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미 한권을 확보했습니다. 많이들 참가하셔서 좋은책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참가 방법은 간단합니다. 아래 파란색으로 표시된 질문에 대한 생각을 댓글란에 올려주시면 됩니다. 식별이 가능하도록 회원이시라면 로그인후 댓글을 달아주시고, 비회원이시라면 댓글을 적기 이전에 이메일 항목을 채워주시면 되겠습니다.
저자: 제임스 힐먼James Hillman (미국 출신의 저명한 융 심리학자)
기간: 2008년 12월 8일~22일
당첨자(매주 10분씩 총 20분) 발표: 12월 15일, 22일 2회
응모 방법: 아래 질문에 적극적으로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 중에서 추첨하여 책을 보내드립니다.
문의처: 도솔출판사 편집부 서재영 dosol511@empal.com
- 책소개 -
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3196279&CategoryNumber=001001019004003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812051746035&code=900308
http://media.daum.net/society/nation/seoul/view.html?cateid=100004&newsid=20081203113808419&p=yonhap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812/h2008120602411184210.htm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812060052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26004.html

(본문 12쪽)-제임스 힐먼
"어찌해볼 도리 없는 힘이자 인간 조건을 이루는 제1 요소로 전쟁을 묘사하는 힐먼의 문장을 읽고 있노라면 심기가 불편해진다. (...) 독자들은 충격을 받을 것이다. (...) 읽는 이를 매료시킨다."
<퍼블리셔즈 위클리Publisher's Weekly>
질문: 저자 제임스 힐먼은 "전쟁은 정상적이다"라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많은 참여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질문이 좀 난해하지요?
저자는 객관적으로 볼때 전쟁이란 매우 참혹한 현상이지만, 어떤 이유로 인간들은 전쟁을 동경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전쟁이 정상적이냐라는 행간의 의미는 인간, 혹은 사회에서 전쟁이라는 행위를 제거할 수 있을 것이냐라는 물음과 동전의 양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란 전쟁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지요. 인간들은 전쟁을 두려워하고 동경합니다.평화주의자이던 톨스토이는 "어째서 인간들은 전쟁없이 살아가지를 못하는 것인지 이해할수가 없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가 생각하지 못한게 하나 있습니다. 인간들은 겉으로 전쟁과 피를 싫어하는듯 하지만 본능적으로는 결코 투쟁을 거부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인간과 동물들은 본질적으로 투쟁을 기본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투쟁을 싫어하는 동물은 살아남거나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겨놓을수 없습니다. 애시당초 어머니의 자궁에 착상되지도 못할 것입니다. 서양 문명의 뿌리이자 바이블인 구약성경에 묘사된 전쟁의 모습을 한번 예시해보겠습니다.
만일 그들이 너희와 화평을 맺기로 하고 성문을 열거든 너희는 안에 있는 백성을 모두 노무자로 삼아 부려라. 만일 그들이 너희와 화평을 맺을 생각이 없어서 싸움을 걸거든 너희는 그 성을 포위 공격하여라.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그 성을 너희 손에 부치실 터이니, 거기에 있는 남자를 모두 칼로 쳐죽여라. 그러나 여자들과 아이들과 가축들과 그 밖에 그 성 안에 있는 다른 모든 것은 전리품으로 차지하여도 된다.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너희 원수들에게서 빼앗아주시는 전리품을 너희는 마음대로 쓸 수가 있다. 여기에 있는 민족들의 성읍이 아니고 아주 먼데 있는 성읍들에는 모두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너희 하느님 야훼께 유산으로 받은 이 민족들의 성읍들에서는 숨쉬는 것을 하나도 살려두지 마라. 