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태양왕이 군림하던 17세기 프랑스의 아침 8시... 베르사유 궁전 깊숙한 곳에 위치한 국왕 침소의 한쪽 벽에 달린 대형 벽시계가 구리로 만든 수탉을 여덟번에 걸쳐 들락날락거리며 요란한 소리를 낸다.
수탉이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면 침실밖에서 대기중이던 3인이 즉각 국왕의 침실로 들어간다. 침실 수석 시종과 수석 내과의, 수석 외과의가 그들이었다. 국왕의 유모도 그들과 함께 들어섰다. 침실 수석 시종이 외쳤다.
"폐하!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시종은 프랑스 왕실 문장이 화려하게 수놓인 이불을 걷어올렸다. 독수리 형상이 담긴 방패꼴 문장들은 루이14세가 네덜란드, 플랑드르, 로렌에서 거둔 영광스러운 승리를 상징했다.
내과의와 외과의는 신성한 국왕의 몸을 검진하고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미소년 루이 14세
8시 15분이 되면 침실 시종은 시종장이나 수석 궁내관을 불렀다. 문이 열리면 제일 먼저 아침 알현을 할 권리가 있는 자들이 들어섰다. 왕의 동생과 아들들, 그외의 자손들과 의상 시종장이 그들이었다. 침실 수석 시종이 왕의 두손에 미사주를 붓고 성령 기도서를 건네주었다. 국왕은 침대 위에서 15분 가량 기도를 올렸다. 기도가 끝나면 국왕은 일어나 슬리퍼를 신었다. 시종장이 그에게 실내 가운을 입혀주었다.
8시 30분, 두번째 알현의 특권을 가진 이들이 방안으로 들어섰다. 특권 귀족들을 포함하여 책과 편지를 읽어주는 낭독 시종들, 오락 담당 시종들, 가마꾼등이 그들이었다. 그동안 국왕은 면도를 했다. 이발사는 왕의 모자를 벗기고 기상 의식에 쓸 가발을 씌워주었다. 국왕이 다시 방문을 열라고 명하면 이번에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밀려 들어왔다.
집무실과 침실의 집행관들, 왕의 외투를 받드는 시종들, 침실 시종들, 사제장, 기도실 책임자, 고해신부, 국가 고문, 근위대장, 왕실 수렵장, 늑대 사냥 지휘자, 사냥개 대장, 마굿간 담당 시종장, 외국 사절 안내자, 시동 관리자, 수석 급사장, 식량 관리자, 인쇄업자, 수석 건축가, 내과의와 외과의들, 안과의사와 치과의사, 접골사 등등.. 온갖 인간들이 서로 밀치고 발을 구르며 방으로 들어왔다.
집행관이 모든 사람들의 이름을 엄숙하게 낭독하였다. 면도가 끝나면 국왕은 비단 스타킹이 붙은 짧은 바지를 입었다. 의상실의 시동중 하나가 다이아몬드 버클이 장식된 구두를 신겨주었다. 이제 국왕의 아침 식사가 날라져왔다. 아침은 대략 수프와 차로 이루어져 있었고, 가끔 빵 한조각이 곁들여졌다. 왕세자가 엄숙하게 냅킨을 건네면 국왕은 그것으로 입술을 닦았다. 만약 왕세자가 없으면 왕자들중 한명이 그 일을 대신했다.
식사가 끝나면 국왕은 실내 가운과 잠옷을 벗었다. 시종 하나가 왕세자에게 국왕의 셔츠를 전해주면 그가 다시 왕에게 그것을 전달했다. 두명의 시종들이 왕의 실내 가운을 넓게 펼쳐 군중들의 호기심어린 눈으로부터 가려주었다. 이제 국왕은 검을 허리에 두르고 저고리와 성령의 리본을 걸치며 몸에 달라붙는 겉옷을 입고.. 직접 넥타이를 매고 손수건을 꽃은뒤에 의상 시종장으로부터 모자와 장갑, 지팡이와 망토를 받아들었다.

모든일이 끝나면 국왕은 침대와 벽 사이에서 잠시 기도를 올렸다. 기도가 끝나면 국왕은 집무실로 건너간다. 다양한 인간들이 집무실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거나, 왕의 뒤를 따라 집무실로 향했다. 국왕은 그곳에서 신하들에게 그날의 명령을 내렸다. 신하들이 모두 나가면 국왕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취미인 건축물과 정원에 대해 주위 사람들과 담소를 나눈다.
