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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Necrosant의 레어]]></title>
        <link><![CDATA[http://www.necrosant.net/zbxe/Home]]></link>
        <description><![CDATA[]]></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Sun, 20 May 2012 08:17:13 +0900</pubDate>
        <totalCount>347</totalCount>
                <item>
            <title><![CDATA[스탈린의 탐욕과 복수]]></title>
            <author><![CDATA[necrosant]]></author>
            <link><![CDATA[http://www.necrosant.net/zbxe/36762]]></link>
                        <description><![CDATA[<div class="xe_content"><P><img src="http://www.necrosant.net/zbxe/files/attach/images/3392/762/036/cossacks.jpg" alt="cossacks.jpg" title="cossacks.jpg" style="" /><BR /><BR /><BR />피비린내나는 2차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자 무자비한 강철남의 제몫 챙기기와&nbsp;복수극이 시작되었다.</P>
<P><BR />1941년 8월 14일 체결된&nbsp;대서양헌장에는 '조인국은 세력 확장을 추구하지 않고,&nbsp;주민들의 자유 의사에 반하는 영토 변경을 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이&nbsp;명시되어 있다. <BR /><BR />그러나&nbsp;이런 원칙에서 스탈린은 예외였다. </P>
<P><BR />얄타회담에서 스탈린은 동프로이센과 폴란드 동부 및&nbsp;발트3국에 대한 영토권을 확보했으며, 일본과의 전쟁에 참가하는 댓가도 따로 짭짤하게 챙겼다. 그는 외몽골과 사할린 남부 및 쿠릴열도에 남만주 철도의 권리와 뤄순항까지 요구했다. 루즈벨트는 별다른 저항없이 이런 탐욕스런 요구에 순순히 동의했다. </P>
<P>스딸의 도둑질로 가장 큰 피해자가 된 것은 중국이었다. 연합국의 일원임에도 얄타 회담에 참가하지 못한 장개석은 앉아서 만주를 도둑맞게 되었다. (만주는 후일 모택동에게 반환되어&nbsp;중국 공산화의 거점 역할을&nbsp;한다.)</P>
<P>&nbsp;</P>
<P>1944년 5월 31일에는 스탈린의 요구에 따라 유럽을 해방하는 과정에서 연합군의 보호를 받게된 소련인들은 그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무조건 소련으로 송환하도록 결정되었다. </P>
<P>독일군 포로들중 10% 가량이 소련인이었다. 그들중 소련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미국은 독일 군복을 입은 사람은 특별한 의사를 표시하지 않는한 무조건 독일인으로 취급한 반면 영국은 스딸과의 약속에 있어서 약간의 융통성도 발휘하지 않았다.</P>
<TABLE style="BORDER-BOTTOM: #cccccc 1px solid; BORDER-LEFT: #cccccc 1px solid; BACKGROUND-COLOR: #ffffff; BORDER-TOP: #cccccc 1px solid; BORDER-RIGHT: #cccccc 1px solid"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1 width="100%">
<TBODY>
<TR vAlign=top>
<TD>&nbsp;이것은 소련이 해결해야할 문제다. 영국 정부의 소관이 아니며, 때가 되면 소련이 원하는 모든 사람을 소련에 넘겨주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이 소련으로 가서 총살당하거나, 영국 법률에 정한 것보다 상대적으로 가혹한 대접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신경쓰지 말아야 한다.&nbsp; <BR />- 영국 외무부 법률고문 태트릭 딘 -</TD></TR></TBODY></TABLE><BR /><BR />영국인들은 심지어 2차대전과 관계없는 소련인들까지 송환했다. 
<P></P>
<P>오스트리아 남부에서 투항한 5만명의 카자끄들이 그 케이스이다. 이들은 이 전쟁과는 무관하게 적백내전 당시 백군으로 참가하여 볼셰비키들과 싸우다 망명한 사람들이었다. 영국은 열차편으로 카자끄들을 몽땅 송환해버린다.<BR /><BR />카자끄들의 아내와 아이들도 일종의 보너스로서 함께 송환되었다.<BR /><BR /><EMBED height=570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pluginspage=http://www.microsoft.com/Windows/MediaPlayer/ width=714 src=http://www.youtube.com/v/qI3NpjOM-ZU&amp;hl=ko&amp;fs=1 autostart="0" wmode="transparent" ?> <BR />독일군 소속 카자끄 기병대<BR /><BR /></P></div>]]></description>
                        <pubDate>Tue, 01 Feb 2011 17:53:19 +0900</pubDate>
                        <category><![CDATA[스탈린]]></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보랏 - 오! 카자흐스탄]]></title>
            <author><![CDATA[necrosant]]></author>
            <link><![CDATA[http://www.necrosant.net/zbxe/36629]]></link>
                        <description><![CDATA[<div class="xe_content"><P>오랜만에 영구가 슬랩스틱 코미디 영화를 들고 돌아왔다.<BR /><BR />슬랩스틱이라 함은 몸개그를 일컬음인데, 몸개그는 결국 바보짓이라 할 수 있다.&nbsp;행동에 인과관계가 없는 사람을 우리는 바보라고 부른다. <BR /><BR />어리숙한&nbsp;춤을 추던 두명의 코미디언 중 한명이 갑자기&nbsp;다른 사람의 뺨을 친다.&nbsp;참으로 데카당스한 상황이지만 적절한 타이밍과 과장이 곁들여지면 사람들을 자지러지게 만들 수 있다.<BR /><BR /></P>
<TABLE style="BORDER-BOTTOM: #888888 1px solid; BORDER-LEFT: #888888 1px solid; BACKGROUND-COLOR: #eeeeee; BORDER-TOP: #888888 1px solid; BORDER-RIGHT: #888888 1px solid"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1 width=250>
<TBODY>
<TR vAlign=top>
<TD><img src="http://www.necrosant.net/zbxe/files/attach/images/3392/629/036/09.jpg" alt="09.jpg" title="09.jpg" style="" />&nbsp;<BR />영구는 괴롭다!<BR />부자연스럽게 비틀린 입과 반쯤 감긴 눈.&nbsp;&nbsp;<BR />영구가 괴로우므로 시청자는 즐겁다.</TD></TR></TBODY></TABLE><BR /><BR />보랏이라는 영화가 있다.&nbsp;꿈보다 해몽이 좋다고 이렇게 무뇌스러운 영화에도 자본주의 비판이니 미국 비판이니 하면서 무슨 의미를 부여하려 애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볼 때 이 영화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것은 무의미하다.<BR /><BR />이유없이 호통치고 뺨을 때리며 다른 사람을 바보로 만들고 자기발에 걸려 넘어지는게 바로 코미디기 때문이다. 여기서 무슨 의미와 의식을 찾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BR /><BR />각설하고..&nbsp;&nbsp; 보랏을 보다보면 마지막에 카자흐스탄의 National Anthem이라는 곡이 등장한다. <BR />이게 진정한 걸작인데.. 정말 어느 나라의 國歌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웅장한 멜로디를 따라 황당무계하기 이를데 없는 가사가 전개된다.<BR /><BR />코미디를 만들기 위해서 멀쩡한 나라를 바보로 만들어도 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노래 자체는 괜찮다.&nbsp; 
<P></P>
<P></P><img src="http://www.necrosant.net/zbxe/files/attach/images/3392/629/036/2006_borat.jpg" alt="2006_borat.jpg" title="2006_borat.jpg" style="" /><div><script type="text/javascript">displayMultimedia("http://www.necrosant.net/sound/O_Kazakhstan.mp3", "716","44", { autostart : false });</script></div><BR /><BR />Kazakhstan greatest country in the world.<BR />All other countries are run by little girls.<BR />Kazakhstan number one exporter of potassium.<BR />Other countries have inferior potassium.<BR />카자흐스탄 가장 위대한 나라<BR />모든 다른 나라들은 계집들이 운영한다네.<BR />카자흐스탄 넘버원 포타슘 수출국<BR />다른 나라 포타슘은 저질이라네.<BR /><BR />Kazakhstan home of Tinshein swimming pool.<BR />It’s length thirty meter and width six meter.<BR />Filtration system a marvel to behold.<BR />It remove 80 percent of human solid waste.<BR />카자흐스탄 틴세인 수영장의 고향<BR />길이 30미터에 너비는 6미터<BR />마술같은 여과 시스템<BR />인분의 80%를 제거한다네.<BR /><BR />Kazakhstan, Kazakhstan you very nice place.<BR />From Plains of Tarashek to Norther fence of Jewtown.<BR />Kazakhstan friend of all except Uzbekistan.<BR />They very nosey people with bone in their brain.<BR />카자흐스탄, 카자흐스탄 너는 매우 좋은 곳.<BR />타라쉑의 평원부터 북쪽 유대인 마을의 담장까지<BR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을 제외한 모두의 친구<BR />그들은 뇌속의 뼈까지 시끄러운 놈들<BR /><BR />Kazakhstan industry best in the world.<BR />We invented toffee and trouser belt.<BR />Kazakhstan’s prostitutes cleanest in the region.<BR />Except of course Turkmenistan’s<BR />카자흐스탄 산업은 세계 최고<BR />토피와 허리띠를 발명했다네.<BR />카자흐스탄 창녀는 이 지역에서 제일 깨끗해<BR />투르크메니스탄을 제외하고<BR /><BR />Kazakhstan, Kazakhstan you very nice place.<BR />From Plains of Tarashek to Norther fence of Jewtown.<BR />Come grasp the might phenis of our leader.<BR />From junction with the testes to tip of its face!<BR />카자흐스탄, 카자흐스탄 너는 매우 좋은 곳<BR />타라쉑의 평원부터 북쪽 유대인 마을의 장벽까지<BR />우리 지도자의 힘좋은 페니스를 받아들여<BR />사타구니의 고환부터 머리 끝까지 
<P></P></div>]]></description>
                        <pubDate>Tue, 11 Jan 2011 18:48:47 +0900</pubDate>
                        <category><![CDATA[anthem]]></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메소포타미아의 스탈린]]></title>
            <author><![CDATA[necrosant]]></author>
            <link><![CDATA[http://www.necrosant.net/zbxe/28896]]></link>
                        <description><![CDATA[<div class="xe_content"><P>이오시프 스탈린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자연히 대숙청과 개인숭배라는 단어가 떠오르게 된다. 그는 전율끼치는 비밀경찰 조직을&nbsp;운용하며&nbsp;편집증적인 숙청을 즐겼다. 과거 제정러시아 시대의 그 어떤 짜르도 스탈린만큼의 권력을 지니지 못했으며, 그보다 더 개인적인 숭배를 받지 못했다. <BR /><BR />스탈린은 그야말로&nbsp;20세기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에서&nbsp;역사상 가장&nbsp;강한 권력을 누렸던 초독재자였다. 그의 무한권력은&nbsp;후대의 독재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스탈린주의라는 독특한 정치-사회 이데올로기를 탄생시킨다. 오늘날의 북한은 스탈린주의 국가의 전형적인 특성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BR /><BR />한편 고대 문명이 탄생한 유서깊은&nbsp;메소포타미아에도 스탈린을 추종하는 독재자가 한명&nbsp;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바로 후세인이다. 소비에트의 강철 서기장에 경도된&nbsp;대통령궁의 후세인 집무실은&nbsp;온통 스탈린에 관한 책으로 도배되어 있었다.<BR /><BR /><img src="http://www.necrosant.net/zbxe/files/attach/images/3392/896/028/stalin_hussein.png" alt="stalin_hussein.png" title="stalin_hussein.png" class="iePngFix" style="" /><BR /></P>