그러니 헷족, 아모리족, 가나안족, 브리즈족, 히위족, 여부스족은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명령하신 대로 전멸시켜야 한다. 살려두었다가는 그들이 자기 신들에게 해올리는 발칙한 일을 너희에게 가르쳐주어 너희가 너희 하느님 야훼께 죄를 짓게 될 것이다. 한 성을 함락시키려고 포위 공격하는 데 오랜 세월이 걸리더라도, 거기에 있는 나무를 도끼로 마구 찍어내지는 마라. 나무에 여는 것을 따먹어야 할 터인데 찍어내면 되겠느냐? 들에 서 있는 나무가 사람처럼 너희를 피하여 성 안으로 들어갈 리 없지 않느냐? 너희는 어떤 나무가 과일을 맺지 않는 나무인지 알 것이다. 그런 나무는 찍어버려도 된다. 너희는 그런 나무로 성을 공략하는 기구를 만들고 너희에게 항거하는 성읍을 기어이 함락시켜야 한다. (신명기 20:11~20)
원수를 치러 싸움터에 나갔다가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원수를 너희 손에 붙여 사람을 사로잡게 해주셨을 때, 그 포로들 가운데서 마음에 드는 아리따운 여자가 있으면 그를 아내로 맞아도 좋다. 그럴 경우 너희는 그를 집 안으로 맞아들여라. 그러나 머리를 밀고 손톱을 깎고 잡혀올 때 입었던 옷을 벗게 하여라. 그리고 한 달 동안 집에 있으면서 자기 부모를 생각하고 곡하게 하여라. 그런 다음에라야 한자리에 들 수 있다. 이렇게 하여 너희는 그의 남편이 되고 그는 너희 아내가 되는 것이다. 만일 그 여자가 더 이상 너희 마음에 들지 않거든 원하는 대로 가게 하여라. 절대로 돈을 받고 팔지는 마라. 그 몸을 버려놓았으니, 마구 부려먹어서도 안 된다. (신명기 21:10~14)
그러나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몸소 앞장서 건너가셔서 저 민족들을 너희 앞에서 없애주시고 너희로 하여금 그 땅을 차지하게 해주실 것이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야훼의 말씀을 따라 너희의 앞장을 서서 건너갈 것이다. 야훼께서 아모리 왕 시혼과 옥과 그들의 땅을 해치우시고 쓸어버리셨듯이 그들도 해치우실 것이다. 이렇게 그들을 너희에게 넘겨주시거든 너희는 나에게 받은 명령대로 어김없이 그들을 해치워야 한다. (신명기 31:3~5)

무고한 사람 열명을 숙청하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명의 스파이를 놓쳐서는 안된다.
- 니콜라이 예조프 -
동물의 왕국을 즐겨보는 편입니다만.. 동물들의 세계에도 엄연히 계급과 전쟁이 존재하지요. 우두머리 수컷은 모든 암컷을 독점하여 자신의 유전자만 후대에 전하려 합니다. 암컷들조차 경쟁에서 진 수컷들은 쳐다보지도 않지요. 다른 수컷들이 그 권리를 차지하려면 피비린내나는 투쟁을 거쳐 우두머리를 꺽고 자신이 가장 우수한 유전자를 보유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만 합니다.
결국 전쟁이란 모든 동물과 인간의 본성이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이성이 극도로 발달하여 모든 본능적 욕구를 억누를수 있는 단계가 된다면 전쟁이 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투쟁이 없어지면 인간은 결국 퇴화하여 소멸될지도 모르겠군요.
다만 끊임없이 계속 일어나는 우리의 일상사와 같다고 생각된다...
이런 이상한 질문이 던져지는 이유는 그저 전쟁이라는 것이 유난스럽게 참혹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류는 지금까지 계속해서 끊임없이 전쟁을 해 왔고, 또 끊임없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왔다.
인류가 계속해서 진화, 혁신, 발전을 해 나가는 과정속에 전쟁이 있다고 생각한다.
전쟁이 정상적인가 하는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다만... 인류발전과정상에 일정부분
전쟁의 역할이 있을 따름이라고 생각된다. 지나친 헤겔적 마인드인가~!!^^
나폴레옹 만세~~~~!!
전쟁이지, 전쟁자체가 필수조건은 아니라고 본다. 전쟁이 아니더라도 변화할 수는 있거든..
다만, 시간이 훨씬 더 많이 소요될 뿐....
그때 그때의 필요에 의해 일어나는 사건들 중 하나가 전쟁이라고 본다....
다만 정치의 연장에서. 비지니스적으로. 일어난 전쟁이 그 과정에서 비정상적이게 되버리죠.
저는 어디까지나 전쟁 그 자체로만 두고 봤을 때는 전쟁은 지극히 정상적이라 생각합니다만... 예외도 있지요.
가장 큰 예로는 히틀러 광기로 뒤덮인 유럽... 정도 되겠네요.
jeong0409@naver.com 입니다.;; 엫 네크로 햏 이메일 주소 란에 기제 해놨는데 안보이시나보죠?
하지만 크게 봐서, 인간이 병에 걸린다는 건 인간이라는 생물체가 살아가면서 겪는 정상적인 과정 중 하나구요.
