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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은 유명한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이다.


이 작품은 전쟁의 비참한 모습을 가장 잘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죽은 아이를 안고 울부짖는 어머니와 하늘을 향해 두팔을 벌리며 기도하는 사람, 미친듯이 울부짖는 사람들과 그들 위에 떠있는 원반 모양의 학살자.


보기만 해도 전율이 느껴지지 않는가?


이 작품은 병사와 동물 이외의 등장 인물들을 모두 여성으로 묘사하여 극적인 효과를 더욱 높였다.



흠.. 그러나 나는 게르니카가 지닌 의미가 아니라 반전과 평화의 상징으로 여겨져온 게르니카라는 작품의 순수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해보고자 한다.


다음 작품을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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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피카소의 또다른 반전 명작. 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in korea)이다.


무력하게 알몸으로 서있는 희생자들과 그들을 향해 무시무시해보이는 무기를 겨누고 있는 사악한 무리들! 벌거벗은 희생자들 중에는 임산부도 있고 소녀도 있다! 우는 아기를 안고 눈물을 흘리는 여자, 체념한 듯한 여자, 겁에 질린 아이.


이 작품은 1950년 10월 17일 함경남도 신천군에서 50일동안 미군이 무려 35,383명을 학살한 것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얼마나 사람들의 감성을 깊게 자극하는 그림인가?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전쟁과 미국에 대한 증오심이 끓어오르는듯 하다.


그런데 문제는 저 사건이 진실이 아닐 가능성이 극히 높다는 점이다. 피카소는 사실 그 학살현장에 있지도 않았다. 누군가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화폭에 옮겼을 뿐이다. 누군가는 누구일까? 바로 소련이다. 미국과 대립하고 있던 소련은 공산당원인 피카소를 프로파간다에 효과적으로 활용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게르니카도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스페인 내전이 한창일 무렵 소련에서는 스탈린의 대숙청이 힘차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인민전선 정부에 나름의 지분을 가지고 있던 스딸은 대숙청의 칼날을 스페인에까지 겨눴다. 스페인에서의 숙청은 모스크바의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 공산당이 장악한 마드리드 경찰은 팔랑헤당 당원 두명을 붙잡아 음모를 꾸몄으며, 이 두 사람은 프랑코의 첩자로서 마드리드에서 우익 봉기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 음모로 스탈린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인민전선의 고위급 인사들 대다수가 숙청되었다. 결국 스페인 또한 스탈린의 완벽한 통제하에 놓이게 되었던 것이다.


스탈린의 살육이 한창 진행중이던 1937년 4월 26일, 스페인 북동부 바스크 지역의 작은 도시 게르니카에 콘도르 군단의 폭격기가 날아와 공격을 가했다.  인민전선이나 프랑코측이나 서로간에 상대 도시를 폭격한 것이 처음있는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게르니카는 인민전선의 기지로서 나름대로 타당한 전략적 목표였던 것이다.


이 폭격으로 인한 희생자의 숫자는 사람들마다 말이 다른데.. 수백명이라는 설부터 22명에 불과했다는 주장까지 있다. 그럼에도 이 공격이 스페인 내란을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사건이 된 것은 전적으로 코민테른 선동가들의 피나는 노력 덕분이었다. 피카소는 그들의 의도를 충실히 따라 게르니카라는 희대의 걸작을 탄생시켰다.



- 스페인 내전의 성격 -

1936년 스페인에서는 총선이 실시되었다. 당시 스페인의 정계는 우익의 국민당 진영과 좌익의 인민전선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선거 결과 스페인 인민전선이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그들의 득표율은 50%를 넘지 못했기 때문에 규정에 따라 결선투표가 실시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인민전선은 헌법을 무시하고 첫번째 투표가 끝난 다음날 새로운 내각을 결성했다. 결국 인민전선이 주장하는 정통성도 완전한 합법성을 갖춘것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선거가 끝나자 과격파 좌익 행동대원들이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5월에는 무정부주의자들과 마르크스주의 통일노동자당 당원들이 도처의 공장을 점거하고 토지를 강탈하여 마음대로 분배하였다. 6월로 접어들자 폭력사태는 더욱 확산되었다. 그동안 방화로 소실된 교회가 160곳, 정치 테러로 인한 사망자가 269명, 폭행 사건이 1,287건, 파괴된 정당 사무실이 69곳, 총파업이 113건, 부분 파업이 228건, 약탈당한 신문사가 10곳이었다.


프랑코는 정당에 가입한 적이 없었지만, 조국이 무정부상태로 망가지는 것을 보다 못해 정부에 인민전선 정부에 비상사태를 선포하도록 권유했다. 그러나 인민전선은 그를 육군 참모부장 직책에서 해임하여 아프리카 서해안의 카나리아 제도로 쫓아냈다. 그럼에도 프랑코는 한동안 군부지도자들의 반란 권유를 거부했지만, 정국이 계속 악화되자 결국 7월 17일에 반란을 일으키기로 결의했다.