<P>후세인 치하의 이라크에서는 비밀경찰이 모든 시민사회에 잠입하여 반체제적 언동을 적발하였다. 이런 통치는 국민을 공포로 지배하였으며 시민들 서로가 서로를 감시, 밀고하도록 하였다. 스탈린 시대에 버금가는 자의적 체포나 고문도 일상적으로 이루어졌다.</P>
<P>후세인은 스탈린에 못지않게 자신의 우상화에 열중하여 거대한 동상이나, 초상화 포스터를 많이 제작하였다. 당시 이라크에는 후세인 우상화를 위한 작품만 전적으로 제작하는 직업이 존재하였다.&nbsp;이라크 국영TV는 매일 사담을 함무라비에 버금가는 위대한 이라크의 지도자로&nbsp;칭송하는 노래와 시를 방영하였다.</P>
<P><BR /><STRONG>- 후세인의 대숙청 -<BR /></STRONG><BR />사담 후세인은 1979년 7월 28일에 대통령으로 취임한 직후 스탈린식의 대숙청을 벌인다. 스탈린은 정적에 대한 숙청작업을 자신들의 사냥개에 일임했지만, 후세인은 직접 전면에 나서 일을 처리했다는 차이점은 있겠다.</P>
<P>후세인을 자신을 타도하기 위한 시리아의 음모를 적발했다고 발표하고 가담자들을 체포하여 재판에 회부했다. 혁명 평의회(RCC) 멤버중 1/3이 총살되었으며 당과 보안기관, 정규군, 인민군, 노동조합, 학생조합, 직능별 단체 등등. 모든 조직을 대상으로 의심의 여지가 있는 모든 자들이 숙청되었다.</P>
<P><EMBED height=570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pluginspage=http://www.microsoft.com/Windows/MediaPlayer/ width=714 src=http://www.youtube.com/v/VHBF8EKt-zc&amp;hl=ko&amp;fs=1 autostart="0" ?></EMBED><BR /><BR />1979년 7월 18일, 후세인은 국제회의용으로 건설된 회의장에 총 4백여명의 바트당 고위간부와 RCC멤버들을 모았다. </P>
<P>그는 큰 시가를 든채 테이블 뒤에 앉아 있다가 천천히 일어나 연단으로 걸어갔다. 사담은 거대하고 사악한 음모가 있었음을 밝히고 그것의 신빙성을 판단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P>
<P>&nbsp;</P>
<P>곧이어 RCC 의장인 마샤디가 커튼 뒤에서 불려나왔고, 후세인이 연단에서 내려와 큰 시가를 피우며 앉아 있는 동안 음모의 내막을 털어놓았다. 마샤디가 음모의 공모자들을 하나씩 발표할 때마다 보안요원들이 그 사람을 회의장 밖으로 끌고나갔다. </P>
<P>명단 발표가 끝날때까지 무사히 회의장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후세인의 이름을 외치기 시작했다. </P>
<P>&nbsp;</P>
<P>사담은 자신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사람들을 향해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두차례에 걸쳐 화답했다. </P>
<P>후세인은 반역자들이 영광스러운 바트당을 와해하려 애쓴 내용을 언급했다. 반역자임이 드러난 과거 측근들의 이름을 부를때 후세인은 눈물을 닦았다. </P>
<P>&nbsp;</P>
<P>회의가 끝날 무렵에 그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듯 웃었고, 참석자들 모두 그를 따라 웃었다.</P>
<P>&nbsp;</P>
<P>이날 행사는 모두 녹화되었으며 66명이 체포되어 그중 22명은 즉시 처형되었다.</P></div>]]></description>
                        <pubDate>Mon, 16 Nov 2009 14:50:16 +0900</pubDate>
                        <category><![CDATA[후세인]]></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기묘한 동맹과 적]]></title>
            <author><![CDATA[necrosant]]></author>
            <link><![CDATA[http://www.necrosant.net/zbxe/28285]]></link>
                        <description><![CDATA[<div class="xe_content"><P><img src="http://www.necrosant.net/zbxe/files/attach/images/3392/285/028/ChuchillFDRGuns.jpg" alt="ChuchillFDRGuns.jpg" title="ChuchillFDRGuns.jpg" style="" /><BR /><BR />히틀러와 처칠, 루즈벨트간의 함수관계는 명료하다. <BR /><BR />처칠과 루즈벨트는 동맹관계이며,&nbsp;히틀러는 다른 두명의 숙적이다.</P>
<P><BR />그러나 전세계의 1/4을 지배하는 대영제국에 대한 이들의 태도는 극히 미묘했다.</P>
<P>처칠은 필사적으로 제국을 지키려했고 히틀러는 대영제국의 영광을 찬양했으며, 루즈벨트는 세계를 지배하는 해가 지지않는&nbsp;섬나라의 그림자에&nbsp;침을 뱉았다.</P>
정치활동 기간 내내 나는 항상 독일과 영국간의 밀접한 우호관계와 협력 사상을 천명해왔다. 영국과 독일의 우호협력에 대한 바람은 우리 두 민족의 인종적 동일성에서 유래한 정서뿐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 대영제국의 중요성에 대한 나의 개인적&nbsp;깨달음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BR />이 제국(영국)이 인간들의 문화와 경제생활 전반에 더없이 가치있는 요소라는 나의 믿음에는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영국이 어떤 수단을 통해 식민지를 획득했던 간에 이제 앵글로색슨족이&nbsp;헤아릴 수 없는 식민화 작업을 완수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BR />나는 이 업적에 대해 충심으로 감탄을 보낸다. 이 노고를 파괴하려는 것은 고귀한 인간의 관점에서 볼때 난폭한 파괴력의 발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BR />- 아돌프 히틀러 -
<P><img src="http://www.necrosant.net/zbxe/files/attach/images/3392/285/028/roosevelt.jpg" alt="roosevelt.jpg" title="roosevelt.jpg" style="" /><BR /><BR /><BR />반면 루즈벨트는 전쟁기간&nbsp;내내 홍콩을 장개석에게 반납하라고 요구하고&nbsp;인도문제를 제기하는등 끊임없이 대영제국을 공격했다.</P>
<P>이에 격분한 처칠은 흑인차별이 심한 미국 남부에 국제 인권&nbsp;사찰팀을 보내야한다고 역공을 감행하기도 한다.</P>
대영제국의 존재에 간섭의 손길을 뻗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 전쟁에서 최선을 다해왔는데.. 우리들이 피고석에 앉아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결코 할 수 없다.<BR />- 처칠 -
<P>처칠은 대영제국을 해체하기 위해 총리가 된것은 아니라고 고함을 쳤다. 식민지을 성급히 독립시키는 것은 열살난 아이에게 현관문 열쇠와 엽총을 주는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P>
<P>그러나 바닥난 금고 앞에서는 모든일이 허사였다. 히틀러와의 전쟁으로 영국은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었고, 채권자인 미국은 전쟁이 끝난후&nbsp;냉혹하게 대영제국을 해체시켜버린다. </P></div>]]></description>
                        <pubDate>Fri, 23 Oct 2009 19:38:50 +0900</pubDate>
                        <category><![CDATA[히틀러]]></category>
                        <category><![CDATA[처칠]]></category>
                        <category><![CDATA[루즈벨트]]></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욤 키푸르 전쟁과 골다 메이어]]></title>
            <author><![CDATA[necrosant]]></author>
            <link><![CDATA[http://www.necrosant.net/zbxe/27762]]></link>
                        <description><![CDATA[<div class="xe_content">1973년 어느날 IDF(srael Defense Forces)의 작전참모실에는 골다 메이어(Golda Meire) 수상과 모세 다얀(Moshe Dayan) 국방장관을 비롯한 이스라엘군&nbsp;주요인사들이 모여 있었다. <BR /><BR />다비드 엘라자르(David Elazar)&nbsp;참모총장이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브리핑을 실시하였다.<BR /><BR />"이집트군의 방어진은 수에즈 운하를 따라 빈틈없이 구축되어 있습니다. 병력은 10만, 탱크도 2천대가 넘습니다."<BR /><BR />참모총장의&nbsp;침울한 목소리는 지하 작전회의실에 메아리쳤다. 고급 장교들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사태의 심각성을 우려하고 있었다. 전망은 매우 어두웠다.<BR /><BR /><img src="http://www.necrosant.net/zbxe/files/attach/images/3392/762/027/Golda%20Meire_David%20Elazar.jpg" alt="Golda Meire_David Elazar.jpg" title="Golda Meire_David Elazar.jpg" style="" /><BR />골다 메이어와 다비드 참모총장<BR /><BR /><BR />다비드는 설명을 계속했다. <BR /><BR />"예비 병력을 동원하지 않으면 우리는 85,000명의 병력과 276대의 탱크가 전부입니다."<BR /><BR /><BR />그는 막대기로 지도 위를 가르키며 계속했다. <BR /><BR />"시리아는 45,000명의 병력을 대기시켜 놓고 있으며 177대의 우리 탱크에 대해 5,700대의 탱크를 배치해 놓았습니다.&nbsp;<BR /><BR /><BR />참모총장은 말을 잠시&nbsp;멈추고 주위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골다 메이어 수상이 침묵을 깨고 말했다. <BR /><BR />"정보부에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BR /><BR /><BR />한 대령이 답변했다. "우리는 시리아군이 먼저 공격해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BR /><BR />골다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이집트 측에서는? 대령?"<BR /><BR />"만약 나세르가 살아 있었다면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안와르 사다트는 냉철한 인간입니다. 사다트는 정확한 전술에 의해서만 군대를 움직입니다."<BR /><BR />"그러니까......" 골다 메이어는 실내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무도 우리가 예비 병력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고 생긱치 않는다는 말인가요?"<BR /><BR /><BR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BR /><BR /><BR />"욤 키푸르를 사흘 앞두고 나라를 소란스럽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뜻인가요?" 골다는 추궁했다.<BR /><BR />유대인의 정신과 생활에서 두번째로 중요하게 여기는 의식인 욤 키푸르를 앞두고 전국의 예비군에게 동원령을 내린다는 것은 확실히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참모총장이 나섰다.<BR /><BR />"욤 키푸르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우수한 정보원과 미국에서 보내온 정보에서 얻어진 판단입니다."<BR /><BR /><BR />실내의 웅성거림은 차츰 그의 말에 동조하는 쪽으로 기울어져갔다. 이로써 회의는 끝이 났다. 그러나 이날 장군들이 내린 결론은 큰 실수였다.<BR /><BR /><BR /><BR /><STRONG>-&nbsp;골다 메이어의 선택&nbsp;-<BR /><BR /></STRONG>욤 키푸르 전날밤 모사드는 시리아와 이집트가 다음날 오후 공격 예정이라는 정보를 얻었다. 수상 사무실에는 모세 다얀, 다비드 장군과&nbsp;갈릴리, 정보부의 탈미 대령등이 모였다. 골다 메이어가&nbsp;사무실에 도착하자 밖은 이미&nbsp;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BR /><BR />다비드 참모총장은 즉각 본론으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결정해야 할 것은 예비군 동원령을 내리는 것입니다."<BR /><BR />"즉시 동원하시오." 메이어 수상은 짤막하게 지시했다.<BR /><BR />"다음 사항은 국방장관과 저의 견해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수상께서 승인하신다면 우리 항공기로 먼저 기습을 하고자 합니다."