미사 시간이 다가왔다. 모든 신하들은 예배당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국왕의 행차를 기다렸다. 여기서 어떤 이들은 지나가는 국왕에게 각종 진정이나 사면 요청을 했다. 그러면 왕은 정중하게 요청을 고려해보겠노라고 대답했다. 예배당에서 귀부인들은 오직 국왕만 바라보았다. 심지어 어떤 부인들은 국왕의 눈에 띄기 위해 아예 제단에서 등을 돌리고 서있었다.
미사가 끝나면 국정자문회의가 시작된다. 왕은 침실 옆의 집무실로 재상들을 불러모았다. 회의는 오전 내내 진행되었다. 정오가 되면 국왕은 회의를 마치고 훌륭한 예술품들로 장식된 의자식 실내 변기에 앉아 볼일을 보았다.
오후 1시가 되기 직전 근위병들이 군중들 사이로 길을 내면, 금은으로 수놓은 천으로 덮여 가려진 기묘한 상자들을 공손하게 받든 하인들이 홀을 걸어갔다. 그 뒤에는 급사장이 자신의 직권을 상징하는 지팡이를 휘두르며 걷고, 홀 집행관, 식량 관리자, 장교들, 성직자들이 뒤를 따랐다. 기묘한 상자 속에는 국왕의 식사가 담겨 있었다.
국왕은 자신의 침실 창문 앞에 놓인 작은 정사각형 테이블에서 매일 오후 1시에 점심 식사를 했다. 루이14세의 신성한 위장은 활력에 넘쳤다. 국왕이 주최하는 공식 회식에서는 다섯번의 성대한 식사와 수프, 앙트레, 구운 고기가 포함된 후식이 나왔다. 매번 음식이 나올 때마다 다섯 접시에서 여섯 접시 가량의 요리가 제공되었다. 하루는 병에 걸린 국왕이 식이요법을 하게 되었다. 그는 튀긴 빵과 비둘기 수프, 구운 닭고기 세마리로 간단히 식사를 마쳤다. 후일 루이14세의 사체를 부검한 의사들은 국왕이 가진 위장의 용량이 비슷한 몸집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 거의 두배에 달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국왕은 식사중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대신 그는 오렌지 꽃잎을 띄운 물을 마셨다. 국왕은 40대부터 거의 치아가 없었다. 입속에 생긴 구멍 때문에 피고름이 흐르고 고약한 입냄새가 났다. 국왕의 엄숙한 만찬에 참가한 귀족들은 이따금 왕의 코에서 음식이 새어나오더라도 그리 놀라지 않았다. 국왕의 신성한 발에서도 심한 악취가 났다. 사람들은 루이14세가 풍기는 고약한 냄새를 힘겹게 참아야만 했다.

- 루이 14세의 건강 -
국왕은 밤 10시에 저녁 식사를 했다. 만찬은 둥근 천장이 있는 대기실에서 이루어졌으나 예법은 점심 식사와 비슷했다.
식사가 끝나면 국왕은 가족들과 잡담을 나누고 자신의 취미인 당구를 즐겼다. 그는 당구 실력이 매우 뛰어났다.

자정이 되기전 국왕은 침실로 향했다. 이제부터 엄숙한 취침 의식이 시작된다.
국왕은 자신을 둘러싼 애견들에게 비스켓 몇개를 던져준다. 그는 모자와 지팡이, 장갑을 벗고 무릎을 꿇은채 사제와 기도를 낭송했다. 이어서 특권 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참석자들 중에서 특별히 국왕에게 지목된 사람이 휴대용 촛대를 들었다. 그것은 대단한 특혜에 속했다. 의식이 끝나면 침실 집행관이 사람들에게 물러날것을 명한다.
그럼에도 아직 남아있는 특권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실내 변기에 앉은 국왕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 자리에 참석하려면 침실 시종의 직위를 갖고 있거나 특허장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특허장은 6만 에퀴를 주고 구입할 수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은 10만 에퀴에 그 종이조각을 구입했다.
볼일을 마친 국왕은 조립식 의자에 앉았다. 이발사가 가발을 벗기고 모자를 씌워준다. 이제 왕은 젖은 냅킨으로 손가락을 닦고 잠자리에 들었다. 침실 수석 시종이 침대 커튼을 치고 같은방에 놓인 불침번 침대로 가서 누웠다. 이제 왕은 잠들수 있다. 그러나 때때로 침대 위를 뛰어다니는 빈대들이 무엄하게도 국왕의 신성한 수면을 방해하곤 했다.
