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시프 스탈린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자연히 대숙청과 개인숭배라는 단어가 떠오르게 된다. 그는 전율끼치는 비밀경찰 조직을 운용하며 편집증적인 숙청을 즐겼다. 과거 제정러시아 시대의 그 어떤 짜르도 스탈린만큼의 권력을 지니지 못했으며, 그보다 더 개인적인 숭배를 받지 못했다.

스탈린은 그야말로 20세기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에서 역사상 가장 강한 권력을 누렸던 초독재자였다. 그의 무한권력은 후대의 독재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스탈린주의라는 독특한 정치-사회 이데올로기를 탄생시킨다. 오늘날의 북한은 스탈린주의 국가의 전형적인 특성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한편 고대 문명이 탄생한 유서깊은 메소포타미아에도 스탈린을 추종하는 독재자가 한명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바로 후세인이다. 소비에트의 강철 서기장에 경도된 대통령궁의 후세인 집무실은 온통 스탈린에 관한 책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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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인 치하의 이라크에서는 비밀경찰이 모든 시민사회에 잠입하여 반체제적 언동을 적발하였다. 이런 통치는 국민을 공포로 지배하였으며 시민들 서로가 서로를 감시, 밀고하도록 하였다. 스탈린 시대에 버금가는 자의적 체포나 고문도 일상적으로 이루어졌다.

후세인은 스탈린에 못지않게 자신의 우상화에 열중하여 거대한 동상이나, 초상화 포스터를 많이 제작하였다. 당시 이라크에는 후세인 우상화를 위한 작품만 전적으로 제작하는 직업이 존재하였다. 이라크 국영TV는 매일 사담을 함무라비에 버금가는 위대한 이라크의 지도자로 칭송하는 노래와 시를 방영하였다.


- 후세인의 대숙청 -

사담 후세인은 1979년 7월 28일에 대통령으로 취임한 직후 스탈린식의 대숙청을 벌인다. 스탈린은 정적에 대한 숙청작업을 자신들의 사냥개에 일임했지만, 후세인은 직접 전면에 나서 일을 처리했다는 차이점은 있겠다.

후세인을 자신을 타도하기 위한 시리아의 음모를 적발했다고 발표하고 가담자들을 체포하여 재판에 회부했다. 혁명 평의회(RCC) 멤버중 1/3이 총살되었으며 당과 보안기관, 정규군, 인민군, 노동조합, 학생조합, 직능별 단체 등등. 모든 조직을 대상으로 의심의 여지가 있는 모든 자들이 숙청되었다.



1979년 7월 18일, 후세인은 국제회의용으로 건설된 회의장에 총 4백여명의 바트당 고위간부와 RCC멤버들을 모았다.

그는 큰 시가를 든채 테이블 뒤에 앉아 있다가 천천히 일어나 연단으로 걸어갔다. 사담은 거대하고 사악한 음모가 있었음을 밝히고 그것의 신빙성을 판단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곧이어 RCC 의장인 마샤디가 커튼 뒤에서 불려나왔고, 후세인이 연단에서 내려와 큰 시가를 피우며 앉아 있는 동안 음모의 내막을 털어놓았다. 마샤디가 음모의 공모자들을 하나씩 발표할 때마다 보안요원들이 그 사람을 회의장 밖으로 끌고나갔다.

명단 발표가 끝날때까지 무사히 회의장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후세인의 이름을 외치기 시작했다.

 

사담은 자신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사람들을 향해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두차례에 걸쳐 화답했다.

후세인은 반역자들이 영광스러운 바트당을 와해하려 애쓴 내용을 언급했다. 반역자임이 드러난 과거 측근들의 이름을 부를때 후세인은 눈물을 닦았다.

 

회의가 끝날 무렵에 그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듯 웃었고, 참석자들 모두 그를 따라 웃었다.

 

이날 행사는 모두 녹화되었으며 66명이 체포되어 그중 22명은 즉시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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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한 사람 열명을 숙청하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명의 스파이를 놓쳐서는 안된다.


- 니콜라이 예조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