<BR /><BR />모세 다얀 국방장관은 화를 내며 반대했다. "그렇게 우리가 선수를 친다면 세계로부터 침략자라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BR /><BR /><img src="http://www.necrosant.net/zbxe/files/attach/images/3392/762/027/moshe_dayan.jpg" alt="moshe_dayan.jpg" title="moshe_dayan.jpg" style="" /><BR />모세 다얀<BR /><BR />엘라자르와 다얀은 동시에 골다 메이어를 쳐다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그녀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갈릴리를 돌아보았다.<BR /><BR />"내가 결정해야만 하는가요?"<BR /><BR />갈릴리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그 문제는 엄격히 말해서 정치적인 것이지, 군사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BR /><BR />골다 메이어는 한숨을 지으며 말했다.<BR /><BR />"나도 당신의 주장이 일선의 우리 병사들이 입을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소. 그러나 우리는 미래의 일을 알수가 없어요. 만약 우리가 먼저 공격을 한다면 아무도 우리들을 도와주려 하지 않을 겁니다. 따라서 우리는 선공을 할 수 없습니다."<BR /><BR />모세 다얀은 미소를 지었다. <BR /><BR />어떤 이들은 골다 메이어의 결정을 그녀 인생의 일대 실수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BR /><BR /><BR /><STRONG>-&nbsp;욤 키푸르&nbsp;전쟁 -</STRONG><BR /><BR />1976년 10월 6일 오후 2시, 시리아군은 포격을 퍼부은 후에 골란고원으로 공격을 감행했다. 남쪽에서는 이집트군이 수에즈운하 전역에 걸쳐서 공격해 들어왔다. 이집트군은 운하 동쪽 제방에 자신들의 국기를 세웠다.<BR /><BR />전쟁이 시작된지 사흘이 지나자 이스라엘은 멸망의 위기에 쳐했다. 이집트군은 이스라엘의 가장 단단한 방어망 대부분을 돌파했다. 시리아군은 골란고원을 돌파하고 있었다. 반면 이스라엘 예비군의 동원은 늦어지고 있었다. 예비군을 편성하여 수송하는 데만도 며칠이 걸릴 터였다.<BR /><BR />골다 메이어 수상은 미국 대사 디니츠에게 전화를 걸었다.<BR /><BR />"보급품을 실은 수송기는 출발했나요?"<BR /><BR />디니츠는 대답했다. "아직입니다. 미 국방성은 자신들의 수송기로 우리에게 무기를 실어나르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른 수송기를 구하고 있습니다."<BR /><BR />골다는 다그쳤다. <BR /><BR />"그러고 다니기에는 너무 늦었어요. 닉슨은 우리가 필요로 할 때 언제고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어요. 그에게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전하세요. 바로 오늘이라고.. 내일이면 우리 이스라엘은 영원히 끝나버린다고 말이에요. 키신저에게도 전화하세요. 디니츠!"<BR /><BR /><img src="http://www.necrosant.net/zbxe/files/attach/images/3392/762/027/Richard_Nixon_candid_in_the_Oval_Office.jpg" alt="Richard_Nixon_candid_in_the_Oval_Office.jpg" title="Richard_Nixon_candid_in_the_Oval_Office.jpg" style="" /><BR />리처드 닉슨<BR /><BR />미국은 약속을 지켰다. 닉슨은 직접 G-5 요원들에게 명령하여 이스라엘에 탱크와 탄약, 의약품 등을 보급하도록 했다. 연료공급을 위한 중간착륙을 유럽국가들에게 허락받지 못한 전투기들은 공중급유를 받으며 이스라엘까지 날아갔다. <BR /><BR />전쟁이 발발한 지 9일이 지나자 미국의 보급품이 이스라엘에 도달하게 된다. 리다 공항에서는 보급품의 도착으로 환희의 물결이 일었다.<BR /><BR />골다 메이어는 적국들에게 선제공격을 가하고자 하던 유혹을 뿌리친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만일 이스라엘이 먼저 시리아와 이집트를 공격했더라도 미국이 도움을 주었을까?<BR /><BR />이스라엘군은 즉시 반격을 개시했다.<BR /><BR />전쟁이 시작된지 16일 째,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 전체와 수에즈 운하 건너편의 상당부분까지 탈환했다. 이집트의 주력군은 완전히 포위되었다. 북쪽에서도 이스라엘군은 골란고원을 넘어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커스 25마일 지점까지 진격했다.<BR /><BR />전쟁은 이스라엘의 완승으로 끝날 형국이었으나 아랍국들의 후견자 역할을 담당하던 소련의 압력으로 적당한 선에서 휴전이 이루어졌다.<BR /><BR /><BR /><STRONG>- 전쟁후 -<BR /><BR /></STRONG>골다 메이어 수상과 모세 다얀 국방장관은 개전 직전의 선제공격 금지조처로 엄청난 비난에 직면했다. 전쟁은 완승으로 끝났지만 이스라엘은 건국후 가장 많은 2,552명의 전사자를 내었던 것이다. 수상 관저에는 분노한 어머니들이 아들의 군번표를 흔들며 밀려들었다.<BR /><BR />제 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전례없는 승리를 거두었지만 침략국가로 낙인찍혀 국제적 신뢰를 상실하는 큰 댓가를 치뤘다. 석유무기화로 세계경제에는 깊은 주름이 생겼고 프랑스와 영국은 이스라엘에 무기&nbsp;금수조치를 취했다. 미국조차 표면적인 원조는 할 수 없는 처지였다.<BR /><BR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이스라엘이 알랍국을 선제공격했다면 미국의 원조를 기대할 수 있었을까?&nbsp;골다 메이어가 내린 조치는 지극히 타당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div>]]></description>
                        <pubDate>Sun, 19 Jul 2009 20:27:51 +0900</pubDate>
                        <category><![CDATA[중동전쟁]]></category>
                        <category><![CDATA[욤 키푸르]]></category>
                        <category><![CDATA[이스라엘]]></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스페인 내전을 대하는 히틀러와 스탈린의 자세. 히틀러에 대한 프랑코의 자세]]></title>
            <author><![CDATA[necrosant]]></author>
            <link><![CDATA[http://www.necrosant.net/zbxe/27602]]></link>
                        <description><![CDATA[<div class="xe_content"><P>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프랑코를 지원하였고, 스탈린은 인민전선을 뒷받침했다.<BR /><BR /><BR /><img src="http://www.necrosant.net/zbxe/files/attach/images/3392/602/027/stalin_1936.gif" alt="stalin_1936.gif" title="stalin_1936.gif" style="" /><BR /><BR /><BR /><STRONG>- 스페인 내전을 대하는 힛통과 스딸의 자세 -<BR /></STRONG></P>
<P><BR />히틀러는 연인원 17,000명에 달하는 조종사와 기술자 그리고 항공기 600대와 탱크, 각종 대포를 프랑코에게 보냈다. 이에 질새라 무솔리니도 자원자 75,000명과 항공기 660대 등을 보냈다. 한편 스탈린은 3,000명의 자원자와 항공기 650 대 및 각종 장비를 인민전선에 지원했다.</P>
<P><BR />그런데 프랑코와 인민전선은 자신의 후원자를 이용하는 방법이 전혀 달랐다. 프랑코는 무기를 구매할때 신용거래를 이용했다. 외상으로 샀다는 것인데, 독일과 이탈리아는 각각 2억5,000만 달러 이상을 프랑코에게 빌려준 상태였다. 따라서 이들은 자기들의&nbsp;돈이 떼이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적극적으로 프랑코를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P>
<P><BR />인민전선은 전쟁이 시작될 무렵 세계에서 다섯번째로&nbsp;많은 금을 보유한 집단이었다. 그들은 700톤에 달하는 금괴, 즉 7억 8천만 달러어치 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무기를 지원받는 댓가로 자신들의 금 보유량 2/3를 스딸린에게 헌납했다. 스딸은 5억달러 어치의 금을 챙겼고, 그밖의 수출로 1억달러를 더&nbsp;벌어들였다. 그러고도 아직 5천만달러를 더 받아내야 한다고&nbsp; 주장했다. <BR /><BR /><BR />스딸은 인민전선이 내전에서 패배하더라도 자신의 돈을 떼어먹힐 염려가 전혀 없었다. 따라서 그는 절박하게 공화파를 지원해야 할 이유가&nbsp;없었다. <BR /><BR />1938년 궁지에 몰린 인민전선의 대표가 찾아왔을 때, 스탈린은&nbsp;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의 신용이 바닥났다고 선언했다. 소비에트 연방의 서기장은&nbsp;결코 자신의 자산이 불확실한 곳에 묶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P>
<P><BR /><img src="http://www.necrosant.net/zbxe/files/attach/images/3392/602/027/franco_hitler.jpg" alt="franco_hitler.jpg" title="franco_hitler.jpg" style="" /><BR /><BR /><BR /><BR /><STRONG>-&nbsp;2차대전을 대하는 프랑코의 자세 -</STRONG></P>
<P><BR />2차대전이 벌어지자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는 전쟁에 참가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BR /><BR />스딸 때문이었다. 프랑코에게 스탈린은 20세기의 모든 악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범죄자와 손을&nbsp; 잡고 벌이는 히틀러의 전쟁에 말려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P>
<P>1939년 9월 스페인은 엄정 중립을 선포했다. 한발 더 나아가 프랑코는 무솔리에게도 전쟁에 참가하지 말 것을 권했다. 몸이 달아오른 힛통은 프랑코와 회담을 추진했다. 1940년 10월 23일에 두 총통은 엔다예에서 담판했다. 프랑코는 참전의 댓가로 너무 큰것을 바라고 있었다. 모로코, 그밖의 서아프리카, 지부롤터.. 등등 그밖에도 방대한 양의 군수물자를 힛통에게 요구했다. <BR /><BR /><BR />프랑코는 히틀러를 차갑게 대했다. 자신은 직업 군인인 반면 총통은 일개 하사관 출신이 아닌가? 힛통이 쉴새없이 토해내는 원대한 전략구상에 프랑코는 속으로 경멸을 감추지 않았다.<BR /><BR />두 총통은 새벽 2시까지 떠들어댔지만 무엇하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나중에 히틀러는 그런짓을 다시 하느니 차라리 이빨 두세개를 뽑아 버리겠다고 무솔리니에게 불평했다고 한다.</P>
<P>프랑코는 끝까지 중립을 지켜 히틀러에게 심한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전쟁 말기에는 재빨리 시류에 영합해라 미국에게 항구를 빌려주는 영악한 선택을 했다. </P>
<P>결국 프랑코의 선택이 스페인을 세계대전의 피해에서 비켜날 수 있도록 해주었다. <BR /><BR /><BR />아래는 엔다예 회담의&nbsp;뉴스릴<BR /><BR /><EMBED height=570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pluginspage=http://www.microsoft.com/Windows/MediaPlayer/ width=714 src=http://www.youtube.com/v/_d32vTvpV7s&amp;hl=ko&amp;fs=1&amp;; ? autostart="0"><!-- google_ad_section_end --></P></div>]]></description>
                        <pubDate>Mon, 29 Jun 2009 11:41:15 +0900</pubDate>
                        <category><![CDATA[프랑코]]></category>
                        <category><![CDATA[스탈린]]></category>
                        <category><![CDATA[히틀러]]></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모택동의 명언]]></title>
            <author><![CDATA[necrosant]]></author>
            <link><![CDATA[http://www.necrosant.net/zbxe/27478]]></link>
                        <description><![CDATA[<div class="xe_content"><P><img src="http://www.necrosant.net/zbxe/files/attach/images/3392/478/027/8945c385395ac0f259e3c1851c94c093.jpg" alt="8945c385395ac0f259e3c1851c94c093.jpg" title="8945c385395ac0f259e3c1851c94c093.jpg" style="" /><BR /><BR /><BR /><BR />1956년 모택동은 자신의 부하들에게 경고했다. </P>
<P>" 맹목적으로 소련을 따를 수는 없소. 방귀를 뀌면 냄새가 나는 법인데, 소련이 뀌는 방귀가 모두 향기롭다고 할수는 없지 않<BR />겠소?"</P>
<P><BR />&nbsp;</P>