내전 기간 동안 인민전선은 스페인내의 카톨릭 주교 11명, 수도사의 12퍼센트(16,000명), 사제의 13퍼센트를 살해했다. 수녀들도 283명이나 살해당했고 일부는 죽기 전에 강간당했다. 통틀어 좌파가 살해한 민간인은 55,000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물론 우파들도 이들 못지않게 학살을 벌였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들은 5만명에 가까운 민간인과 군인들을 살해했다.


결국 스페인 내전은 선악의 투쟁이 아니라 전형적인 이념 전쟁이었다.


한국에서의 학살을 다시 보자!  피카소는 스페인내전에서의 루프트바페와 한국전쟁에서의 미국과 UN군을 동일시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 어느 누가 쉽게 동의할 수 있을 것인가? 그가 얼마나 순수한 마음으로 반전과 평화를 위해 게르니카라는 작품을 탄생시켰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이 일방적으로  한쪽 입장에만 치우친 역사관을 사람들에게 주입시켰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래의 두 사료는 스페인 내전 당시 양진영을 이끌던 지도자의 담화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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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코와 함께 우익 군부를 이끌던 에밀리오 몰라(Emilio Mola) 장군의 1936년 8월 15일자 담화문 -

어떤 사람들은 군사봉기가 소수 야심적인 장군들에 의해 준비되고, 선거 패배로 상심한 몇몇 정치적 당파들에 의해 획책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실한 노동 계층의 기대에 적극 부응하여 우리의 조국을 무정부적 혼란으로부터, 즉 이른바 ‘인민전선’의 집권 이후 악화일로를 걸어 온 혼란에서 구해내기 위해 들고 일어난 것입니다. 정부 당국은 이런 혼란을 지금까지 뻔뻔스럽게 비호해 왔고, 심지어는 변태적 희열을 가지고 즐기기까지 하였습니다.

우리가 만약 미리 적절한 시점에 나서지 않았더라면 20세기도 한참 진행된 이 시점에서 우리 인류 역사는 또 한 차례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혁명을 경험하였을 것이고, 자유롭고 문명된 나라로서의 우리 스페인은 유럽의 지도에서 사라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지배했던 전국 모든 지역들에서 일어난 일은 우리의 봉기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필시 일어나고 말았을 작은 예입니다. 마르크스주의 무리들의 굳게 쥔 주먹과 라 인터내셔널의 합의 하에 7월 29일에 벌이기로 했던 계획된 것 말입니다. (마누엘) 아사냐처럼 복잡한 정신 구조를 가진 괴물만이 그런 엄청난 재난을 사주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한 여성의 사랑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진기한 환상에 사로잡힌 의사 프랑켄슈타인의 터무니없는 실험의 결과물이라고 해야 할 괴물입니다. 본인은 이 인물에 대해 논의될 때 그를 처단하라는 목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아사냐는 격리되어야 합니다. 선택된 정신과 의사들이 원시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발생한 모든 정신일탈의 사례 가운데 아마도 가장 흥미로운 것이 될 이 경우를 연구할 수 있도록 그는 격리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스페인인들이 지금까지 시달려야 했던, 그리고 어떤 점에서는 지금도 시달리고 있는 모든 공포는 비록 그것들이 엄청난 것이기는 하지만 최고의 징벌이 마땅한 가장 심각한 것은 아닙니다. 가장 큰 징벌을 받아 마땅한 것은 인민전선의 두목들이 조종하고 있는 스페인에 대한 배신입니다. 즉 그들이 스페인의 분열을 위해 획책하고 있는 선동, 우리를 쳐부셔야 한다는 일념에 다른 나라들로부터 물질적 혹은 도덕적 지지를 얻는 대신 우리의 영토를 넘겨주는 행위, 우리의 보호령에서 그곳의 인민들을 사주하여 무장봉기를 부추기는 행위(이는 사악한 통역관 세르데이라의 도움을 받아 노련한 카피탄 아라냐 세뇨르 프리에토가 벌이고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페인 은행 지하에 보관되어 있는 금의 탈취, 그리고 서유럽 문명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국보의 약탈 등이 그것입니다. 아! 그러나 이 모든 행위는 반드시 그 댓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그것도 비싼 댓가를 치를 것입니다. 범죄자들의 목숨은 얼마 가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그들에게 미리, 정중히 경고합니다. 일전에 인민전선 측의 가장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마르티네스 바리오씨입니다)이 우리가 (선거에) 굴복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마르티네스 바리오씨,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굴복을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소위 마드리드 정부가 가지고 있는 모든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지금까지 그들이 받았고, 지금도 계속해서 받고 있는 외부로부터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승리가 눈앞에 있는 지금에는 더더욱 말입니다.