마찬가지로 인간이 전쟁을 갈망하는 상태만 놓고 보면 비정상적일지도 모르지만,
인간의 행동 전체를 살펴보는 시점에서는 정상적인 행위일수도 있겠죠
결국 정상인가 비정상인가는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정상, 비정상이라는 것 자체가 어떤 기준에 따라 무언가를 판단한 결과니 말이죠.
극단적인 전쟁상태와 또한 절대적인 평화상태 사이에 수없이 많은 다른 상황이 존재함을 배제시켜버린첫번째 줄의 제 질문은 비논리적인 것이겠지요. 그것과 마찬가지로 전쟁이 정상적이다라는 한마디 말이 또한 논리적 합리성을 가지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인간적'이란 말을 정의하기는 불가능에 가깝지만 '전쟁은 인간적인 것이다'라는 말이 더 맞지 않나 싶기도 하구요.
인간은 이성을 통해 감성과 본능을 억누르지만 때로는 감성과 본능을 일부러 폭주하도록 방관하기도 하지요.
그것이 자신스스로에 대한 열정의 폭발이 되는지 아니면 사회혁명을 일으키는 소용돌이가 되는지 혹은 폭풍우와도 같이 모든걸 쓸어가버리는 전쟁의 에너지원이 되는지는 억제와 방관에 대한 교묘하고도 수없이 나타나는 배합의 레시피를 모조리 탐구하지 않는이상 답을 찾기 쉽지 않겠지만요.
여하튼 전쟁을 단순히 '악'으로 규정해버리지 않고 정상적인 현상의 일부다라고 신선함을 던져주는 명제가 새삼 흥미롭네요. 인정해버리기엔 분명 유쾌하지 않지만.
정상적일 수 있는 전쟁과, 정상적이지 않을 수 있는 전쟁으로 나누자합니다.
정상적일 수 있는 전쟁이라함은 생존투쟁의 과정으로의 전쟁으로 정의합니다. 요컨데 훈족의 대이동, 게르만족의 대이동, 공화정 로마의 주변국가에 대한 전쟁, 유목민족국가의 주변 국가 침략 등을 이에 넣고자 합니다.
정상적이지 않을 수 있는 전쟁은 무언가의 과잉 축적의 결과로 산출되는 전쟁으로 정의합니다. 그것이 신학시대라면 종교철학의 과잉 축적, 자본주의 시대라면 자본의 과잉 축적의 결과물로써의 전쟁이 되겠지요. 요컨데 십자군전쟁, 세계 2차 대전 그리고 미국의 이라크 침공등을 예로 들겠습니다.
과잉축적 상태를 해소하는 것이 생존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면, 국제역학관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새로이 높이는 것이 생존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면 전쟁은 정상적인 행위가 될 것입니다.
다만 저는 위의 두 조건이 정말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인가에 대하여는 그리 긍정적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한번은 영화 제작자인 해리슨 스타에게도 그렇게 말했더니-드레스덴 공습에 관한 책을 쓴다고-,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반전(反戰)책이오?"
"예, 그럴겁니다." 내가 대답했다.
"반전책을 쓴다는 사람을 만나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시오?"
"아니오, 뭐라고 하시는데요?"
"'차라리 반빙하(反氷河)책을 쓰시지 그래요?'그럽니다."]
이 부분을 읽는데 '전쟁은 정상적이다'라는 제임스 힐먼의 말이 떠올라 적어봅니다.
해리슨 스타라는 사람 역시 위 명제에 동의할 것 같군요.
"전쟁과 그 살상의 잔치에서 문명은 전환점을 맞았다. 살라미스, 카르타고, 투르와 레판토, 콘스탄티노플, 워털루, 미드웨이, 스탈린그라드가 그 좋은 예이다. 우리가 배웠듯이, 역사의 운명은 궁극적으로 전투에 의해 좌우되며 그 전투의 결과는 보이지 않는 천재들, 지도자들, 영웅들이 주도한다. 그들은 결정적인 시점에. 혹은 사전에 주의깊게 대비하여 가까스로 승리한다. 그런 영웅에게서는 뭔가 초월적인 정신이 발현된다.그 전투와 전투를 승리로 이끈 천재는 세속의 역사에서 구원의 표상이 된다. 영광의 월계관을 쓴 그들. 공원에 늘어선 조각상. 큰 거리에 붙여진 이름. 그 이름을 따서 제정된 기념일 등. 인간세상은 그 전투로 인한 구원을 기념한다."