<P><BR />3년뒤 대약진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는 다시 말한다.</P>
<P>"동지들! 여러분은 각자 책임을 철저히 분석해야할 것이오. 똥을 누고 싶다면 누시오! 방귀를 뀌고 싶다면 뀌시오! 그러면 한<BR />결 기분이 나아질 것이오."</P>
<P><BR />&nbsp;</P>
<P><BR /><BR />1974년 문화대혁명의 실수를 검토하며 그는 말했다.</P>
<P>"먹은 다음에 똥을 눠야 한다는 것 때문에 먹는것이 쓸데없는 일이 되는 것은 아니오!"<BR /><BR /><BR /><BR /><BR />아래는&nbsp;중공 건국 50주년 기념 열병식<BR /><BR /><EMBED height=570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pluginspage=http://www.microsoft.com/Windows/MediaPlayer/ width=714 src=http://www.youtube.com/v/_ofqI5lgptE&amp;hl=ko&amp;fs=1&amp; ? autostart="0"><!-- google_ad_section_end --></P></div>]]></description>
                        <pubDate>Tue, 23 Jun 2009 13:14:02 +0900</pubDate>
                        <category><![CDATA[모택동]]></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에스토니안 무장친위대]]></title>
            <author><![CDATA[necrosant]]></author>
            <link><![CDATA[http://www.necrosant.net/zbxe/27195]]></link>
                        <description><![CDATA[<div class="xe_content"><P><img src="http://www.necrosant.net/zbxe/files/attach/images/3392/195/027/bush.jpg" alt="bush.jpg" title="bush.jpg" width="160" height="162" style="FLOAT: left" /><BR /><BR />&nbsp;&nbsp; 얄타협정은 강대국이 약소국의 운명을 마음대로 결정한 부당한(unjust) 거래였다.<BR />&nbsp;<BR />&nbsp;&nbsp; 동유럽의 스탈린 체제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오류중 하나이다.</P>
<P>&nbsp;&nbsp; - 부시 -<BR /><BR /><BR /><BR /><img src="http://www.necrosant.net/zbxe/files/attach/images/3392/195/027/putin02.jpg" alt="putin02.jpg" title="putin02.jpg" width="160" height="191" style="FLOAT: left" /><BR /><BR /><BR />&nbsp;&nbsp; 러시아는 유럽의 열한개 나라를 해방시켰다.<BR /><BR />&nbsp;&nbsp; 발트 3국은 국제무대에서 거스름돈이었으며 이는 모두가 인정해야 하는 이들 국가의 비극이다.</P>
<P>&nbsp;&nbsp;&nbsp;- 푸틴 -</P>
<P><BR /><BR /><BR />미국의 전임 대통령&nbsp;조지 W. 부시는&nbsp;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 불량국가들(?)을 난폭하게 소탕한&nbsp;무법자의 이미지를 세계인에게 남기고 퇴임했다. 그러나&nbsp;이 텍사스 카우보이가&nbsp;거칠기만한 무뢰배는 아니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도로서&nbsp;세상이 선과 악의 투쟁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믿는다.&nbsp;또한 그는 자신이야말로 현세의 악을 물리칠 역사적 사명을 지니고 미합중국의 대통령 직위에 올랐다고 확신했던 것이다.&nbsp;불량국가 아프가니스탄을 소탕하기 위한 카우보이의 첫번째 출진이&nbsp;끝없는 정의(Infinite Justice)로 이름붙여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BR /><BR />부시와 같은 도덕 흑백론자는 현실세계에서 여러가지 트러블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세상을 옳고 그름으로만 판단하는 것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맹점을 지니고 있음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BR /><BR />그러나 소가 뒷걸음질에 쥐를 잡듯이.. 부시도 실수로나마 객관적으로 잘한일 몇가지는 있을법하다.&nbsp;본인이 판단할때 부시가&nbsp;재임중 벌인 여러 일들중 가장 칭찬받을만한 것은&nbsp;동유럽의 역사를 바로세운 행위이다. 얄타협정 등 과거 미국이 스탈린과 벌였던 추악한 뒷거래도&nbsp;서슴치 않고&nbsp;자아비판한다는 측면에서 볼때 부시는 정의의 사도가 될 자격을 일정부분 갖추고 있음을 인정해도 괜찮으리라!<BR /><BR /><BR /><img src="http://www.necrosant.net/zbxe/files/attach/images/3392/195/027/Lihula_monument.jpg" alt="Lihula_monument.jpg" title="Lihula_monument.jpg" style="" /><BR />에스토니안 의용군 기념비<BR /><STRONG><BR /><BR />- 에스토니안 무장친위대 -<BR /></STRONG><BR />1940년 6월, 발트3국이 스탈린에게 점령당한다. <BR /><BR />최초에 스딸은 군사주둔권만 요구했다. 이후 이들 국가에는 자연스럽게 소비에트&nbsp;괴뢰정권을 수립되었고, 이들이 소련과의 합병을 요구한다는 형식을 통해 발트3국을 통째로 삼켜버렸다.&nbsp;여담이지만 후일 핀란드와 겨울전쟁을 벌일 당시도 스탈린은 비슷한 복안을 가지고 있었다.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핀란드 괴뢰정부가 소련내에 구성되어 있었던 것이다.<BR /><BR /></P>
<P>사실 영국과 미국등 서방 강대국들은 이런 작은 나라들의 운명에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결국 잊혀진 발트3국 - 그중에서도 에스토니아에서만 전체 인구의 5% 이상이 스딸에게 숙청당했다. 독소전이 발발하자 스딸은 다시 10,000명의 에스토니아 엘리트들을 시베리아로 끌고 갔고 50,000명을 강제로 붉은군대에&nbsp;징집했다.</P>
<P><BR />1941년말 스탈린을 쫓아내고 독일군이 입성하자 에스토니아인들은 이들을 진심으로 열렬히 환영한다. 수도 탈린에서는 독일의 입성 1주년을 기념하여 에스토니아인 의용군이 창설되었다. 이들은 독일이 소련군에 밀려난 이후에도 격렬한 전투를 지속했지만, 결국 중과부적으로 모두 붙잡혀 처형되거나 시베리아로 끌려갔다.<BR /></P>
<P><img src="http://www.necrosant.net/zbxe/files/attach/images/3392/195/027/russian_soldier.jpg" alt="russian_soldier.jpg" title="russian_soldier.jpg" style="" /><BR /><STRONG>에스토니안 의용군의 동상이 세워짐과&nbsp;동시에 러시아군 기념비는&nbsp;철거되었다. (오른쪽)</STRONG><BR /><BR /><BR />2차대전이 끝난후 소련에 의해 재점령된 소국 에스토니아의 비극에는&nbsp;세계 어느 나라도 신경쓰지 않았다. 루즈벨트와 처칠은 이미 얄타회담에서 이 약소국의 운명을 스탈린에게 맡기기로 결정해놓은 터였다. 푸틴이 말했듯이 발트3국은 강대국간의 거래에서 발생하는 거스름돈에 불과했던 것이다.<BR /><BR />결국 에스토니아인의 1/3이 스탈린을 피해&nbsp;해외로 떠났다. <BR /><BR />이후&nbsp;오랜기간 소련에 의해 통치되던 에스토니아와 발트3국은 영원히 소련에&nbsp;삼켜질것 같았다. 그러나 동유럽에 민주화의 열풍이 몰아치던&nbsp;1991년, 이들은&nbsp;거대한 인간띠를 형성하며 소련군의 총칼에 맞섰고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nbsp;독립을 쟁취했다.<BR /><BR />.<BR />.</P>
<P>그리고 2004년..&nbsp;<BR /><BR />오랜 세월동안 잊혀졌던 에스토니안 의용군을 기리는 비석과 묘지가 세워졌다. 이들에게 소련군은 침략자였고, 에스토니안&nbsp;친위대는 용감한 애국자들이었던&nbsp;것이다. <BR /><BR /><BR />아래는 에스토니안 무장친위대의 노래<BR />&nbsp;<BR /><EMBED height=570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pluginspage=http://www.microsoft.com/Windows/MediaPlayer/ width=714 src=http://www.youtube.com/v/sNoXFwrTrGE&amp;hl=ko&amp;fs=1&amp; ? autostart="0"></P><STRONG>Laul surnupealuu sõdurist<BR /><BR /></STRONG>1. <BR />Kord võitles Lõuna-Venemaal <BR />kaugel Doni steppides <BR />uljas eesti SS-pataljon, <BR />lauldes laulu Kuradist. <BR />Kord paisati itta, kord läände, <BR />kõikjal seisime kaljudena <BR />ning Neveli sood ja Tsherkassõ <BR />meil iial unuda ei saa. <BR />
<P>후렴<BR />Rünnak relvade terases, tules, <BR />kõlab leekides Kuradi naer-ha-ha-haa! <BR />Võrsub vabadusidu, <BR />ei murta neid ridu, <BR />kes Eesti eest annavad kõik. <BR /><BR />2.<BR />Aeg sangarid kord unustab <BR />ja tandrid tasandab <BR />ja surnupealuu sõdurist <BR />vaid tuul veel jutustab. <BR />Teed tagasi meie jaoks pole <BR />ehk küll häving on silmade ees. <BR />Vaba kodu eest palju ei oleks <BR />kui langeb meist viimnegi mees. <BR /><BR /># 비슷한 글이 인터넷에 떠돌던데 이건 제가 예전에 디씨인사이드에 올렸던 글을 다듬어서 재탕한 것입니다.</P></div>]]></description>
                        <pubDate>Thu, 11 Jun 2009 13:36:50 +0900</pubDate>
                        <category><![CDATA[에스토니아]]></category>
                        <category><![CDATA[SS는 적지로 행군한다]]></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스핏파이어와 메사슈미트의 마지막 결전]]></title>
            <author><![CDATA[necrosant]]></author>
            <link><![CDATA[http://www.necrosant.net/zbxe/27027]]></link>
                        <description><![CDATA[<div class="xe_content">1차대전과 2차대전 기간&nbsp;동안 영국은 동맹세력을 끌어들이는 댓가로 여기저기 부도수표를 남발했다. 그중 최악이었던 것이 유명한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통해서 아랍 지역에 하나의 독립국을 건설해 준다고 한 약속과 1917년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독립국을 만들어준다는 벨푸어 선언이었다. 이 두가지는&nbsp;상식적으로&nbsp;서로 양립될 수 없는&nbsp;모순된 약속임에 틀림없다. <BR /><BR />어쨌든 시오니즘이 퍼져나가며 영국 통치하의 팔레스타인에는 유대인들이 지속적으로 이민을 왔다. 이에 아랍인들과 유대인의 분쟁도 차츰 치열해지기 시작했다. 아랍인들은 독립된 팔레스타인 국가를 부정하고 유대인들을 공격했고, 유대인들도 폭력으로 정면 대응했다. 킹 데이비드 호텔에서는 유대인들의 테러로 92명이 사망하기도 한다.<BR /><BR />계속되는 테러에 지친 영국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유엔에 넘겼고, 유엔은 유대인과 아랍인을 나누어 독립시킨다는 결정을 내린다. 1948년 5월 14일 드디어 유대인들이 독립국 수립을 선포하자 주변 아랍국 군대들이 일제히 팔레스타인으로 진격했다. <BR />
<P><img src="http://www.necrosant.net/zbxe/files/attach/images/3392/027/027/Ben-Gurion_Golda_Meir.jpg" alt="Ben-Gurion_Golda_Meir.jpg" title="Ben-Gurion_Golda_Meir.jpg" style="" /><BR /><STRONG>벤구리온과 골다 메이어</STRONG><BR /><BR /><BR />신생 이스라엘의 운명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졌다. 전쟁이 벌어지기 직전 텔아비브에서는 유대인 지도자들이 회합을 가졌고, 벤구리온은 현재의 부족한 전력을 토로하였다.</P>
우리는 1만정의 라이플과 2백정의 경기관총, 250만발의 탄환을 구입했습니다. 이것은 보병을 상대로 전투하기에는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그러나 탱크와 폭격기를 상대로 했을때는 마치 돌팔매질을 하는 것과 다를바 없습니다.&nbsp; 우리는 가능한 장비를 현대화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적어도 몇대의 비행기를 갖지 않으면 안됩니다. 뿐만 아니라 중기관총, 박격포, 화염방사기, 그리고 탱크를 가질 때까지 우리의 트럭이나 자동차를 가려줄 몇톤의 철판이 있어야만 합니다.