만일 내 말에 의심이 가면 지난 18일 저녁 내가 당신에게 말했던 때와 똑 같이 진지하게, 그리고 똑 같은 예의를 갖추어, 여기 우리가 지배하고 있는 지역에 와 보라고 초대하겠습니다. 와서 이곳을 지배하고 있는 질서와 도덕이 무엇인지, 이곳의 고귀한 사람들이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당신을 기꺼이 환영할 것입니다. 그 점은 맹세해도 좋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들이 살고 있는 스페인과 우리가 누리고 있는 스페인을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아직도 모르시고 계시다면―누가 이 참혹하기는 하지만 필요한 전쟁에서 진정한 승리자인지 완벽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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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민전선 정부의 수장 마누엘 아사냐(Manuel Azaña)가 1937년 7월 18일 발렌시아 대학에서 발표한 담화문 -

스페인에서 전쟁이 1년 넘게 진행되고 있다면, 이는 이미 국내 반란과 그것의 진압의 차원이 아닌, 외국과의 전쟁, 즉 외국의 침입이라는 것이 자명한 사실입니다. 전쟁은 순전히, 그리고 절대적으로 반란을 일으킨 군인들에 의해서가 아닌 스페인 공화정부에 대하여 은밀한 침입을 자행하고 있는 외국 열강들 때문에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작년 7월과 8월 저는 이미 문제의 양상이 급속하게 바뀌고 있으며, 스페인에 외국의 침입이 준비되고 있다는 징후와 증거가 나타나고 있다는 말씀을 국내와 국제 사회에 드린 바 있습니다. 지금 저는 그 당시에 저의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는데, 아마도 그때는 저의 말이 단순히 자기선전쯤으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내적 갈등에 직면하게 되자 국제 사회에 호소하여 그들의 동정심을 사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습니다. 그 후 몇 달이 지났습니다. 이제 명백한 증거가 여기 있습니다. 스페인은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고 독일이라는 세 열강의 침입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당하고 있는 이 침입은 왜 일어난 것입니까? 이 은밀한 전쟁은 도대체 왜 일어난 것입니까? 우리 스페인이 이들 열강들에 어떤 모욕을 가했습니까? 나는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 공화 정부는, 아니 공화 정부 뿐만 아니라 우리 스페인은 공화 정부가 들어서기 전부터 독일 제국과는 평화롭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스페인은 전쟁(1차 대전)에서 중립을 유지했기 때문에 유럽 사회에 많은 불화를 만들어 낸 베르사이유 조약의 체결에도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또 라인 강 연안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정책과도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다만 놀라움과 아픈 마음을 가지고 독일 공화 정부의 붕괴 과정에 참여하였을 뿐입니다. 이탈리아와는 수 세기 이래로 아무런 다툴 이유도, 그런 일도 없이 지내왔습니다. 그리고 1935년 스페인 정부가, 다름 아닌 바로 우파 정부가 국제 사회(la Sociedad de Naciones)의 뜻을 받들어 (이탈리아에게) 권리 존중을 강요하기 위해 영국 함대가 52개국을 대표하여 지중해로 들어가려할 때 길(지브롤터 해협)을 열어 주었던 것도 국제 사회의 계약에 따른 것이었으며 결코 우리의 행위가 다른 나머지 국가들과 다르지 않았고, 이탈리아 인민들에게 어떠한 위해도 끼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들 열강들이 스페인을 침입한 동기는 무엇입니까? 지금 국제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적대감과 경쟁이 그 원인입니까? 그러나 스페인은 그런 적대감이나 경쟁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지리적으로 우리가 거기에 포함되어 있고 우리의 중요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지중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중해에서도 스페인은 그 동안 그에 걸맞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이 부당한 침공의 원인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이미 작년에 말씀드렸다시피 그들의 침입은 공화정을 붕괴시키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스페인의 정치 체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에게 중요하다고 해도 그것이 결코 침입을 정당화하지는 못합니다. 그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들은 광산을 찾아 온 것입니다. 그들은 원료를 찾아 온 것입니다. 그들은 항구와, 해협, 그리고 대서양과 지중해의 해군 기지를 찾아 이 곳에 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 국제적 정치 권역 속에서 바로 스페인이 지금까지 움직여 온 균형을 유지하는 데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서유럽 열강들을 위협하려는 것입니다. 프랑스와 영국의 세력을 위협하려는 것입니다. 바로 그 때문에 그들은 스페인을 침공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우리의 땅에서 부분적으로만 정당화될 수 있는 상반된 이해관계가 힘을 겨루고 충돌하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스페인은 충돌의 당사자도 아니고 그것을 촉발시키지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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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한 사람 열명을 숙청하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명의 스파이를 놓쳐서는 안된다.


- 니콜라이 예조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