쉽게 읽을만한 책은 아니군요. '전쟁에 대한 끔찍한 사랑' 사랑스러운 전쟁보다는 전쟁을 사랑하는 끔찍한 인간에 대한 내용이 위주입니다. 이 책에서 전쟁이란 인간의 근원을 탐구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될 뿐이로군요. 저자가 심리학자라는데.. 심리학보다는 오히려 철학, 미학 쪽에 가까운듯.. 한마디로 제 취향에 딱 맞는 책이네요. ㅎㅎ
내용들이니까...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 연상되는구나..
'모든 것이 허용되는' 사람들에 관한 것이지... 대표적인 예로 나폴레옹같은...
수십만의 적군을 죽이고, 또 수십만의 아군을 잃어도 후대의 인류는 나폴레옹을 위한 기념비를 세운다는...
위의 구절처럼 공원에 늘어선 조각상.. 게중에는 나폴레옹 조각상도 있겠지.. 심지어 우리나라는
예전에 초등학교 전과에 표지인물이 말을 탄 나폴레옹이었지^^
사실 히틀러와 나폴레옹이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본다. 그런데 나폴레옹은 영웅대접을 받고
히틀러는 세계의 적이라는 대접을 받지... 역사의 아이러니겠지... 히틀러 만세!!!!!!!
끊임없는 전쟁의 연속이지요.
세계역사를 보더라도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시기보다 전쟁기간이 훨씬 긴것을 보면 알수가 있지요.
200여년에 걸친 십자군전쟁부터 100년전쟁 나폴레옹전쟁. 1-2차세계대전..대전이후로도 크고작은 각종분쟁들...
그리고 지금도 세계도처에서 현재진행중인
국가간 충돌 .내전.테러.학살..
전쟁의 목적 또 한 다양합니다 종교.이념.독립.물질적 이익.영토적 이익등등..
이러한 명분을 앞세워 사람이 사람을 서로 죽이는 행위가 그리 아름답게 보이진 않습니다
허나 본인이 생각하기에 인류는 전쟁과 함께 살아왔고 전쟁을 통해 발전하여 왔습니다
현대에 쓰이는 과학문명의 기술중 상당수가 전쟁을 통해서 개발.창조된것들이지요....
인류는 전쟁을 겪으며 생존하며 전쟁을 통해 발전한다고 생각합니다.... 말해놓고 보니 역설적이네요
사람을 죽이는 목적의 전쟁이 인류를 발달시키다라....
앞으로도 인류역사에 전쟁은 계속 될것입니다...
인류 역사속에서 전쟁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사람으로 따지면 매일 하는 일과(세수.식사.취침같은)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어느한 장군이 이렇게 말했다 합니다
"전쟁은 외교의 연장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지금 눈앞에는 1명이 먹기에는 약간은 부족하지만 2명 이상이 먹으면 모두가 굶어 죽는 정도의 양의 식량이 있다고 칩시다.
그리고 그 식량을 먹고 싶어하는 2명의 서로 상반된 사람이(한쪽은 공격적, 한쪽은 평화주의적)있다고 치면 어떻게 될까요?
이럴 때 공격적인 쪽의 사람이 음식을 얻을 가능성이 높아질 것입니다.(평화주의적으로 나눈다면 굶어 죽는 상황이니까 공격적인 쪽이 평화적인 쪽을 다치게 하거나 죽일 것 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인간이 생기고 수백만 년 동안 이러한 투쟁을 계속 해 왔을 겁니다.(농업혁명이 일어난 것도 인류의 역사에 비하면 짧습니다.)
그러면 인간의 유전자는 결국에는 공격적인 자의 피로 이루어 지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사람의 마음에는 평화를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마음이 존재 하는 이유가 개인적인 보존본능이 아닐까 합니다.
공격적인 자의 유전자로 이루어진 인간들끼리 모여서 서로에게 공격성을 표출한다면 그 집단은 전멸할 것입니다.
결국에는 서로가 타협을 하게 되었고 법이 만들어지고, 국가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국가로 가면 개인적인 도덕이 사라지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제가 보는 국가의 성격은 이익을 추구하고, 자기보존의 본능과 확장의 욕구를 가지는 생명체입니다.
국가는 마치 공격적인 자의 성격을 닮았습니다.
결국 국가의 성격과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성격으로 인해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라 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전쟁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우리 몸에 흐르고 있는 피를(공격적인 자의 유전자) 바꿀 수 없으니까요.
전쟁을 향한 열망 자체는 정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멋대로의 가정을 남발하여 편의상 단정형으로 말씀드리자면
'본능 of 본능'의 목표는 '철저한 개인 1인'의 무한 자존입니다.