<P><BR />그러나 당시&nbsp;이들이 무기 구매로 사용할 수 있는&nbsp;현금은 고작 500만달러에 불과했다. 이에 후일 이스라엘의 수상이 되는 여걸 골다 메이어가 급히 미국으로 건너가 2,500만달러를 조달하는데 성공한다.<BR /><BR /><BR /><img src="http://www.necrosant.net/zbxe/files/attach/images/3392/027/027/Egyptian_spitfire.jpg" alt="Egyptian_spitfire.jpg" title="Egyptian_spitfire.jpg" style="" /><BR /><STRONG>텔아비브 근처에서 격추된 이집트군의 스핏파이어</STRONG> - 영국공군 마크가 그대로 새겨져 있는 점이 이채롭다.<BR /><BR /></P>
<P>1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자 이스라엘의 상공은 순식간에 이집트군의 스핏파이어가 지배하게 되었다. 이집트에서 물러난 영국군은 자신들이 사용하던 무기를 그대로 이집트군에 넘겨준 것이었다.&nbsp;<BR /><BR />그러나 5월 29일 텔아비브로 순조롭게 진격중이던 아랍군은 갑자기 상공으로부터 치열한&nbsp;공격을 받게된다. <BR /><BR />바로 이스라엘이 체코슬로바키아로부터 구입한 BF-109(정확히는 S.199전투기)였다. 체코에는 BF-109를 조립하던 스코다 군수공장이 있었다. 체코가 독립하자 이 공장은 AVIA사로 이름을 바꾸고, 재건된 체코군을 위해 남아있던 설비를 활용하여 Bf109를 재생산하였던 것이다. <BR /><BR />이스라엘은 총 24기의 BF-109를 구입했는데 격렬한 전쟁중 끝까지 비행 가능한 상태로 남은 것은 5대에 불과했다.<BR /><BR /></P>
<P><img src="http://www.necrosant.net/zbxe/files/attach/images/3392/027/027/IAF_Messerschmitt.jpg" alt="IAF_Messerschmitt.jpg" title="IAF_Messerschmitt.jpg" style="" /><BR />이스라엘군의 BF-109<BR /><BR /><BR /><BR />2차대전중 유럽상공의 왕좌를 놓고 결전을 벌이던 BF-109와 스핏파이어는 전쟁이 끝난후 머나먼 아랍땅에서 다시 공중전을 벌인 것이다.&nbsp; <BR /><BR />여담이지만 19년 후에도 이땅에서는&nbsp;독일제 4호전차를 사용한 시리아와 미국제 셔먼을 사용한 이스라엘간에 6일전쟁이 벌어지게 된다.</P></div>]]></description>
                        <pubDate>Sun, 31 May 2009 17:17:12 +0900</pubDate>
                        <category><![CDATA[스핏파이어]]></category>
                        <category><![CDATA[메사슈미트]]></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스탈린의 사생활2]]></title>
            <author><![CDATA[necrosant]]></author>
            <link><![CDATA[http://www.necrosant.net/zbxe/26841]]></link>
                        <description><![CDATA[<div class="xe_content"><P>여자들은 권력의 향기에 약한 법이다.&nbsp;따라서 국가권력의 결정체인 독재자에게는 언제나 여자들이 줄줄&nbsp;따르게 마련이다. 가령 히틀러는 여색을 밝히는 타입이 아니었음에도 여자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nbsp;에바 브라운은 총애를 독차지하기 위해 벌거벗은 몸으로&nbsp;이상야릇한 포즈를 취한 비디오를 촬영하여 총통에게 보여주기도 했다.&nbsp;<BR /><BR />절대왕정 시절 유럽에서는 자신의 부인을 왕에게 상납하는 것이 권력으로 가는 지름길중 하나였다.&nbsp;부인들 또한 자신의 몸이&nbsp;선물로 진상되는 것을&nbsp;싫어한 것 같지는 않다.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14세나 잉글랜드의 헨리8세는 주변 신하들의 부인을 통해 여러명의 사생아를 두었다.<BR /><BR />그렇다면 과거 절대군주들보다 더욱 막강한 권세를 누린&nbsp;스탈린의 경우는 어떨까?&nbsp;<BR />적절한 사례가 있다.&nbsp;몰로토프와 그녀의 아내인 젬추지나 그리고 스탈린간의 셰익스피어적인 삼각관계가 그것이다.<BR /><BR /><BR /><STRONG>- 스탈린과 젬추지나 -<BR /></STRONG><BR />스탈린의 심복 몰로토프는 까자끄 마을 출신의 가난한 유태인 처녀 파울리나 세묘노브나 젬추지나(Polina Zhemchuzhina, <SPAN lang=ru xml:lang="ru">Полина Семеновна Жемчужина)와 결혼했다. 그녀는 활동적이고 정치적인 성향이 강해 스탈린의 취향에 맞아떨어지는 여성은 아니었다. 문제는 반대로&nbsp;여자들이 스탈린에게 손쉽게 빠져든다는 점에 있었다.<BR /><BR /><img src="http://www.necrosant.net/zbxe/files/attach/images/3392/877/011/Stalin_1902.jpg" alt="Stalin_1902.jpg" title="Stalin_1902.jpg" width="235" height="316" style="" /><BR />미남 스탈린 - 1902년<BR /><BR />몰로토프의 회고록에 따르면 그는 유형지에서 고생할&nbsp;당시 스탈린과 편지를 주고받다&nbsp;친구사이가 되었다.&nbsp;이 둘은&nbsp;같은 집에서 살게 되었는데&nbsp;스딸은 몰로토프의 애인 마루샤를 가로채버렸다. 젊은 시절의 서기장은 나름대로&nbsp;미남(?)이라&nbsp;따르는 여자들이 많았는데, 그는 사양치 않고 이들중&nbsp;상당수와 성관계를 맺었던 것 같다. 몰로토프는 스탈린이 모든 면에서 자신보다 우월하다는 점을 인정했기에&nbsp;그의 부하로&nbsp;지내는 것에는 별로 불만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여자를 가로채는 행위에는 꽤 감정을 가졌던 것 같다.&nbsp;<BR /><BR />오랜 시간이 지난후 서기장이 된 스탈린은 여전히 짬이 날 때마다 몰로토프의 집에 놀러가서 시간을 보냈다. <BR /><BR />스탈린의 아내인 나데즈다 알릴루예바가&nbsp;자살하자 크레믈린의 퍼스트 레이디 자리는 공석이&nbsp;되었다. 이때 젬추지나가 그자리를 조용히 차지하였다. 스탈린이 홀아비로 지내는 동안 그가 필요로 하는 시기에는 언제나 젬추지나가&nbsp;곁에 있었다. 그녀는 스탈린의 가정살림과&nbsp;자녀들의 교육까지 돌보았다. 세월이 흘러 젬추지나는 소비에트 연방의 인민위원이 되었고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담당하며 스탈린의 대식구를 거두었다. 그녀는 스탈린의 기분을 정확히 파악하여&nbsp;어디서 물러서야 하며 언제 한걸음 더 나아가야하는지를 알고 있었다.<BR /><BR />그러나 이런 젬추지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나이가 있었다. 내무인민위원 베리아였다. 그는 NKVD의 두목이 된 직후부터 젬추지나에 불리한 온갖 자료를 빈틈없이 수집하고 있었다.<BR /><BR /><img src="http://www.necrosant.net/zbxe/files/attach/images/3392/160/008/stalin_beria.jpg" alt="stalin_beria.jpg" title="stalin_beria.jpg" width="571" height="450" style="" /><BR />베리아<BR /><BR />2차대전중 소련 정보국 내에 반파시스트 위원회(Jewish Anti-Fascist Committee) 라 불리는 유대인들의 모임이 결성되었다. </SPAN><SPAN lang=ru xml:lang="ru">이들의 임무는 외부에서 전쟁물자를 구입하여 소련군에 공급하고, 서방의 유대인 커뮤니티를 통해 프로파간다를 하는 것이었다. 이 조직의 위원장은 중앙위원회 멤버이자 프로핀테른 의장이던 솔로몬 로조프스키(Solomon Lozovsky)가 맡고 있었다.&nbsp;젬추지나도 여기 참가했다. 로조프스키는 서방측에 매우 잘 알려져 있는 인물로, 기자들 사이에서는 소련 정부의 공식 대변인으로 통했다. </P>
<P>우크라이나가 탈환되었을 때 로조프스키가 주동이 되어 새로운 신문의 발간을 기획했다. 그러던 어느날 스탈린에게 '크림 반도의 타타르족을 모두 추방한 뒤 그곳에 유대인으로 구성된 공화국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 실린 신문이 배달되었다. 스탈린은 이 제안이 국제 시오니스트들의 음모라고 생각했다. 이들이 크림반도를 소비에트 연방에서 제외시키려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궁극적으로 시오니스트들이 그곳에 미제국주의의 전초 기지를 마련하여 소련 체제를 위협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라고 판단했다. 스탈린은 결국 불안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광적인 숙청을 단행하였다. 로조프스키와 위원회의 간부들은 즉각 체포되었다.<BR /><BR />베리아는 이제&nbsp;때가 되었음을&nbsp;알아챘다. 그는 그동안 수집한 각종 증거들을 스탈린에게 들이대어 젬추지나를 체포하도록 했다. 그녀는 심문을 받았으나 곧 풀려났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베리아의 공격이 시작되었음을 알아챈 그녀는 가족에 피해를 입힐까 두려워하며 &nbsp;스스로 집을 떠났다. 이후 8개월 동안 젬추지나는 가족들과 일체 접촉을 끊고 지냈다.<BR /><BR /><img src="http://www.necrosant.net/zbxe/files/attach/images/3392/841/026/Zhemchuzhina.jpg" alt="Zhemchuzhina.jpg" title="Zhemchuzhina.jpg" style="" /><BR />몰로토프와 젬추지나</P>
스탈린이 정치국 회의석상에서 파울리나 젬추지나의 죄상 보고서를 읽을때&nbsp;다리가 떨리는 것을 느꼈다. 스탈린과&nbsp;그 문제로 입씨름을 벌였으나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비밀경찰이&nbsp;급습했을때 그녀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젬추지나는 시오니스트 조직과 연계를 맺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골다 메이어 이스라엘 대사와도 손을 잡고 있으며 크림반도를 유대인 자치공화국으로 만들려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그녀는 친구들과 접촉하고 관계를 맺는데 좀더 신중했어야만 했다. 내가 아내에게&nbsp;혐의 내용을 전해주자 그녀는 "당신 그걸 믿어요?"라고 고함을 질렀다.<BR />그녀는 2년 동안 형무소에서 복역한 후 다시 3년간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지냈다. 아내가 갇혀있는 동안 베리아는 정치국 회의에서 나를 만날 때마다 내 귀에 조그마한 목소리로 "파울리나 젬추지나는 아직 살아있다구!"라고 야유를 했다.<BR />- 몰로토프 -
<P>젬추지나는 가족이 연루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자신의 남매들이 사는 집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체포될 때 남매들까지 함께 체포되었는데 여동생은 그만 수감중에 사망하고 말았다.<BR /><BR />한편 몰로토프는 크레믈린에서 쫓겨나지도 않았고 정치국원 자리에서 밀려나지도 않았다. 그러나 모든 권력이 스탈린과 베리아의 손에 들어있는 이상 감히 서기장의 결정에 반론이나 의문을 제기할 수는 없었다. 심지어 그것이 자신의 아내에 관련된 문제여도 말이다. 젬추지나를 중앙위원회에서 축출하는 결의안에 몰로토프는 기권했다. 그러자 스탈린은 그를 흉악한 인간이라고 매도하기 시작했다.<BR /><BR /><BR />몇년의 시간이 지나 시베리아의 강제노동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던 젬추지나는 1953년 1월 모스크바의 루비안카로 소환되었다. 이른바 '시오니스트 의사들의 음모'에 연루된 혐의를 조사하기 위함이었다. 그녀는 1953년 2월 내내 조사에 시달렸다. 그러나 3월 2일 시간이 멈춘듯&nbsp;갑자기 모든 것이 중단되었다. 스탈린이 쓰러진 것이다.<BR /><BR />1953년 3월 9일 스탈린의 장례식이 치뤄졌다. 이날은 마침 몰로토프의 생일이었는데 흐루시초프와 말렌코프는 그에게 생일선물로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다. 몰로토프는 "아내가 돌아왔으면 좋겠다."라는 바램을 나타냈고&nbsp;젬추지나는&nbsp;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녀가 체포되었을 때 모든 사람들 -&nbsp;심지어 남편조차도 감히 그녀가 살아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치 못했다. 그러나 젬추지나는 5년간의 수용소 생활에서 살아남았고 이후에도 17년의 여생을 더 살았다.<BR /><BR />이런 고초를 겪었음에도 스탈린에 대한 젬추지나의 애정과 존경은 변함없었다. 그녀는 스탈린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그 자리에서 기절을 했다.&nbsp;1950년대 후반 흐루시초프를 중심으로 '스탈린 격하운동'이 벌어졌을 때는&nbsp;스탈린의 딸인 스베틀라나를 다음과 같은 말로&nbsp;위로하였다.</P>
네 아버지는 천재였단다. <BR />아버지가 나라안의 모든 배신자들을 분쇄했기 때문에 전쟁이 났을때 당과 인민이 한 덩어리가 되어 싸울수 있었지.
