당은 바로 당신을 신뢰하고 있단 말이오!


- 스탈린의 세번째 여인 -

스탈린의 세번째 여인은 바로 자신의 딸인 스베틀라나이다. 이들의 관계에 대해서는 흐루시초프의 설명을 옮기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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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과 스베틀라나 - 1935년

스탈린은 잔인하고 때때로 거칠었다. 그러나 스탈린의 그런 속성이 반드시 악의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누구에게나 거칠고 잔인했지만 그런 성격은 선천적인 것이었다. 그는 이따금 나(흐루시초프)에게도 거칠게 굴었다. 그러나 그는 나를 좋아했다. 스탈린이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그는 그의 바람직하지 못했던 - 숱한 사람들을 제거한 것과 같은 방법으로 나를 제거해버렸을 것이다. 스탈린은 가끔 나를 악의넘치는 방식으로 대하고는 곧이어 우의에 가득찬 정을 표시하곤 했다. 그러나 신은 그의 천성 속에 잘못을 뉘우치는 것과 같은 속성은 아예 금지시켜버린 것 같았다.

스탈린 삶의 마지막 해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는 새로운 해를 축하하기 위해 우리 모두를 자신의 별장으로 초대했다. 당시 우리들은 의기양해 있었다. "새해다! 승리와 성공의 한해가 다시 다가오는구나!" 거창한 만찬이었고 마실 것도 많았다. 스탈린은 기분이 좋았던지 연방 술을 마시며 각자에게 자신처럼 술을 들라고 재촉했다. 그날따라 상당한 양의 술이 소비되었다.

스탈린은 레코브 박스로 가서 소련과 그루지아 민속 음악이 담긴 레코드 몇장을 틀었다. 우리들은 모두 귀를 기울이며 레코드에 따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이 끝나자 스탈린은 댄스곡 몇개를 틀었다. 우리들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들 가운데 춤으로 정평이 나있던 자는 미코얀이었다. 그는 카프카즈 민속춤의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보로실로프가 최초로 스텝을 밟자 우리들도 다같이 어울렸다.

나는 춤을 출때 발을 움직이지 않는다. 내 춤은 마치 얼음 위를 걷는 암소같은 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함께 어울렸다. 카가노비치도 나와 마찬가지였다. 그의 춤은 나보다도 별반 나을 것이 없었다. 불가닌은 젊은시절 춤을 좀 추어본 듯했다. 스탈린 역시 춤을 추었다. 그는 팔을 쭉 뻗은채 질질 끄는 발로 짧게 내디디며 춤을 추었다. 그는 이전에 한번도 춤을 추어본 적이 없음이 명백했다.

이 자리에 몰로토프가 없다는 것이 유감스러웠다. 몰로토프는 우리들 가운데 사교춤을 출줄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인텔리 집안에서 자랐으며, 대학교를 다닐때는 학생들의 파티에도 자주 참석하여 제대로 춤을 추었다. 그는 음악도 좋아하여 바이올린도 연주할 수 있었다. 대체로 그는 대단히 음악적인 인간이었다. 나는 이 분야에 전문가가 아니라 사실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내가 보기에는 몰로토프야말로 일류 댄서였다.


어쨌든 이날 파티의 분위기는 훌륭하였다. 이윽고 스탈린의 공주 스베틀란카(스베틀라나의 애칭)가 등장했다. 그녀는 사람들 가운데서 분위기를 맞추다보니 자신이 나이보다 늙어진 기분이 드는것 같았다. 정신이 말짱한 딸에게 스딸은 춤을 추도록 했다. 그녀는 피로해 보였고 춤을 추는 동안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스베틀라나는 춤을 멈추려 했지만 스딸은 여전히 고집을 부렸다. 그녀는 마침내 레코드박스로 가서 어깨를 벽에 기대고 서버렸다.