유한한 공간에서 무한 자존의 열망은 필연적으로 배타성을 낳게 됩니다.
이러한 배타성을 '온전히 만족'시키는 수단은 전쟁이 '유일'합니다.
즉, 어떠한 중간 과정을 거치던 간에 마지막 행위는 '물리적 소멸'이 되어야 합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실제 이러한 소멸이 자주 일어나지 않는 원인은 개개인의 전지전능하지 못함에 있습니다.
사회/도덕/법의 발생 배경은 공생에 대한 열망이 아닙니다.
개개인의 전지전능치 못함에 의한 불가피한 타협, 혹은 백신에 불과합니다.
개인의 힘에 반비례하는 만족감에 의해 상쇄될 뿐 사회/도덕/법은 근본적으로 불만감을 유발하는 존재입니다.
쉬운 예를 들어 세상의 다른 모든 개체가 힘을 합해도 이길 수 없고 온전한 자급자족이 가능한 1인을
가정하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사회, 도덕, 법의 발생배경이 공생이 아니라니 조금 의아스럽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배우길 홉스나 로크같은 사람이 공생을 위해 국가와 그 법을 만든다고
배웠는데 잘못 배운 건가요?
그리고 사회,도덕,법의 발생배경이 개개인의 전지전능치 못함에 의한 불가피한 타협이라는 말이 결국
공멸을 피하고 공생을 도모한다는 말과 같은 말에 다름아닌 것 같은데요...?
저는 그저 가볍게 떠오르는 생각을 적은 것 뿐이니
사회학의 거성들이 남기신 말을 받아들이시는 것이 현명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냥 이렇게 생각해 본 사람도 있다 정도로 여겨 주시기 바랍니다.
'공멸을 피하고 공생을 도모'한다는 명제와 제 주장의 차이점을 써 보자면
개인의 관점에서 집단을 선호하는 본능적 이유가'나뿐만 아니라 타인의 욕망 성취 확률도 높아지기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나의 욕망 성취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인지의 차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만약 공생에의 추구가 이성의 산물이 아닌 인간의 자존 욕구와 동급의 궁극적 본능이라면
인간의 본능은 근본적으로 모순을 내재하고 있다는 말이 되겠지요.
쉬운 예를 들자면,
고만고만한 사람 5명에게 100만원을 주되 20만원씩 똑같이 나눠 가질 지, 아니면 싸워서 이긴 사람이 100만원을 모두 가질 지를 택하라고 합시다. 물론 싸움을 선택한 사람의 사회적 평판하락 같은 부가적 패널티는 배제해야겠죠.
그렇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나눠 가질 것을 택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혼자 100만원을 갖는 것보다
20만원씩 나눠 갖는 것을 인간은 본능적으로 더욱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해야 할까요? 그렇다면 이번엔 5명중 1명을 기관총을 든 표도르로 교체해 봅시다. 과연 표도르도 공생을 도모하기 위해 여전히 나눠 갖는 것을 택할까요?
그런데 롤즈라는 철학자가 바로 그 모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무지의 베일'이라는 개념을 도입했지요. 사회계약설에 따라 인간세상의 모든 규칙이 사람들간의 계약으로 이루어졌다고 가정합니다. 그런데 100만원을 나눠갖는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자신이 힘이 셀지 약할지.. 총을 가지고 있을지 아닐지 여부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규칙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궁극적으로 어떤 사회가 이상적으로 나아가야할 모습을 논한 것이지. 현실 그 자체를 설명한 것은 아니지요. 기관총을 든 표도르가 많은것을 가지게 되는 것이야말로 현실의 모습이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홉스의 원시상태가 인간세상을 보다 더 흡사하게 묘사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공생의 추구가 이성의 산물이므로 인간 본능이 모순적이지 않음은 저도 애초에 뜻을 같이하는 사항이었구요.
그러나 저는 공생이란 근본적으로 방해요소를 내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회규정에 위반된 행위를 하지 않는 이상 개인이 현재 가진 것을 보장받음에 대한 댓가지요.
공생의 구조에선 자신보다 약한 타인을 도륙하고 재물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엄연한 방해요소입니다. 공생이 자신에게 전반적으로 손해가 되느냐 이득이 되느냐와는 전혀 다른 문제이죠.
글쎄.... 조금 핀트가 어긋나는 것 같습니다만...
kellogg님은 일종의 엘리트 론을 말씀하시는 것도 같습니다만...