<P>아버지에 대한 이런 변함없는 충성심을 스베틀라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젬추지나는 스탈린의 박해를 운명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일까?</SPAN>후일 젬추지나의 심문기록중 조그마한 메모지가 발견되었다. 과연 이 절절한 심정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P>
떨어진 채 보낸 지난 4년은 기나긴 세월로서 내 기구하고 끔찍한 삶 위로 흘러갔습니다.<BR />당신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내 삶은 지탱될 수 있었고, 또 아직도 당신이 고통에 찢기고 남은 내 가슴과 당신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남김없이 원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내 삶은 이어졌습니다.
<P><BR /><STRONG># 부록. 스딸린을 생각하라!</STRONG><BR /><BR />만약 당신의 작업이 어려움에 부딪히거나 혹은 자신의 능력이 의심스럽거든 그 분을 생각하시요! 스띨린을...<BR />그러면 당신은 확신을 얻게될 것이오.<BR /><BR />만약 당신이 쉬어서는 안될때 피곤함을 느끼거든 그 분을 생각하시오. 스딸린을..<BR />그러면 일이 수월해질 것이오. <BR /><BR />만약 당신이&nbsp;어려운 결정을 내리고자 하거든 그 분을 생각하시오. 스딸린을...<BR />그러면 당신은 옳은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오.<BR /><BR />스딸린이 말한것은 인민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BR />인민들이 말한 것은 스딸린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오.<BR /><BR />- 1950년 프라우다의 한 기자 - <BR /><BR /><EMBED pluginspage=http://www.microsoft.com/Windows/MediaPlayer/ src=http://www.youtube.com/v/gEX5_b-DZI4&amp;hl=ko&amp;fs=1 width=714 height=570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 autostart="0"><!-- google_ad_section_end --></P></div>]]></description>
                        <pubDate>Sun, 24 May 2009 13:16:05 +0900</pubDate>
                        <category><![CDATA[스탈린]]></category>
                        <category><![CDATA[젬추지나]]></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맥아더의 지휘력에 대한 평가]]></title>
            <author><![CDATA[necrosant]]></author>
            <link><![CDATA[http://www.necrosant.net/zbxe/26750]]></link>
                        <description><![CDATA[<div class="xe_content"><P>아마도 미국 역사상 맥아더만큼 많은 신화와 전설을 남긴 사람은 드물것이다. 또한 그만큼 많은 논쟁의 씨앗을 뿌리고 열렬한 지지와 극단적인 반대를 동시에&nbsp;부른 사람도 없을것이다. 한때 軍神으로 모셨던 것의 반동인지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맥아더가 터무니없이 형편없는 인물로 묘사되고는 한다. 아마 이런 현상은 뒤늦게 우리나라를 휩쓰는 좌파 수정주의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P>
<P>하지만 어떤 기준으로 봐도 맥아더는 함량 미달의 지휘관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매우 뛰어난 전략가이자 전술가였다.&nbsp;맥아더의 지휘력이 가장 빛을 발한 시기인&nbsp;오스트레일리아에서 뉴기니를 탈환하는 과정을 소개해보도록 하자.<BR /><BR />태평양전쟁 초기 영국의 처칠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커틴 수상은 그리 사이가 좋지 못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주력 사단들은 아프리카에서 롬멜과 용감히 싸우고 있었는데, 정작 본토는 일본의 침공으로부터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도처에서 난국에 처한 대영제국 입장에서는 제국의 변방인 오스트레일리아 방위에 전력을 기울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BR /><BR /><img src="http://www.necrosant.net/zbxe/files/attach/images/3392/750/026/15b_Jap_Prop_2_lge.jpg" alt="15b_Jap_Prop_2_lge.jpg" title="15b_Jap_Prop_2_lge.jpg" style="" />&nbsp;<BR />[일본의 프로파간다 -&nbsp;호주인들이&nbsp;피를 흘리는 사이&nbsp;루즈벨트가 호주대륙을 전리품으로 챙기고 있다.]<BR /><BR />한편 호주를 대영제국에서 떼어낼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던 일본은 멜버른 헤럴드에 기고된 커틴의 성명을 주목하였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P>
우리는 태평양 전쟁을 전체 투쟁의 종속적인 부분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조하기를 거부한다. 이것은 다른 싸움이 태평양보다 더 중대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오스트레일리아가 일본을 완전히 물리칠 결의를 가지고 민주주의 국가로서 최대한의 힘을 이끌어낼 방침을 구하는데 그 뜻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평양 전쟁에 대해서는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가 전쟁 방침의 지휘권에 대해 최대의 발언권을 소유해야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BR />어떤 종류의 견제도 받지 않고, 본인은 다음과 같은 점을 명백히 밝히는 바이다. 즉, 오스트레일리아는 영국과의 전통적 유대에 대해 하등의 정신적 고통도 받지 않고, 미국에 의지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영국이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잘 알고 있으며 세력 분산의 위험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또 오스트레일리아가 붕괴될지라도 영국이 잘 버텨나갈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이제 우리는 오스트레일리가 붕괴되지 않도록 결의를 굳히며, 미국을 주축으로 하는 방어안을 작성하는데 온 정력을 기울여야 한다.<BR />이하 중략....
<P>이 성명이 발표된지 얼마후 필리핀의 패장 맥아더는 일본군에 대한 반격을 지휘하기 위해 후방으로 이동하라는 루즈벨트의 명령에 따라 오스트레일리아로 부임하였다. 이때 베를린의 괴벨스는 맥아더를&nbsp;도망친 장군이라 불렀고 무솔리니는 비겁자라고 정의했으며,&nbsp;도쿄에서는 근무지를 이탈한 탈주자로 규정하고 아직 필리핀의 바탄반도에서 항전중인 미군의 저항이 아무 쓸데없는 짓이라는 점을 미국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고 신랄히 논평했다.<BR /><BR />어쨌든 맥아더가 도착하기 직전까지&nbsp;오스트레일리아는 국토의 3/4에 해당하는 북서부의 광대한 지역은 방어를 포기하며 남동부의 인구 밀집지역 이른바&nbsp;'브리즈번 라인'에 방어를 집중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변변한 수비병력조차 없는 호주 입장에서는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맥아더는&nbsp;부임후&nbsp;이 계획을 백지화하고 방위선을 뉴기니로 전진시킨다는 결정을 내렸다.&nbsp;연합군 총사령부 또한 뉴기니 전선의&nbsp;포트 모레스비로 옮겨졌다. 맥아더의 이 결정은 패배주의에 빠져있던 오스트레일리아를&nbsp;구하기 위해서는 가장&nbsp;유효적절한 조치였으며 이후&nbsp;호주 본토에 대한 위협은 완전히 제거될 수 있었다. <BR /></P>
<P>1944년에 접어들자 뉴기니에서 맥아더의 공세가 급피치를 올리기 시작했다. 1944년 1월 2일 뉴기니 북동부에 상륙한 맥아더는 몇차례의 뜀뛰기 상륙작전으로 1년만에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nbsp;섬의 전지역을 장악했다.</P>
<P>맥아더의 공격은 그야말로 적의 주력을 피해 급소를 찌르는 날카로운 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는 해군과 공군의 지원이 미치는 범위내에서 몇개의 적거점을 스치고 지나가는 전술을 구사하였다. 결과적으로 맥아더보다 많은 병력을 지녔던 일본군 수비대는 여기저기에 부대단위로 고립되어 정글의 미아가 되어버렸다.<BR /><BR /><img src="http://www.necrosant.net/zbxe/files/attach/images/3392/750/026/new_guinea_operations_1944.jpg" alt="new_guinea_operations_1944.jpg" title="new_guinea_operations_1944.jpg" style="" /></P>
<P>[맥아더의 진로]<BR /><BR />섬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보겔콥(Vogelkop)반도를 평정함으로써 뉴기니 캠페인이 종료되자 워싱턴에서는 맥아더에게 전선 후방에 고립된 적병력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는 내용의 전문을 보냈다. 이 질문에 대한 맥아더의 회신은 아래와 같았다.</P>
솔로몬 군도와 뉴기니에 남겨두고 지나온 적의 수비부대는 현재나 장래의 작전에 조금도 위협적인 존재가 되지 못한다. 이 부대들은 이미 조직적인 공세를 취할 능력이 없고, 이후 여러 수단으로 소모시켜나가면 멀지않아 처리될 것이다. 이 일본군들이 구체적으로 언제 궤멸되는가라는 물음은 거의라기보다는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다.&nbsp; 이들은 일체 전쟁에 공헌할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지금 즉시 공격하여 그들의 전멸을 꾀하는 것은 아군의 많은 생명을 잃게될 것이고, 그 희생을 감당할만큼의 전략적 잇점이 없다.<BR />맥아더를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는&nbsp;여러가지 이유들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nbsp;점은&nbsp;그가 불필요하게 적의 주력과 맞서지 않음으로서 최소한의 희생으로 전술적 목표를 달성하는 경제적 지휘를 했다는 것이다.<BR /><BR />당시 유럽전선에서 발생한 사상자와&nbsp;비교해본다면 맥아더의 비범함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이탈리아의 안지오 상륙작전에서 미군은 단 한번의 전투로 7만2천명의 사상자를 냈다. 노르망디에서는 2만8천명을 잃었다. 반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필리핀까지의 공세기간 맥아더의 휘하부대가 낸 사상자는 2만7천명에 불과했던 것이다.</div>]]></description>
                        <pubDate>Mon, 18 May 2009 17:50:51 +0900</pubDate>
                        <category><![CDATA[맥아더]]></category>
                        <category><![CDATA[태평양전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공정무역 사기극]]></title>
            <author><![CDATA[necrosant]]></author>
            <link><![CDATA[http://www.necrosant.net/zbxe/26617]]></link>
                        <description><![CDATA[<div class="xe_content"><P>지난 5월 9일은 세계공정무역의 날이었다. 2002년부터 매년 5월 둘째주 토요일을 공정무역의 날로 정했다고 한다. 간략히 설명하자면 공정무역이란 선진국에 부당하게 착취당하는 개발도상국 생산자들에게 정당한(더높은) 가격을 지불하여 상품을 구매해주자는 운동이다. <BR /><BR />그러나 세상은 누군가의 숭고한 이상대로 흘러가는 법이 드물다.&nbsp;무엇이 공정한지 부당한지 여부에 대한 판단도 불확실한 상태에서 공정무역이라는&nbsp;말을 들먹이는 자체가&nbsp;올바른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BR /><BR /><BR />어쨌든 공급자에게 더 높은 가격을 쳐주는 것이 공정하다는 말은 현재의 가격이 불공정하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이들이 말하는&nbsp;공정한 가격이란 무엇일까? <BR /></P>
<P><img src="http://www.necrosant.net/zbxe/files/attach/images/3392/617/026/Karl_Marx.jpg" alt="Karl_Marx.jpg" title="Karl_Marx.jpg" style="" /><BR /><BR /><BR />마르크스는 모든 재화의 잉여가치가 노동자에 의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어떤 상품에 이윤이 발생하는 것은 상품의 유통 과정이 아니라 생산단계에 있다고 정의한 것이다. 결국 이윤은 생산자(노동자)에게 돌아가야 마땅함데도, 자본가들은 노동에서 발생하는 잉여가치를 착취하여 자신의 뱃속을 채우고 있다는 주장이다.&nbsp;그러나 마르크스는 소비자들이 노동자를 착취한다는 개념은 제시하지 않았다.&nbsp; 이윤은 상품의 공급자들(가령 스타벅스와 원두커피 농가) 간에 공정하게 나눠져야하는 것이지 소비자들이 더 높은 가격을 부담해서 생산자를 보조하는 것은 마르크스에게 새로운 착취의 수단으로 보일&nbsp;것이다. 따라서&nbsp;공정무역 개념은 마르크스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다.</P>
<P><BR /><BR />주류 경제학은 어떤가?&nbsp;애당초 주류경제학에서는&nbsp;공정한 가격이란 개념 자체가&nbsp;존재하지 않는다. 가격은 공급과 수요가 만나는 균형점에서 결정될 뿐이다. 수요가 늘어나면 가격이 오르고 공급이 많아지면 가격이 떨어진다. 어떤 상품의 가격이 오르면 자연히 공급도 늘어나는데 이는 다시 가격을 낮추는 요인이 된다. 결국 언제나 가격은&nbsp;균형을 맞추게&nbsp;된다.&nbsp;<BR /><BR />공정무역이란 상품의 가격을 올리는 행위이므로 필연적으로&nbsp;공급의 증가를 부르게 된다. 결국 공정무역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수요와 공급 간의 간극 -&nbsp;그만큼의&nbsp;커피 원두를 사람들의 입이 아니라&nbsp;땅속에&nbsp;묻어버려야만 할&nbsp; 것이다. 채소값이 폭락하면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현재 공정무역으로 거래되는 커피원두는 전체의 0.1% 정도라고 한다. 이정도 수량은 폼내기 좋아하는 현시적 소비자들에 의해 충분히 소화가능하다. 그러나 공정무역의 비중이 10%, 20%로 늘어나면 결국&nbsp;늘어나는 공급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원두를 폐기하지 않는다면 공정무역 커피와 일반 커피간의 가격차가 어마어마하게 벌어져&nbsp;공급자간의&nbsp;심각한 불평등을 야기하게 되는 것이다.<BR /></P>
위의 논리는 간단한 사고실험으로 증명이 가능하다. <BR />대한민국의 배추농가를 대상으로 실험해보자. <BR />공정무역을 신봉하는 김치공장주 일동이 납품되는 배추값을 일괄적으로&nbsp;20% 올려주기로 결의했다. <BR />당연히 배추농가들의 소득은 뛰어올랐다. 이를본 무우농가들은 무우대신 배추를 파종하기로&nbsp;결정한다.<BR />다음해 배추의 공급은 50% 증가했다. 공장주들은 다시 20%의 가격을 올려서 배추를 구매하고 김치를 생산했다.<BR />그러나 이들이 만든 김치의 절반이상이 팔리지 않은 상태로&nbsp;창고에서 썩어나게 되었다.<BR />결국 공정무역이라는 말은 사라진다.