그러자 스탈린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나는 그들과 어울렸으며 우리 셋은 레코드 박스 앞에 모였다. 스탈린은 비틀거리며 사랑하는 딸에게 말했다.
스베틀란카! 계속 춤을 추라니까.. 오늘의 호스테스는 너란 말이야.
파파! 춤을 추었잖아요. 저는 피곤해요.

스베틀라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스탈린은 딸의 머리채를 손으로 움켜쥐고 끌어당겼다. 나는 그녀의 얼굴이 붉어지면서 눈물이 솟는 것을 볼수 있었다. 스베틀라나가 몹시 가여웠다. 그러나 스딸은 그녀의 머리채를 더욱 세개 나꿔채고는 질질 끌어 댄스장으로 밀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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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와 스베틀라나

스탈린이 자신의 딸을 끔찍히 사랑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아들인 바실리도 사랑했다. 그러나 그는 바실리의 나쁜 술버릇과 품행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스베틀라나는 모범생이었다. 소녀로서 그녀의 행동은 탁월했다. 나는 한번도 스탈린이 자신의 딸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다. 스탈린은 언제나 자신의 딸자랑에 무척 열심이었다.

그런 그가 이러한 행동을 하다니.. 스탈린은 자신의 딸에게 고통을 주기위해 그런짓을 한것은 아니었다. 딸에 대한 그의 행동은 진실로 사랑의 한가지 표시였으며 행동의 잔인성은 그가 지닌 괴팍한 성격 때문이었을 뿐이다.

스탈린은 어려서부터 폭음을 하고 고집이 셀 뿐더러 공부도 안하는 아들 바실리 때문에 무척 속을 썩었다. 스딸은 그를 정기적으로 매질하고 체카 요원들에게 감독을 맡겼다. 스베틀라나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어린시절 우리가 그 집에 가있을 때면 우리 주위를 뛰어다니곤 했다. 스탈린은 언제나 그녀를 호스테스라고 불러서 우리들도 그녀를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언제나 작은 우크라이나식 스커트와 수놓은 블라우스를 예쁘게 차려입었다. 그녀는 마치 성장한 인형 같았지만 동시에 갈홍색 머리와 얼굴의 주근깨를 보노라면 어머니를 무척 닮기도 했다. 그 호스테스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우리는 지켜보았다. 스탈린은 말했다.
나한테 화가 나기만 하면 그애는 부엌에 가서 요리사한테 불평할거야. 그럴 때마다 나는 그녀에게 "제발 용서해. 요리사한테 불평을 하면 나는 끝장이야."라고 간청을 하곤 하지.


스베틀라나와 스탈린의 관계는 이처럼 복잡미묘했다. 스딸은 그녀를 사랑하기는 했지만 사랑의 감정을 늘 거친 방법으로 표시했다. 그것은 마치 쥐를 놓고 보는 고양이의 애정이었다. 휴일이면 스베틀라나는 늘상 혼자 집에 있었다. 스탈린은 결코 자식들을 데리고 다니지 않았다. 스베틀라나의 양육은 한 젊은 그루지아 여인이 담당했다. 그녀는 스베틀라나의 가정교사인 동시에 베리아의 스파이였다.

스베틀라나는 모로조프라는 유대인과 결혼했다. 그들은 한동안 동거했지만 스딸은 결코 그 남자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모로조프를 어떤 자리에도 초청하는 일이 없었다. 스베틀라나의 첫 아들이 태어난 후에도 스탈린은 일체 그를 만나지않았다. 냉혹한 아버지 때문에 스베틀라나는 비탄에 빠졌다.

전쟁이 끝난후 스탈린이 반유대인 숙청을 감행했고, 스베틀라나 부부는 이혼했다. 스딸은 자신의 딸에게 이혼할 것을 명령했을뿐만 아니라, 말렌코프에게도 그의 딸이 유대인 남편과 이혼하도록 지시했다. 스베틀라나는 스탈린이 원한대로 주다노프의 아들인 유리와 결혼했다. 그러나 그녀는 새로운 남편을 조금도 좋아하지 않았다. 스탈린이 죽은후 이 부부는 즉각 이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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