다음날 아침 8시, 벽시계가 여덟번 울리면 다시 침실 시종이 국왕을 깨울 것이고, 똑같은 하루가 반복될 것이다.
- 이 글은 알랭 드코의 책 '베르사유'의 내용 일부와 기타 잡자료를 취합한 것입니다.
수탉이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면 침실밖에서 대기중이던 3인이 즉각 국왕의 침실로 들어간다. 침실 수석 시종과 수석 내과의, 수석 외과의가 그들이었다. 국왕의 유모도 그들과 함께 들어섰다. 침실 수석 시종이 외쳤다.
"폐하!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시종은 프랑스 왕실 문장이 화려하게 수놓인 이불을 걷어올렸다. 독수리 형상이 담긴 방패꼴 문장들은 루이14세가 네덜란드, 플랑드르, 로렌에서 거둔 영광스러운 승리를 상징했다.
내과의와 외과의는 신성한 국왕의 몸을 검진하고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미소년 루이 14세
8시 15분이 되면 침실 시종은 시종장이나 수석 궁내관을 불렀다. 문이 열리면 제일 먼저 아침 알현을 할 권리가 있는 자들이 들어섰다. 왕의 동생과 아들들, 그외의 자손들과 의상 시종장이 그들이었다. 침실 수석 시종이 왕의 두손에 미사주를 붓고 성령 기도서를 건네주었다. 국왕은 침대 위에서 15분 가량 기도를 올렸다. 기도가 끝나면 국왕은 일어나 슬리퍼를 신었다. 시종장이 그에게 실내 가운을 입혀주었다.
8시 30분, 두번째 알현의 특권을 가진 이들이 방안으로 들어섰다. 특권 귀족들을 포함하여 책과 편지를 읽어주는 낭독 시종들, 오락 담당 시종들, 가마꾼등이 그들이었다. 그동안 국왕은 면도를 했다. 이발사는 왕의 모자를 벗기고 기상 의식에 쓸 가발을 씌워주었다. 국왕이 다시 방문을 열라고 명하면 이번에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밀려 들어왔다.
집무실과 침실의 집행관들, 왕의 외투를 받드는 시종들, 침실 시종들, 사제장, 기도실 책임자, 고해신부, 국가 고문, 근위대장, 왕실 수렵장, 늑대 사냥 지휘자, 사냥개 대장, 마굿간 담당 시종장, 외국 사절 안내자, 시동 관리자, 수석 급사장, 식량 관리자, 인쇄업자, 수석 건축가, 내과의와 외과의들, 안과의사와 치과의사, 접골사 등등.. 온갖 인간들이 서로 밀치고 발을 구르며 방으로 들어왔다.
집행관이 모든 사람들의 이름을 엄숙하게 낭독하였다. 면도가 끝나면 국왕은 비단 스타킹이 붙은 짧은 바지를 입었다. 의상실의 시동중 하나가 다이아몬드 버클이 장식된 구두를 신겨주었다. 이제 국왕의 아침 식사가 날라져왔다. 아침은 대략 수프와 차로 이루어져 있었고, 가끔 빵 한조각이 곁들여졌다. 왕세자가 엄숙하게 냅킨을 건네면 국왕은 그것으로 입술을 닦았다. 만약 왕세자가 없으면 왕자들중 한명이 그 일을 대신했다.
식사가 끝나면 국왕은 실내 가운과 잠옷을 벗었다. 시종 하나가 왕세자에게 국왕의 셔츠를 전해주면 그가 다시 왕에게 그것을 전달했다. 두명의 시종들이 왕의 실내 가운을 넓게 펼쳐 군중들의 호기심어린 눈으로부터 가려주었다. 이제 국왕은 검을 허리에 두르고 저고리와 성령의 리본을 걸치며 몸에 달라붙는 겉옷을 입고.. 직접 넥타이를 매고 손수건을 꽃은뒤에 의상 시종장으로부터 모자와 장갑, 지팡이와 망토를 받아들었다.

모든일이 끝나면 국왕은 침대와 벽 사이에서 잠시 기도를 올렸다. 기도가 끝나면 국왕은 집무실로 건너간다. 다양한 인간들이 집무실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거나, 왕의 뒤를 따라 집무실로 향했다. 국왕은 그곳에서 신하들에게 그날의 명령을 내렸다. 신하들이 모두 나가면 국왕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취미인 건축물과 정원에 대해 주위 사람들과 담소를 나눈다.