<P><BR />전세계의 커피생산농가중 0.1%만이 더 높은 가격을 받는 것이 과연 공정할까? 모든 생산자들이 동일하게 가격을 올려받는 것은 불가능함이 자명하다. 결국 거대기업의 이윤극대화를 위한 추악한 마케팅 수단이 공정무역이라는 탈을 쓰고&nbsp;소비자들의 호주머니를 열심히 도둑질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실태임에 틀림없다.</P></div>]]></description>
                        <pubDate>Mon, 11 May 2009 16:43:39 +0900</pubDate>
                        <category><![CDATA[공정무역]]></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극단의 시대]]></title>
            <author><![CDATA[necrosant]]></author>
            <link><![CDATA[http://www.necrosant.net/zbxe/26496]]></link>
                        <description><![CDATA[<div class="xe_content">너는 나의&nbsp;친구가 아니다.<BR />그러므로 너는 나의 적이다.<BR />이러한 사고구조를 우리는 흑백논리라 한다. <BR /><BR />색안경을 끼면 세상이 흑백으로만 보이는 법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실제 세계가 흑백으로 구성된 것은&nbsp;아니잖은가? <BR /><BR /><BR />노무현 전대통령의 검찰 출두 광경을 TV로 지켜보았다.&nbsp;<BR /><BR />나는 노무현 지지자도 반대자도 아니다. <BR />개인적으로는 노무현이 잘한일보다는 못한게 많다고 생각하기에&nbsp;비판자라고 정의내리고 싶다. 노무현이 잘한점은 잘한대로 인정하고 잘못한점은 잘못한대로 비판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TV에 나오는 노무현 지지자들과 반대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것 같다.<BR /><BR /><img src="http://img.hani.co.kr/imgdb/resize/2009/0501/6000230039_20090501.JPG" alt="null" title="null" width="590" height="393" style="" /><BR /><BR />세상에는 완벽한 옮음도 그름도 존재하지 않는다. 훌륭한 사람도 잘못을 범할수 있고 나쁜놈도 가끔 좋은일을 할때가 있다. 세상은 원래 그렇게 혼란스러운 법이다. 사실 누가 나쁜놈인지 좋은놈인지를 가린다는 것 자체도 쉬운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혼돈 속에서도 무엇이 옳은지를 걸러낼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우리는 그것을&nbsp;이성이라고 부른다.<BR /><BR />노무현이기에 무조건 잘못을 덮어둘 이유도 없고, 노무현이기에 가중처벌해야할 까닭도 없다. 결과가 나오기도 이전에 표적수사라고 길길이 날뛰거나 계란을 던지며 무조건 구속하라고 외치는 자들은 모두 자신만의&nbsp;색안경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BR /><BR />노무현 뿐이겠는가? 광우병 사태때는 어땠는가? 미국소를 먹으면 무조건 죽는다는 사람과 절대 안전하다는 사람들로 나라가 나뉘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제1공약이던 대운하 문제를 놓고 벌어졌는 논의를 봐도 마찬가지이다. 운하만&nbsp;뚫으면 삼천리 금수강산이 썩어나간다는 사람과 운하가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메시아라는 사람들로 나라가 갈렸다.<BR /><BR />물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항상 과격한 외침에 힘없이 사그라들고 만다는 것이 대한민국의&nbsp;불편한 진실이다.&nbsp;<BR /><BR />극단적인 선동과&nbsp;격앙된 외침보다는 차분한 이성의 목소리에&nbsp;귀기울이는&nbsp;사회가 되기를.</div>]]></description>
                        <pubDate>Thu, 30 Apr 2009 22:04:01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스무명을 위한 공산주의]]></title>
            <author><![CDATA[necrosant]]></author>
            <link><![CDATA[http://www.necrosant.net/zbxe/26181]]></link>
                        <description><![CDATA[<div class="xe_content"><P>인간이 만든 조직에는 어디에나 예외없이&nbsp;특권을 누리는 계층이 존재한다. 이것은 국가 뿐만 아니라 종교집단에서도 마찬가지이다.&nbsp;<BR /><BR />20세기의 가장 거대한 실험이라는 공산주의.. 인류의 진보와 평등을 위한 고귀한 이상으로 수많은 기적을 이뤄냈던 이 체제..&nbsp;무수한 혁명가의 피와 땀으로 이뤄낸 공산주의의 평등이란 이념도 사실 소수의 특권층이 합법적으로 권력과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에 불과했다는 점은&nbsp;역사가 잘 증명해주고 있다.<BR /><BR /><img src="http://www.necrosant.net/zbxe/files/attach/images/3392/181/026/yeltsin2.png" alt="yeltsin2.png" title="yeltsin2.png" class="iePngFix" style="" /><BR />[왼쪽은 보수파의 쿠데타에 맞서&nbsp;연설중인&nbsp;옐친. 오른쪽은 재선 유세중 춤을 추는 모습]<BR /><BR />공산주의의 본질에 대해서 짧으면서도 솔직하게 고백된 회고록이 한편 있다. 바로 보리스 옐친의 글이다. 아래 내용은 옐친의 회고록중 '스무명을 위한 공산주의'라는 챕터 일부를 요약한 것이다. <BR /><BR />여담이지만 특권을 누리던 공산당 지도부의 모습을 맹렬히 비판하던&nbsp;옐친 또한 자신의 집권이후 새로운 특권층이 양산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공산당 간부들이 누리는 특권은 러시아 국가두마 의원이나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 일부 부유층에게 그대로 이전된 것이다.</P>
공산당 특권 계급의 피라미드 정상까지 올라가면 거기에는 모든 것이 있다. 바로 공산주의의 실현이다! 이 공산주의에는 세계 혁명도, 고도의 생산성도, 전체의 조화도 불필요하다. 이 공산주의는 각기 다른 국가이며 각기 다른 인간을 위한 공산주의의 실현이 완전히 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과장도 아니며 단순한 이미지도 아니다. 혁혁히 빛나는 공산주의 미래사회의 근본원칙을 생각해 보자. '각자의 능력에 따라 각자의 필요에 따라'<BR /><BR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각자의 능력이란 그다지 우수하지 못하다. 대신 필요는 항상 너무나 크므로 현재의 공산주의는 불과 20명 정도의 인간을 위해서만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 공산주의를 만들어낸 것은 KGB의 제 9과이다. 전능한 9과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란 없다. 당 지도자의 생활은 이 부서의 끊임없는 감시하에 놓여지며 어떤 희망도 이루어진다. <BR /><BR />모스크바 강가의 녹색 벽으로 둘러싸인 별장에서는 광대한 대지 위에 정원이 있고 경기장과 어린이 놀이터도 있다. 어느 창 아래든 경비원이 서있고 경보장치가 부착되어 있다.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나같은 신분에게도 요리사 세명, 급사 세명, 하녀 한명, 정원사와 기타 조수들이 딸려 있다. 우리 집에서는 나도 아내도 자신의 손으로 무엇이든 해결하는데 습관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 별장에서는 정말 몸둘곳이 없는 실정이었다.<BR /><BR />이른바 자주적인 행동은 여기서 허용되지 않는다. 이 호화로움이 편리함과 쾌적함을 조금도 느끼지 못하게 한다는 것에 또한 놀라웠다. 대리석이 생활에 어떤 따스함을 제공할 수 있겠는가?<BR /><BR />누군가와 잠시 만나는 것, 접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영화관, 극장, 미술관 등 어떤 공공장소에 갈때도 반드시 사전에 경비원이 그곳에 가서 철저히 체크하여 장소를 봉쇄한 후에야 간신히 갈수 있다. 작은 영화관은 별장에도 있어 매주 목, 토, 일요일에 영사기사가 필름을 지참하고 일부러 찾아온다. 병원은 초현대적이며 의료기술의 최신 설비가 외국에서 수입되고 있다. 병원 내부는 널직하며 호화로운 실내 장식이 되어있다. <BR /><BR />의사들은 책임을 추궁당하는 것이 두려워 무엇하나 혼자 결정하지 않고 언제나 고도의 기술을 지닌 전문의가 5명, 10명씩 모여 협의한다. 이 KGB 제 4과의 무책임한 의사들을 나는 그다지 신용하지 않았다. 나 한사람을 위해 의사가 매일같이 진찰해 주지만 그의 머리 속에는 직업적인 자유, 인간적인 자유가 결여되어 있었다.<BR /><BR />모든 중앙위원회 서기, 정치국 후보위원, 정치국원의 곁에는 경비원들이 붙어 다닌다. 나에게 늘 붙어있던 조심스런 경비 책임자는 유리 표드로비치라 하였다. 이 인물의 기본 임무중 하나는 자신이 경호하는 자로부터 의뢰가 들어오면 즉시 그것을 들어주는 것이었다.<BR /><BR />예를 들어 "새로운 양복을 맞추고 싶다."라고 말하면 정확히 지정된 시각에 집무실의 문이 조심스럽게 노크되며 재단사가 칫수를 재러 나타난다. 이튿날에는 가봉을 하고, 착오없이 새로운 양복이 완성되는 것이다. 3월 8일, 아내의 생일에 어떤 선물을 하고 싶다. 이것도 문제없다. 아무리 섬세한 여성의 취미라도 만족시킬 수 있는 완비된 카탈로그를 가지고 와서 골라달라고 한다.<BR /># 어떤 인물의 사상과 역사에 대해 알고 싶다면 회고록을 읽는것이 좋다.&nbsp;물론 평전을 읽는것도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자신의 생생한 기억을 바탕으로 작성된 회고록과 타인에 의해 쓰여진 평전의 현장감이 동일하길 바랄수는 없다. 본인이 가장 흥미로워하는 두 역사인물.&nbsp; 히틀러와 스탈린은 아쉽게도 회고록을 남기지 않았다. 따라서 이 두 인물을 알기 위해서는는 역사가들이 작성한 평전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간혹 다른 사람들의 회고록에 양념처럼 들어가있는 두명의 독재자에 대한 회상이 훨씬 질높은 현장감을 우리들에게 전해준다.</div>]]></description>
