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 하나님을 용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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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hswid (2007-09-01 18:22)집필한 지식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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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애(전도연)와 김종찬(송강호)은 밀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신애는 어린 아들과 함께 서울을 떠나 남편의 고향인 밀양에서 살려고 왔다. 자동차가 고장났기 때문에 카센터를 부른다. 그리하여 달려온 종찬, 그리고 기다리던 신애, 이렇게 두 사람은 처음으로 만났던 것이다.

 

밀양에서 신애는 피아노 학원을 연다. 가난한 처지면서도 이웃사람들에게는 좋은 땅을 소개해 달라고 허세를 부린다. 남편은 사고로 죽고 없어 신애와 어린 아들만이 살아가는걸 측은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불행하지 않다고 매번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다.

 

갑자기 어린 아들이 사라지고 없다

 

많은 몸값을 내놓으라는 협박전화가 걸려온다. 신애는 그나마 가지고 있던 작은 돈마저 탈탈 털어 유괴범이 지시한 장소에 놓고 왔지만 어린 아들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온다. 남편도 죽고, 이번에는 어린 아들까지 죽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린 아들이 다녔던 학원 원장이 유괴범으로 붙잡힌다.

 

신애는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다

 

그녀는 어린 아들을 잃은 슬픔 때문에 끊임없이 목놓아 울음을 터뜨린다. 유괴범을 갈가리 찢어 죽이고 싶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난다.

 

그녀는 처음으로 참석한 교회에서 한없이 울음을 터뜨리며 가슴이 터질 것 같던 화가 가라앉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이때부터 하나님을 무조건 믿고 따르는 충실한 양이 된다.

 

종찬은 처음으로 만났을 때부터 많이 좋아하고 있는 신애를 뒤따라 교회를 다닌다. 피아노 학원 자리도, 좋은 땅을 찾아다닌 것도, 어린 아들의 죽음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일에도 뛰어들어, 신애가 어려울 때마다 헌신적으로 돕는다. 끝없이 밀어내는 냉랭한 신애를 한사코 따라다닌다.

 

교회가 원수가 된다

 

신애는 하나님 품안에서 평온한 안식을 취하면서 독실한 신자로 거듭나고 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유괴범을 용서하겠다는 생각에 다다른다. 그녀는 종찬과 동행하여 감옥에 면회를 간다.

 

그러나 거기에서 신애는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되면서 교회에 대한 믿음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리고 만다. 유괴범을 용서하겠다는 그녀의 목적이 무참하게 박살난 것이다. 감옥 안에서 이미 하나님을 영접하여 죄를 뉘우치고 구원을 받은 유괴범을 용서하기에는 그녀가 너무 늦어버린 것이다.

 

이때부터 그녀는 교회를 증오한다. 교회가 하는 일마다 따라다니며 미친 듯이 훼방을 놓는다.

 


 

 

남편과 어린 아들이 숨진 외로운 여인은 하나님을 용서할 수 있을까?

 

이창동 감독이 만든 영화다. 처음부터 말하지만 이 영화는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용도 단순하고, 무얼 말하려는 건지 감독의 의도가 정확히 파악이 안 된다. 영화라고 할 수도 없는 작은 드라마에다가 뭔가 있어 보이게 종교라는 명품으로 치장하고 있다.

 

감독이 누구인가. 문화관광부 장관을 하였던 사람이다. 누가 봐도 흥행하기 어려운 대중성 없는 밀양을 가지고 여기저기 엄청난 광고를 내보낸 것은 전직 문화관광부 장관이기 때문에 가능하였을 특혜라고 판단한다. 칸 국제 영화제에 참석한 것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어마어마한 대단한 상을 수상할 것처럼 매일같이 기자들이 떠들어댔던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참으로 한심한 사람들이다. 전도연 씨마저 상을 수상하지 못하였더라면 밀양을 가지고 신나게 나불거리던 입은 그만 침묵하면서 어물쩍 넘어갔을 게 틀림없다.