미사 시간이 다가왔다. 모든 신하들은 예배당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국왕의 행차를 기다렸다. 여기서 어떤 이들은 지나가는 국왕에게 각종 진정이나 사면 요청을 했다. 그러면 왕은 정중하게 요청을 고려해보겠노라고 대답했다. 예배당에서 귀부인들은 오직 국왕만 바라보았다. 심지어 어떤 부인들은 국왕의 눈에 띄기 위해 아예 제단에서 등을 돌리고 서있었다.
미사가 끝나면 국정자문회의가 시작된다. 왕은 침실 옆의 집무실로 재상들을 불러모았다. 회의는 오전 내내 진행되었다. 정오가 되면 국왕은 회의를 마치고 훌륭한 예술품들로 장식된 의자식 실내 변기에 앉아 볼일을 보았다.
오후 1시가 되기 직전 근위병들이 군중들 사이로 길을 내면, 금은으로 수놓은 천으로 덮여 가려진 기묘한 상자들을 공손하게 받든 하인들이 홀을 걸어갔다. 그 뒤에는 급사장이 자신의 직권을 상징하는 지팡이를 휘두르며 걷고, 홀 집행관, 식량 관리자, 장교들, 성직자들이 뒤를 따랐다. 기묘한 상자 속에는 국왕의 식사가 담겨 있었다.
국왕은 자신의 침실 창문 앞에 놓인 작은 정사각형 테이블에서 매일 오후 1시에 점심 식사를 했다. 루이14세의 신성한 위장은 활력에 넘쳤다. 국왕이 주최하는 공식 회식에서는 다섯번의 성대한 식사와 수프, 앙트레, 구운 고기가 포함된 후식이 나왔다. 매번 음식이 나올 때마다 다섯 접시에서 여섯 접시 가량의 요리가 제공되었다. 하루는 병에 걸린 국왕이 식이요법을 하게 되었다. 그는 튀긴 빵과 비둘기 수프, 구운 닭고기 세마리로 간단히 식사를 마쳤다. 후일 루이14세의 사체를 부검한 의사들은 국왕이 가진 위장의 용량이 비슷한 몸집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 거의 두배에 달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국왕은 식사중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대신 그는 오렌지 꽃잎을 띄운 물을 마셨다. 국왕은 40대부터 거의 치아가 없었다. 입속에 생긴 구멍 때문에 피고름이 흐르고 고약한 입냄새가 났다. 국왕의 엄숙한 만찬에 참가한 귀족들은 이따금 왕의 코에서 음식이 새어나오더라도 그리 놀라지 않았다. 국왕의 신성한 발에서도 심한 악취가 났다. 사람들은 루이14세가 풍기는 고약한 냄새를 힘겹게 참아야만 했다.

- 루이 14세의 건강 -
루이14세는 일흔일곱살의 생애 동안 항상 의사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태양왕의 긴 삶은 그리 건강했다고 평가할 수 없다. 그것은 신성한 국왕의 신체를 책임진 돌팔이들의 책임이 컸다.
국왕에게는 열한살부터 주치의로 일하던 다켕이 있었다. 그는 개종한 유대교 랍비의 손자이자 한 주교의 아버지였다. 그러나 루이14세가 베르사유 궁전에 정착했을 무렵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났다. 그는 파공이라는 이름의 의사였다. 다켕이 파공보다 우세한 점은 오래전부터 국왕의 신체를 돌봐왔다는 것이었고, 파공이 다켕에 우세한 점은 그가 국왕의 애인인 맹트농 부인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점이었다.

Guy Crescent Fagon
두 돌팔이들 간의 경쟁에서는 파공이 대체로 우세했다. 둘은 안티몬 제나 구토제로 쓰이는 포도주, 기나피 등의 몇가지 처방에는 서로 동의했다. 그러나 국왕의 신체에 대해서는 서로간의 견해차이로 옥신각신했다. 파공은 왕이 림프성 체질이라고 생각했으며, 다켕은 국왕이 지나친 육식과 독주 때문에 속이 타고 담즙이 많은 체질이라 진단했다. 그래서 두 의사는 완전히 상반되는 처방과 식이요법을 국왕에게 권했다.