홉스나 로크의 이론은 엘리트론 '이전의 단계'를 설정하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제 지식이 미천하여 kellogg님이, 쉬운 예로 든 사항을 가지고 언급하자면...
홉스나 로크나 그외,,,, 여러 현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100만원을 한명이 다 가지느냐, 아니면 똑같이 나눠가지느냐를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한명이 다 가지든 여러사람이 똑같이 나눠가지든 그 과정상의 불법적이고 불합리한 환경을 사회계약을 통해서 해결하자는 것이지요... 만약 단순히 물리적으로 힘센사람이 모든것을 가진다면 necrosant님이 말씀한 것처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밖에 될 수가 없겠지요... 그렇다면 만인의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와, 비록 간헐적으로 전쟁이 있기는 하지만 사회계약에 기반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가 옳을까요?
다만, 한가지 혼란스러운 점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 다음에 다시 kellogg님이 말씀하신 '표도르'시대가 오지 않으리라는 장담은 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언급한 한 명이 가지는 상황과 여럿이 나눠가지는 상황은 각각 그 자체가
만인투쟁과 사회계약 상태를 비유한 것이지 사회계약을 통해 해결해야 할 지엽적 문제를 의미없이 나열하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아니 그 전에 사회계약의 부재 하에서는 나눠먹는 상황이 발생할 수가 없지요.
나눠먹겠다는 그 판단 자체가 사회계약인 것입니다.
그리고 만인투쟁상태와 사회구성상태 중 어느 것이 옳은 지는 제 능력으로선 판단할 수 없군요.
다만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좋아하는 것을 답하자면 물론 사회구성상태입니다.
저는 사회적으로 한없는 약자니까요.
그러나 만약 1대1로는 세계최강이지만 다굴에는 자신없어하는 생물은 만인투쟁상태를 선호하겠지요.
만약 세상 전체가 다굴해도 이길 수 없는 절대지존에게 묻는다면 아마 니 맘대로 하라고 할 겁니다.
공생, 혹은 사회란 약자들이 개별투쟁상황에서 자신에게 보장될 자기소멸이라는,
본능의 관점에서 볼때 최악의 결과로부터 일단 도피하기 위해 이성을 이용하여 택한 일종의 '고육책'과 같습니다.
'고육책'이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온다고 해서
고육책을 선택한 사람이 '고육' 자체를 원한다고 볼 수는 없겠지요.
'고육'을 본래부터 원했던 사람이라면 그것은 그냥 마조변태입니다^^;;
저는 사회계약 부재하에서도 나눠먹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봅니다. 다만 거기에는 이성은 없고 단지, 개 돼지와
같은 동물성만이 존재하고 본능적으로 움직일 따름이겠지요.. 또, 약자도 강자를 공격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정면승부가 안된다고해서 항상 지는 건 아닐테니까요.. 규칙도 없고, 법도 없고, 그야말로 패닉상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마존 정글과 다를바가 없겠습니다.
이런 상황하에서 인류발전의 토대로서의 인간의 이기심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노력으로 이룬 모든것이 보호되지않고 언제든지 약탈당할 수 있다면 저는 모든 노력을 그만두겠습니다.
이런 상황하에서 지금과같은 인류문명이 발생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만인투쟁상태와 사회구성상태중 후자가 더 좋은 상태라고 확신합니다.
결과주의나 공리주의적 입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강자들도 이런 점을 알기때문에 약자들과 합의를 한 것이 아닐까요?
강자가 손해를 본다면 합의를 할 필요가 없겠지요.
결과적으로 kellogg님이 말한 절대지존 조차도 자신이 모든것을 정복하고 그 혜택을 누리는 것보다
공생하는 것이 더 이득이 되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절대지존이 정글상황하에서의 100개의 사과를 독차지 하는 것 보다는 공생의 결과로 발생한 500개의
사과중 200개만 차지해도 더 이득이 된다고 봅니다.