 

미스 유니버스 선발대회까지 생각난다. 한국 대표가 4위를 하였다고 엄청나게 떠들어대던 기자들이다. 무슨 대단한 국가적인 사건이 터진 것처럼 난리법석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바로 이웃나라 일본 대표는 1위를 하였다는 것에서 참으로 가소로운 웃음만 나올 뿐이다. 이 모두가 단순히 언론에서만 떠들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집단에서도 띄워주기 입김을 불어넣었을 거라고 추측한다.

 

밀양은 한마디로 모두가 주목할 만큼 대단한 영화가 아니다. 위에서 이미 언급하였듯이 당연히 대중성은 없을뿐더러(일단 재미가 없으니까), 예술성이 있는 영화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렇기 때문에 무언가 제법 메시지가 있고, 심도 있게 보이려고 종교를 억지로 끌어다가 쑤셔 넣은 느낌이다.

 

이야기는 크게 세 가지다. 갑자기 사고 때문에 남편을 잃고 밀양에 이사온 이신애와 처음 마주쳤을 때부터 좋아하여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끈질기게 쫓아다니는 김종찬, 유괴된 어린 아들의 죽음으로 몹시 슬퍼하는 이신애,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린 아들의 죽음으로 인하여 그녀가 입문하게 되는 교회 이야기.

 

이신애는 어린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이 불러온 찢어지듯 아픈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던 것은 교회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굳건한 줄만 알았던 믿음이 하루아침에 깨져버리자 철천지원수쯤으로 교회를 증오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녀는 교도소에 있는 유괴범을 용서하려고 면회를 갔다가 이미 하나님을 받아들여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용서가 필요 없다는 이상한 상황과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어린 아들을 살해한 유괴범을 용서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그는 죄인이 아닌가?

 

숨진 어린 아들의 엄마가 하는 용서보다 하나님의 용서가 훨씬 중요한가?

 

유괴범은 교도소에 갇혀있어 자유는 억압받고 있지만, 때깔이 좋아 보이는 얼굴하며 평화로운 모습에서 이미 죄인의 행색 같은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신애는 평범한 한사람의 보잘것없는 여인의 몸이지만 자기 자식을 죽인 녀석을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은 바로 그녀가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나?

 

깊은 상처를 받고 있는 피해자는 그녀 자신과 죽은 어린 아들이기에 누구보다도 하나님이 절실하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를 나 몰라라 하고 유괴범만 따뜻하게 두둔하고 있다면 철저하게 소외되고 있는 그녀는 몹시 화가 날 수밖에 없다. 마치 거룩한 성인이 된 듯한 태도를 보이는 유괴범이 싫어 이제는 용서하기 힘들게 되었지만, 하루아침에 모든 죄를 사하여 준 하나님이 훨씬 싫었기 때문에 더욱더 용서하기 힘들다.

 

일단은 이 영화가 왜 자꾸만 종교 이야기로 흐르는지 도대체가 혼란스럽다. 크게 세 가지 이야기가 이번 영화에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지만 그녀를 좋아하여 따라다니는 남자나, 어린 아들의 죽음을 가지고 왜 하필이면 종교문제로 결말을 끌고 나가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마치 앞에서는 어린아이가 과자를 먹었는데, 느닷없이 마지막 결말에서는 사탕을 먹고 있더라고 끝맺음을 하는 것과 같은 기이한 이야기 구조가 되는 느낌이다.

 

어린 아들의 죽음을 이겨나가기 위하여 종교의 입문하였다가, 모종의 사건 때문에 깊은 회의를 느껴 믿음이 강하였던 종교를 증오한다는 이야기에서 무얼 말하려고 하는 건가? 도대체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영화, 밀양을 가지고 특정한 종교를 노골적으로 비판한 영화라고 시끄러웠다. 사실 언뜻 보면 종교 비판영화로 비쳐질 위험이 많긴 하다. 특정 종교인이 이 영화를 바라본다면 많이 불편할 공산이 크긴 하다.