1685년 1월 내내 루이14세는 침실에서 나오지 못했다. 그는 비밀스럽게 심각한 수술을 받았던 것이다. 국왕은 치아 상태가 나빴는데 몇달전 썩은 치근을 제거했다. 그러나 절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종양을 일으켜 염증과 함께 부비강염을 불러왔다. 그것을 고치기 위해 다켕은 위턱의 남은 치아 전부를 뽑아버리기로 했다. 국왕은 끔찍한 고통을 견뎌내야만 했다.
집도의는 왕의 신성한 치아를 세차게 잡아 뽑았다. 다켕은 "썩은 치아들을 뽑자 턱뼈가 부딪치며 구멍이 생겼다."라고 기록했다. 이 구멍을 메우기 위해 그는 단호한 처방을 고안했다. "1월 10일, 그 부위를 불에 달군 인두로 14번이나 지졌다. 그일을 한 뒤부아씨는 고통받는 국왕보다 훨씬 지쳐보였지만 그래도 꼭 필요한 일이기에 온힘을 다해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해냈다."
그러나 이 수술은 기대한 결과를 전혀 가져오지 못했다. 따라서 2월 1일 다시 인두 요법이 시작되었다. 국왕은 총 3번의 불인두 시술을 받았다. 마침내 구멍은 메꿔졌지만 완전히 아물지는 않았다. 부비강염은 여전히 진행중이었다. 루이 14세는 왕성한 식욕을 타고난 사람으로서 한번에 엄청난 양의 식사를 했다. 그런데 이가 없는 관계로 당연히 음식물을 씹어넘기지 못했다. 소화불량이 따라왔고 그것은 만성 장염으로 연결되었다.
주치의들은 국왕의 위장을 관장하기 위해 가재가루, 살모사 가루, 탄닌, 말똥 등을 조합한 새로운 처방을 내렸다. 루이14세는 이 약을 복용한 후 하루에 열여덟번이나 변기의자에 몸을 의지해야 했다. 결국 장이 염증을 일으켜 국왕은 피까지 토했다. 설사는 국왕의 항문에 치루를 만들었다.
1686년 주치의들은 국왕의 치루를 치료하기 위한 처방을 놓고 다시 분열을 일으켰다. 이 소식이 충성스러운 신민들에게 알려지자 즉각 전국에서 기묘한 처방들이 쇄도했다. 전국에서 지원한 치루환자들을 집결시켜 상반되고 모순된 각종 요법들을 시험해보기로 했다. 베르사유에 도착한 지원자들은 엄숙한 왕궁의 모습에 눈의 휘둥그래지며, 품위있는 질병에 걸린 것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했다. 이들에게는 진통제와 고약, 연고, 습포, 다양한 찜질과 온갖 약제들이 투여되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그 어떤 환자에게서도 진전이 없었다.
다켕과 파공은 다시 칼을 빼들었다. 그들은 외과의 펠릭스에게 치루환자들을 수술하는 요령을 익히도록 명령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1686년 11월 18일, 국왕의 항문에 메스를 가했다. 루이14세는 두번의 메스질과 여덟번의 가위질을 견뎌냈다. 그는 수술을 한 당일밤 국정자문회의를 주관했으며 이튿날에는 외국 사절들을 영접했다. 사람들은 국왕의 이마에서 땀이 줄줄 흐르는 것을 목격했다.
국왕은 의사들의 정교한 솜씨를 높게 평가했다. 펠릭스는 보상으로 물리노의 영지와 12만 루블을 받았고 다켕은 10만 루블을 파공은 8만 루블을 받았다. 루이14세는 사실 이런 잔인한 치료를 몹시 싫어했다. 그는 몹쓸 돌팔이들을 몽땅 내쫓아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국왕으로서 당연히 수행해야할 의무감이 그의 어깨를 눌렀고, 의사들의 처방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는 주치의에게 자신의 명예와 국가의 재건에 관해서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다고 단호히 선언했다. 자신이 곧 국가라고 믿던 태양왕의 위대한 의지를 엿볼수 있다.
국왕에게는 열한살부터 주치의로 일하던 다켕이 있었다. 그는 개종한 유대교 랍비의 손자이자 한 주교의 아버지였다. 그러나 루이14세가 베르사유 궁전에 정착했을 무렵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났다. 그는 파공이라는 이름의 의사였다. 다켕이 파공보다 우세한 점은 오래전부터 국왕의 신체를 돌봐왔다는 것이었고, 파공이 다켕에 우세한 점은 그가 국왕의 애인인 맹트농 부인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점이었다.