그런의미에서 저는 '고육책'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기가 조금 힘드네요^^
현실이 이익추구행위에 가하는 시공간 및 기타 제약으로 인해 특정 시점의 공급량이 개인의 최대수용속도를 초과하여 발생하는 일시적 여분에 대해선 타인이 점유하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경우지요. 쉬운 예로 독수리가 옆에서 코끼리 고기를 뜯어도 사자는 코끼리 고기를 먹느라 이를 쫒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사실 이것은 나눠먹는다기 보다는 쫒는 것보다 먹는 게 급하다, 혹은 각자 눈앞에 있는 음식을 먹는데 우연히 그 음식이 서로 연결되어 있더라, 뭐 이런 개념에 가깝지요. 만약 사자가 일순에 코끼리를 먹어치울 능력이 된다면, 그리고 먹어치운 코끼리의 양과 만족감이 무한히 비례한다면(과식으로 인한 고통이 없다면) 제 생각에 독수리는 절대 코끼리를 손대지 못할 것이라고 봅니다.
dionysos님이 말씀하신 '사회계약 부재하에서 나눠먹는 상황'이란 '사회계약의 부재에서도 독점을 성공적으로 추구할 능력이 되고 독점의 양이 만족감에 비례하는 경우에도 상대방과 대상을 공유할 -의지-가 본능에 내재되 있다'를 의미하는 건가요? 그렇다면 이러한 의지와 사회계약의 차이점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해 지는군요.
그리고 약자가 강자를 공격하는 것은 매우 제한된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즉, 1.공격 이외엔 죽음 뿐인 상황이거나, 2.자신이 약자임을 깨닫지 못했다거나, 3.일시적으로 강자의 위치에 선 경우입니다(지형적 이점 등으로). 중요한 것은 세 경우 다 적어도 제가 가정한 본능의 원리에는 위반하지 않는다는 거지요. 덧붙여 제가 생각하는 강자와 약자의 구분은 통계적인 의미가 아닌 순간에 의존하는 시간의 함수입니다. 예를 들어 0.1초만이라도 쥐가 사자를 물에 익사시킬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리고 쥐가 그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면 그 0.1초간은 쥐가 강자가 되는 거지요. 만약 이외에 약자가 강자를 공격하는 일이 생긴다면...뭐랄까, 이성의 실수라고 보고 싶군요. 가끔씩 쉬운 덧셈도 틀리듯 말이죠.
인간의 이기심이 인류발전의 토대라...제가 보는 인간의 이기심(혹은 본능)은 기껏해야 개인발전의 토대, 그것도 매우 근시안적 발전만이 가능한 저급한 것입니다. 인류발전의 토대는 인류(혹은 사회)의 이기심입니다. 그리고 사회의 이기심은 개개인의 이성을 토대로 생성되죠. 이성에서 비롯된 사회의 이기심은 개인의 이기심을 '비정상적'으로 운영시켜 결과적으로는 개인의 이기심을 더욱 효율적으로 충족시킵니다.
본능은 바봅니다. 이성이란 삼촌이 1000원을 뺏어가면서 나중에 500만원으로 불려 돌려준다 해도 1000원 뺏아갈 땐 일단 우는 게 본능이란조카입니다. 더욱이 절망스러운 것은 삼촌이 500만원이 되는 논리를 백날 설명해 줘도 조카는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죠.
아무리 그래도 사회의 이기심 또한 궁극적 목표는 개인 이기와 부합하므로 개인의 본능 영역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일시적인 개인 이기의 억제 과정까지도 포함하는 그러한 고도의 전략을 이성이 아닌 개인 본능의 영역으로 치부하기엔 저로선 무리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현재도 생태계의 동물들 대부분은 만인투쟁상태에 놓여있습니다. 인간도 그러한 상황에 닥치면 포기하는 분들도 물론 계시겠지만 대부분은 어떻게든 적응해 가리라 생각합니다. 필사적으로 약자를 약탈하면서 또한 필사적으로 강자로부터 도망치면서...
자꾸 중언부언이 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만
사회구성상태가 만인투쟁상태보다 좋다는 것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제가 혹시 지금까지 만인투쟁상태가 더 좋다는 뉘앙스를 풍겼었나요?
하지만, 하지만 제가 좋다고 하는 이유는 오로지 그것이 '제게는' 더욱 이익이 된다는 이야기지 모든 상정할 수 있는 개체에 대해 사회구성상태가 일괄적으로 만인투쟁상태보다 더욱 이익이 된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닙니다.
현재 모든 인류에게 -dionysos님께서 '강자'라고 분류하신 인류에게마저도- 사회구성상태가 만인투쟁상태보다 더욱 이롭다는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현재 세계의 제1인자마저도 만인투쟁을 선호할 만큼 '충분히 강하지 않기' 때문임에 불과합니다. 지금까지 어떻게든 논의를 단순하게 하기 위해 '강자'와 '약자'의 판단 기준을 물리적 힘으로만 한정했지만 좀더 실제적이고 포괄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만인투쟁을 선호할 만큼의 강자가 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단순히 1:1싸움의 최강임은 물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술과 능력에 정통해야 하고 또 어떤 행위를 할 때 그것을 무한한 인원수의 타인에게 대신 시키는 것 이하의 시간과 수고로움만을 필요로 하여 타인의 생사 여부가 스스로의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지 말아야 하는 등...마법사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야 하죠. 설사 이러한 사람이 존재하여도 사회는 어찌어찌 대적할 수 있을 정도이니 현재의 최강자란 것은 사실 만인투쟁상태는 꿈도 못 꿀 만큼 사회라는 괴물 앞에선 보잘것없는 존재입니다.