 

이신애는 교회에 투신하면서 유괴범을 용서하였다고 한다지만, 사실은 마음 깊은 곳에서는 용서하지 못하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다만 하나님은 누구를 가리지 않고 회개한다면 사랑으로 감싸주는 자신의 소임을 충실히 한 것뿐이다. 이창동 감독은 특정 종교를 마치 사악한 단체 같은 사이비쯤으로 확대 해석하여 보여줌으로서 논란의 소지를 만들었다. 감독은 아무래도 특정 종교에 대한 미움 내지는 거부감이 있는 것 같다.

 

확실한 것이 있다면 사이비로 보이게 만든 건 불필요한 감독의 개입이라는 거다. 신성한 종교로 보여주었더라도 이신애가 교회에 투신하였다가 증오하게 된다는 내용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오히려 신성한 교회를 보여주었다면 훨씬더 그녀의 고뇌가 설득력 있게 다가왔을 것이다. 사이비 종교단체에 당한 듯한 분위기의 밀양에서는 그녀가 마치 사기꾼에 당하였다는 느낌으로 강력하게 다가오고 있다. 이 때문에 특정한 종교를 깎아 내리려는 감독의 불순한 의도가 아무래도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많이 의심스럽다.

 

이제는 세상에 모든 사랑을 잃어버린 여자만이 남아있다. 그리고 이런 그녀를 한없이 좋아하여 줄기차게 따라다니는 남자가 있다. 남자의 의미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거라고 복잡하게 생각하기 싫다.

 

그래서 이런 풍의 영화는 딱 질색이다. 별것도 아닌 것이 무언가 있어 보이게 여러 가지 논란거리만 포함하고 있는 돼먹지 못한 영화는 짜증나고 성가시고 당연히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하나님을 용서할 수 있을까?

 

태양이 떠있는 동안에는 언제나 햇빛은 그녀를 감싸고 있겠지만, 마음 깊은 구석에 있는 어둠을 몰아내긴 힘들 것이다.

출처 : [직접 서술] 블로그 집필 - 한상완 소설가





>>>>>>>>>>>  영화밀양을 봤다

위의 글은 블로그에서 끌어온 글인데 소설가의 글이다.

이 소설가의 말대로 밀양은 정말 재미없는 영화였다.

그래서 이 영화는 영화로서의 가치가 아니라 영화의 주제나 내포된 주장들에

만 관심을 가지게 된다.

훌륭한 예술작품은 제대로된 구조와 줄거리, 재미 그리고 가치까지 있어야 하겠지만

밀양은 그런영화는 아닌 것 같다.

위의 소설가는 여주인공의 종교에대한 애착과 증오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영화감독의 특정종교 비판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그리고 위의 소설가는 극중 송강호의 역할이 희망을 상징하는 것인데 그것조차

복잡하게 생각하기 싫다고 하지만 나는 이점이 가장 중요한 핵심 포인트라고 생각

한다.   여주인공은 송강호를 통해서 구원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분명 그것이 감독의 의도일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영화는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에 대한 비판영화인 것 같다.

여주인공의 종교입문은 위선이었고 영화에 나오는 모든 교인들도 결국 여주인공의

천박한 몸짓에 넘어가 들판에서 섹스를 하려하는 약사처럼 형편없는 존재일 뿐이었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감독의 작품은 아니지만 감독은 기독교인들에 대한 인상으로서

그들의 위선을 지적한 셈이다...  섹스를 하는 것이 나쁜것이 아니라 그들만이 고상한

인간이라는 주장에 침을 뱉는 것이다.

마치 대부분의 교인들이 진리를 알고 그래서 자유로워졌다고 착각하고 있는 듯한

작태가 너무나 한심했을 따름인 것...

믿음이나 진리라는 말이 너무 가볍게 사용되는 것 같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의 이 말은 결국 플라톤의 이데아계를

인식할 능력에 다름아닐 것이다.   이것이 그리 쉬운 일인가?

그런데 대한민국의 교인들은 자신들이 벌써 이데아계를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야 뭐 원래 기독교도 싫어하고 배후세계론자같은 플라톤도 싫어하니 그냥

이 아름다운 현상계에서 즐겁게 살고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