Guy Crescent Fagon
두 돌팔이들 간의 경쟁에서는 파공이 대체로 우세했다. 둘은 안티몬 제나 구토제로 쓰이는 포도주, 기나피 등의 몇가지 처방에는 서로 동의했다. 그러나 국왕의 신체에 대해서는 서로간의 견해차이로 옥신각신했다. 파공은 왕이 림프성 체질이라고 생각했으며, 다켕은 국왕이 지나친 육식과 독주 때문에 속이 타고 담즙이 많은 체질이라 진단했다. 그래서 두 의사는 완전히 상반되는 처방과 식이요법을 국왕에게 권했다.
1685년 1월 내내 루이14세는 침실에서 나오지 못했다. 그는 비밀스럽게 심각한 수술을 받았던 것이다. 국왕은 치아 상태가 나빴는데 몇달전 썩은 치근을 제거했다. 그러나 절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종양을 일으켜 염증과 함께 부비강염을 불러왔다. 그것을 고치기 위해 다켕은 위턱의 남은 치아 전부를 뽑아버리기로 했다. 국왕은 끔찍한 고통을 견뎌내야만 했다.
집도의는 왕의 신성한 치아를 세차게 잡아 뽑았다. 다켕은 "썩은 치아들을 뽑자 턱뼈가 부딪치며 구멍이 생겼다."라고 기록했다. 이 구멍을 메우기 위해 그는 단호한 처방을 고안했다. "1월 10일, 그 부위를 불에 달군 인두로 14번이나 지졌다. 그일을 한 뒤부아씨는 고통받는 국왕보다 훨씬 지쳐보였지만 그래도 꼭 필요한 일이기에 온힘을 다해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해냈다."
그러나 이 수술은 기대한 결과를 전혀 가져오지 못했다. 따라서 2월 1일 다시 인두 요법이 시작되었다. 국왕은 총 3번의 불인두 시술을 받았다. 마침내 구멍은 메꿔졌지만 완전히 아물지는 않았다. 부비강염은 여전히 진행중이었다. 루이 14세는 왕성한 식욕을 타고난 사람으로서 한번에 엄청난 양의 식사를 했다. 그런데 이가 없는 관계로 당연히 음식물을 씹어넘기지 못했다. 소화불량이 따라왔고 그것은 만성 장염으로 연결되었다.
주치의들은 국왕의 위장을 관장하기 위해 가재가루, 살모사 가루, 탄닌, 말똥 등을 조합한 새로운 처방을 내렸다. 루이14세는 이 약을 복용한 후 하루에 열여덟번이나 변기의자에 몸을 의지해야 했다. 결국 장이 염증을 일으켜 국왕은 피까지 토했다. 설사는 국왕의 항문에 치루를 만들었다.
1686년 주치의들은 국왕의 치루를 치료하기 위한 처방을 놓고 다시 분열을 일으켰다. 이 소식이 충성스러운 신민들에게 알려지자 즉각 전국에서 기묘한 처방들이 쇄도했다. 전국에서 지원한 치루환자들을 집결시켜 상반되고 모순된 각종 요법들을 시험해보기로 했다. 베르사유에 도착한 지원자들은 엄숙한 왕궁의 모습에 눈의 휘둥그래지며, 품위있는 질병에 걸린 것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했다. 이들에게는 진통제와 고약, 연고, 습포, 다양한 찜질과 온갖 약제들이 투여되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그 어떤 환자에게서도 진전이 없었다.
다켕과 파공은 다시 칼을 빼들었다. 그들은 외과의 펠릭스에게 치루환자들을 수술하는 요령을 익히도록 명령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1686년 11월 18일, 국왕의 항문에 메스를 가했다. 루이14세는 두번의 메스질과 여덟번의 가위질을 견뎌냈다. 그는 수술을 한 당일밤 국정자문회의를 주관했으며 이튿날에는 외국 사절들을 영접했다. 사람들은 국왕의 이마에서 땀이 줄줄 흐르는 것을 목격했다.
국왕은 의사들의 정교한 솜씨를 높게 평가했다. 펠릭스는 보상으로 물리노의 영지와 12만 루블을 받았고 다켕은 10만 루블을 파공은 8만 루블을 받았다. 루이14세는 사실 이런 잔인한 치료를 몹시 싫어했다. 그는 몹쓸 돌팔이들을 몽땅 내쫓아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국왕으로서 당연히 수행해야할 의무감이 그의 어깨를 눌렀고, 의사들의 처방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는 주치의에게 자신의 명예와 국가의 재건에 관해서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다고 단호히 선언했다. 자신이 곧 국가라고 믿던 태양왕의 위대한 의지를 엿볼수 있다.