                        <pubDate>Mon, 20 Apr 2009 20:22:11 +0900</pubDate>
                        <category><![CDATA[공산주의]]></category>
                        <category><![CDATA[옐친]]></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왜 무모하게 날뛰는가?]]></title>
            <author><![CDATA[necrosant]]></author>
            <link><![CDATA[http://www.necrosant.net/zbxe/26110]]></link>
                        <description><![CDATA[<div class="xe_content"><P>얼마전 북한에서 대포동 2호를 발사하였다. 나는 이사건에&nbsp;대해 국제사회가&nbsp;지나칠만큼 호들갑을 떨지 않았나 생각된다. 오히려 김정일은&nbsp;그런점을 노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BR /><BR />핵무기의 경우 핵확산방지조약이라는 국제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지만, 미사일이나 로켓에 대해서는 국제적으로&nbsp;규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또한 결과적으로 미사일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발사국이 위성발사체라고 주장하고&nbsp;있음에도 이렇게 난리를 칠 필요가 있는 것인지 개인적으로 납득하기가 어렵다.<BR /><BR />게다가 일본은 H2A라는 우주발사체를 이미 소유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개량을 히고 있다.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물건을 타국이 발사한다는 이유로 날뛸 필요는 없을것 같은데.. 물론 인민들을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는 거지국가가 막대한 돈을 들여 로켓을 개발한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정당화되지는 못할 것이다.<BR /><BR />어쨌건 일본은&nbsp;로켓이 발사되기 이전에는 요격할 것이라고 허풍을 치더니 발사된 후에는 바다에 떨어진 발사체를 찾겠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런데&nbsp;이에 대한 북한측의 반응이&nbsp;워낙 걸작인지라 한번 소개해보겠다.</P>
<P><BR /><BR /><STRONG>주체98(2009)년 4월 14일 로동신문 론평<BR /></STRONG><BR /><FONT size=2><STRONG>왜 무모하게 날뛰는가</STRONG></FONT></P>
&nbsp;일본반동들이 우리의 평화적인 인공위성발사를 두고 반공화국광증을 일으키며 분별없이 날뛰고있다. 그들은 우리의 인공위성발사를 한사코 《미싸일발사》로 걸고들면서 우리 공화국에 대한 《제재》기한을 1년으로 연장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런가 하면 개구리합창하듯이 그 무슨 《위협대응책마련》이니, 《미싸일기지에 대한 선제타격검토》니, 《핵무장화에 대한 론의진행》이니 뭐니 하고 떠들어대고있다. 우리의 위성발사문제를 유엔안보리사회에 상정시키기 위해 앞장서서 날뛰는것도 일본이다. 지어 일본반동들은 전투함선까지 동원하여 우리 인공위성운반체의 부분품들을 찾겠다고 분주탕을 피우고있다. 그야말로 일본은 분별을 잃고 동서남북도 모르며 불맞은 황소처럼 날뛰고있다. 
<P>일본반동들의 이러한 망동은 우리 공화국에 대한 극히 엄중한 도전이고 도발이다. 그들의 반공화국광증은 한계를 넘어서서 이제는 극한점에 이르렀다. 우리는 이에 대해 절대로 수수방관할수 없다.</P>
<P>지금 우리의 평화적인 인공위성발사의 성공을 두고 세계가 기뻐하며 환영하고있다. 세계 100여개 나라의 출판보도물들이 《조선로케트가 하늘로 날아올라 일거에 천만파장》, 《조선의 인공위성발사 성공》등의 제목으로 《광명성2호》의 성과적발사소식을 대대적으로 전하였다.</P>
<P>세계가 이처럼 우리의 인공위성발사를 인정하며 공감하고있는것은 그것이 우리의 합법적권리이며 강국위용의 과시로 되기때문이다. 그런데 유독 일본만이 그것을 그 무슨 《위반》이니, 《미싸일발사》니 하며 강짜로 우겨대고있다. 그들의 망동은 일종의 히스테리발작증이며 극도의 대조선적대의식, 피해망상증의 발로이다.</P>
<P>이미 알려진바와 같이 대조선적대시정책에 환장하고 피해망상증에 걸린 일본반동들은 지난 4일 우리가 인공위성을 쏴올리기도 전에 정확한 사실확인도 하지 않은채 《미싸일》을 발사했다고 법석 고아댔다. 그들은 우리의 평화적인 인공위성발사문제를 일부러 군사적인 문제와 련결시켜 반공화국국민감정을 부채질하며 복닥소동을 피웠다. 그 다음날 우리의 인공위성이 성과적으로 발사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국내에서는 당국자들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들이 비발치듯 터져나왔다. 안팎으로 몰려 곤경에 빠진 일본당국자들은 낯이 뜨겁고 체면이 깎이는 노릇이지만 국민앞에 사죄하지 않을수 없었다.</P>
<P>일본반동들이 세상이 인정하는 우리의 인공위성발사를 두고 아직도 분주탕을 피우는것은 닭쫓던 개 울바자 넘겨다보는 신세가 된 가긍한 처지의 표현이며 시궁창에 처박힌 저들의 체면을 조금이라도 세워보려는 부질없는짓이다.</P>
<P>그 무슨 《위협》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아니라 일본에 의해 조성되고있다. 일본은 각종 미싸일들을 개발하고 시험한지 이미 오래다. 막대한 플루토니움을 비축해놓은 일본은 큰 운반능력을 가진 우주로케트를 여러차례 시험발사하였다. 그것도 부족해서 지금 일본은 미싸일방위체계수립에 미쳐날뛰고있다. 이런 조건에서 해외팽창야망에 들떠있는 일본으로부터 어느 시각에 어디로 미싸일들이 날아오겠는지 누구도 알수 없다.</P>
<P>더우기 간과할수 없는것은 이번에 일본《자위대》가 우리 나라에 대한 재침전쟁도발을 최종적으로 검토완성하였다는 사실이다.</P>
<P>초보적인 리성마저 잃은 일본반동들은 우리가 인공위성을 발사하면 《요격》할것을 국책으로 선포하였고 《자위대》에 《북조선위성파괴조치명령》까지 내렸었다. 《자위대》의 《이지스》함선들이 조선동해상에 전개된것도 이에 따른것이였다. 그러나 우리의 인공위성《요격》문제를 놓고 일본국내에서는 그 효과성에 대해 론의가 분분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정부가 《연극》을 하는것이 아닌가고 의심하였으며 대다수 출판보도물들은 초당 수km의 속도로 날아오르는 인공위성을 요격하는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비난하였다.</P>
<P>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자위대》가 무엇때문에 부산을 피우며 우리의 인공위성에 대한 요격태세를 취하였겠는가.</P>
<P>우선 여기에는 정치적요인이 작용하였다. 일본반동들은 저들의 심각한 정치적위기로부터 국민의 눈길을 우리의 인공위성발사에로 쏠리게 함으로써 아소내각의 《위기대처능력》을 《시위》하려고 하였다. 지금 아소내각은 안팎으로 인기가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반동정부는 우리의 인공위성에 대한 《요격작전》이 아소내각에 있어서 《결정적인 기회》로 될수 있다고 타산하였다. 우리의 인공위성발사를 걸고 국내의 《안보위기》를 조성할수 있다는것이였다.</P>
<P>외신들도 우리의 인공위성발사와 관련한 일본의 《대응》을 두고 《병적인것》, 《정치적기도가 깔린 과잉대응》이라고 평하고있다.</P>
<P>보다 중요한 목적은 일본《자위대》가 우리의 인공위성에 대한 《요격작전》을 구실로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재침실동훈련을 완성하는데 있었다. 이번에 《자위대》무력은 우리 나라에 대한 재침전쟁도발결심채택, 명령하달, 전민동원, 병력과 장비조정 및 배비로부터 정찰, 목표포착, 모의공격 등에 이르기까지의 전과정을 포괄적인 범위에서 종합적으로 실전가동시켰다. 일본반동들은 우리의 인공위성발사로 조선반도정세가 초긴장되도록 하고 그것을 저들의 군사대국화와 재침야망실현의 실전기회로 삼으려고 하였다. 그들이 우리의 인공위성발사를 《미싸일발사》라고 옹고집을 부린 진의도의 하나가 여기에 있었다. 일본반동들은 우리의 《위협》을 구실로 미싸일방위체계수립과 핵무장화의 필요성을 국민들에게 극성스레 선전하고 그것을 적극 추진하려 하고있다. 그들의 미싸일방위체계수립과 핵무장화책동은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의 긴장상태격화를 가져오고 새로운 군비경쟁을 초래하며 여기에 막대한 자금이 드는것으로 하여 일본국내에서도 그것을 반대하는 여론이 만만치 않다. 바로 이러한 때에 일본반동들은 우리의 인공위성발사를 저들의 추악한 목적실현에 악용하려 하고있는것이다.</P>
<P>일본반동들이 우리의 합법적인 인공위성발사를 무작정 《장거리탄도미싸일발사》로 몰아붙이며 반공화국광증을 일으키는것은 과거청산을 회피하려는데도 그 목적이 있다.</P>
<P>일본이 과거죄행에 대해 배상해야 한다는 국제적인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고있다. 이에 바빠맞은 일본은 이번 기회에 국제사회에 우리의 인공위성발사를 《미싸일발사》로 오도하여 연막을 치고 과거죄악의 책임에서 어떻게하나 벗어나보려 하고있다.</P>
<P>겁에 질린자들은 분별없이 놀아대는 법이다. 일본반동들은 승승장구하는 우리 공화국의 위력에 질겁하고있다. 우리 인민앞에 너무나도 많은 죄를 짓고있기때문이다. 그들은 우리가 인공위성을 성과적으로 발사하자 공포심이 더욱 커져 안절부절 못하고있다. 그들이 그 무슨《위협대응책마련》이니, 《제재》니 뭐니 하고 광기를 부리고있지만 우리에게는 그따위짓이 맥빠진자들, 겁에 질린자들의 너절하고 고약한 추태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마구 헤덤벼대는 일본반동들의 처사는 그야말로 꼴불견이다.</P>
<P>최첨단과학기술에 기초한 우주개발국의 당당한 지위를 차지하고 막강한 국력을 시위한 우리는 자주의 길, 강성대국건설의 길로 힘차게 나아갈것이다. 우리를 어째보려는 일본의 망동은 하루강아지 범무서운줄 모르고 날뛰는격이다.</P>
<P>개가 짖는다고 달리는 렬차가 멎어서는 법은 없다. 우리 인민은 적들이 아무리 반공화국광증을 부려도 개의치 않고 강성대국대문을 두드리는 뢰성을 더욱 높이 울릴것이다. 일본의 히스테리적추태는 세상웃음거리만을 더해줄뿐이다</P>
<P>&nbsp;</P></div>]]></description>
                        <pubDate>Thu, 16 Apr 2009 17:14:1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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