다시 한번 주장합니다만 자신에게 궁극적으로 손해가 되면서도 사회에 억지로 가입한 강자는 현재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사회라는 거대한 괴물앞에서는 '현실에 존재하는' 어떤 강자라도 현재로서는 5mm개미들 속에 놓여있는 6mm개미 몇 마리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사회구성상태의 일괄적, 절대적 우위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란 것이죠.
지금 당장 버너가 없다고 물은 어떤 경우에도 수증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할 수는 없듯이 말입니다.
또 중언부언이 되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절대지존'은 자신을 제외한 전세계 인류로 하여금 사과만 기르도록 시킬 때 드는 수고와 동등한 수고를 통해서 자신이 직접 그와 동등한 양의 사과를 생산할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예를 들어 그런 존재입니다.^^;;
애초에 저는 절대자라는 개념은 배제한 체 얘기한 것이었구요..
그러니 대화의 촛점이 맞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셈이네요^^
앞서 말한 '고육책'같은 개념에도 이견이 생길 수 밖에 없었네요...
kellogg님이 말씀하시는 절대자라는 개념이 신같은 '인간'을 얘기하는 건가요?
그런 존재에게는 사회계약이나 만인투쟁이라는 두가지 모두가 의미가 없어질 것 같네요..
혹 절대자라는 것이 신같은 '인간'이 아니라 '절대정신'이나 '세계이성'같은 '정신'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궁금하네요...
여하튼 훌륭하신 분이라 곁에 있다면 좋은 얘기를 많이 들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절대정신, 세계이성이라...
인간이 가진 것과 동일한 본능적 의지를 가지며 전방위적으로 사회의 능력을 상회하는 존재이면
그것이 꼭 '인간'이어야 할 필요는 없겠지요.
문제는 오히려 절대정신/세계이성의 정의에 있습니다. 목적(방향성)과 제작과정을 상상할 수 없는 프로그램은 실행시켜 보지 않고는 무엇을 할지, 어떠한 물리력을 유발할 지 아무도 알 수가 없죠. 인간의 정신은 인식 가능한 주위와의 교류를 제작과정으로 하고 본능 및 지금까지 본인에게 구축된 정신 등을 방향성으로 삼는다고 어렴풋이 추측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말이지요.
훌륭하다뇨...저도 스트레스 받으면 여기저기 찌질이 노릇이나 하는 별 볼일 없는 인간입니다.ㅠㅠ;;
그리고 저야말로 dionysos님과 글을 주고받으면서 처음의 제가 했던 생각에서 여기저기 헛점도 발견할 수 있었고 그것을 조금씩이나마 보완해 가는 과정에서 유익함도 느낄 수 있어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추운 겨울 몸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경제학을 공부했습니다만, 그 어떤 경제학 이론을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바탕에 깔고있는 것이 '인간은 이기적 존재다.'라는 가정입니다. 교과서의 첫페이지에 항상 나오지요. 사실 경제학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과학이 동일한 전제를 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슴과 사자가 얼싸안고 춤을 추는 원시상태를 동경하던 루소조차 사회계약이라는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사적 소유의 허용에 의한 불평등'이라는 모순된 가정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인간이 본질적으로 이타적이고 선한 존재라면 평등과 정의를 계약에 의해 추구할 필요가 전혀 없겠지요.
지구에서는 더 이상 전면전 자체가 사실상 어려운 구조가 되었습니다.
유럽과 미국지역에서 전쟁이 발생하면 지구경제구조가 송두리채 붕괴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번 경제난의 배후에는 인간들의 이기적인 욕망하에 기업의 시장지배만 너무 고려하여 사실상 전 지구적으로 거품이 꺼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두다리 조차도 이번 경제난의 진흙에서 벗어나기 힘들것 같습니다.
알프레드의 전시경제를 참고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정신병원 다녀온 후에 다시 글 올리겠습니다.
그때까지 안녕히~~~