국왕은 밤 10시에 저녁 식사를 했다. 만찬은 둥근 천장이 있는 대기실에서 이루어졌으나 예법은 점심 식사와 비슷했다.
식사가 끝나면 국왕은 가족들과 잡담을 나누고 자신의 취미인 당구를 즐겼다. 그는 당구 실력이 매우 뛰어났다.

자정이 되기전 국왕은 침실로 향했다. 이제부터 엄숙한 취침 의식이 시작된다.
국왕은 자신을 둘러싼 애견들에게 비스켓 몇개를 던져준다. 그는 모자와 지팡이, 장갑을 벗고 무릎을 꿇은채 사제와 기도를 낭송했다. 이어서 특권 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참석자들 중에서 특별히 국왕에게 지목된 사람이 휴대용 촛대를 들었다. 그것은 대단한 특혜에 속했다. 의식이 끝나면 침실 집행관이 사람들에게 물러날것을 명한다.
그럼에도 아직 남아있는 특권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실내 변기에 앉은 국왕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 자리에 참석하려면 침실 시종의 직위를 갖고 있거나 특허장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특허장은 6만 에퀴를 주고 구입할 수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은 10만 에퀴에 그 종이조각을 구입했다.
볼일을 마친 국왕은 조립식 의자에 앉았다. 이발사가 가발을 벗기고 모자를 씌워준다. 이제 왕은 젖은 냅킨으로 손가락을 닦고 잠자리에 들었다. 침실 수석 시종이 침대 커튼을 치고 같은방에 놓인 불침번 침대로 가서 누웠다. 이제 왕은 잠들수 있다. 그러나 때때로 침대 위를 뛰어다니는 빈대들이 무엄하게도 국왕의 신성한 수면을 방해하곤 했다.
다음날 아침 8시, 벽시계가 여덟번 울리면 다시 침실 시종이 국왕을 깨울 것이고, 똑같은 하루가 반복될 것이다.
- 이 글은 알랭 드코의 책 '베르사유'의 내용 일부와 기타 잡자료를 취합한 것입니다.

무고한 사람 열명을 숙청하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명의 스파이를 놓쳐서는 안된다.
- 니콜라이 예조프 -
2008.12.14 20:30:57
간단한 식이요법이라는게 보통 사람들 이틀치 분량이네요-_- 메뉴만 읽어도 답답해서 차라리 쌀밥에 된장국 한그릇이 더 좋은 메뉴로 보이게되요^_^ 아무리 왕이 살고 있는 공간이라도 지금의 기준으로는 위생적으로나 의학적으로 많이 열악해보이는군요.
2008.12.14 20:41:17
신성한 태양왕의 위장이 신의 축복으로 보통 사람 두배의 체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ㅎㅎ 왜 저렇게 살아야하는지 의문이 들긴 합니다. 저같으면 아리따운 아가씨들만 곁에 두고 나머지는 다 쫓아버릴텐데..
2010.11.09 23:05:45
루이 14세의 엄청난 식욕에는 기생충또한 한몪한걸로 알고잇습니다. 또한 이빨을 모조리 뽑아버린 것에대해서는 당시 유럽에서는 이빨이 썪는일은 흔한 일이였고 많은 사람들이 그로인해 고통받았는데 그래서 왕의 주치의 (누구인지는 정확히 기억이;;)는 치아는 만병의 근원이라 믿었고 그로인해 루이14세에게 만병의 근원인 치아를 문제가 되기전에 모두다 뽑아버릴것을 제안했다고하는 설도있습니다. (정확하지는 않네요;;) 처음에는 물론 루이 14세는 이에대해 강하게 거부감을 들어냈지만 왕의 영광이 곧 국가의 영광이라는 내용의 말에 넘어가서 결국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여담입니다만.. 그 당시 유럽인들은 목욕은 건강에 해롭다고 여겼으며 (기독교로인한 영향) 뜨거운 열로인해 피부에 모공 열리고 그곳으로 질병이 침투할수있었다고 믿었다고 하네요... 루이 14세가 태어난후 처음 목욕을 한 나이는 5살때였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